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다니엘 › 다니엘의 기도

구하라 목사 | 2015.05.15 19:35:5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단9:1-27
설교자
구하라 목사
참고

다니엘 9장 1-27절


찬송: 361장 (기도하는 이 시간)

다니엘이 살아가는 시대적 정황

어린 나이에 포로로 잡혀와 바벨론의 언어를 배우고 바벨론의 교육을 받고 자란 다니엘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당하고 있는 상황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와서 그의 이름도 벨드사살로 바뀌었습니다. 꿈과 환상을 해석하는 은사로 인해 지혜자들의 감독관이라는 직책을 받게 되면서 안정적 삶을 살아가게 되었지만, 기원전 605년 바벨론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하고 학식과 명망있는 모든 유대인들은 모두 바벨론의 포로로 먼 타국에서 생활해야 하는 시대적 상황에 대해 다니엘은 마음속으로 끊임없이 질문하였을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은 이렇게 멸망당하고 고난을 당하여야 하는가? 왜 유대인인 나는 태어난 고향 땅을 떠나 여기 바벨론의 수도 수산에서 이렇게 살아가야만 하는가? 언제까지 이스라엘은 이렇게 포로로 살아가야만 하는가? 더욱이 이스라엘의 왕족, 귀족으로 자라난 사람이라면 이러한 내적 의문은 더욱 당연해 보입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으로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이러한 마음의 질문을 가지고 살아가던 다니엘에게 놀라운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본문 2절입니다.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갈대아 지방을 다리오가 다스리던 첫해, 예레미야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던 중 눈이 번쩍 뜨일만한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구약의 예레미야의 말씀을 묵상하다가 깨달은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주어졌던 예언의 말씀은 예레미야25:11-13과 예레미야 29:10을 가리킵니다. 렘29: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대략 그가 이 말씀을 묵상 했을 때, 그의 나이는 고령이었을 것입니다. B.C 605년에 소년으로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다가, 본문 다니엘서를 기록한 시기가 대략 B.C 530년대 경이라면 그의 나이는 최소한 70대 후반에서 80대 이상의 고령이었을 것입니다. 64,5년을 바벨론에서 보낸 고령의 다니엘이 70년이라는 기간이 차면 이스라엘의 회복과 예루살렘으로의 귀향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얼마나 놀랐을 지는 상상이 갑니다. 유대땅으로의 복귀가 어쩌면 자기가 죽기전에, 곧 수년안에 이뤄질 수있다는 사실에 그는 흥분과 기대감으로 가득차게 되었을 것입니다. 70년이라는 시간이 차면 포로로 살아가던 유대인들이 돌아가게 될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은 다니엘이 취한 행동이 3-4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다니엘의 기도 결심

유대땅으로의 귀한이 임박하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기도의 모습은 일반적인 기도의 모습과는 다릅니다. 심각한 범죄후에 참회하는 속죄와 회개의 기도 모습입니다. 예레미야 말씀을 읽고 이스라엘의 회복의 메시지를 깨달은 그는 지금겪고있는 이스라엘의 포로생활과 예루살렘의 패망의 원인이 우연히 찾아온 것이 아니라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함때문이었음을 인식하게 됩니다.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죄악때문에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났음을 절실히 인식한 그는 일상의 삶을 멈추었습니다. 음식을 먹기를 중단하고 슬픔과 참회의 마음으로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작정하여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회개와 자복

그의 회개와 자복의 기도는 5절에서부터 15절 까지 계속됩니다. 그 핵심적인 회개의 내용이 5-6절, 11절에 나옵니다. 5-6절 "우리는 이미 범죄하여 패역하며 행악하며 반역하여 주의 법도와 규례를 떠났사오며 우리가 또 주의 종 선지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과 온 국민에게 말씀한 것을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11절 "온 이스라엘이 주의 율법을 범하고 치우쳐 가서 주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저주가 우리에게 내렸으되 곧 하나님의 종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맹세대로 되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

