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시편 › 내가 하나님을 떠나 어디로 피하리이까

이정수 목사 | 2015.11.27 22:02:3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시139:1-24
설교자
이정수 목사
참고
말씀의샘물교회 http://www.wordspring.net 말씀의샘물 제755호

내가 하나님을 떠나 어디로 피하리이까
본문/ 시편 139:1-24

1. 들어가는 이야기

   오늘 묵상하고자 하는 시139편은 1-24절로 아주 긴 詩(시)라 여기 다 옮길 수 없는 노릇이니, 각 사람이 여러 차례 깊이 정독하시기 원합니다. 이 시는 시편 유형별 분류법에 의하면 개인 탄식시(Individual lament)에 속하나, 전체 내용은 3중 구조의 지혜 시와 개인 탄원으로 결론을 맺은 시입니다.  

2. 시139의 구조 분석

(1) 시139:1-6에서 야훼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 대하여 전폭적-전체적-전존재적으로 심지어 눈 깜박이는 순간-침 삼키는 것-자기 속으로 하는 생각까지 모르시는 것이 하나도 없이 모두 다 알고 계시는 무소부지(無所不知-Omniscience) 하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시139:1-6)” 라고 하였습니다.  

(2) 시139:7-12에서 야훼 하나님은 온 우주에 충만 하시어 아니 계신 곳이 없이 온 세상에 遍在(편재)하여 무소부재(無所不在-Omnipresence) 하신 분이라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내가 하늘에, 내가 스올에,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반드시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시139:7-12)” 라고 하였습니다.

(3) 시139:13-18에서 야훼 하나님은 무소불능(無所不能-Omnipotence)하시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138:13-18)” 라고 하였습니다.  

(4) 시139:19-24에서 시인은 앞에 증거한 (1)무소부지-(2)무소부재-(3)무소불능 하신 야훼 하나님께 악인-원수의 멸망을 탄원하며, 시인 자신의 결백을 변호하며 인도하여 주실 것을 기원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이여 주께서 반드시 악인을 죽이시리이다...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139:12-24)” 라고 하였습니다.

3.  시139:1-24. 무슨 뜻인가?
첫째. 사람은 야훼 하나님을 피하여 숨을 곳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속된 말로 “에라이, 죽으면 그만이지 뭐!” 합니다. 아닙니다! 죽는다고 끝이 아닙니다! 죽음도 야훼 하나님의 심판 통치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욥26:6) * 스올(죽은 자들이 가는 지하 세계)과 아바돈(죽음의 자리)도 여호와의 앞에 드러나거든 하물며 사람의 마음이리요(잠15:11) *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139:7) * 그들이 스올로 들어갈지라도 내 손이 거기에서 붙잡아 낼 것이요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붙잡아 내릴 것이며 갈멜 산꼭대기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찾아낼 것이요 내 눈을 피하여 바다 밑에 숨을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뱀을 명령하여 물게 할 것이요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칼을 명령하여 죽이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암9:2-4) * 나는 가까운 데에 있는 하나님이요 먼 데에 있는 하나님은 아니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23:23-24).

둘째. 야훼 하나님이 그렇게 無所不知(무소부지-Omniscience)-無所不能(무소불능-Omnipotence)-無所不在(무소부재-Omnipresence) 하시다면, 한 마디로 全知全能(잔지전능) 하시다면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하실 것이니 사람이 참되게-착하게-경건하게 살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이 이미 다 알아서 豫定(예정-predestination) 하신 것을 사람이 어찌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 의문이 바로 사람이 가진 理性(이성-사물의 이치를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능력)의 狡智(교지)이며, 또한 그것이 이성의 한계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전지전능-예정은 이성적 논리가 아닌 경험적 믿음의 체험입니다. 시인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현실 삶에서 악인이 흥왕하고 의인이 고난을 받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훼 하나님께서 반드시-꼭 악인을 죽이시리이다(시139:19)” 하는 것입니다. 또한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理性(이성)의 논리-모순의 논리를 를 초월하는 야훼 하나님의 사랑(헤세드)-긍휼(라훔)의 은혜입니다.

셋째. 그러므로 시인은 마지막에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139:23-24)” 라고 기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나도 시인의 말씀에 同義(동의)합니다. 성경 말씀이어서가 아닙니다. 내가 목사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내 마음 속에서 과연 그러하다! 하는 순수 고백이 흘러 나왔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는 동의 할 수 없다!” 한다면 어이 하는가? 그리 하십시오! 할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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