설교시편 › 아이젠 되시는 하나님

이한규 목사 | 2013.02.14 23:56:2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시62:1-12
설교자
이한규 목사
참고
http://www.john316.or.kr

아이젠 되시는 하나님 (시편 62편 1-12절)

 

< 아이젠 되시는 하나님 >

 요새 가끔 등산을 다닙니다. 얼마 전에는 혹한이 닥쳐서 산이 눈이 여전히 많았지만 산행을 감행했습니다. 믿는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발에 끼는 강한 연철로 만들어진 쇠 발톱 역할을 하는 아이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미끄러운 곳도 발에 아이젠을 끼고 가면 전혀 미끄럽지 않고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아이젠을 끼면 눈이 없는 평탄한 길보다 오히려 눈으로 덮인 미끄러운 고난 길을 더 선호하게 됩니다.

 제 아내는 제가 아이젠을 낄 때마다 행복해하니까 수시로 말합니다. “당신은 아이젠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아이젠으로 인한 안정감을 생각하면 안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아이젠을 낄 때마다 ‘반석 위에 놓인 삶’의 축복을 느낍니다. 하나님은 ‘아이젠 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으면 깊은 안정감이 생깁니다. 또한 아직 고난을 좋아하는 경지까지는 못 올랐지만 고난이 와도 “이 위기가 곧 기회가 되겠구나!” 하는 굳건한 믿음이 있기에 찬양과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습니다.

 어느 날, 한 농부가 농작물을 심었습니다. 그 농작물은 빚 청산에 꼭 필요한 농작물인데 수확 며칠 전에 무서운 폭풍이 불어와 그 지역이 초토화되었습니다. 어린 아들은 초토화된 들판을 바라보며 선 아버지가 절망 중에 하늘을 저주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아버지가 노래했습니다. “만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나중에 그 아들이 훌륭한 인물이 되어 말했습니다. “그때 아버지의 노래는 제가 들은 가장 위대한 설교였습니다.”

 고난 중에 부르는 노래는 사람을 위대한 인물을 만듭니다. 다윗이 왜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삶의 위대한 반석과 아이젠으로 삼고 고난 중에도 기쁨과 감사의 노래를 불렀기 때문입니다.

< 굳건한 믿음을 얻는 길 >

 시편 62편은 ‘여두둔’이란 창법에 의해 고난 중에 다윗이 부른 노래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 도다.” 다윗은 고난 중에 잠잠히 구원의 하나님만 바라보겠다고 노래합니다. 물론 다윗도 고난 중에는 절망했습니다. 그러나 곧 평안과 노래를 되찾았습니다. 어떻게 다윗이 고난 중에도 금방 노래를 되찾을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을 반석과 요새로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2절).

 대적은 아무리 강해도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기에 조만간 무너집니다(3절). 그때까지 인내하면 결국 승리합니다. 악인은 늘 성도를 떨어뜨리려고 거짓을 말하고 입으로는 축복하는 것 같아도 사실은 저주하는 것입니다(4절). 그러면 사람에 대해 실망이 되고 분노가 생기지만 왜 다윗은 금방 안정을 되찾았습니까? 역시 하나님을 반석과 피난처로 삼았기 때문입니다(5-7절). 다윗처럼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시시로 의지하십시오

 본문 8절 전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이 구절에서 ‘시시로’라는 말은 ‘at times(때때로)’란 말이 아니라 ‘at all times(항상)’란 말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면 나약해지고 의타심이 커질 것 같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면 의타심이 커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면 오히려 자립심이 커지면서 사역도 잘하고 사업도 잘하고 사랑도 잘하고, 나중에는 사망도 잘하게 됩니다.

 인생 최고의 승리가 무엇입니까? 살 때는 겸손하게 잘 죽고 죽을 때는 아름답게 잘 죽는 것입니다. 탈선한 기차는 1미터도 전진하지 못하듯이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면 진정한 의미의 전진이 없습니다. 해바라기가 해를 바라보며 살듯이 인생은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 때 가장 가치 있고 아름다운 인생이 됩니다.

 하나님만 바라본다는 것은 결국 말씀대로 힘써 순종하며 산다는 말입니다. 이제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럴듯한 핑계와 변명을 대고 못한다고 하지 마십시오. 마태복음 8장에서 백부장이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주님! 제 집에 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으니 다만 말씀만 하소서. 그러면 하인이 낫겠나이다. 제게도 하인이 있는데 저더러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옵니다.” 얼마나 멋진 믿음의 고백입니까? 그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만 의지하고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반드시 최선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마음을 토로하십시오

 본문 8절 하반부 말씀을 보십시오.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셀라).” 다윗은 하나님을 반석으로 삼아 든든히 서는 것도 잘했지만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아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토하는 것도 잘했습니다. 그처럼 힘들면 하나님께 기도를 통해 아픔과 상처를 내어놓으십시오.

