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창세기 ›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김남준 목사 | 2015.06.29 23:43:2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창1:1
설교자
김남준 목사
참고
2013.01.13 http://www.yullin.org(안양 열린교회)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I. 본문해설


창세기 1장 1절은 구약 성경의 시작이고, 성경 계시 전체의 시작이며, 이 세계의 시초와 인류 역사의 시작이다. 이 위대한 선언은,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것과 이 세계가 그분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분의 뜻을 따라 창조되어 운행되어진다는 세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II.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신가


A. 하나님에 관한 두 질문
하나님에 관한 두 질문이 있다. 첫 번째, 하나님은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어떤 존재이신지를 묻고 있다. 답은 초월적인 타자성이다. 하나님은 만물보다 지극히 초월적이시고 위대하시며 지극한 위엄과 영광, 탁월하심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과 비교될 수 없는 존재이시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누구인가 하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묻는 질문이고, 피조물들과의 내재적인 관계성을 묻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물질세계 속에 섞일 수 없는 분이시지만 이 세계와 관계를 맺고, 특히 인간과 관계 맺는 속에서 어떤 성품을 가진 존재이신지를 보여주신다. 비참한 자에게는 긍휼하신 성품을, 악을 행하고 돌이키지 않는 자에게는 정의로운 성품을, 유한한 존재인 인간에게는 영원하신 성품을 보여주심과 같이 사물이 처한 상태에 따라 다양한 속성으로 나타나신다.


B. 거룩하신 하나님
성경은 이와 같은 두 질문을 통합해,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제시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존재적인 초월성과 도덕적인 완전성이다. 존재적인 초월성 앞에 서게 될 때 인간은 티끌에 불과한 아주 가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두려움 속에 주 앞에 엎드리고, 하나님의 도덕적인 완전성을 발견할 때 얼마나 더러운 죄인인지를 깨달아 회개하고 용서를 받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떨리는 두려움과 이끌리는 사랑으로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것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아는 백성들의 모습이다.


III. 드넓은 우주와 하나님


A. 우주의 크기를 생각함
과학자들에 의하면 우주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거리가 약 150억 광년 정도라고 한다. 1광년은 빛이 1년을 달려간 거리이고, 달까지 걸리는 시간은 1.2초, 1년을 빛이 달려갔을 때의 총 거리는 10조km이다. 이런 빛이 150억년을 달려가야 할 거리이니 계산하면 1500억조km 거리인데, 이것을 우리가 어떻게 머릿속에서 상상하겠는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있고, 태양계는 우리 은하계에 속해 있으며, 우리 은하계는 약 천억 내지 이천억 개의 항성들로 이루어져 있다. 칼 세이건에 의하면 행성까지 포함해 약 4조개의 별들로 이루어진 집단이 우리 은하계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누구인가? 어마어마한 우주의 수천 억 개 은하 중 하나, 그 은하 중 수많은 성단 중 하나, 그 수많은 성단 중 태양계 하나, 그 태양계 중에서도 수백 개 별들 가운데 세 번째 지구, 그것도 아시아, 그 중 토끼만한 나라, 그것도 가운데 두 토막 나서 남쪽, 그 남쪽에서도 평촌 변두리의 한 곳에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것은 또한 공간에 대한 하나님의 무한한 세계에 대한 사유를 통해, 시간과 영원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하루살이는 내일의 의미를 모르고, 10년을 애벌레로 준비했다 한 달 동안만 사는 매미의 일생은 한 달이다. 인간이 오래 산다고 해봐야 100세, 좀 더 양보해 110세 쯤 된다 하더라도, 하루살이로 보면 24시간 20분쯤 산 것이고, 매미로 본다면 30.1일 산 셈이다. 이것이 억겁을 흐르는 이 무한한 우주의 공간과 침묵하는 시간 속에서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주는가? 우주의 시간의 흐름을 기준해 보면 우리가 100년을 살다 죽는 것과 입속 세균을 한 모금의 가글로 토해 놓을 때 죽는 그 세균의 수명의 길이와 다를 바가 없다.


B. 지성의 한계를 생각함
인간 지성의 한계 때문에 많은 인간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 모든 세계가 그분으로부터 창조된 것을 잘 모른다. 인간의 지성은 이 세계에 익숙해진 생각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랑을 찾아보겠다고 배를 갈라 장기를 들추지는 않는다. 사랑은 콩팥이나 쓸개, 간이나 허파처럼 그런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과 물질의 세계는 밀접한 연관이 있지만 물질을 찾는 방법으로 정신을 찾을 수 없다. 이 세상에 물건을 찾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 행위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중대한 모독이다.


IV. 가장 큰 의무: 하나님을 앎
우리의 가장 큰 의무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우리 일생의 회개해야 할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 알기를 게을리 한 태만이다. 오늘날과 같은 복음의 때, 어디든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접촉할 수 있고, 교회생활을 하면서 진리의 책들과 들을 수 있는 말씀이 있고, 형제들로부터 진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핑계 댈 수 없다. 하나님께 대한 무지를 고집한다면, 스스로 하나님 알기를 거절하고 어둠속에 살기로 선택한 결과이다.


V. 적용과 결론
우리는 땅에 코 박고 매일매일 문제에 시달려 살아가지만, 우리가 이 세상을 마름하고 무한한 우주 공간속에 한 티끌이 되어 사라질 그때에도 그것이 의미 있는 고민이고 갈등일까? 하나님은 인간을 순간을 살아도 영원에 잇대어 살 수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문제를 문제로 느끼는 이유는 영원한 세계에 대한 무관심과 자기만을 위한 이기심에서 생겨난다. 이 땅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지만 궁극적인 해답은 하나님께 있고 영원한 세계에 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과 맺는 관계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자리에서 주님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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