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가복음 ›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궁극이 | 2015.05.12 14:22:1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막1:27-34
설교자
김경형 목사
참고
궁극교회 주일예배

1장 27절-34절: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직후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주셨다. 그러니까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시겠다고 하셨듯이 사람을 낚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걸 예배의 장소에서, 지금으로 말하자면 안 믿는 이방 세상에서가 아니라 교회 안에서 먼저 보여주신다. 예수 믿는 사람들,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보여주신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거룩하지 못한 것 전부는 더러운 쪽으로 속한다. 사람이 더럽다고 할 때 뭐가 묻어서 더러우면 씻으면 되는 건데 사람의 성격 성질이 더러운 것은 물로 씻을 수도 없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람이 고쳐져 들어가고, 거룩치 못한 것을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고, 더러운 것에서 거룩한 쪽으로 사람을 낚아 올리는 걸 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그렇게 하셨듯이 특히 목사님들이나 직분자들은 일반적인 자기 성격 성질이 잘못된 게 있으면 먼저 고쳐야 한다. 자신부터 고치지 못하고 어떻게 교인들만 나무라겠느냐? 교훈이 내려가는 이치가 틀리면 못 쓴다.


저번 시간에 봤듯이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큰소리를 쳤다. 왜 큰소리를 쳤느냐? 이 더러운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예수께서 누구신 줄을 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신 줄을 안다. 그러니까 잘 안다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을 알기는 아는데 예수님으로 자기 자체화를 못 시키고 있다.


자체화를 못 시키고 있으면서, 자기 성격 성질도 못 고치고 있으면서 안다고 떠드는 자는 어떤 상황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면 그냥 ‘욱’ 하는 게 올라온다. 이건 더러운 거다. 그런 게 교회 안에서 많다.


그래서 이걸 보면 이 귀신들린 자가 지도자 상으로도 보이기도 하고, 잘 알고 똑똑한 것으로도 보이기도 하고, 뭘 좀 안다고 날마다 얼마나 큰소리를 잘 치는지 그것도 들어있다. 그런데 바리새교인들과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그게 더러운 귀신인 줄도 모른다.


신앙이라고 하는 그 신앙의 성질의 상태, 사람이 성격이나 성질을 가지고 있는 그 상태 등 우리가 그 양상을 고칠 게 많다. 교회 안에서 그렇다. 그거 고쳐야 한다. 예수님은 고쳐줬다. 큰소리하는 그를 예수님이 떠들라고 했느냐, 조용히 하라고 했느냐? 잠잠하라고 했다. 너부터 고치자 그 말이다.


그러면 그 성질을 지적하며 ‘너 고치라’ 하는 그거냐? 예수님의 말씀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서 된 것이다. 그 이치가 사람을 고쳐 들어가는 주님의 교훈이다. 이것이 주님이 고치시는 것이다. 그냥 ‘고치자’ 하고 말로만 하면 어디가 틀린 것을 모른다. 그런데 주님의 온전한 것을 놓고 그 다음에 이치적으로 들어가서 깨달아지니 조용해진다. 안다고 까불고 큰소리치던 자가 조용해진다. 이게 고쳐지는 것으로 보이는 거다.


사람이 만들어지면 조용해진다. 안 만들어지면 냅다 떠든다. ‘나밖에 없다. 내가 제일이다’ 하는 이건 더러운 귀신 들린 거다.


동네에서도 싸울 적마다 오만 욕을 다하고 큰소리로 냅다 떠드는 사람이 있으면 싸우는 상대가 기가 막히니 그만 가버린다. 그러면 가버린 그 사람이 싸움에서 진 거냐? 아니다. 상대가 하도 더러우니까 피하는 거다. 짖는 개와 싸우면 그 사람은 개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까 처녀총각들도 결혼 전에 상대를 잘 봐라. 옳은 진리이치의 교훈을 받으면 웬만하면 보여진다. 언행심사가 자기를 표현한다. 말의 억양도 그 사람의 성격 성질을 표현한다. 사기꾼은 아주 살살거린다. 그러면 대부분 거기에 속는다. 도둑놈은 한 탕 하자고 한다.


본문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자기 자신을 볼 수 있느냐? 자기는 귀신들린 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냐? 자기는 다 고쳐졌느냐?


