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출애굽기 › (계시보기)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으로 하는 거다.

궁극이 | 2023.03.13 20:07:3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출3:1-
설교자
김경형목사
참고
궁극교회 주일예배

하나님께서 세상만물을 만드신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다. 우리의 구원이란 하나님의 성품을 입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소원 목적이나 지혜지식성이나 취미성이 하나님의 속성으로 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온전케 만들어진 것은 하늘의 소속이고, 하나님의 입장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된 거다. 일반세상은 죽을 처지에 있다가 여기에서 살아난 것을 구원이라고 하는데 성경은 한마디로 우리의 인격과 성품과 모든 속성이 하나님처럼 만들어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한다.

 

성경은 성령의 감화 감동을 입고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구원에 관한 책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로 하나님의 소원 목적 취미 모든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를 가질 수 있게 인도한다. 인간의 뜻은 땅의 것으로 지구가 불탈 때 다 없어진다. 그래서 창조 때 태어난 사람이건, 중세기에 태어난 사람이건, 말세에 태어난 사람이건 세상에 소원 목적을 두고 있다면 결국은 불타버릴 임시성적인 사람이다.

 

세상은 바람 불면 파도치는 곳이고 전쟁이나 문화나 과학 등의 여러 가지 유행바람이 부는 곳이라서 세상을 소원 목적으로 가지고 있으면 이것에 맞춰서 움직이게 되기 때문에 자기 마음에 들면 좋아하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싫어한다. 그리고 사람마다 마음이 다 다르고 소원 목적 취미도 다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향해 원망 불평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전쟁을 하기도 한다. 가정도 그렇고, 사회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의 소원 목적에 휘말리면 이것은 말하자면 정신에 병이 든 거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으면 움직이는 세상을 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세상바람에 요동되거나 움직이지 않는다. 비유로 말하면 망망한 바다에서 선장이 배의 키를 잡고 목적지를 향해 가면 목적지에 도착한다. 파도가 심하게 칠 때 배는 배의 앞머리를 파도가 치는 쪽으로 향하고 돌진해야 배가 넘어가지 않지 파도가 무서워서 배를 파도 옆으로 하면 이 파도에 배가 전복된다. 우리의 신앙 믿음의 이치도, 믿는 정신도 다가오는 사건 환경을 피해서 숨거나 도망가는 게 아니라 정면으로 헤쳐나가야 한다.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본질대로, 성경의 뜻대로 지식성적으로나 지혜적으로나 도덕성적으로나 이해타산적으로 영원한 것을 가지면 세상을 이기고 사망을 이긴다. 늘 이기면 이 사람은 신앙 면에서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이렇게 이겨나가면 이 사람은 능력자다.

 

바다에서 파도가 일 때마다 선장이 배의 돛을 이리저리 바꿔서 전복되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가는 것은 지혜다. 우리 성도는 일반적인 세상의 지혜지식을 주격으로 하고 사는 게 아니라 자기에게 닥치는 사건과 환경 속에서 지극히 작은 문제 하나에도 자기의 신앙에 손해가 나거나 신앙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때로는 비상수단을 써야 만이 사건 환경을 헤쳐나갈 수 있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세상 일반인들이 사는 정신과 목적으로 살면 자기의 구원이 황폐해지고, 없고, 심판을 당한다.

 

우리가 성경을 일반적인 지식과 이해타산을 가지고 보면 바른 해석이 되지 않는다. 자기에게 하늘 문이 열리지 않는다.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이적과 기사를 보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가 놓여있는 백성이다. 하나님의 이적과 기사는 하나님의 특별하고 특수한 사랑이다. 진리사랑, 생명의 사랑은 일반인은 못 받는 특수한 사랑이다.

 

하나님의 본질에서 떠난 교회는 세상의 비위를 맞추고 돌아가는 음녀교회다. 여기에는 신앙정조가 없다. 죽을 때까지 이런 교회에 다녀도 신앙이 아니다. 세상에 정신을 팔지 않고 진리이치와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는 게 주님사랑이다. 아버지를 사랑하면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지만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싫어하면 아버지의 말씀을 멀리하고 말씀을 안 지킨다.

