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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네 형 제가 죄를 범하거든.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51 추천 수 0 2023.04.09 12: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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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7:3-5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73-5: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 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회개는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의사단일에 바로 놓여지는 것이다. 정신도 사상도 소원도 목적도 본질의 신앙사상에 바로 놓여지는 것.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이 회개를 모른다. 그냥 일반 종교적인 일반적인 마음을 가지고, 종교적인 상식을 가지고 남 미워하고, 시기 질투하고, 신앙인으로서 물질로나 봉사로나 바로 못한 것, 안 한 것 이런 걸 가지고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잘 하겠습니다하는 걸 회개라고 하는데, 그런 거 아무리 떠들어봐야 못 고친다.

 

회개는 또한 지식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의 지식으로 바로 놓은 거다. 일반적인 지식은 하나님의 지식이 아니다. 선악과 먹고 나온 지식이다. 그 지식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은 옳은 게 아니다. 따라서 안 믿는 사람들이 아무리 교회를 보고 판단을 한다고 해도 그거는 땅의 지식을 가지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식의 판단이 하늘나라에까지 미치지를 못한다. 타락된 지식은 그렇다.

 

오늘날 교회들이 타락적인 지식을 가지고 아무리 성경구절을 둘러씌워서 신앙입네해도 말을 하는 그 마음의 뿌리는 세상 땅에 놓인 상태로 하기 때문에 거기에서는 진리이치도 안 나오지만 성령님이 역사가 안 되는 거다.

 

안 되는 이유가 우리 모두 경험상으로 그렇게 예수를 믿고 수 년 수십 년을 살아나왔지만 성경을 한 이치도 모르는 그게 증거다. 그러니 예수를 수 년 수십 년을 믿어 나왔지만 성경의 이치도 모르고, 자기 속에 만들어진 건 없는 거다. 그러니 일반인들의 사고와, 예수 믿는 자기의 사고의 수준이 같다. 다만 다른 것은 자기는 교회에 다닌다는 것뿐이다. 이건 예수 잘못 믿은 거고, 잘못 배웠고, 목사로 말한다면 잘못 가르쳤다. 사람이 못쓰게 돼버렸구나.

 

예수 믿는 그 날로 수 년 수십 년을 믿어 나왔다면 하나님의 머리로 잘 돌아가야 할 텐데 하나님의 말씀에 의한 생각은 없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게 이방 종교성으로 하고, 하나님께 헌금 헌물을 하면서도 복을 많이 주겠지’, 봉사를 하면서도 복을 많이 주겠지하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뭐라고 하는가 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았느냐? 그러면 봉사심은 자동으로 나오는 거다. 당연한 것인데 그게 조건이 돼서 내가 이렇게 하면 복을 많이 주시겠지한다. 조건부로 들어가 있다. 하나님은 복을 줄 테니 네 마음부터 갈아치우자하신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왕들이 이웃나라를 의지하고 이방우상을 섬기고 할 때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서 회개하라고 한다. 마음을 갈아치우자고 하니까 안 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형벌이 가해질 수밖에 없는 거다.

 

그냥 사람의 영혼이 귀한 것이라면 아닌 말로 지옥에 가면 그런 영혼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옥에 가는 영혼보다도 네가 인간으로 태어났느냐? 예수 믿느냐? 부지런히 영인성장을 해서 하나님처럼 닮아가라. 네가 하나님의 자식이 맞지?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을 품어라하신다. 이렇게 되는 게 하나님의 자식이다. 하나님은 이 영혼을 귀히 여기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식이면서 마귀의 마음을 품고 있으니 어찌 복을 받느냐? 이런 자에게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일반 자연은총도 빼어가 버린다. 주기 싫다 그 말이다. 네 입에 들어가는 거, 먹고 마시는 거 주기 싫다 그 말이다. 그래서 빼앗아 가는 거다. 그게 흉년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거들랑 집에 있는 자식과 부모의 마음을 생각해 봐라.

 

회개가 뭐냐? ‘잘못했습니다하는 게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로 나가면 될 텐데 그건 없이 잘못했습니다하고서는 잘못된 그 길로 그대로 계속 나가고 있다면 그게 무슨 회개냐? 행동을 아무리 잘 하고 잘못해도 자기 마음속에 들어있는 지식은,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선악과 먹은 그 사고방식 그대로 나가고 있다면 회개가 아니다.