귀신들린 사람이라도 때와 장소도 모르고 계속 떠드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꿀 먹은 벙어리처럼 묻는 말에 대답도 안 하고 가만있는 사람도 있다. 이건 거룩한 게 아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나와 시몬의 장모의 집에 들어가서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셨다. 그런데 문제는 열병이 왜 났을까? 열나는 병이 어떤 병이 있느냐? 시몬의 장모가 왜 열병이 난 것이냐? 시몬이 가족을 팽개치고 예수님만 쫓아다니고 있으니 자기 사위를 예수님께 빼앗긴 것 같거든. 그래서 딸이 생과부가 될까봐 염려 걱정을 해서 병이 난 것은 아닐까?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저희에게 수종드니라: 병들어 누워있는 것보다 예수님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수종을 들면 또 은혜를 받게 된다.


예수님의 손을 잡는다는 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잡고 사는 것을 말한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잡고 일어나는 것이 훨씬 더 복되고 은혜롭다. 자기가 인생길을 잘못 들었으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의 말씀을 듣고 천국 쪽으로 가야 한다.


자기가 잘못돼 있으면 하나님의 신적인 성품과 도덕성의 말씀을 잡고 일어날 수가 있다. 그리고 영적 이치의 생명의 사람, 하나님의 생명의 사람으로 또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니까 그 손을 잡고, 그 역사를 잡고 일어나서 주님의 일에 수종드는 것이 훨씬 좋다. 그래서 시몬의 장모가 무슨 뜻으로 열병이 났는지 모르지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역사를, 참 사람 되는 그 이치를 잡아야 일어난 것이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선악과 따먹고 그 영이 죄와 허물로 죽어있는 상태요, 그리고 그 지혜지식성이나 도덕성을 보면 전부는 저질이고, 소원 목적성은 땅에 속한 것이다. 땅에 속한 것은 다 불에 타고 시간 지나면 다 변질이 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항상 세상 것을 소원 목적을 하는데, 세상 것은 늘 움직이는 것이니 움직이는 것을 잡으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드느냐? 가난해서 사는 것이 힘들기도 하겠지만 그 이전에 자기 사고가 참 힘들게 놓여있구나. 이해타산이 참 힘들게 놓여있구나. 그러니까 그게 더 힘든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것을 잡았다고 해도 그걸 간수해야지, 안 뺏겨야지, 늘어뜨려야지. 그러니 그 사고방식이 얼마나 힘이 드느냐? 참 힘들게 산다. 사람이 힘이 든다. 사람의 사고방식 이해타산이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


옛날에는 먹고 마시고 사는 면은 어려웠지만 사람이 인정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과학적인 시대고, 과학적으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 것이 많은데 왜 이렇게 사람 꼴이 힘이 드느냐? 사람이 사람을 못 알아보고, 자식이 부모를 못 알아보고.


성경에 보면 부모가 자식과, 며느리와 시어머니와, 또 아들과 아버지와, 또 어머니와 딸이 서로 원수가 된다고 했다. 원수가 집안에 있다고 했다. 이게 뭐냐? 힘들다는 거다. 왜 이렇게 힘이 드느냐? 뭘 놓고 따지기에 이렇게 힘이 드느냐 그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부자지간이라도 한 집 식구라도 물질을 놓고 따진다. 그러니 힘들다. 앞으로도 힘들 것이다. 왜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고 힘들게 사느냐? 왜 죽는 소리를 하느냐?


사람이 자기를 살려주시는 세력을 잡고 일어나야 한다. 그게 예수님의 손이다. 예수님의 손을 잡아야 한다. 예수님의 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역사의 손이다. 그게 예수님의 손이다. 그 역사를 잡으면 예수님의 손을 잡는 것이다. 그러면 자기는 살아난다. 돈 세력을 잡지 말고 사람을 살리는 세력, 살아나는 세력, 일어나는 세력을 잡아라. 인격과 성품적으로 지혜와 지식적으로 사람을 일으키는 세력, 그게 성령님의 역사요 하나님의 역사요 신의 역사다.


돈을 잡으면 사람이 일어나느냐? 아니다. 사람이 못 돼 놓으면 그 돈 때문에 자기는 망하게 돼 있다. 자기를 살려주시는 세력을 잡아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세력을 잡아야 자기가 힘을 얻고 일어날 수가 있다. 주님의 손을 잡고 일어나야 사람을 살리는 일에 수종을 들 수가 있지 주님의 손을 잡지 않으면 사람이 못 일어난다. 별 수 없다.


정치 정권을 잡으면 사람이 일어날 것 같으냐? 아니다. 사람이 일어나는 건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잡아야 네가 일어난다. 너는 그 세력을 잡아라. 안 잡으면 너는 못 일어난다. 사람이 못 선다. 안 서 진다.