 

1:1에서 진화론을 부정한다. 학계에서 주장하는 진화론은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지식에서 나온 마귀장난이다. 땅의 것으로 하나님을 논하는 사고방식이다. 인간의 지식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은 것을 이렇게 저렇게 말하는 거다. 진화론은 이치적으로 하나도 안 맞는다. 우리는 이치에 안 맞는 말에 솔깃하면 안 된다.

 

물질세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이치 생명이치 도덕이치, 그리고 믿음의 도리를 가르쳐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거다. 이것을 아는 머리를 가지면 물질을 자타의 구원에 이용 사용 활용할 수 있다. 우리가 세상사람들의 머리 수준에 머물러 있으면 피곤하고 고달프다. 아무런 결과가 없는 삶을 살게 된다.

 

모세는 자기 힘으로, 자기 머리로, 완력으로, 무력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이 생각으로 애굽인을 쳐 죽였는데 이게 들통이 나서 도망을 갔다. 이것은 영의 눈으로 보면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죄에서 해방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오늘날 말세지말에 많은 교회들이 육의 성질을 가지고 교회를 화려하게 꾸며놓고 믿음이 있는 것처럼 큰 착각에 빠져있다. 성경을 일반 도덕성적인 개념으로 풀면 이런 허황한 믿음이 되어버린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라고 애굽으로 보내실 때 먼저 떨기나무 앞에서 신발을 벗게 했는데, 이것은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모세의 주관성을 벗으라는 거다. 모세가 애굽의 왕궁에 살 때는 왕의 뜻대로 사니 마찰과 충돌과 대립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자기 신발을 벗고 애굽의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하려고 할 때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 붙들어 매어 놓으려고 하는 바로 왕과 매사에 마찰과 충돌과 대립이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이해타산과 사고방식이 안 믿는 사람과 맞을 리가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을 사는 방편이 안 믿는 사람과 비슷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구원의 일을 세상의 정신과 목적과 방법으로 하면 된다고 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우리의 원칙은 하늘의 이해타산과 소원 목적으로 사는 거다.

 

같이 예수 믿고 같이 교회에 다녀도 땅의 소원 목적을 가진 사람과, 진리신앙의 정신을 가진 사람과는 의사가 팽팽하게 대립이 된다. 그래서 같이 예수를 믿는 부모 형제 일가친척이라고 해도 하나가 안 되는 거다. 의사단일이 아니면 마찰과 충돌과 대립이 된다. 이것이 확대되면 한 나라에서도 폭동이 일어나고 서로 죽이게 된다. 반면에 서로 남인데도 진리교회에서 한자리에 앉는 것은 의사성이 같기 때문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사는 방편이 안 믿는 사람과 비슷하지만 사고방식과 소원 목적과 이해타산은 하늘에 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의 속은 천국의 것이다. 일반사람과는 다르기 때문에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변화 부활을 시켜서 일반사람과 분리해서 데리고 올라가는 거다. 예수 믿는 이치가 너무나 명확한 건데 이치적으로 따지지 못하면 안 믿는 거고, 바로 못 믿는 거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을 위해 모든 사물을 돌리고 있는데 이것을 못 깨닫는 거다.

 

말세지말의 교회가 바른 믿음으로 가지 못하는 것은 일차적인 책임이 목사들에게 있다. :는 하나님의 사자들에게 주는 주님의 편지다. 사도요한을 통해 영의 활동과, 영의 운동과, 영의 이해타산을 보여줬는데 이 말씀을 받은 말세의 목사들이 교인들에게 하늘의 것이 아닌 땅의 것을 주기 때문에 교인들이 영적인 이해타산이 다 막힌 채 안 믿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로 나가는 거다. 이게 말세교회의 현상이다. 항상 깨어있으라고 하는 것은 조용한 게 조용한 게 아니니 위기의식을 가지고 잠자지 말고 주님 맞을 준비를 하라는 거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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