 

우리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충성봉사 못한 거 회개하라고 한다. 그건 아니다. 잘못한 건 이미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이미 지나간 그것을 잘못했다고만 하면서 본질의 신앙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있다면 너의 신앙이라는 그 지식이, 지금 네가 가는 길이 복음의 길이 아니다. 그러니 길부터 바로 놓고 나서 가면서 성격도 고치고 성질도 고치고 해야 한다. 진리지식이 아니면 회개가 안 된다.

 

성경에 주머니 속에 두 가지 추를 가지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의 기준 하나만 가지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죄 선 행복 영광 존귀 부요성을 따질 때 하나님께서 보시는 눈으로 따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따지는 것은 영원히 가는 것으로 들어가 있다. 물질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영원히 못 간다. 그러나 신앙하면서 물질을 이용 사용 활용하면서 하나님의 성품으로 만들어진 이력 업적은 영원히 간다. 천국에 들어간다. 영원에 속한 것은 결국 사람에게서 찾는 거다.

 

말씀은 사람에게 들어가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배당 건물을 짓는데 쓰는 게 아니다. 성경에 성전을 건축하라하는 게 물질인 예배당을 짓는데 써먹는 거냐? 하나님의 말씀을 자타 속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둬진다는 것은 수입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메시지를 들을 때 이치가 없는 건 들으면 안 된다.

 

회개는 하나님의 본질에 맞춰 들어가는 거고, 반성은 뭐냐? 하나님의 본질과 본성에 맞춰서 걸아가고 바로 놓이는 것이 회개고, 그게 아닌 것은 전부가 반성이다.

 

죄가 무엇이냐? 이방세상은 사회 윤리 도덕적인 면에서 잘못된 행동과 활동이 나타난 것을 보고 죄라고 말을 한다. 행동이 자타를 해코자 했으면 죄라고 한다. 자기가 자기를 두들겨 패면 너 왜 죄를 짓느냐안 한다. 내가 남을 해코자 할 때 죄라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는 생명과를 안 먹는 게 죄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 먹는 게 죄다. 하나님의 말씀을 안 먹는 것은 하나님이 보기 싫어서 안 먹는 거고, 하나님이 미워서 안 먹는 거다. 하나님이 인간 제 마음대로 안 해 줘서 밉고, 그래서 하나님을 부정하고 말씀을 안 먹고.

 

생명과를 먹으라고 했는데 인간이 그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고 선악과를 먹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 듣고 마귀가 말하는 세상 말은 들었다. 누구를 안 때렸어도 이게 선악과를 먹는 거다. 그러면 죄가 무엇이냐? 생명과를 안 먹은 게 죄다. 생명과를 안 먹었으면 선악과를 먹고 들어가는 거다. 그러니까 사람의 생각이 동시적으로 생명과도 먹고 선악과도 먹는 게 아니라 생명과를 안 먹으면 선악과를 먹고 있는 거고, 선악과를 안 먹으면 생명과를 먹는 것이다. ‘어느 쪽을 먼저 먹느냐그걸 말하는 거다.

 

마귀가 주는 말 즉, 마귀가 거짓 종들로 통해서, 사람으로 통해서 세상기준을 말할 때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선악과를 먹는 거다. 그 열매를 먹는다는 것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속에서 그 정신이 맺혀져서 살며 따라가는 것, 그게 죄다. 그러니 죄 짓기가 아주 쉬운 거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 생명과를 먹어라. 그러면 네가 살고 지키고 통치하고 땅에 편만해진다이렇게 말씀을 하셨는데 인간은 그게 안 믿어진단 말이다. 안 믿어지는 이게 큰 병이다. 의사도 못 고치는 큰 병이다. 안 믿어지면 천상 두들겨 패는 수밖에 없다. 말을 했는데도 안 들으면 얻어맞는 거다.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땅에 편만하라.’ 생명과를 따먹는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다. 그러면 그 안에는 모든 게 다 들어있다. 이것은 쉬운 건데 이건 안 믿어지고 마귀가 세상을 들고 와서 이거 줄까?’ 하면 그냥 쫓아간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냥 쫓아간다. 이게 죄다.

 

생명과를 먹으라고 했는데 안 먹은 불순종,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은 불순종. ‘선악과를 따먹었으니까 죄다로만 보지 말고 뒤집어서 생명과를 먹으라고 했는데 안 먹은 불순종,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은 불순종이 있는 것이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의 목적이 세상의 것을 가지라는 것은 마귀의 소리다. 또 자기의 언행으로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방해하는 것도 죄다. 또 자기의 이룰구원을 자기가 게을리 하면 이것도 하나님 앞에 죄다. 자기의 이룰구원을 자기가 게을리 한다면 무시를 당하는 수밖에 없다.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열심히 하면 자기 실력이 되겠는데 공부를 게을리 하면 선생에게 얻어맞는다. 이런 것과 똑같다.

