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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환 목사 | 2013.09.11 10:18:4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롬8:1-30
설교자
최장환 목사
참고
http://cafe.daum.net/smbible/5JQI/652

롬8;1-30 삭제할 줄 아는 지혜

 

 

세상을 살다 보면 미운사람도 많습니다.

사랑하고픈 좋아하고픈 친해보고픈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다 보면 괴로움이 따름니다.

때로는 사랑해선 안되는 사람이어서 때로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 아픔도 따르고 괴로움도 따름니다.

그렇다고 사랑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괴로움 슬픔 아픔이 따른다고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삶이란 것 자체도 괴로움의 연속이니 살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아파도 괴로워도 우리는 살아야 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좋아하고 그래서 사랑하다 보면 때로는 실망하고

때로는 배신의 아픔으로 미움을 갖게 됩니다.

배신의 아픔은 우리가 그에게 반대 급부를 바라고 있었음을 반증합니다.

조건없이 바람없이 주고 사랑했다면 돌아서 가는 사람은 그것으로 그만입니다.

미움도 아픔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은 기쁨이지만 괴로움이 동반되듯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것은 더욱 자신을 아프게 합니다.

미워하는 마음은 희망없는 아픔이요, 희망 없는 괴로움입니다.

사람이니까 그럴 수 있으려니 사람이니까 변하고

배신할 수 있으려니 하고 그냥 내 마음에서 그들을 놓아줍니다.

마음에 간직해서 괴로운 미움을 마음에서 지우고

그 사람의 기억도 지워버리는 겁니다.

내 인생의 장부에서 지워서 보내고 놓아주는 겁니다.

살아가면서 인생을 기록하면서 그 기록이 쌓이는 것으로 짐을 만들기 보다는

적당히 기억을 기록을 지우고 삭제 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큰 꿈을 가진 사람 앞에는 꼭 넘어야 할 벽이 나타납니다.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벽에 부딪힘이 생기는 것이지요.

벽이 숫자가 많아지고 높아질 수록 내가 보다 가치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조건들이 갖춰져 있다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내 하는 일 앞에 나타나는 벽은 열심히 살아가려고 하는 증거이며

따라서 자랑스럽고 반갑게 맞이해야 할 힘의 원천입니다.

현대 심리학의 대가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삶이냐’를 통해

기쁨과 쾌락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기쁨이란 삶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기쁨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경험되어지는 감정이며,

삶을 지속적으로 비춰주는 빛과 같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쾌락은 기쁨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쾌락은 말초적 흥분을 일으킬 뿐 쉽게 사라져 버리고

그 남은 공간을 슬픔으로 채워 버리게 됩니다.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더 강한 쾌락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쾌락은 마약과 같이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기쁨이 사라진 쾌락’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살고 있습니다.

권력, 재물, 성적 쾌락, 인기, 멋진 외모가 최고 가치로 전락한

현대 사회에서는 자살, 이혼, 우울증, 사기 등이

판을 칠 수밖에 없는 환경입니다.

진정한 기쁨을 찾기엔 너무나 삭막해져버린 세상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기쁨을 찾는 존재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상에 빛을 밝히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석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괴로워도, 아픈 상처가 있어도,

나쁜 기억이 있어도, 어떤 사람이 보기 싫어도, 미워도,

실망해도, 배신을 당했어도, 사기를 당했어도, 모함을 당했어도,

따돌림당했어도, 어떤 일이 골치가 아파도, 우리가 망했어도,

어떤 일이 안되었어도, 직장에서 정리해고 당했어도,

그런 아픔을 간직하고 힘들어 하지 말고

그것을 도리어 전화위복을 삼을려고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본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육신에 속한 생각은 하나님께 품는 적대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으며, 또 복종할 수도 없습니다.

육신에 매인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은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성령 안에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을 얻습니다.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신 자기의 영으로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빚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지만,

육신에 빚을 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살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다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바로 그 때에 그 성령이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언하십니다.