사람을 바로 세우는 거, 사람을 힘 있게 만들어 놓는 이게 예수 믿는 거다. 이게 예수 믿는 효력을 보는 거다. 예수 믿으면서 예수 믿는 효력을 못 본 채 예수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사고방식 이해타산을 가지고 사는 건 네 방식대로 믿는 거지 예수 바로 믿는 게 아니다.


성경은 너에게 이렇게 살라고 제시가 돼 있는데 그 성경은 안 붙잡고 왜 네 식으로 예수 믿느냐? 그렇게 믿으면 예수 믿는 효력이 자기에게 나겠느냐? 안 난다. 그렇게 믿었다간 너는 하나님의 형벌에 처해진다.


예수님께서는 회당 안에서 건 밖에서 건 집 안에서 건 어디서든지 사람을 온전케 하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인격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는 분이시다.


자기가 예수를 믿어서 믿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누구 때문에 자기가 일어났는지를 아는 고로 주님이 하시는 일에 감사함으로 수종을 들게 돼 있다. 은혜를 받았으면 감사함으로 수종을 들게 된다. 안 받았으면 감사한 줄 모르게 때문에 수종을 들 줄 모른다. 사람이 일어나지 못하면 수종을 못 든다. 사람이 지식적으로 일어나고, 지혜적으로 일어나고, 도덕성적으로 일어나야 주님의 일에 하나님의 일에 수종을 든다.


이치적으로 말하면 병든 자는 자기 편안해지려고만 하지 수종을 못 든다. 병든 사람은 남보고 자기에게 수종을 들라고 한다. 그건 병든 것이다. 자기만 좋게 해 달라면 그 사람은 병들었다. 정신적으로 마음적으로 병든 사람이다. 사람 보기에는 건강하게 보여도 그런 사람은 정신면에 병이 든 것이다. 정신면에 병이 든 사람은 수종을 못 든다. 자기만 자꾸 좋게 해 달라고 한다.


아무리 나이를 많이 먹어도, 아무리 몸이 건강해도 자기 비위만 맞춰달라는 사람은 정신면에 병이 들어있다. 그래서 남을 위해서 봉사적인 것은 못 가진다. 정신면에서 성한 사람이 봉사를 한다. 예수 믿는 자도 은혜를 받은 자가 감사를 한다. 깨달은 자가 감사할 줄을 안다.


장사하는 사람이 돈을 잘 벌면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러지 장사 안 되고 파리만 날리고 있으면 하나님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사람이 있더냐? 이치가 받아야 감사가 나오는 거다. 깨닫는 걸 받아야 감사가 나온다. 깨닫는 것은 돈으로는 환산을 못하는 거다.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은 돈으로 못 따지는 거다.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32절-34절): 때가 저물어지면 각종 병자들이 생긴다.


첫째는 인생의 나이가 저물어지면 육신의 병이 많이 생긴다. 나이든 사람이 아무리 건강해도 그 안의 모든 세포조직은 노쇠해 들어가고, 뼈 속은 진액이 빠져서 구멍이 송송 나고, 다리가 시리고, 밤에 잠잘 때 자동적으로 바람이 솔솔 분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몸이 자꾸 작아진다. 인생의 나이가 저물어지면 육신의 병이 많이 생긴다.


또 두 번째는 인생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면 마음의 병 정신병이 자꾸 생긴다. 그 이치를 알아라. 무턱대고 예수 믿는 게 아니다. 이치를 알면 미리 예방도 할 수 있다.


‘육신은 날로 후패하나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도다.’ 그런데 육신도 나이를 먹어서 쭈그러지고, 영적 면에서도 예수 믿는 이치를 몰라서 그 면에서도 못 깨닫고 쭈그러지고 이런다면 사람이 뭐냐? 제 정신이 안 된다. 그러니까 이런 면을 봤을 때 나이 들어서 헛소리하기 전에 그렇게 안 되도록 미리 미리 예방법을 써라. 하나님의 말씀이 ‘속사람은 날마다 새롭도다’ 하는데 속사람이 병들 리가 없다. 영에 속한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채워나가라.


