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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궁극이............... 조회 수 43 추천 수 0 2022.05.02 18:2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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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4-7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장 4절-7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4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생명은 사람도 짐승도 숨을 쉬는 임시적인 자연생명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런 자연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생명의 원천, 생명의 근원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은 죽지 않는 생명이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겠고’ 라고 했으니 이 생명은 육신은 죽어도 안 죽는 하나님의 근원적인 생명으로서 인간이 이 생명을 받게 되면 영인이 영원히 안 죽는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겠고’ 라고 하는 것은 실상적 생명을 말하는 건데, 안 믿는 사람들은 이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거고, 믿는 사람이라면 이 면에 진해야 하겠는데 밥 먹는 생명이 더 진하니 큰 문제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육신이 사는 생명을 연장시키려고 많은 야단법석을 하지만 이것은 이룰구원이 없는 생명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골 백 살을 살아도 이 생명은 하나님 앞에 가치가 없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살지 않고 일반적인 삶을 살았다면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죽은 게 참 아깝게 죽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예수님은 33년 동안 영원히 죽지 않을 생명으로 사셨고, 이 생명을 우리에게도 주고 가셨으니 참으로 가치 있는 삶을 사신 거다.

 

예수님께서 일반사람들처럼 100살 가까이 사시면서 우리의 구원성업을 이루고 가시지 않고 왜 한참 힘 있게 살 나이인 33살에 하늘로 가셨느냐? 그 이유가 뭘까? 그것은 믿는 사람이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마치 지상의 젊은이들이 팔팔하고 왕성한 것처럼 그 천국을 마음 것 누리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다. 이런 해석이 아니라면 어떻게 봐야 하겠느냐? 인간의 생각으로 말을 하면 예수님께서 33세에 천국에 가셨으니 그곳에서 팔팔한 청년으로서 영원히 죽지 않을 생명으로 얼마나 기쁨과 행복으로 사실까? 그 행복성과 존귀 영광성이 얼마나 힘 있고, 광명하고, 굳세고, 강하겠느냐?

 

성경에 이스라엘이 애굽을 출발해서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누가 죽지 않고 원기 왕성한 기백을 가지고 들어갔느냐? 여호수아와 갈렙이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집에서 큰 일을 하는 거다. 성경에 보면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창의적인 사람을 볼 수 있다. 젊은이는 늙기 전에 영원히 죽지 않는 신앙생명이 힘 있게 올라야 젊은이로서 아름답다. 이게 없다면 늙어빠진 거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살겠고’ 라고 하는 이 생명이 믿는 우리에게 있다. 이 생명은 시간과 물질과 상관이 없는 생명이다. 이 생명은 죽을 수도 없고, 죽을 가능성도 없고, 치매에 걸리지도 않고, 이 생명을 얻는 자는 신령천국에서 실력적으로 그 천국을 누리면서 영원히 살게 된다. 참 신비스런 생명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이런 존재로 지었다고 한다.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고 한다. 빛이 가는 곳에는 어떤 물건이던 고저와 장단과 색상과 모양과 형태와 활동이 다 드러나듯이 생명의 빛 앞에서는 ‘어떤 생명이 산 생명인지, 죽은 생명인지, 죽어가는 생명인지, 언제까지 살 생명인지, 언제까지 성장이 될 생명인지, 병이 든 생명인지, 소생이 될 생명인지, 꺼져가는 생명인지, 능력적 생명인지, 무능한 생명인지’ 하는 생명의 모든 상태가 드러난다.

 

