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고린도후 › 자화상

조용기 목사 | 2015.11.20 23:59:5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고후5:17
설교자
조용기 목사
참고
2015.11.8 여의도순복음교회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자화상은 삶을 통해 자신의 위치 확인하는 것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성령으로 새 사람 되면
하나님 자녀로 바른 자화상 가지고 승리하게 돼


 사람들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자기 자화상을 살펴보고 자기의 삶의 위치를 결정합니다. 자화상이란 살아오는 세월동안 사람들 속에서 배우고 느끼고, 살펴보면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것을 뜻합니다.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언어 행동이 밝고 맑고 담대하며,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심신이 고달프고 생활이 어둡고 침울하고, 열등의식과 좌절감에 끌려갑니다.

 오늘 우리 자신의 자화상은 어떻습니까? 제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동네에 손꼽을 만한 부자가 살았습니다. 그는 그 자식들 공부를 잘 시키려고 했지만 그분의 아들은 학교 가라고 보내면 학교를 가지 않고 마구간으로 가서 지게를 지고 산으로 도망을 칩니다. 그러니 아버지가 가슴을 치며 공부 안하려고 하는 아들을 보고 “다른 애들은 다 공부를 하려고 하는데 너는 왜 공부를 안 하려고 하느냐? 너 혹시 바보 아니냐?” 하자 그 아이는 “아버지, 저 아이들과 저는 다르지 않습니까? 애들은 공부를 하는 것을 좋아하니까 공부하러 가지요. 나는 나무하는 것을 좋아하니 지게를 짊어지고 산으로 갑니다. 애들이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나는 나무를 잘합니다. 두고 보세요. 나는 나무를 해서 부모님 섬기고 장가가서 아들, 딸 낳아서 잘 살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웃고 그를 손가락질 했으나 그는 담담했습니다. 그는 스스로의 자화상이 건전했기 때문에 열등의식과 좌절감을 가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1. 나의 자화상

 자신의 자화상을 남과 비교하면 안 됩니다. “너만 잘하는 게 있느냐? 나도 잘하는 게 있다” 그래서 당당하게 “나는 살 자신이 있다”고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이 70고개를 넘게 되면 불현듯 ‘사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정말 살만한 사람인가? 남편 노릇할 수 있느냐? 아내라고 큰소리할 수 있겠느냐?’하며 점점 자신의 자화상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긍정적인 자화상 보다는 부정적인 자화상을 들여다보게 됩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오래 가지고 있으면 우울증에 걸리고 굉장히 괴롭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볼 때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는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별 볼일 없고 인정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내게 택함을 받은 사람이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라고 하시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어 보지 말고, ‘대단하구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만드셨구나.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구나. 할 수 있다. 존경 받을 수 있는 자화상, 성공적인 사회원이 된 자화상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정적인 것을 보고, 듣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그것을 생각해서 따라가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자신을 만들지도 않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인생을 살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이 돌보고 계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굉장한 사람들입니다.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택해 주어도 대단한 일인데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택하시고,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왕은 다스리고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하나님이 우리가 자연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왕으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으로 불러주셨습니다. 또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 기이한 빛에 대한 증언을 시키려고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시고 영광스러운 광채를 사람들에게 알게 하도록 주님께서 인도하셨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은 참 괴롭습니다. 민수기 13장 32절에서 33절을 보면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자기도 못살 뿐 아니라 남도 못살게 만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자기 자화상을 메뚜기 자화상으로 보면 어떻게 됩니까? 자기가 메뚜기 같으니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또 스스로를 미워하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고, 패배의식을 가진 자화상을 가지고 있고, 무능한 사람이라는 자화상과 실패한 사람이라는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니 항상 그러한 사람이 자기라고 생각하고 있으므로 그 사람의 삶이 행복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요즘 여자들이나 남자들 모두 외모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외모가 예쁘지 않으면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고민을 합니다. 지난 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청소년의 자살 위험도를 높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외모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열등의식이었습니다. 청소년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외모나 학력, 경제력 등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사는데, 이런 부적절한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실패하고 맙니다.