 

생명과를 먹지 않는 게 큰 죄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 회개가 안 된다. 죽었다 깨어나도 회개가 안 된다. 그러니 마지막 날 인간 너를 붙잡고 타작할 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아프겠느냐? 그 때 아무리 비명을 질러도 회개가 안 된다. 모르면 회개가 안 된다. 정답을 모르면 정답을 맞힐 수 없듯이.

 

세상에 속한 것, 일반 것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따져들려고 하면 안 된다. 우리가 회개를 하면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는 것이고, 따라서 다른 형제가 회개했다 하면 내 쪽에서 용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를 안 하면 경계의 대상이 된다.

 

4: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이게 우리에게 하는 말씀이지만 사실은 이게 주님의 마음이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에게 가르친다 그 말이다.

 

우리가 하루에 죄를 일곱 번만 짓겠느냐? 그런데 모르긴 해도 남을 해코자 안 했으면 죄를 안 지었다고 할 것이다. 자기 생각이 세상 넓은 길로 돌아가면서도 하나님 앞에 죄를 안 지었다고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을 가라고 하셨는데, 부모가 계속해서 세상적인 생각을 가지고 세상 모든 소원 목적을 꿈을 꾸면서 사는데 그의 자식이 부모의 말을 안 들으면 너 이번이 몇 번째냐? 너 한 번만 더 하면 죽는다라고 한다면 누가 누구에게 죄를 짓는 것이냐? 애들은 행동 죄 한두 번 지은 것이지만 그 말을 하는 부모는 행동 죄는커녕 선악과 먹고 넓은 길로 계속 가고 있으니 이게 보통 큰 죄가 아닌데 그걸 모른다. 마음과 정신과 소원 목적적으로 가는 이 죄를 모른다. 달려가도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야지 왜 자꾸 하나님을 떠나서 마귀 쪽으로 달려가느냐?

 

경주를 할 때 법대로 싸우고 법대로 경주를 해야지 불법을 하면 안 된다. 우리는 생각을 갖는 것도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야 하고, 소원 목적도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야 하고, 모든 취미 추구성도 하나님 앞으로 달라가야 하겠는데 정 반대로 달려간다면 이건 불법이 아니냐? 하나님의 법은 우리를 살리려 하는 거고, 존귀 영광스럽게 만들어 주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적으로 보면 하나님 앞에서 불법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우리가 하루 일곱 번만 죄를 짓겠느냐? 셀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뭐가 죄인지를 모르면 죄가 뭔지도 모른다. 주님은 우리를 셀 수 없이 용서하고 계신다. 우리가 죄인이 됐을 때 우리에게 내려오는 유전죄와 자범죄를 다 도말하여 주었다. 또한 성령의 감화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의 사람으로 구원을 이뤄나가게 했다. 우리가 이 일을 게을리 하면 즉, 구원을 이루는 일을 게을리 하면 우리를 징계를 한다. 그런데 교인들이 이것을 생각을 못하고 일반적인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징계하는 것처럼 생각을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나라를 의지하고 이방우상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안 하고 있다는 말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안 따르고, 이룰구원을 이루지 않고 있구나. 이걸 보고 때리는 거다. 이 말을 하면 그 말만을 보지 말고 이렇게 나갈 때는 뭘 안 하고 있구나이게 들어있는 거다.

 

선악과 먹는 것이 일반 도덕적인 죄냐? 아니다. 하나님의 명령 불순종이다. 그런데 생명과를 안 먹고 있는 이 죄는 모르고 선악과를 먹으면서 마귀가 먹으라는 것을 먹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인들이 그 죄는 모르고 교회에서 세상을 자랑하고 가르치는 것은 마귀가 먹이고 있는 것임을 모른 채 일반적인 죄를 죄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일반적인 죄는 선악과 따먹은 사람에게서 그냥 나오는 거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실 때 너 왜 남에게 이런 이런 피해를 입혔느냐하고 따질까, ‘너 왜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었느냐이렇게 따질까?

 

하나님의 기준과 척도를 가지고 있으면 각 교회마다의 설교를 판단할 수가 있다. 문제는 내가 말씀대로 사는 거다. 판단을 한다면 내가 그렇게 안 따라가야 한다. 남 판단만 하고 자기는 가만있으면 안 된다.