세상의 어떤 도인이 이 생명을 가졌느냐? 예수님은 이걸 다 가지셨다. 예수님의 생명은 근원적인 생명이고, 원천적인 생명이고, 모든 생명을 만들 수 있는 창조의 생명이고, 어두운 곳에 거하는 생명을 밝은 곳으로 인도하는 빛 된 생명이다. 죽은 육신의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병든 생명을 고치기도 하고, 성장을 시키기도 하는 능력을 가지셨다. 이게 성경이다. 세상의 어느 고전적인 책에도 이런 게 없다. 우리가 믿는 주님이 이런 분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생명을 받은 자이니 성경을 깨달을 때 맛도 느끼고, 형태도 보고 느끼고, 죽는 거, 사는 거, 죽어가는 거, 살아 오르는 것을 영의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계:의 아시아 일곱 교회에서 이걸 보여준다. 주님께서 믿는 자기에게 육신의 생명을 주신 것은 내 속에는 죽지 않는 영적 생명이 들어 있으니 이 하늘의 생명을 기준으로 영인성장 면으로 살라는 뜻이다. 인간이 이렇게 살면 신령한 존재요, 고상한 존재요, 인격적인 면에서 정말 멋있는 사람이다. 우리가 전도를 하는 것은 죽어가는 곳에 사는 사람을 그 죽은 곳에서 끄집어내는 거다. ‘예수 믿어서 천국에 간다’ 라고 하는 건 저 밑의 얘기고, 예수를 믿는 속에는 영인성장의 효력을 보고 가는 게 들어 있다.

 

지금도 성령님은 우리 속에서 이 역사를 하신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라고 했으니 예수를 믿는다면 어떤 면에서건 태초부터 생명으로 계신 이 분의 한 자락이라도 체험하고 가야 한다. 하나를 깨달으면 둘, 둘을 깨달으면 넷 이렇게 말씀의 이치가 나오게 건데 한 이치도 못 깨달으면 근처에도 못 가게 된다.

 

하나님께서 처음 인간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입김을 인간의 코에 불어넣었는데 이게 생령이 되었다고 한다. 즉 살아 있는 영적 존재가 되었다는 거다. 즉 ‘인간아, 너는 흙으로 만들어졌지만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숨길로 사는 존재다’ 이 말이다. 예수를 믿던 안 믿던 이런 인간으로 지어지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인간이라면 믿고 안 믿고는 자기 자유라지만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이 들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을 믿고, 알고, 하나님처럼 주님처럼 만들어져 가야 옳은 거다. 이게 안 되는 사람은 심판이고 고통이고 형벌이 들어가는 거다.

 

모든 인간은 대지의 공기를 떠나서 살 수가 없듯이 하나님의 손에서 피할 수 없는 존재다. 이걸 무시한다면 진리무시요, 진리무시는 자기 무시다. 자기가 이렇게 살고 있다면 누가 자기를 무시하더라도 눈을 부릅뜨지 말아라. 자기가 만물에게 짓밟힐 자로 산다면 사람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은 당연한 거다.

 

5절: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이건 누구보고 하는 말이냐? 짐승이냐, 사람이냐?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다. 빛이 비춰지면 어두움이 환하게 밝아져서 다 드러나고, 무엇이든 잘 보여지고, 구별 분별이 되니 크기나 색상이나 활동을 알게 된다. 이렇게 되면 얼마나 보기가 좋고, 기분이 환하고 즐겁겠느냐? 그런데 어두움이 왜 이것을 깨닫지 못할까? 그것은 세상 인간들이 하나님께서 먹으라고 하신 생명과는 안 먹고 먹으면 죽는다고 한 선악과를 따먹고 저주 받고 타락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악과를 따먹게 되면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보이는 것을 자기의 기준지식으로 삼고 살기 때문에 영원히 존귀 영광이 될 수 있는 생명적인 빛을 볼 수 없게 되고, 자기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모르게 되고, 자기의 존재가치를 전혀 모르게 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어린아이로 만들어 놓지 않고 결합을 하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청춘남녀로 만들어 놓고 생명과를 따먹으라고 했다. 이게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부부냐? 그렇다면 처음부터 생명과를 먹으라’는 거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결혼식을 하면 생명과는 먹을 줄 모르고 선악과부터 먹는다. 예수 믿는 사람도 이런 식이라면 정신과 사는 바탕이 잘못된 거다. 벌써 기준이 틀어져 나갔다.

