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데살로전 › 믿음에 뒤따라야 할 덕

이한규 목사 | 2013.02.14 23:56:2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살전5:7-11
설교자
이한규 목사
참고
http://www.john316.or.kr

데살로니가전서(17) 믿음에 뒤따라야 할 덕 (살전 5:7-11)

 

< 종말을 대비하는 삶 >

 이차 대전 때 필리핀이 잠시 일본에게 점령되어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을 떠날 때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년 후 필리핀 해안에 상륙하며 말했습니다. “약속한 대로 나는 다시 왔다.” 사람도 자기 명예를 걸고 다시 온다는 약속을 지켰다면 신실하신 예수님은 다시 오신다는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 사실 및 시기에 대한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재림하신다는 전제하에 “무엇을 준비할까?”하는 문제로 고민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도둑같이 임합니다(2절). 결국 정확한 재림 날짜는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재림은 도둑같이 임하지만 평소에 예수님의 재림을 대비하며 사는 사람에게는 도둑같이 임하지 않습니다(4절). 그만큼 종말을 대비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종말의 때에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성도가 마지막 때에 특별히 추구해야 할 것은 믿음과 사랑과 소망입니다(8절). 그 중에서도 베드로 사도는 마지막 때는 사랑이 식어지기에 특별히 사랑을 강조합니다(벧전 4:7-8).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사람 중에 혹시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으면 이제 용서하십시오. 자기를 포함해 다 모자란 사람들이고 실수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허물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누구도 다음과 같은 로마서의 선언에서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를 범하였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결국 부족하고 죄와 허물이 많은 사람끼리 서로 용서하며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것이 말세를 대비하는 성도의 최대 대비책입니다.

 마지막 때의 대비를 위해 또 하나 중요한 것이 ‘구원의 확신’입니다(9-10절). 악한 종교 리더들은 두려움을 심고 영혼을 약화시켜 자신의 꼭두각시를 만들려고 종말론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종말신앙은 성도를 두렵게 하려고 도구가 아니라 종말의 때를 슬기롭게 대비해 내일의 상급을 받는 통로입니다. 즉 종말신앙으로 인해 두려움이 생기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의 소망이 뚜렷해지고 기쁨이 넘치고 기분이 신나게 되어야 바른 종말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 믿음에 뒤따라야 할 덕 >

 가끔 보면 절망적인 막다른 상황을 만나서 “이제 끝났다!”고 자포자기에 빠지거나 다 끝난 인생이니까 맘대로 하겠다고 안일과 나태와 방종에 빠져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약 종말신앙이 그런 자포자기와 안일과 나태와 방종을 조장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종말신앙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잘못된 종말신앙으로 자포자기와 무사안일에 빠지지 않도록 목표와 사명에 힘쓰도록 권면하고 또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서로 덕을 세우라고 권면합니다(11절).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지만 사랑은 덕을 세웁니다(고전 8:1). 조금 배우고 체험했다고 다 아는 것처럼 하지 말고 사랑으로 덕을 세우십시오. 가끔 보면 열성 초신자 중에 “이것 아니면 아니다.”가 너무 원색적이다 보니까 사랑의 원리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등산 중에 절 옆을 지나면 절을 우습게보고 스님들을 비하하면서 쓸데없이 시비를 겁니다. 그러다가 욕을 먹으면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이라고 오해합니다.

 반면에 성숙한 성도들은 절의 수도자들을 존중하고 바르게 살려는 그들에 대해 예의를 표합니다. 다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안타깝게 여길 뿐입니다. 타 종교인에게 무례한 태도를 보이며 자기 영성을 높게 보이려는 태도는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영성은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풍성히 하고 사랑으로 덕을 세움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무례히 굴고 남을 비난하는 것을 통해 “나는 믿음이 깊은 사람이다.”란 것을 증명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와 거룩함이 쌓여진 상태가 저절로 우러나온 삶으로 영성을 증명하십시오.

 미성숙한 열성 신자의 가장 큰 약점은 그가 배운 단순한 몇 가지의 신앙 지식이 그를 경박하게 만들어서 곧잘 남을 판단하고 정죄한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자기 체험과 지식들이 경건하고 겸손하고 따뜻한 삶의 분위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안 됩니다. 신앙이 있으면 삶도 따뜻해야 합니다. 눈에 교만이 배여 있으면 안 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지면 눈도 따뜻해집니다. 성도에게는 그런 분위기가 풍겨나야 합니다.

 “난 제사 안 지내! 난 주일에 아무 것도 안 사먹어! 그런데 당신은 왜 그렇게 살지?”라는 식으로 자기의 성도됨을 부정적인 비교로밖에 증명하지 못하는 모습은 덕스러운 모습이 아닙니다. 입술로 고백하고 그토록 입에 침이 마르도록 내세웠던 모든 신앙적인 표현들이 삶을 변화시키고 덕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누구도 그 모습을 보고 믿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것입니다. 믿음에는 덕이 뒤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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