자녀이면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으려고

그와 함께 고난을 받으면,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했지만, 그것은 자의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굴복하게 하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곧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누릴 영광된 자유를 얻으리라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뿐만 아니라 첫 열매로서 성령을 받은 우리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을,

곧 우리 몸을 속량하여 주실 것을 고대하면서, 속으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으면서 기다려야 합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사람들을 택하셔서, 자기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은 그 아들이 많은 형제 가운데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미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사람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즉 바울은 로마서에서 교회가 신앙생활하는 원리를 쓰면서

죄인은 구원받아야 하고 구원받았으면 성화되어야 하고

성화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하고

그리고 봉사해야 한다고 하면서 6-8장까지 성화에 대해서 말하기를

6장에서는 믿는 자는 죄의 종노릇하는데서 벗어나야 하고

7장에서는 믿는 자가 율법의 속박된 상태에서 벗어나야 하고

8장에서는 믿는 자가 죽어있는데서 성령으로 벗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즉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생각을 갖고 성령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성령의 법에 의한 해방에 대해서 예수를 통하여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능력이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며 육신에 속한 삶과

성령의 법 아래 사는 삶을 대조시키며 성령을 좇아 거룩함으로 살아야 하고

성령에 의한 하나님 자녀들의 생활에 대하여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 빚진자이며

천국 기업을 상속받을 양자로써 고난 속에서도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 자녀들의 소망에 대하여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힘입어

구원받은 성도가 육체의 소욕을 억제하며 고난 속에서도

성령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 현재와 미래에 누릴

영광이 있음을 기억하여 현재의 고난을 인내해야 하고

성령 도우셔서 하나님 계획대로 예정하시고 부르셨고

의롭다 해주셨고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근심과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생각을 갖고 성령 안에 있어야 하고

성령의 능력이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에

염려나 근심 걱정보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할까요

본문에서 알아 봅시다

 

어떻게 우리가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할까요

첫 번째로 육적인 생각보다 영적으로 생각하며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여러분을 해방시켰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죄의 본성 때문에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죄를 없애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심으로써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 속에 거하고 있는 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죄의 본성에 따라 살지 아니하고, 성령에 따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율법의 의로운 요구들이 완벽히 이루어졌습니다.

죄의 본성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죄의 본성이 바라는 일을 생각하지만,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성령이 바라시는 일을 생각합니다.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생각은 죽음이지만,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사람의 생각은 생명과 평강입니다.

죄의 본성이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습니다.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죄의 본성의

지배를 받지 않고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 아닙니다.

반면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은 존재이지만, 여러분의 영은 의 때문에 살아 있습니다.

예수님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영이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시면, 여러분 안에 계신 그분의 영으로써

여러분의 죽을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즉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셔서

성령안에 있는 성도는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되었고

육신에 속한 일들은 하나님의 법에 어긋나는 악한 것이므로

영을 좇는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어떤 아픔이나 힘든 일이 있으면

그것 때문에 잠못자고 이리저리 뒤척거리는데

그것은 자기를 죽이는 것이 되니까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육적인 생각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영적인 생각을 가지고 근심이나 걱정을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사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며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하나님의 길은 우리의 길보다 높으며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높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우리를 먼저 생각하는 육적인 생각보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영적인 생각으로 어떤 상처나 아픔도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10년이 넘게 쫓겨다니며 힘들었으나

그것은 다윗이 진정한 왕이 되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게획인 것을 알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 드리니까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블레셋을 통해서 죽이시고 진전한 왕이 되게 하십니다.

 

우리도

육적인 내 생각보다 영적인 하나님의 생각으로

여러 가지 근심 걱정되는 일을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우리가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할까요

두 번째로 포기하는 것보다 자녀임을 생각하며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주님께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죄의 본성을 따라 살아야 하는 죄의 본성에 빚진 사람이 아닙니다.

죄의 본성에 따라 산다면, 여러분은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몸의 악한 일을 죽인다면,

여러분은 살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은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두려움에 이르게 하는,

노예로 만드는 영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령을 의지하여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합니다.