 최근에 저에게 어떤 자매님이 상담을 와서 “목사님이 결정해주십시오”라고 하길래 뭐냐고 하니 그 자매는 60세가 넘었고, 재혼하겠다는 남자는 70세가 넘었답니다. 데이트를 몇 번 했는데 이 양반이 자기 미모에 대한 자신감도 없고, 자기 가문에 대한 자신도 없고, 재산도 없고, 전부 없다고 말 하더랍니다. 그 자매가 말하기를 “겸손해서 나에게 그렇게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런 걸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거든요? 당당하게 ‘없으면 없다’고 그대로 말해야지, 빙빙 돌려 그렇게 말하는 것은 싫습니다. 목사님은 이런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저에게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사람이 여자 같으면 평론을 하겠지만 남자를 남자가 평론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말을 할 수 있으니까, 그 사람이 돈도 없고, 나이는 많고, 가문도 좋지 않다면 그럼 당신이 보기에 좋은 것 뭐가 있습니까?”라고 하자 그 자매가 “나 같은 훌륭한 여자를 발견했다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아 그럼 그것으로 족한 것이지 내가 상담할 일이 안됩니다”라고 하고 안수를 해 보냈습니다. 그 자매를 돌려보내고 ‘하나님 자기를 발견하는 훌륭한 남자가 있으니 지혜를 주셔서 잘 판단해서 행복한 결혼을 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그리고 하나님 그 남자분이 훌륭한 자화상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시옵소서’라고 마음속으로 기도 했습니다.

 

 2.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자화상

 자화상은 우리 생각을 지배하기 때문에 아주 중요합니다. 우리 행동은 생각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이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내일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 속에서 생각만큼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자화상이 그 자화상과 똑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자화상은 자기에 대한 생각이기 때문에 자신의 자화상과 일치하는 삶의 행동이 나타나는데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부정적인 말을 하니 예수님이 깜짝 놀라게 “뭐 어쩌고 어째? 그것을 말이라고 하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분량대로 믿음을 주셔서 태어났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부자가 아닐지라도 영적으로 우리는 굉장한 재산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산을 옮기는 힘이 있는데, 우리가 믿음으로 기도하면 태산을 옮기는 능력이 배후에 역사하게 되어 모든 일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에서 설교하는 중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겨자씨만한 믿음이 있으니 그 믿음을 가지고서 비가 좀 오게 기도 한번 해봅시다. 정부에서 걱정을 하고 야단인데, 우리가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기도하면 비가 올 것입니다”라고 선포하고 기도했더니 실제로 오늘 비가 왔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기에 어깨에 힘 좀 넣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생각 안에 하나님이 주신 뚜렷한 자화상이 있으면 그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부정적인 자화상은 그에 일치되는 언어와 행동을 나타냅니다. 모든 죄악의 문제가 그 자화상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7장 21절에서 23절에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부정적인 생각, 도덕적으로 어그러진 생각을 마음속에 가지고 자화상이 그를 붙잡고 있으면 언어, 심사, 행동에 그대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가득한 것이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는 환경에 어떠한 좋은 것을 가져다놓아도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교도소에서 범법자들에게 법률을 가르치고 음악을 교육해도 재범, 3범, 4범하지만 기독교 교도소에 들어와서 마음에 변화를 받고 난 다음에는 재범하는 확률이 굉장히 낮아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3. 변화된 삶을 위하여

 변화된 나의 삶을 가져오기 위하여 스스로의 자화상이 바뀌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선한 사람이라고 믿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선한 일을 많이 하게 됩니다. 자화상을 따라서 그렇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나쁘고 독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으면 가정에서도 나쁘고 생활에도 나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서 긍정적인 자화상을 의지하고 담대히 나갔을 때 골리앗과의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30대의 대장부로 어느 누구도 감당할 수가 없는 장군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17살쯤 먹은 초립동이었습니다. 도저히 상대가 안되는 상황이었고, 사울의 군복도 입지 못할 정도로 키가 작고 몸도 왜소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자기 자화상을 세웠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양을 칠 때, 곰이나 사자가 와서 새끼를 물고가면 달려들어서 새끼를 빼앗았고, 역습을 해오면 그가 주먹과 몽둥이를 들고서 사자나 곰도 때려 잡았습니다. 야훼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경험들을 통해 그의 마음에 자화상을 키웠기에 그가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야훼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야훼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17:45∼47)