 

4절은 인인관계적인 죄인데, 인인관계적인 죄라고 용서를 해 줄 때는 하나님의 진리본질에서 용서가 되어야 한다. 내가 용서를 해 줄 때 내가 하나님의 본질로 걸아가면서 용서를 해 줘야 만이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가 되는 거지 나는 딴 길, 세상 길, 넓은 길로 가면서 남을 용서해준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용서가 되겠느냐? 용서도 내가 진리본질에 서서 용서가 돼야 한다.

 

주님이 용서를 해 주라는 것은 선악과 먹은 정신을 가지고 용서해 주라는 말씀은 아니다. 주님 당신이 바로 생명과이시니까 내가 그걸 먹고 용서해 주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주님의 용서는 일반개념의 용서가 아니다. 일반개념을 가지고 용서해 주라는 그런 말씀은 아니다.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하시는 것은 주님의 마음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형제의 죄만 보지 말고 죄를 짓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유롭게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도 용서라는 말속에 들어있다.

 

형제가 죄를 지으면 용서해 주라는 것이 저 사람이 나에게 죄를 지었느냐? 내가 그 사람을 용서를 해 주고서 난 생각도 안 한다. 괜찮다그런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고 내가 하나님의 바른 길을 가면서 저 자에게 바로 가르쳐서 그 자가 하나님의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그 사람을 용서해 주는 것이다. 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르게 가지 못하면 그 사람은 항상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가는 거다. 그런 사람을 바로 가르쳐서 바른 길을 가게 해 줘라. 그래야 내가 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바로 되는 거다.

 

주님이 우리 모두를 용서해 줬는데, 용서를 해 준 우리를 선악과 먹은 그대로 내버려 뒀느냐? 그대로 내버려 두면 내가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의 형벌을 받고 만다. 그런데 주님이 나를 용서해 주신 증거는 당신의 말씀대로 적중한 도로 갈 수 있도록 나를 인도했다. 주님이 안 그랬다면 주님도 죄를 짓는 거다. 용서와 사랑은 거의 같이 들어가는데, 사랑하는 사람을 바로 가게 하는 게 사랑의 증거다. 이게 큰 사랑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 큰 사랑을 베풀었다.

 

5: 회개하는 믿음과, 용서해 주는 믿음은 둘 다 하나님의 진리본질을 모르면 안 된다. 회개도 안 되고 용서도 안 된다. 회개를 해도, 용서를 해 줬어도 그를 진리본질로 가게 해야 한다. 따라서 이게 없다면 믿음을 더하소서하는 기도도 안 이뤄진다.

 

회개는 이질로 가던 신앙이 하나님의 본질로 가는 것. 인간 자기 자유대로 세상 넓은 길을 가다가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가는 게 천국 길이요 회개의 길이다. 용서도 하나님의 본질로 돌아오도록 안 해 주면 용서를 해 주는 효과가 없다. 하나님의 본질로 가도록 해야 내가 그를 용서해 주는 효력을 볼 수 있다. 그도 효력을 볼 수가 있다. 내가 용서를 해 주었다면 내가 용서해 주는 효력이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나야 하는데 그 사람을 바른 길로 가게 못 해 준다면 그게 없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알게 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로 하나님 앞에 바로 살도록 해 주었다. 그게 주님이 우리를 용서하신 증거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더 많이 알고 하나님의 본질로 닮아갈수록, 실상화로 될수록 믿음이 자꾸 커지는 거다. 하나님의 본질로 들어서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 길로 가야 믿음이 자꾸 커진다. 그 길이 아니면 믿음이 안 커진다. 이제 자기가 오늘날까지 예수 믿으면서 믿음이 안 커진 이유를 알겠느냐?

 

일의 양, 사역의 양, 업적의 양을 기준을 삼아서 믿음이 크다. 작다하는 것은 기준이 이미 잘못된 것이다. 성도의 신앙활동은 바로 깨달은 데서 나오는 거다. 바로 깨달으면 그게 자기 구원에 관한 것인 줄을 알고 자기가 자유적 자원으로 하는 거다.

 

그리고 성도들의 활동은 믿음의 사람이 되어지는 곳에서 해야 한다. 믿음이 성장이 안 되는 곳에서는 하지 말아라. 마귀의 가르침은 종들로 통해서 맨날 충성봉사, ‘땅에 속한 복 복한다. 그건 안 된다. 이건 믿음이 커지기는커녕 오히려 커진다면 하나님의 형벌만 너에게 커진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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