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출애굽기 › (계시보기)교회의 절기와 신앙.

궁극이 | 2022.08.22 18:57:1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출16:31
설교자
김경형목사
참고
궁극교회 주일예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농사를 지었느냐? 성경에 칠칠절이나 오순절이나 맥추절이 나오니까 농사를 지은 거다. 그리고 애굽을 출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의 주식은 만나였는데, 이 만나의 모양이 똑같으냐, 아니면 모양이나 색깔이나 맛 등이 각각 다른 거냐? 만나가 생선 모양으로 생겼다면 비린내가 나겠느냐? 다 똑같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 중에 날마다 한 가지만 먹으니까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만 먹고는 안 되겠다. 고기도 좀 달라고 하며 불평을 했는데, 이것이 주는 교훈은 하늘의 만나는 하나님의 진리본질의 생명의 말씀을 말하고, 이것은 교회의 주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인데, 믿는 사람이 교회에 나와서 늘 같은 소리만 들어서 답답하니 세상의 여러 가지 재미있는 것을 교회로 끌고 들어와서 재미있게 진행하자고 하는 것과 같은 거다.

 

그런가 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거둔 만나를 개인적으로 가져가서 구워 먹기도 하고 자기 입맛대로 요리해서 먹기도 했는데, 이것은 믿는 우리가 한 말씀을 가지고 자기의 이룰구원에 이렇게도 저렇게도 적용하면서 맛을 내라는 거다.

 

교회에서 오늘을 추수 감사 주일로 지키는데, 가만히 보면 이런저런 절기를 지키는 것에 치우치다 보니 외식으로 흐르는 교회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추수감사절은 성경에 근거했다기보다는 청교도들이 미 대륙에 도착해서 첫 수확을 하나님께 드린 데서 유래가 되었다. 그러나 그 정신은 성경에 찾아야 하는데, 성령님의 감화로 하나님을 위해 그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하고 들어올 때 이게 말하자면 첫 열매인데 자기가 세상적인 이해타산 때문에 이 감화를 죽인다면 이것은 자기의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세상에 버린 셈이 되는 거다. 교회가 이런 깨달음이 없이 추수감사절을 지키면 외식이 되는 거다.

 

우리는 경건 된 생활을 하되 경건 된 생활 속에서 경건의 능력의 알맹이가 열려야 한다. 이게 없이 눈으로 보고 이성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쪽으로 흐르면 거룩의 사람으로 되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외식은 빨리 치워야 한다. 구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종 의식과 절기를 철저히 지켰으나 온통 외식으로 흐르니 하나님께서 이것이 꼴 보기 싫다고 전쟁을 일으켜서 포로로 잡혀가게 해서 치워버렸다.

 

성경구절대로 한다고 해서 다 말씀을 지키는 거냐? 꼭 그렇지도 않다. 그러나 교회에서 예배의 순서나 교회의 제도나 각종 절기를 지키면서 그 속의 뜻대로 여물어져 나간다면 이것은 자기의 중심에서 되는 것이라서 옳다. 그런데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 표면부터 들어가게 하면 이게 지식화되어서 이렇게 하는 게 신앙인 것으로 알게 되기 때문에 도무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우리 교회는 표면적으로는 추수감사절을 지키지는 않지만 이면적으로는 이미 지켜나가고 있다.

 

예배 때마다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의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외우는 이것도 외식이다. 사도신경이나 주기도문의 사람으로 여물어져 가면 이 사람을 어떻게 보면 말씀을 지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안 지키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을 중심을 아시고 그 마음을 받으신다. 예를 들어서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을 정리할 때 정리의 편의성 때문에 헌금봉투에 자기 이름을 써서 내라고 하는데, 교회에 오래 다닌 분 중에는 이름을 안 쓰고 헌금을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아시면 된다고 한다.

 

내가 헌금봉투에 자기 이름을 쓰라고 하는 것은 누가 헌금을 많이 내는지를 알려는 게 아니라 정리상 수월하게 하려는 거다. 금액을 보기 위해서 이름을 쓰라고 한다면 이것도 외식이다. 특히 십일조 봉투에 자기 이름을 쓰라고 하는 것은 돈의 많고 적고를 보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생활 정도를 알고자 하는 거다. 알아야 교회에서 도움을 주든 안 주든 할 게 아니겠느냐?

 

사람에게 오각의 오감성이 있는 것은 나보다 잘하거나 못하는 사람을 보고 느끼고 모든 면에서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지라는 거다. 그런데 교회만 열심히 다니고 듣기만 했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사람이 많다. 사람은 배우게 되어있고, 배우면 알게 되는 건데 왜 안 배우고자 하느냐? 여기에서 그 면에 대한 실력이 나타나게 된다. 남의 말을 한다면 생각이 있는 사람이요, 자기에게 손해가 나는 것을 안다면 생각이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비판한다면 이 사람은 자기를 안다는 것인데 왜 자기에게 좋은 것을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하느냐?

 

사람이 자기를 다스릴 줄도 모르고, 울어야 할 자리인지 웃어야 할 자리인지도 모르고, 성을 낼 자리인지 웃을 자리인지도 모르면 안 된다. 우리는 이게 바로 되어야 한다. 예수 믿으면 이런 것을 다 고쳐야 한다. 고치면 자기에게 복이고 사랑을 받게 된다. 기독자들은 어떻게 보면 일반성으로 사는 것 같으나 일반성을 딛고 올라가야 한다. 일반보다 못하면 전도가 안 된다. 연관 관계성적으로 사랑을 못 받는다. 사람은 사랑의 존재요, 사랑으로 정복해야 한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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