 그러나 골리앗 뿐 아니라 그 말을 들은 이스라엘 군대 역시 다윗을 비웃었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성공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너는 창과 칼과 단창으로 나왔지만 나는 너희가 모욕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만군의 야훼의 이름으로 나왔다”하고 하며 시냇가에 있는 물맷돌을 골라 가지고서 골리앗을 향해 나갔습니다. 정신 차릴 틈도 없이 날아간 물맷돌은 골리앗의 미간을 관통했고, 돌이 머릿속에 들어가서 두뇌를 강타해 버렸던 것입니다. 다윗이 자기의 자화상을 의지하고 나와서 전쟁에 이긴 것입니다. 다윗은 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여 자신의 자화상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 하는 것에 대한 긍정적인 자화상을 봐야 합니다. 못하는 것만 보지 말고 잘하는 것을 봐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가 잘하는 것을 보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고, 그리고 말했습니다.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하면 된다. 해보자!’라고 생각하고 믿고 말하는 것이 우리의 자화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고, 믿고, 말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보고, 하나님의 백성된 것을 믿고, ‘주님께서 나와 같이 계심으로 능치 못하심이 없다. 나는 이 기근의 때에도 밥벌이를 잘 할 수 있고, 우리 사업도 잘될 수 있다. 사업아 잘될지어다!’라고 하면 그것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자화상의 문제란 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중생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자화상과 의와 거룩함을 얻은 영적인 자화상에 대해 에베소서 1장 4절에서 5절에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했고,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는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따라서 우리가 바라고, 믿고, 말하면 영적으로 성공적인 자화상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라고 하신 말씀과 요한삼서 1장 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신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이 우리가 건강하고 병에서 치료함을 받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의 자화상으로 바라보고 믿고 말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또 히브리서 6장 13절에서 15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복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또 로마서 4장 16절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서 하나님이 아브라함 자손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겠다 하신것처럼 우리도 물질적으로 축복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에 의지해서 이와 같은 자화상을 굳건하게 마음속에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죽었다가도 부활하는 자화상도 가져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었다가 다시 사는 능력을 우리가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10절에도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것을 생각하고 바라보고 그것을 믿고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함께 죽고 함께 장사지내고 함께 부활한다. 예수님이 다 부활했으니 우리에게는 시간이 지나면 죽음이 오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고 영생을 얻게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있어야 잘되고 발전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흔히 수입이 많아야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만 한 연구한 결과에 의하면 행복함이 가득한 사람이 수입도 많다는 것입니다. 런던정경대학 연구팀이 1만5000명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금 행복한 아이들이 미래에 행복감이 높은 것은 물론 수입도 많았다고 합니다. 현재의 긍정적인 자화상이 미래의 수입에도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행복한 사람이 대부분 더 낙관적이고 진취적이기 때문에 학점이나 취업, 승진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화상은 우리의 행동과 삶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환경이 좋든 안 좋든 간에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사람은 자기 마음에 그린 자화상을 따라 생각하고 느끼고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거듭나고,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생활적으로 부요하고, 영원한 부활과 영생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자화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받은 의인이 되었다. 거룩하고 성령 충만하다. 저가 채찍에 맞으므로 나는 나음을 입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아브라함의 복을 받고 형통한 사람이다. 죽더라도 부활, 승천, 영생을 얻는다”는 이 자화상을 마음속에 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그 자화상을 마음속에서 바라보고 믿고, 입술로 고백하면 그대로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을 통해 역사하시니 인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적을 기대하며 “나는 내가 바라보고, 믿고, 말한 대로 된다. 긍정적인 자화상을 가지고, 부정적인 자화상을 가지지 말자”라고 늘 선포하면 놀라운 기적의 삶이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기도-

 오늘도 우리의 생각을 주관하시는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인생 가운데 긍정적인 자화상으로 가득하게 하시고,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우리 안에서 사라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변화된 삶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서 행복한 자화상을 가지고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모든 말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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