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다니엘 › 다니엘과 세 친구

구하라 목사 | 2015.05.15 19:35:5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단3:1-30
설교자
구하라 목사
참고

다니엘3장:1절-30절


찬송: 341장(십자가를 내가 지고)

다니엘서 3장은 풀무불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에 대한 말씀입니다. 얼핏 동화 같아서 어린이 설교의 주 내용 중 하나이기도 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본문의 사건은 동화가 아니라 당시의 사건이었고 상황이었고 현실이었습니다.
삶은 요정이 공간을 나는 환상적인 동화가 아닙니다. 넘고 극복하고 살아야 하는 현실입니다. 말씀 또한 현실입니다. 말씀은 종교적 교리나 철학적인 기록이나 단순한 윤리적 교훈이 아니라, 영혼을 살리고 내면을 만지며 인생과 역사 속에서 성취되는 말씀입니다. 사람에게 참된 약속과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말씀이 있다는 것이 축복이며, 우리가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1절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높이는 육십 규빗이요 너비는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지방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두라 평지에 금 신상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제국의 모든 백성들에게 나팔과 악기 소리가 나면 금 신상에 절하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맹렬한 풀무불, 용광로에 던져 넣겠다고 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는 우상에게 절하도록 강요받는 시대입니다. 바벨론 시대처럼 금 신상을 세워놓고 절하라고 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무감각하게 우상숭배를 강요받고 있는 시대입니다. 보이지 않는 강력한 세력이 사람들에게 현대판 우상숭배를 강요하고 있고, 사람들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 우상이 무엇인가? 바로 돈이라는 우상, 외모라는 우상, 권력이라는 우상, 건강이라는 우상, 인기라는 우상을 숭배하게 하고 있습니다. 곧 그것들에게 절대 가치, 최상의 가치를 두게 하며, 인생의 의미와 만족과 소망을 두게 하고 있습니다.

우상숭배의 본질은 속이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는 단순히 보이는 형상에 절하고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속이는 것입니다.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속이고, 사람의 참된 의미와 가치와 만족과 소망이 아닌 것을 참된 것이라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영원한 가치와 약속과 현실을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의 함정과 위험성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로 오늘의 시대는 정신을 차리고 스스로 잘 판단하며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빛과 어둠,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시대입니다.

8절에서 23절은 풀무불 속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에 대한 말씀입니다. 금 신상에게 절하라는 나팔소리가 났지만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격노한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세 친구를 풀무불에 던져버린 것입니다. 세 친구의 결단과 고백입니다.
16절에서 18절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사람이 돈에 대해, 외모나 건강, 권력, 인기에 대해 자유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은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너도나도 더 많은 돈을 모으고 가지려 하고, 외모를 뜯어고치며, 불나방처럼 권력을 쥐려하고, 목숨 걸고 건강에 매달리고 인기에 연연합니다. 그것들이 없는 것이 곧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한 인생이라 생각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모으고, 고치고, 가지고, 지키려 합니다. 이런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점점 육체가 되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이제는 누구보다 먼저 믿는 자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신앙의 용기를 품어야 합니다. 믿음의 용기를 가지고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며 오직 영원하신 하나님으로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믿음의 실상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믿음의 자리로 부르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혹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그래도 오직 하나님이라고, 하나님이 전부라고 말하고, 주님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말씀과 기도, 침묵가운데 주님을 깊이 묵상하며 주님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4절에서 30절은 풀무불 가운데서 다니엘의 세 친구를 건지시고 높이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다니엘의 세 친구를 풀무불 가운데서 건지시고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천사-어쩌면 하나님 자신이셨는지도 모릅니다-를 세 친구가 던져진 풀무불 속으로 보내시어 세 친구를 온전히 보호하시고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높이셨습니다. 25절입니다.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하나님은 우리 인생 속에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인식하든 못하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며 사는 것이 참된 믿음이며 지혜입니다. 함께하시며 생의 위기와 인생의 폭풍우속에서 우리를 도우시고 건지시고 높이시는 하나님을 인식하고 경험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위해, 말씀을 위해, 복음을 위해 사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그의 인생 속에 개입하시고 행동하시며 마침내는 그의 영광을 회복하십니다. 혹 이런 사실이 이생에서 드러나지 않아도 우리가 영원한 주의 나라에 이르렀을 때 모두가 알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무 보이는 것으로 비교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있는 것으로 자족하고, 있는 것으로 생명과 구원의 복음을 위해 선용하며 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곳 아니면 그곳에서 영광으로 갚아주십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살면서 종종 보이는 것으로 인해 실패자가 되고 스스로 허세를 부립니다. 사는 동안 너무 보이는 것으로 비교하거나 보이는 것에 포로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생의 전부와 대답을 삼고 이 거짓된 우상의 시대에 영원하신 주님의 전도자로 사는 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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