 가끔 상담을 받으면 어떤 분은 상담 후에 얼굴이 확 피어서 돌아갑니다. 대개 3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보다는 문제가 이해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자기 얘기를 들어주고 이해를 받아 마음이 시원해졌기 때문입니다. 셋째, 그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을 속 시원하게 털어놨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때로는 털어놓아야 합니다. 잘 기도하면 왜 얼굴이 피고 마음이 시원해집니까? 하나님께 자기 심정을 털어놨기 때문입니다.

 이제 기도를 통해 무의식 속에 잠재된 열등감과 좌절과 상처와 아픔을 하나님 앞에 다 내어 놓으십시오. 그때 심령의 자유를 얻고 위로와 치료도 얻습니다. 여기저기 사람을 찾아 상담 받는 상담 마니아가 되지 마십시오. 사람에게 마음을 다 오픈하고 상처를 토로했다가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 때도 많습니다. 나중에 마음이 차분해지면 그 전에 상담하며 털어놓은 것에 대한 수치감을 느끼고 목회자를 멀리하고 교회까지 멀리할 때도 많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에게는 너무 오픈하지 마십시오.

 오직 하나님 앞에서만 다 오픈하고 자신의 깊은 상처와 좌절과 절망을 토로하십시오. 기도는 응답을 위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상처와 좌절과 절망을 토로하며 심령의 자유를 느끼고 마음의 시원함을 얻기 위해서도 하는 것입니다. 그처럼 기도를 통해 마음을 토로할 때 마음이 시원해지고 말씀이 새롭게 들리고 새롭게 깨달아집니다. 그렇게 마음과 귀가 열리는 축복은 그 다음에 나타날 실제적인 축복의 뚜렷한 전조입니다.

3. 하나님의 보상을 바라보십시오

 다윗은 살면서 다음과 같은 3가지를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첫째,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 슬프도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속임수이니 저울에 달면 그들은 입김보다 가벼우리로다.” 사람이 강한 것 같지만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그를 믿음의 대상으로 삼지 마십시오.

 둘째, 물질을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십시오. “포악을 의지하지 말며 탈취한 것으로 허망하여지지 말며 재물이 늘어도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지어다.” 한 사람의 가치관을 아는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돈을 어디에 쓰는지를 보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실한 헌금생활과 선교와 나눔은 신앙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바로미터와도 같습니다.

 셋째, 권세를 의지하지 말라고 합니다. 본문 11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한두 번 하신 말씀을 내가 들었나니 권능은 하나님께 속하였다 하셨도다.” 사람의 권세는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 속했기에 어떤 일도 하나님의 통제 없이 우연히 이뤄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십시오.

 그처럼 사람과 물질과 권세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믿음으로 무엇인가를 심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해주실 것입니다(12절). 하나님의 신실한 성도의 헌신과 마음속의 비전을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 비전을 이루기까지 인내와 고난의 기간이 있지만 그때 흔들리지 않고 나가면 반석과 아이젠 되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선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 믿음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

 저는 귀국할 때 선교사 후원의 비전을 가지고 귀국했습니다. 그리고 후방에서 선교지원 사역을 하면서 고생하는 선교사님들을 풍성하게 돕고 싶었지만 늘 재정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하려고 일전에 <네트영어 교육방송>의 비전을 세웠습니다. 그 동안 수많은 방법으로 영어를 공부했던 저로서는 그런 방법들과 비교해 <네트영어>의 탁월성을 확신했기에 이것이 보급되면 큰 선교 재원이 될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 시점에 인도에서 크게 사역하는 이 상기 선교사님이 <선교사 사관학교>의 비전을 세우며 땅 부지를 위해 백만 불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미국에 사는 한 후원자의 헌신으로 부지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신실한 선교사님의 기도가 응답된 것입니다. 그때 저도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네트영어의 비전도 선교사 사관학교의 비전만큼 소중합니다. 제게도 인력, 시설, 장비, 시스템, 그리고 워크북 등의 마련을 위해 백만 불을 주소서!”

 그 기도와 함께 온새기(온라인 새벽기도)에 네트영어를 연재하며 <네트영어 교육방송>을 위한 기도제목도 첨부했습니다. 네트영어 비전만을 위한 요삼일육선교회 후원계좌도 따로 만들어 첨부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을 연재해도 비전을 잘 설득하지 못해서인지 단 한 명의 후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펀드레이징(fundraising)을 위한 수많은 연구와 기획과 방법들을 구상해보았습니다. 친한 동창들이나 목회자들을 만나 비전을 설명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도록 현실은 여전히 캄캄했고 전혀 진전이 없어서 비전까지 흔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극적인 반전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숫자를 수없이 꼽아보고 현실을 직시하며 똑똑한 분석도 해보고 다양한 기획도 해봤지만 전혀 진전이 없었습니다. 또한 네트영어를 연재하며 기도제목도 나눴지만 전혀 반응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초점을 바꾸고 오직 하나님만 고려하겠습니다. 네트영어의 연재를 멈추고 인간적으로 그 계획을 단축하려고 조급해 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겠습니다. 이제부터 인간적인 모든 방법과 계획과 생각을 내려놓겠습니다.”
 
