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누가복음 › 나무가 아니라 흙입니다

김부겸 목사 | 2015.07.29 19:01:5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눅5:1-11
설교자
김부겸 목사
참고
http://blog.naver.com/malsoom/105657101

2010년 5월 16일 주일예배

성경말씀 : 누가복음 5장 1절~11절

설교제목 : “나무가 아니라 흙입니다”

 

 【무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께로 밀려왔을 때에 예수께서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셨다. 그가 보시니,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 있고,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예수께서 그 배 가운데 하나인 시몬의 배에 올라서, 그에게 배를 뭍에서 조금 떼어 놓으라고 하신 다음에, 배에 앉으시어 무리를 가르치셨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깊은 데로 나가거라. 너희는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하기를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 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베드로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들이 잡은 고기가 엄청나게 많은 것에 놀랐던 것이다. 또한 세베대의 아들들로서 시몬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다. 예수께서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그들은 배를 뭍에 대고서,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갔다.(누가 5:1~11)】

 

  <책 이야기>

  최근 『기적의 사과』(김영사)라는 책을 의미 있게 잘 읽었습니다. 먼저 책 내용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기적의 사과』는 기무라 아키노리 씨에 관한 책입니다. 기무라 씨는 일본의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논농사와 밭농사를 지으면서 사과 과수원을 하며 살던 성실한 농부였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한 가지 고민거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아내가 농약에 과민한 체질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사과 과수원에서 ‘농약 치기’는 필수적인 농정의 과정이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으면 사과 과실을 딸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농약을 쳐야했고, 그때마다 아내는 며칠씩 앓아누워서 고생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무라 씨의 인생을 바꿔놓는 운명의 만남이 이뤄졌습니다. 평소 책 읽는 습관이 있었던 기무라 씨는 마을의 책방을 자주 찾곤 했는데, ‘그날’ 책방 책꽂이 꼭대기에서 아주 이상한 책을 발견하고 맙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농약도 비료도 전혀 안 쓰는 농업”이라고 부제를 달고 있는 후쿠오카 마사노부(1913~2008, 자연농법 창시자)의 『자연농법』이라는 책이었습니다. 기무라 씨는 그 책에 확 관심이 갔고, 책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 책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운명적인 만남이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그 책은 엄청난 고생을 선물했습니다. 농약을 치지 않으니까 해충과 벌레를 일일이 손으로 잡아야 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벌레를 잡는 것이 일이었습니다. 농약 대신 해충을 처치할 수 있는 물질을 찾기 위해서 그는 각종 실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마늘이나 고추냉이처럼 자연 살균력을 가진 식품을 비롯해서 간장, 밀가루, 술, 달걀 흰자, 우유, 세숫비누, 흑설탕, 후추, 고춧가루, 된장, 소금, 쌀가루 식초 …… 등등을 뿌려보았지만,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기무라 씨의 사과 밭은 점점 참혹해져 갔습니다. 열매는 커녕 잎도 병들어 다 떨어졌고, 6년동안 그렇게 하는 동안 기무라 씨의 사과나무는 싹도 내지 않고, 거의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재산은 다 탕진했습니다.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킬 수가 없었고, 살림은 점점 빈곤해지고 남루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운명의 만남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1985년 7월 31일, 그는 창고에 있던 밧줄 뭉치를 집어들고 사과밭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죽을 결심이었습니다. 자신만 죽으면 가족들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을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둑어둑 해질무렵, 기무라 씨는 목매 죽기에 적당한 나무를 하나 골랐고, 그 나무 가지를 향해서 밧줄을 던졌습니다. 밧줄을 나무에 걸기 위해 던졌는데, 힘이 너무 셌는지 엉뚱한 방향으로 날아가버렸습니다. 그때 기무라 씨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였습니다. 달빛 아래에 사과나무가 서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과나무는 반짝반짝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사과나무였습니다. 정신 없이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도토리나무였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과든 도토리든 기무라 씨에게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농약을 안 썼는데도 저 나무엔 어쩌면 저렇게 잎이 많이 달렸을까?” 6년간 끝 없이 헤매며 찾았던 답이 눈 앞에 나타난 것입니다. “숲 속 나무는 농약 같은 걸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무라 씨는 정신 없이 발밑의 땅을 파헤쳤습니다. 흙은 보드랍게 흐무러져서 맨손으로도 파헤칠 수 있었습니다. 풀을 뽑자 흙이 붙은 뿌리가 끝까지 뽑혀 나왔습니다. 그렇게 부드러운 흙을 만져 보는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코를 찡하게 자극하는 산의 흙냄새가 풍겼습니다. “바로 이거다. 이런 흙을 만들면 된다.” 자신은 지금껏 사과나무의 보이는 부분, 즉 지상에만 신경을 썼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과나무의 지하세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퇴비를 주고 양분을 뺏기지 않기 위해 잡초만 깎아 주었습니다. 잎의 상태에만 신경 썼을 뿐, 사과의 뿌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무라 씨는 사과나무 뿌리를 튼튼하게 하기 위해서는 산 흙을 재현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잡초들이 자라는 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습니다. 온갖 잡초가 자라났고, 그 풀숲에서 벌레가 울었습니다. 개구리가 벌레를 쫓고, 개구리를 노리는 뱀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들쥐와 산토끼까지 뛰어다녔습니다. 기무라 씨의 밭은 갑작스레 시끌벅적해졌습니다. 그리고 사과나무는 조금씩 건강해져 갔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9년만에 기무라 씨는 1년을 저장해도 썩지 않는 건강한 사과를 생산해 내게 되었습니다.