자녀라면 또한 상속자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또한 그리스도와 공동의 상속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 그분이 겪으신 고난에도 참여하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께 빚졌으니 육신에게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 것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아무렇게나 살지말고 

성령을 좇아 살고 고난에도 동참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운 일에 힘들어서 포기하는 것보다

우리 자신이 주님께 빚진 자임을 알고

또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생각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어려운 일을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14;2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의 기업의 백성을 삼으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히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성민이다.

지상 모든 백성들 중에서 택하여 자기 백성을 삼으셨다고 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임을 알고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포기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자녀임을 생각하며

금심이나 걱정을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가 요한은

바울과 함께 1차 전도여행을 갖다고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중간에 돌아와서 마음을 아프게 하여 2차 전도여행에

동참하는 것 때문에 바울과 바나바가 의견이 갈려서

싸우고 바울은 대신 실라를 데리고 2차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나중에 바울은 생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하면서 유익한 자라고 합니다.

마가 자신의 지난 잘못을 깨닫고 바울이 같이 가지 않은 것을

마음에 두지 않고 삭제해서 나중에 바울에게 유익한 자가 됩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운 일을 할려고 할 때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생각하며 자부심을 가지고 근심걱정되는 마음을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우리가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할까요

세 번째로 현재 형편보다 나중 영광을 생각하며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바울은 현재 우리가 겪는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은 허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피조물이 원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하나님의 뜻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소망은 있습니다.

그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하리라는 소망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이제까지 신음하고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피조물만 아니라 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들 자신도 속으로 신음하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우리 몸이 구속될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소망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아직 보지 못한 것을 소망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인내함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함을 도와 주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성령께서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함으로 우리를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도들을 위해 중보 기도를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부름을 입은

사람들의 선을 위하여 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부터 아셨던 사람들을 그분의 아들과

동일한 형상을 갖도록 미리 정하시고,

하나님의 아들을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부르셨고, 부르신 사람들을

의롭다고 하셨고, 의롭다고 하신 사람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즉 바울은 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니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장차 나타날 영광을 소망하며 인내해야 하고

성령께서 도우셔서 하나님 계획대로 예정하시고 부르셨고

의롭다 해주셨고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도

현재 어렵고 힘든 형편보다 나중에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며

소망 가운데 인내하고 성령으로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학2;9  

이 전의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내가 이곳에

평강을 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성전이 화려하고 크고 좋지만 그 영광보다고

스룹바벨 성전은 보잘 것 없고 작지만

그 영광을 더 크게 보신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솔로몬 성전은 하나님께서 다 해주신 은혜의 산물이지만

스룹바벨 성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나서

다 허물어져버린 성전을 보면서 잘못을 깨닫고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지어서 초라하지만

그것이 더 영광스럽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현재 어려운 형편만 보기보다 나중에 나타날

영광을 생각하며 힘들고 어려워도 그 어려움을

삭제하고 미래를 바라보는 지혜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나아만은

수리아의 큰 장군인데 문둥병이 들어서 수리아 왕이

이스라엘 왕에게 편지를 써서 낫게해 주리고 부탁해서

이스라엘로 왔는데 이스라엘 왕이 자기는 못한다고 해서

엘리사가 자기에게 보내라고 해서 엘리아에게 왔으나

나가서 영접하지 않고 요단강에서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하자

기분이 상해서 돌아갈려고 하는데 부하가 그것도 못하시겠느냐고 하자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니 문둥병이 나았습니다.

 

우리도

현재 어려운 형편만 생각하지 말고 나중 영광을 생각하며

어떤 어려운 문제나, 질병이나, 형편이나 처지나, 아픔을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사건이나 문제나 사람이나

질병을 만나는데 그때마다 어렵다고 포기하거나 물러서면 안됩니다.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그 아픔을 삭제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기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찾기 위해 과거의 아픈 상처를

삭제할 줄 아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어떻게 우리가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할까요

첫 번째로 육적인 생각보다 영적으로 생각하며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두 번째로 포기하는 것보다 자녀임을 생각하며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갖고

세 번째로 현재 형편보다 나중 영광을 생각하며 삭제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서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영광이 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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