 그와 동시에 믿음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모세를 통해 홍해를 가르시고 여호수아를 통해 태양을 멈추신 하나님! 지금도 그런 기적은 얼마든지 가능한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저의 말더듬 증상을 치유해 설교자로 만드셨습니다. 한국말도 더듬던 제게 네트영어의 기막힌 원리를 통해 영어의 문까지 열어주셨습니다. 신체적인 열등감으로 신음하던 제게 매력적인 아내와 자녀들을 주셨고 <성경 66권 전체 설교파일>을 통한 천년영향력의 비전도 주셨습니다. 그런 은혜를 주신 하나님이 <네트영어의 비전>도 기적적으로 이뤄주실 줄 믿습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 하나님이 1988년의 교통사고를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그해 <시카고 한인 세계 선교대회>에서 스태프로 섬기고 토요일 오후 1시에 뉴욕의 섬기던 교회로 출발했습니다. 주일 오전 11시까지만 교회에 도착해도 주일성수를 할 수 있는데 굳이 새벽예배 참석을 위해 주일 새벽 5시 전에 도착하겠다고 시카고 빌리그래함 센터에서 뉴욕의 플러싱까지 쉬지 않고 차를 몰아도 15시간 걸리는 80번 고속도로를 거의 쉬지 않고 달렸습니다. 저녁부터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그 비도 예배를 사모하는 마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그처럼 억수같이 퍼붓는 빗길에서 시속 100킬로 이상 차를 몰다가 새벽 1시쯤 도로의 파인 물웅덩이에 차바퀴 하나가 푹 빠지면서 차가 핑그르르 돌았습니다. 순식간에 우당탕탕 도로 중간의 초원지대로 날아 진입해서 자동차가 50미터쯤 펑펑 튀기며 나가다가 마지막에는 10미터 정도를 휙 날았습니다. 그때 옆에 탄 같은 교회의 최 아무개 집사가 “전도사님! 브레이크!”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듣고 젖 먹던 힘을 다해 죽도록 브레이크를 밟았고 다행히 건너편 도로의 끝 날개 부분의 작은 낭떠러지 앞에 차가 대각선으로 툭 걸쳐 섰습니다.

 그때 도로 끝에 대각선으로 걸쳐진 우리 차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20톤 트레일러가 우리 차 뒷부분에서 몇 센티를 남겨두고 휙 지나갔습니다. 그 트레일러 운전사도 한밤에 갑자기 반대 차선에서 날아든 차량으로 기절초풍했을 것입니다. 그 차가 옛날 기아 프라이드처럼 길이가 짧은 일제 소형차였기에 부딪치지 않았지 만약 그 차가 현대 엑센트 정도만 되었어도 저는 이 세상에 없었을 것입니다.

 다행히 차는 앞바퀴 주변만 심하게 찌그러졌고 운행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꾸로 시카고 방향으로 10여분을 달렸다가 인터섹션에서 차를 돌려 다시 뉴욕으로 양동이로 퍼붓는 빗길을 뚫고 새벽 5시 조금 넘어 새벽예배 중에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새벽예배를 드리는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때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너무 좋아서 매일 새벽예배까지 생명을 걸 정도로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했습니다.

 그때를 기억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25년 전에 저는 이미 죽은 목숨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려주신 것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그때 살려주셨기에 지금까지 성경의 55%를 설교파일로 완성했고 네트영어의 비전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때 조급하게 백만 불을 구했지만 이제는 숫자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가겠습니다. 비전을 품게 해주신 하나님이 성취하게도 하실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흔들리지 않고 비전을 향해 나가겠습니다.”

 그때 마음을 바꿨고 초점을 바꿨습니다. 환경을 바라보기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환경을 고려하기보다 하나님을 고려하기로 마음을 바꾸자 실망감이 사라지고 다시 믿음이 샘솟듯 솟아올랐고 비전에 대한 새로운 기대감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때에 대한 신뢰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의해 완전히 제 영혼이 설복되어 편한 마음으로 비전을 향해 달려갈 믿음과 여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길이 안 보일 때도 길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장애물의 크기’를 고려하지 말고 ‘하나님의 크심’을 고려하십시오. 매일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안 된다는 인간적인 분석과 정보들만 취합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삶은 점점 패배적이 됩니다. 그런 태도는 잘못된 방향으로 믿음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믿음도 일종의 믿음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믿음에 자신의 소중한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게 하십시오.