  기무라 씨의 자연농법 이야기를 읽으면서 제 마음에 남은 하나의 배움은, 그가 눈에 보이는 줄기와 열매에서 시선을 거두고,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와 흙’의 세계에 관심을 기울였을 때, 비로소 희망과 가능성을 찾을 수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 배움이 오늘 제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성경 이야기>

  이제 성경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 예수님과 그 일행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때 그 근처에 고기를 잡으면서 평생 살아온 갈릴리 어부들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어부들과 이야기를 나누시다가 문득 이런 권면을 합니다. “저쪽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보시지요.” 베드로를 비롯한 몇 명의 어부들은 예수님의 권면을 따라서, 깊은 호숫가로 가서 그물을 던졌고, 예상과 달리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와 그 친구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좀 남달리 평범하지 않은 점들을 느끼게 되었고, 이런 만남이 훗날 예수님과 베드로를 ‘연결’시켜 주는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 이야기 중에서 제가 주목하는 곳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누가 5:4)라는 구절입니다. 여기서 ‘깊은 곳’은 일단 수심이 깊은 곳을 뜻한 것입니다만, 그러나 그건 일차원적인 차원에서만 그럴 뿐, 2차원, 3차원, 4차원으로 나아가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깊은 곳’은 더 넓은 차원에서, 그리고 인생과 우주의 본질적인 차원에서 의미 있게 적용될 수 있는 ‘말숨’인 것입니다.

 

  <‘깊은 곳’은 어디일까>

  베드로에게서 ‘깊은 곳’은 어디일까요? 그것은 곧 ‘사람을 낚는 어부’의 세계일 것입니다. 베드로는 얕은 어부였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냥 물고기만 잡을 수 있는 어부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그는 ‘고기를 잡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깊어질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점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지적하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고기 잡는 어부의 직업을 팽개쳐 버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로 그 직업을 바꾸라는 이야기는 전혀 아닙니다. 그런 외형적인 직업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존재의 내면적 차원 이야기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좀더 말씀을 드리자면, 이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최근 『이문재 산문집』(호미)을 읽었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선인들은 일찍이 농업을 그저 풀을 키우는 하농(下農), 곡식을 거두는 중농(中農), 땅을 기름지게 하는 상농(上農), 그리고 사람들을 기르는 성농(聖農)으로 대별한 바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농부라고 해도, 급이 다른 것입니다. 차원이 다르죠. 어부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목회자도 마찬가지이지요.


  기무라 씨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습니까? 생명을 갈아먹는 농부(특히 그 아내가 농약 때문에 고생했다는 점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인물이 되었습니까? 그는 생명을 살리는 농부가 되었습니다. 제대로 된 농부가 된 것이지요. 하농(下農)에서 성농(聖農)으로 크게 성장한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나무가 아니라 흙입니다”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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