 

예수 믿는 사람이 선악과 따먹은 지식을 자기 기준적 지식으로 삼고 있다면 생명의 빛을 받지 못한다. 생명의 빛은 강하다. 구별도 하고, 분별도 하고, 생명의 향방을 구별 분별한다. 땅에 속한 세상 물질적 소원 목적적 지식으로 사는 자는 죽음의 선악과를 먹은 자요, 어두움이요, 형벌이요, 심판이요, 멸망이다. 이것은 주님의 생명의 빛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통하지를 않는다.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라고 하는 것은 안 통한다는 거다. 안 통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주님의 생명을 받은 예수 믿는 사람도 안 믿는 사람과는 통하지 않는다. 안 통하는 이유가 뭐냐? 안 믿는 사람들끼리는 다 어두움이기 때문에 하나의 이성적 육적으로 잘 통하지만 하나님을 중심에 두고 사는 성도들과는 통하지를 않는다. 하나님과 막혔으면 죄다 막히는 거다.

 

6절: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주님께서는 당신이 오실 때 사람들이 당신을 영접할 수 있게 하려고 세례요한을 당신보다 6개월 앞서 보내셔서 미리 당신을 소개하게 하셨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선재적 그리스도로 계시면서 이 땅에 오시기 400여 년 전에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 선지자로 하여금 세례요한에 대해 미리 예언을 해 두었다. 그래서 세례요한의 신앙사상과 믿음생활을 잘 관찰하면 이 요한이 예수님께서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 수 있고,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사자임을 알면 세례요한이 전하는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고 믿게 된다.

 

세례요한의 사상을 못 만나면 예수를 못 만난다. 자기가 세례요한의 사상으로 되어 있으면 신앙 질적으로 금방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구약의 선지자들의 예언과 세례요한을 알면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모르면 다 모르는 거다. 세상에는 거짓 종들이 많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구별 분별을 해야 한다. 성경에 눈을 열어달라고 하고, 가르쳐 달라고 하고, 바로 믿고 구원을 잘 이뤄가게 해 달라고 해야 한다. 주님께서 이런 기도를 왜 안 들어주시겠느냐?

 

7절: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세례요한이 무엇에 대한 증거냐? 빛에 대하여 증거다. 빛에 대하여 증거를 하려면 빛에 대하여 확실히 알아야 한다. 빛에 대하여 모르는 사람을 붙잡아서 ‘너는 가서 빛에 대하여 증거를 하라’ 라고 할 수는 없는 거다.

 

그러면 주님께서 어떤 사람을 빛에 대하여 증거하라고 보낸 거냐? 주님께서 보낸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것은 길을 닦는 것을 보면 안다. 길을 닦는 것은 메시지에서 나오는 것이니 메시지를 들어보면 안다. 길을 닦는다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주님을 잘 맞을 수 있는 좋은 밭으로 만드는 것인데, ‘길을 잘 닦읍시다’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마음 가운데 들어 있는 돌도 주워내고, 가시덤불도 쳐 내야 한다.

 

안 믿는 사람 중에는 법이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하는 분도 있는데, 이런 사람은 마음이 좋은 밭이냐, 가시밭이냐, 돌짝밭이냐, 길가 밭이냐? 좋은 밭은 아니다. 인간은 날 때부터 좋은 밭은 없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아무리 좋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먼저는 예수를 믿어야 하고, 예수를 믿는다면 말씀에 의해 세상의 소원 목적이나 세상의 근심 걱정을 쳐내고 진리본질의 말씀을 자기 마음밭에 심어야 한다.

 

자기 교만으로 사는 사람은 딱딱한 밭을 가졌다. 이 사람은 세상의 학문이나 재산이나 명예나 영광 등이 워낙 많이 밟고 지나갔기 때문에 세상으로 딱딱해진 상태다. 이 이 딱딱한 밭을 좋은 밭으로 만들려면 비가 와서 딱딱한 밭을 무르게 만들고, 얼렸다 녹였다, 햇빛을 쬐였다 찬바람이 불었다 하는 사건이 필요하다. 그런데 육적인 생각을 가진 자들은 이런 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우리는 세례요한의 역할을 해야 한다. ‘자기로 인해 믿게 하려 함이라.’ 인간 자기를 믿으라는 게 아니라 자기로 인해 예수를 믿게 하라는 거다. 그러려면 자기가 말씀에 밝고 이치에 밝아야 인격적으로 주님께 밀착을 시킬 수 있다. 세례요한의 전도 속에는 이게 들어 있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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