쓸데없는 짓하면 그 정신이 자꾸 퍼져나간다. 거기에 붙잡힌 사람은 집안에서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모르고 아무 것도 못한다. 그건 빠진 것이다. 오늘날 핸드폰이 있어서 사람의 정신을 다 버려 놨다. 이런 것도 잘만 쓰면 생활에 편리하게 쓰는 건데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써가지고 다 버려 놨다. 이런 것들로 인해서 사람들의 정신이 어떻게 해이해졌는지? 그 정신은 인생살이에 쓸 데가 없다.


그 재미에 들려서 부모의 말을 듣나? 부모가 그런 걸 사줘놓으면 자식들은 그 짓 하느라고 부모가 말을 하면 듣지도 않고, 그래서 야단을 치자니 자식이 집 나갈까봐 겁이 나서 야단도 못 치고. 그 무엇에 쓰겠느냐? 우리교회 어린이들은 그렇게 자라면 안 된다.


세 번째는 진리가 어두워지면 거짓 종들이 많이 생겨나서 교회들이 바른 길 생명 길을 못 찾고 바로 가기가 참 어려워진다.


본문에 ‘저물어 해 질 때에’ 그랬다. 어두워지면 각종 병자들이 나오는데 나이 들어서 오는 몸의 병, 그 다음에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지면 정신과 마음 면에 병이 많이 생긴다. 겉은 멀쩡한데 성령의 눈을 가지고 속을 들여다보면 정신과 마음에 병이 들어있다. 영웅성 허영심 허풍성의 세상바람이 잔뜩 들어있다. 이건 병이다. 세상에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으면 큰 바람이 든 것이다. 기독교 세계 안에서도 예수 믿는 사람도, 목사도 그 병이 다 들려있다.


그리고 진리의 말씀의 이치가 어두워지면 거짓 종들 거짓 목사가 많이 나온다. 무인가 신학교에서 간판 따고 그런 걸 말하는 게 아니라 정신 사상 면에서 그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옳은 진리이치를 찾기가 힘들어진다. 성경 전체가 말하고 있는 게 ‘너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입으라’고 한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아버지를 닮아야지. 그 집 자식이라면 좋은 그 부모를 닮아야지.


사람이 앓는 것도 여러 가지다. 정신적으로 앓는 사람, 육신적으로 앓는 사람, 귀신이 들려서 성격과 성질적으로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 어린아이는 몸이 아프면 끙끙 앓는다. 어른들은 마음에 병이 들면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으나 속은 끙끙 앓고 있다.


우리 어린이들이 부모님의 속마음이 무엇 때문에 병이 들어서, 무슨 일이 안 돼서 끙끙 앓고 있는지, 어떤 자식을 염려해서 마음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지 그 소리를 들을 줄 안다면 그 자식은 참 희망이 있다. 그러나 부모가 마음 앓는 거, 정신 앓는 걸 몰라서 제 멋대로 한다면 그래 좋다. 너도 앞으로 시집장가 가서 네 자식이 어떻게 될 줄 아느냐? 이거는 한 술 더 뜬다. 그러면 그 때 너는 어떻게 되겠느냐? 반드시 그렇게 되게 돼 있다.


사람은 양심의 소리, 부모의 가슴 앓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소리로 나는 게 아니다. 자기는 신난다고 큰소리치고 있는데 ‘아이고, 저 사람이 앓고 있구나’ 하고 사람이 앓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보니 더러운 귀신이 들렸구나. 또 이렇게 보니 아이고, 저 사람이 앓고 있구나. 잡다한 형태로 앓고 있는 사람이 참 많구나? 어떻게 되면? 날이 저물어지면. 이게 지금 계시다.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 계시다.


자기가 젊었다고 해서 해가 돋는 거냐? 아니다. 꼭 그렇게 보면 안 된다. 나이는 젊었으나 정신면에서 기울어져 가고 있다면 이 사람은 병든 것이다. 성령의 눈으로 볼 때 ‘이 사람 병들었구나.’ 그걸 보고 고쳐줘야 하고, 고치려고 애를 써야 한다. 지적을 해주면 고쳐야 한다.


병중에 마음병 정신병이 들면 그 사람은 폐인이 된다. 이건 몸에 병드는 것보다 더 무서운 병이다. 그러니 진리이치의 말씀을 잡고 올라오라. 올라오게 만드는 것이 사람을 낚아 올리는 거다. 여기서 여러 가지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자기의 나이가 저물어지기 전에, 진리생명의 말씀이 없어지기 전에, 시대적인 밤이 오기 전에 진리 성숙화, 진리 무장화로 부지런히 자기 자체화 시켜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 대상으로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이 15년 이상 진행되면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세상을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알고 진리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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