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이사야 › 믿음의 증거를 보이십시오

이한규 목사 | 2017.09.05 23:59:3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사41:21-27
설교자
이한규 목사
참고

믿음의 증거를 보이십시오 (이사야 41장 21-27절)


< 참 신이신 하나님 >

 한 유대 랍비는 삶에는 3가지 상황이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 날아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언제 날아가야 합니까? 사방이 막혀서 모든 상황이 절망적일 때입니다. 둘째, 달려가야 하는 상황입니다. 사람은 땀을 흘리며 최선을 다해 달려가야 단순히 단순한 생존 이상의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셋째, 걸어가는 상황입니다. 이 상황은 일상적인 삶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그 3가지 상황에서 모두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사방이 막히면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날게 하십니다. 달음박질할 때는 그 달음박질을 견딜 수 있게 하십니다. 날마다 걷는 삶 속에서는 하나님이 하루를 견딜 수 있는 힘을 주사 그 힘으로 삶의 의미를 확인하며 인생길을 가게 하십니다. 그런 하나님의 도우심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철저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의 품 안에 있는 것보다 더 평안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만 참 신이고 삶과 역사의 주관자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21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너희 우상들은 소송하라 야곱의 왕이 말하노니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 이 구절에서 “너희 우상들은 소송하라! 너희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라!”는 말은 우상에 대해 그들 스스로 참 신인지 증명해 보라는 말입니다. 그 말은 오직 하나님만 참 신이란 말씀입니다. 우상은 소송도 할 수 없고 확실한 증거도 보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소송도 할 수 있고 확실한 증거도 보일 수 있습니다.

< 믿음의 증거를 보이십시오 >

 한 여성이 오랫동안 자녀를 얻지 못해 기도하다가 어느 날 감동 중에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계약서를 썼습니다.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기적과 관련된 수많은 성경의 약속을 쓰고 그 밑에 사인하는 난을 만들었습니다. 그 계약서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이 하신 약속 말씀을 붙들고 이 소송을 합니다. 이 소송을 받아주소서.”

 그녀는 계약서를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당신께서는 창세기 1장 28절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셨는데 자녀를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그 말씀을 이룹니까? 시편 112편 2절에서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하고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시편 113편 9절에서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제게 자녀를 주시지 않으면 어떻게 그 말씀이 이뤄지겠습니까? 하나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소송하오니 이 소송을 받아주시고 말씀대로 이뤄주소서.”

 그녀는 그 계약서를 목욕탕의 거울에 붙여놓고 매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쌍둥이를 얻었고 나중에 보너스로 자녀 한 명을 더 주셔서 지금 3명의 자녀를 기르며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믿음으로 탄원의 기도를 드리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변호사가 되어주십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판사이시고 예수님이 변호사인 하늘의 법정에서 우리가 약속의 말씀에 근거한 기도의 소송을 하면 그 소송에서 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삶은 “자신이 어떻게 느끼느냐? 경제상황에 어떠냐? 병원진단이 어떻게 나왔냐? 남들이 나에게 대해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의해 결정됩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을 신실하게 이뤄주실 것입니다. 기도할 때 자신의 처지만 불쌍하게 아뢰지 말고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믿음으로 아뢰십시오. 성도의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확실한 증거를 내놓고 소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상은 참 신이 아니기에 그런 소송을 할 수도 없고 증거를 보일 수도 없습니다.

 본문 22-23절에서 왜 하나님께서 우상들에게 ‘장차 당할 일’을 말해보고 ‘이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합니까? 그 말은 결국 우상들은 전지전능하지 않고 무능하다는 말씀입니다. 우상은 전지하지 않아서 역사에 대해 잘 모르고 전능하지 않아서 역사에 대해 아무런 손을 쓸 수 없지만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역사의 주관자입니다. 하나님은 미래사를 아시고 미래사를 결정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 무능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본인에게는 허망한 일이고 하나님에게는 가증한 일입니다(24절). 우상숭배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입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앞세우는 것은 다 우상입니다. 우상숭배를 멀리하고 점집에 가지도 마십시오. 기독교적인 참된 예언은 ‘주님 안에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입니다(27절). 우상숭배자들은 한 사람도 미래의 일어날 일을 대답하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믿음의 증거를 보이며 나아감으로 고난과 문제를 극복하고 승리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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