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출애굽기 › 예배가 중심이 되는 삶

신실 | 2015.07.05 16:05:4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출5:1-9
설교자
이영화 목사
참고

예배가 중심이 되는 삶


1. 그 후에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광야에서 내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이니라 하셨나이다

2. 바로가 이르되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를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이스라엘을 보내지 아니하리라

3.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4. 애굽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모세와 아론아 너희가 어찌하여 백성의 노역을 쉬게 하려느냐 가서 너희의 노역이나 하라

5. 바로가 또 이르되 이제 이 땅의 백성이 많아졌거늘 너희가 그들로 노역을 쉬게 하는도다 하고

6. 바로가 그 날에 백성의 감독들과 기록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에 쓸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이 가서 스스로 짚을 줍게 하라

8. 또 그들이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에게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자 하나니

9. 그 사람들의 노동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 출애굽기 5 ; 1 - 9


사람들이 많이 찾는 소위 맛 집이라고 하는 곳을 보면 한가지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좋은 시설이나 주차장, 서비스등도 조건이 될 수 있지만 음식점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맛입니다.

그런데 이 맛을 좌우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맛 집으로 소문난 어느 식당의 주방장이 인터뷰를 하면서 말하기를 ‘저희 집 맛의 비결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무엇보다 좋은 재료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가장 기본은 바로 좋은 재료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에서도 여러 가지의 요소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교회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여러 가지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그것을 다 정리해서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예배’ 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신앙에 가장 핵심이며 기본이 바로 예배라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하늘의 높고 높은 보좌에 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낮고 낮은 인간이 뵐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배 가운데 만나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연약한 우리 인생이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는 가장 낮지만 하나님께서는 끝없이 높으신 분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예배라고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은 예배가 교회의 본질이며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이라는 것을 믿으십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이유도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사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을 예배 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지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꾸어 말하면 가장 본질적이며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예배에 대한 거부가 사실은 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4장에 수가성 여인과 대화 가운데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본질은 예배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 예배에 대한 세상의 타협과 유혹이 나오고 있습니다.

본문의 배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시고자 때가 이르러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십니다.

그리고 모세는 바로 앞에서 ‘내 백성을 애굽에서 보내달라.’ 고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하였습니까?

자유를 위해서? 먹을 것을 위해서? 쉼을 위해서?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3절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

모세는 ‘내 백성들로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허락하라’ 고 바로에게 요구하였듯이 하나님께 예배하러 가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예배 하러 가야겠다는 모세의 요구에 대해 바로는 순순히 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바로가 내놓은 타협안은 마치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대한 세상의 타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이후에 바로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을 겪고 세 번의 제안을 하는데 첫 번째는 ‘이 땅에서 제사하라’ 두 번째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마라’ 세 번째는 ‘제물 없이 제사하라’ 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 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순종’ 과 ‘신앙의 계승’ 그리고 ‘헌신’ 세 가지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하나라도 없애려고 하였던 것이 바로의 타협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바로가 첫 번째 제시한 타협은 무엇이었습니까?

출8:25-27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바로가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꼭 제사를 위해 광야까지 갈 필요가 있느냐 사흘길을 가는 것도 힘든 일인데 그냥 여기서 제사를 드려라’

그러자 모세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라고 하면서 ‘거리가 멀어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광야에 가서 제사 드리라고 명령 하셨기 때문에 번거롭더라도 우리는 순종하여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대답합니다.

여러분 이처럼 예배에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라고 말씀하심에 대한 순종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곧 예배인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맞지 않더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예배입니다.


여러분 사울왕과 다윗, 이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 두 사람을 어디에서 복을 주시고 어디에서 책망하셨습니까?

바로 예배입니다.

사울왕은 많은 이스라엘 가운데 높임을 받아 왕이 되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먼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싸워야 하는데 제사장 사무엘이 빨리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사무엘이 기다려도 오지 않으니 내가 대신 제사를 드리겠다.’

이렇게 그는 경솔하게 자신이 제사장을 대신해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은 이 사실을 알고는 크게 사울왕을 책망합니다.

왕의 일이 있고 제사장의 일이 있는데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것을 무시한 것입니다.

후에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순종하나 하지 않나를 보시기 위해 이기게 하실 것이지만 조건을 제시하십니다.

절대 전리품을 가지고 오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전쟁을 이기고 보니 아말렉 진영에 너무나 좋은 것들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도 남김없이 다 태워하고 하셨지만 그냥 태워버리기엔 너무 아깝다고 생각되어 그는 좋은 소와 양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때 이것을 알게 된 사무엘이 그것을 지적하지 사울은 좋은 것을 남겨 두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함이라고 변명합니다.

그러자 사무엘은 사울을 향해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제사보다 낫다’ 하며 순종하지 않은 사울을 책망하였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에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왔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바로 예배 가운데 우리의 순종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물론 다윗도 인간적으로 허물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살인을 방조했고 간음도 행하였으며 자식이 자신을 죽이기 위해 쫓아 올 때 도망하였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는 그의 잘못을 지적하면 언제나 ‘하나님 잘못 했습니다.’ 밤을 세워가며 회개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돌을 던지면 그것을 자신의 허물로 여기고 자신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여러분 기독교의 영성 가운데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자신을 깨닫는 것입니다.

어떠한 자리에서도 하나님을 높이고 반대로 어떠한 상황이 내게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상황속에서 내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이며 순종입니다.

