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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는 능력

마가복음 크리스............... 조회 수 315 추천 수 0 2020.07.05 20:4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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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5:1-20 
설교자 : 김기성 목사 
참고 : 말씀의 숲 교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는 능력


(15:1-20)

 

 

여러분의 자녀들은 집안에서 절대 안 싸우죠? 여러분의 가족은 절대 말다툼 안하시죠? 저의집의 아이들은 자주 싸워요. 남매라서 그런지 성도 틀리고, 이해도도 틀려서, 자주 말다툼을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이렇게 이야기 하면 중고등학생처럼 보이지만, 여러분이 알고 있듯이, 둘 다 20대이죠.

 

말다툼 하는 것을 잘 보면, 어떤 선을 넘을 때, 언성이 높아지고, 말싸움이 격해지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것이 무엇일까? 가만히 말싸움 하는 것을 보면, 어는 순간 자존심을 건드리는 경우가 있어요. 자존심이 건드려 지면, 그때부터 언성이 높아지는 거예요. 한마디로 인격을 무시한다거나, 인격적인 살인을 하는 것이죠. 그러면 그때부터 서로의 인격을 향해,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끝까지 가요.

 

예를 들어, 어떤 부분에 이야기하다 점점 논쟁이 심해지다가, 선을 넘어요. 갑자기 이런 말을 해요 생긴 것은 못생겨가지고” “넌 그것도 모르냐? 이 무식아 라고 시작하면, 자신에게 있는 자존심을 건드리기 때문에, 그때부터 언성이 높아지지요.

 

그래서 어느 날은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싸우더라도 자존심은 건드리지 말고 싸우라했어요. 싸우더라도 인격살인은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팩트! 사실에 대해서만, 주관적인 생각 말고,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고 싸우라고, 말이지요.

 

결혼하고 부부간에 하지 말아야 할 금언이 있다 잖아요.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은 삼가야 하지요. 가장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은 무엇이 있을까요? 당신 집안은 왜 이래?” 당신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했지?” 이런 말은 부부간에 삼가야 할 말 중에 하나라는 것이죠. 부부 싸움을 하다보면, 결국은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때문에 열 받아서, 그것 가지고 싸우죠.

 

우리는 가만히 보면 자존심 건드리는 것에 많이 민감해요. 누군가 나의 자존심을 건드리기 시작하면, 참지 못하고, 가만히 있지 않아요.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마지막 준비를 다 끝내셨어요. 가롯유다의 은30에 예수님은 팔리게 됩니다. 모든 거래가 끝내고, 예수님은 잡혀 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정말 베드로는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을 해요. 그렇게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그렇게 쉽게 예수님을 떠나 버렸지요.

 

예수님은 로마총독, 그리고 군인들에게 넘겨졌어요. 군인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겨요. (수치심이지요).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이라 했으니, 왕들이 걸치는 자주색 망토를 입히죠. (조롱입니다). 그리고 왕들이 쓰는 왕관을 빗대어 가시관도 씌우죠. (조롱입니다). 채찍질도 해요. 채찍질! 말이 채찍질이었지만, 저희들을 맞아보지 못했지만, 엄청 아플 겁니다. 그런데 정말 아프기만 할까요?

 

싱가포르를 여행할 때는 지금도 조심하라고 하지요? 잘못 걸리면 태형(채찍질)을 맞을 수 있다고 해요. 예를 들어 성추행으로 걸리면, 내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기본 징역 1년에 태형10대로 처벌한대요. 그러면 형 집행기간동안 채찍을 10대 맞는대요.

 

채찍을 맞을 때는 그냥 맞는 것이 아니라 정말 발가벗겨서, 엉덩이가 보이게 하고, 그리고 사정없이 채찍질을 한 대요. 그런데 10대를 다 때리는 것이 아니라, 한 대만 때린대요. 한 대만 맞아도 엄청 피가 나고, 멍이 들지요.

 

그리고 며칠 후, 그 상처가 완전히 아물기 전에, 쫌 아물라치면, 그때 다시 한 대를 또 채찍질을 가한다고 하지요. 그래서 또 맞는 것 보다, 상처가 아물고 기다리는 시간이 더 두렵대요. 완전히 발가벗기고, 엉덩이만 내 놓고 또 다시 채찍질을 맞지요. 다시는 나쁜 짓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도 이런 것 좀 있어서, 성폭행 범들에게 좀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있었대요. 곤장. 우리가 연속극에서 나오는 곤장을 생각하지만, 실제와는 완전히 다르죠. 정말 곤장을 맞을 때는 남자는 엉덩이를 내리고, 여자는 속옷 차림에 물을 뿌리고 그리고 곤장을 내리쳤다고 해요. 곤장도 아프지만, 수치심을 주기 위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싱가폴에서 태형에 맞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중에, 맞는 고통보다 더한 고통은, 한 대만 맞고 다음 태형을 기다리는 시간이 고통이고, 그보다 더 큰 고통은, 완전히 발가벗겨져서, 엉덩이를 맞는 그 수치심 더 심하다고 해요.