 사람들은 대개 환경을 고려합니다. 그래서 은행 잔고와 병원 진단서와 배경을 너무 고려하지만 이제는 하나님을 더욱 고려하십시오. 같은 시간을 쓰면서 문제를 고려하고 분석하는데 시간을 쓰기보다는 하나님을 고려하고 감사하는데 시간을 쓰십시오. 하나님이 지금까지 지켜주셨고 막힌 길에서 돌파구를 열어주셨던 때를 기억하며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하나님!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이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소서!”

 몸이 아프면 몇 십 시간 동안 인터넷 검색을 통해 그 증상에 대해 연구하기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등산이나 산책을 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있을 줄 믿습니다! 저를 강하게 하시고, 건강 주시고, 상쾌함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같은 시간을 그렇게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사용하면 얼마나 좋습니까?

 이제 호흡할 때마다 고백하십시오. “반석과 아이젠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 사는 저를 누구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할 줄 믿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을 크게 보면 문제는 작게 보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으로 마음과 생각이 젖게 하고 하나님에 의해 온전히 설복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도 그런 설복된 믿음을 가졌습니다.

 어느 날, 나사렛에 사는 10대 소녀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마리아야! 네가 큰 은혜를 입었다. 너는 남자가 없이 아기를 얻을 텐데 그 아기는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가 될 것이다.” 그런 엄청난 축복의 약속을 받고 그녀는 잠깐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남자 없이 아기를 낳는가?” 그러나 그녀는 자연적인 이치보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고려하고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주님! 말씀대로 내게 이뤄지길 원합니다.”

 이제 찬란한 비전을 품고 마리아처럼 반응하십시오. 불가능해 보이는 비전도 하나님은 얼마든지 이뤄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저는 가망이 없습니다. 저는 너무 늙었습니다. 제가 무슨 일을 합니까? 그저 고통 없이 가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약해지지 말고 마리아처럼 고백하십시오. “은혜와 회복의 하나님! 저를 향한 성경의 무수한 약속의 말씀을 믿습니다. 제게 건강과 기력과 열정을 주소서!”

 지금 빚 때문에 힘들어도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지금 상황으로는 빚 청산이 어렵습니다. 현재 경기가 너무 나쁩니다. 주식상황도 안 좋고 부동산 경기도 바닥입니다.” 그런 부정적인 말을 금하고 마리아처럼 말씀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향한 축복의 약속이 그대로 이뤄질 줄 믿습니다. 저를 축복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제게 주신 선교와 나눔의 비전이 멋지게 이뤄지게 하소서!”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하늘창고의 문도 열어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남자 없이 어떻게 아이가 태어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결국 ‘남자 없이’ 예수님을 탄생케 하심으로 마리아에게 주신 약속을 그대로 이뤄주셨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남자나 사람 없이 얼마든지 비전을 이뤄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이루기 위해 꼭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합니다. “그 상사에게 잘 보이면 승진할 거야! 그 전문가에게 잘 교육받으면 길이 열릴 거야! 좋은 친구를 만나면 행운이 따를 거야!” 세상에서는 그런 원리가 통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비전의 성취는 ‘내가 어떤 사람을 아는 것’과는 큰 상관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을 주관하시는 분이기에 진짜 성취는 사람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마리아에게 ‘남자(man) 없이’ 엄청난 축복의 약속을 이뤄주셨듯이 ‘사람(man) 없이’ 우리의 찬란한 꿈과 비전도 얼마든지 이뤄주실 수 있습니다. 또한 돈과 권세와 배경이 없어도 얼마든지 꿈과 비전을 이뤄주실 수 있고, 은행 대출과 명의의 치료가 없어도 얼마든지 역전승과 회복의 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환경을 너무 고려하지 말고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을 진지하게 고려하십시오.

 때로 자신이 현재 가진 재정과 인력을 생각하면 도저히 꿈과 비전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그런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십시오. 현재의 소유를 가지고 너무 산술적으로 분석하지 말고 마리아처럼 담대하게 고백하십시오. “반석과 아이젠 되시는 하나님! 사람의 눈에는 전혀 길이 안 보여도 당신께는 수많은 길이 있을 줄 믿습니다. 제게 주신 축복의 비전이 그대로 이뤄지게 하소서! 또한 저희 분당 샛별제단이 나눔의 모델 역할을 잘 감당하고 목회자의 멋진 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제가 위대한 동역후원자가 되게 하소서!”

 항상 마음속에 찬란한 꿈과 비전을 품고 환경을 고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고려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최상의 길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반석과 피난처와 아이젠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내일의 축복을 예비하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http://www.john316.or.kr

댓글 쓰기

목록 삭제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