다윗은 성전건축을 준비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피를 많이 흘림으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헌신 하겠다는데’ 하지만 하나님의 거절 앞에도 ‘예 알았습니다.’ 라고 순종하는 다윗이었습니다.

성전건축이 문제가 아니라 순종하는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께 보일 수 있는 순종은 무엇을 통해서 나타낼 수 있을까요?

바로 ‘예배’ 입니다. 예배 속에는 순종이 있습니다.

다윗의 마음에는 언제나 순종하는 마음이 있었고 이것이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일요일을 일요일이라 하지 않고 주일이라고 하고 성일이라고 합니다.

성일은 무엇입니까? 거룩한 날입니다.

거룩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날입니다. 이날은 공휴일이 아니고 하나님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날에 순종한다면 당연히 ‘내가 성일에는 하나님 앞에 가야지’ 라고 생각하며 순종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배에는 순종이 있음을 기억하시고 이를 위해 어떠한 것도 타협의 대상이 되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 바로의 타협안은 가기는 가지만 제사를 드리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가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 계승의 유혹입니다.

바로는 말합니다. ‘뭐하러 얘들까지 제사 하는데 데리고 가느냐. 정 가려면 장정만, 어른들만 하나님께 제사 드리게 하면 되지 않느냐?’ 이렇게 타협을 합니다.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웃긴 것이 바로는 어린애들까지 같이 가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증거가 되니 안된다고 합니다.

출10:10-11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어린아이들은 힘드니 가지 말고 어른들만 가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 대단한 배려처럼 들려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에게 신앙의 큰 도전입니다.

어떤 분들은 자신은 신앙생활을 잘하면서 정작 자녀들의 신앙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실제로 교회 안에서 직분자들 조차도 자녀들에 대해 너무나 쉽게 세상과 타협을 합니다.

당연히 바쁘니까, 당연히 공부해야 하니까, 당연히 가기 싫다고 하니까, 당연히 아프다고 하니까, 이런 식으로 세상의 일에 빠지는 것은 큰일 날듯 하면서도 정작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에 있어서는 별 신경도 중요하게 강조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부모는 어떻게 하든지 우리의 자녀들에게 그 신앙이 계승되도록 위해 힘써야 합니다.

이것은 어쩌면 부모의 가장 큰 사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데 거추장스럽게 아이들을 뭐하러 데려가냐는 것입니다.

원수 마귀는 이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만듭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절대 여기에 속으면 안됩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바른 신앙의 유산을 전해주며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예배는 모든 세대가 하나님께 드리는 신앙의 기본이며 가장 중요한 자녀교육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부모는 이것이 결코 타협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자녀들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늘 가르치고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계승할 수 있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세 번째로 바로는 아이들을 두고라는 것이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양과 소를 두고 가라고 타협합니다. 바로 ‘헌신’ 에 대한 유혹입니다.

바로는 아이들을 두고 가라는 것이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양과 소를 두고 가라고 합니다.

다시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그냥 재물 없이 제사하라고 합니다.

출10:24-26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모세가 이르되 왕이라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 제사와 번제물을 우리에게 주어야 하겠고 우리의 가축도 우리와 함께 가고 한 마리도 남길 수 없으니 이는 우리가 그 중에서 가져다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길 것임이며 또 우리가 거기에 이르기까지는 어떤 것으로 여호와를 섬길는지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나’

여러분 바로가 요구하는 것은 제물 없는 제사입니다. 다시말해 헌신 없는 예배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번제물이 필요하기 때문에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여러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로 나올 때에는 반드시 예물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신16:16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에 빈손으로 나와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액수의 많고 적음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정성과 헌신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듯이 우리는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주어졌음을 믿는다면 마땅히 하나님께 나올 때에는 빈손으로 나와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것을 드려야 합니다. 헌신을 해야 합니다.


전도자 무디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화를 주었지만 배움이 적었기에 그의 말은 문법으로 오류가 많았습니다.

하루는 언어박사가 무디의 설교를 듣고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목사님이 설교하시면서 얼마나 문법적으로 문제가 많고 틀렸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무디는 말하기를 ‘예, 저는 배움이 적기 때문에 부족함이 많고 실수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려고 헌신하는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서 묻기를 ‘그렇다면 박사님은 그렇게 좋은 능력을 가지고 얼마나 하나님께 헌신하시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꼭 물질의 예물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시간을 가지고, 지혜를 가지고도 얼마든지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예물이 꼭 물질을 뜻하는 것만은 결코 아닙니다.

시간을 내서 전도하고, 시간을 내서 교회 와서 청소 하고, 시간을 내서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고 하는 모든 것이 빈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아니하는 일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는 어떻게 타협합니까?

사흘길을 가는 것과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것은 허락하지만 물질까지는 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나가지만 예배는 드리지만 헌신은 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타협하였던 3가지의 제안은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하는 저와 여러분들을 향한 유혹의 제안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은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며 그 무엇보다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이 됨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예배에 우리의 순종이, 신앙의 계승이 헌신이 있습니다.

원하기는 우리의 신앙에 가장 본질적인 것이며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예배를 더욱 귀히 여기며 예배에 관한 만큼은 어떠한 일에도 타협하지 아니하고 그 우선순위를 분명히 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과 은혜를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2015. 6. 7. 주일예배말씀. 이영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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