신명기 26장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그리심산과 에벨산에 서게 하시고 그리심산에서 축복의 언약을, 에벨산에서 저주의 언약을 말씀하시고 백성들에게 아멘으로 화답하게 하셨습니다. (신26:11-29:1참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언약하였습니다. 그들의 입으로 아멘으로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면 복이 임할 것이요, 말씀대로 실행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다니엘의 기도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범죄함으로 이러한 이스라엘의 황폐함이 그들가운데 임하게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무수히 여러차례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이 들으려 하지 않고 불순종함으로 이런 포로됨과 황폐함의 결과가 초래되었다는 정확한 현 상황의 인식입니다. 거의 같은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 에스겔에게 하나님은 환상을 통해서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지를 보여주셨는데 예루살렘 성전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등을 돌린채 오히려 태양신을 숭배하는 극악무도한 우상숭배가 이뤄졌습니다. 성전벽에 하나님이 부정하게 여기는 벌레들의 모습과 우상들의 모습이 새겨졌고 하나님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벨론의 풍요의 신 담무스를 위해 이스라엘 여인들이 애곡하고 있었습니다(겔8장 참조). 예루살렘 함락과 성전 파괴, 그리고 이어진 포로 생활은 바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한 범죄와 우상숭배 그리고 불순종의 결과였음을 하나님앞에서 인정하며 회개와 자복의 기도를 다니엘은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사회속에서 경멸과 멸시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 끌려다니는 포로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다니엘처럼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애쓰는 자가 우리가운데 있습니까? 오늘 한국 교회 한국 사회의 황폐함과 패역함은 바로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의 당부와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증한 쾌락의 우상과 풍요의 신 담무스와 같은 돈을 섬기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가장 거룩한 곳으로 여겨져야 할 곳에서 가장스러운 일들이 행해지고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기념비처럼 건물 곳곳에 가증스러운 일들이 각인 되는 현실속에 우리가 살고 있지 않습니까? 70년만에 그치리라는 말씀을 접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한 다니엘의 심정처럼, 재를 뒤집어쓰고 초상난 사람처럼 가슴을 치며 기도해야 할 때가 바로 이때이지 않습니까? 한국교회와 이 사회의 죄악과 불순종을 나의 죄악으로 여기며 참회하며 울부짖는 회개의 기도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다니엘의 간청

회개와 자복의 기도후에 그의 간청의 기도가 이어집니다. 17-19절입니다.
"그러하온즉 우리 하나님이여 지금 주의 종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주를 위하여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추시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며 눈을 떠서 우리의 황폐한 상황과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을 보옵소서 우리가 주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공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 함이니이다 주여 들으소서 주여 용서하소서 주여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주 자신을 위하여 하시옵소서 이는 주의 성과 주의 백성이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바 됨이니이다"


그의 간청의 내용은 주의 얼굴 빛을 주의 황폐한 성소에 비춰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의 회복을 간청하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성전의 파괴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몰락을 의미하였기에 성소의 회복은 곧 이스라엘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70년만에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그치리라는 예언의 말씀을 만났고 그 말씀을 붙잡은 다니엘은 이제 그 예언을 성취하여 달라고 성소를 회복하여 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황폐함의 원인은 다니엘과 이스라엘백성의 죄악때문임을 자복하며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신 예언대로 성소를 회복케 해달라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처럼 우리도 우리의 죄악을 자복하며 주님께 간구하십시다. 주님 우리도 회복시켜 주십시요.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돈과 욕망의 노예로, 쾌락의 포로로, 세상적 가치관의 굴레에 눌려 살아가는 우리들을 회복시켜 주십시요. 주님 이 황폐한 우리 인생에, 주의 성소를 회복시켜 주옵소서. 한국 교회 황폐해진 주의 성소에 주의 얼굴 빛을 비춰 주옵소서. 이 사회에 주의 성소가 회복되게 하옵소서. 황폐한 상황과 성읍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지체하지 마시고 우리의 기도에 귀 기울여 주옵소서.


20절입니다.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24-27절은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응답하시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응답하심

하나님의 응답하심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여기에 세번의 구체적인 기간을 언급하시면서 세가지를 말씀하십니다.
1) 성전의 회복과 예루살렘의 회복을 약속해 주십니다
2) 메시야의 오심과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을 예언하십니다.
3) 종말의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을 말씀하십니다.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다니엘의 요청대로 이스라엘 성전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성전뿐만 아니라 타락한 인생으로 살아가던 인간 몸의 회복 즉, 성령의 전의 회복과 교회의 회복을 위해 머리되신 예수그리스도 메시야의 강림을 약속해 주십니다. 아니 사실 그것은 다니엘의 기도에 하나님이 응답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우리를 향한 구원과 회복의 계획을 위해 다니엘의 기도와 그의 삶을 도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와 회복의 계획을 이뤄가시는 데 있어서 그 마음을 헤아리고 그 아버지의 계획을 붙잡고 기도하는 사람을 찾고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를 회복시키시고 교회와 사회를 회복시키시는 주님의 계획에 우리의 삶과 기도가 도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의 가정, 학교, 직장을 향한 하나님의 회복과 구원의 계획에 우리의 삶과 우리의 기도가 작은 도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의 삶이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과 회복의 수레바퀴를 움직이는 한 톱니바퀴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

다니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하나님의 구원과 이스라엘 회복의 도구로 그를 사용하셨던 주님,
이 시대에 주님이 찾으시는 주님의 도구로 오늘 하루 살게 하옵소서. 일상에서 우리 마음에 갖는 기도의 제목이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계획을 품게 하옵소서. 교회와 사회의 황폐함속에서 주님께 자복하는 기도의 사람되게 하옵소서. 나의 말 한 마디가 절망의 늪에 빠진 한 사람을 찾으시는 주님의 언어가 되게 하옵소서. 나의 삶의 소소한 일상이 낮은 곳까지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는 은혜의 성소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향한 나의 일관된 마음과 시선이 방황하는 누군가에게 삶의 지표가 되게 하옵소서. 오늘 하루를 주님께 의뢰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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