 

여러분,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통은, 우리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과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은, 로마 군인에 둘려 쌓여 조롱당하고, 희롱당함 이었을 것이고, 후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시면서, 들여오는 수많은 조롱과 희롱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분 조롱은 무엇이고, 희롱은 무엇일까요? 조롱은 비웃거나, 깔보면서, 놀리는 것을 조롱이라고 하고요. (말로 나오는 거죠) 희롱은 서로 즐기며, 놀리거나, 노는 것을 말하지요. (말로 나옵니다) 예수님이 잡히시면 서부터, 예수님의 옷은 벗겨지고요. 조롱의 홍포는 입혀지고요. 가시로 만든 왕관이 머리에 쓰이고, 예수님은 가운데 세워지고 비웃음 꺼리가 되고, 침 뱉음을 당하시고, 둘러서 따귀도 맞으면서, 희롱거리가 되신 것이지요.

여러분, 맞는 것 보다 더 심한 고통은 수치심 아닐까요? 채찍질 보다 더 심한 고통은, 둘러싸여 조롱당함과 희롱 당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예수님’, ‘예수님 하고 따랐던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대로 말로 조롱당하시고, 희롱 당하시고, 수치를 당하시는 예수님! 그 곳에는 예수님의 어떤 인격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없었지요. 예수님은 이것이 더 고통스럽지 않았을까?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존심이 조금만 건드려지면 참지 못하지요. 예수님을 보고, 우리를 보면, 우리는 우리의 자존심이 조금이라도 건드려지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선 지키기가 그렇게 쉽지 않아요. 이것은 가족 간에서도 그렇고, 사회생활을 할 때도 그렇고,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지키기가 힘들어요.

 

여러분, 오늘날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자존심을 건드리면 참지 못하고, 그대로 갚아 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그보다도 백배 아니면, 천배 더 했을 것이지요. 다투다 보면, 싸우다 보면, 화가 나게 되면, 옳고 그름만을 가지고 싸우게 되지 않아요. 상대방의 인격을 건드리고, 자존심을 건드리고, 비참하게 만들어 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것이 우리들이지요.

 

여러분, 옳은 것은 옳다고 해야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해요. 그런데 그것이 사실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이야기해야 하고, 다루어 져야 해요. 그래서 옳고 그름을 위해서 싸울 수 있어요. 그런 싸움이 있어야 사람도 발전하고, 공동체도 발전하겠지요. 치열하게 싸울 수 있어요.

 

그런데 믿는 사람은, 그것이 옳다 하더라도, 그 옳은 이야기를 전할 때도, 상대방에게 상처주지 않게 기분 좋은 말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름을 이야기 하면서도,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말이 바로 지혜예요. 이것을 정말 우리는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이기려고, 상대방에게 지기 싫어서 논쟁과 관계없는 상대방의 약점을 건드리고, 자존심을 건드리고, 그것을 가지고 모욕하고, 빙정거리고 조롱하는 것은, 그냥 좋지 못한 것이 아니라, 성경은 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희롱하거나, 모욕하거나, 조롱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도 이 말씀에 대해서 자유롭지 않아요. 다툼이 있다 보면, 코너에 몰리다 보면, 내가 불리할 것 같으면, 선을 금방 넘어 버릴 때가 있어요. 어떻게 해서든, 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려야 직성이 풀려야 됨이 제 안에도 분명히 있습니다.

 

상대방을 희롱하고, 조롱하고 모욕하고 그런 싸움을 한다면, 그것처럼 비열하고, 수준 낮은 싸움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런 싸움들이 어릴 때부터 그냥 여과 없이 배워지게 된다면, 계속 우리 사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게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사회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 직장생활을 하고,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내 마음에 안든 사람도 있고요. 틀린 사람도 있고요. 잘못된 사람도 있어요. 잘못 된 것은 잘못 됐다고 이야기해야 하지만, 상대방이 기분 좋게 잘못 됐다고 인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것이 지혜이지요. 그 지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그 지혜가 없을 때는 침묵하며 기도해 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침묵해야 함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요. 우리가 말씀을 읽지는 않았지만, 1절에서 15절까지 보면, 공회에 끌려온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심문해요.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예수님을 고발하지요. 터무니없는 말로 예수님을 고발해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없으세요.

 

그러니까 판단을 내리는 빌라도가 아무 말 없는 예수님에게 너를 고발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무슨 말 좀 해라,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켜요. 빌라도는 그 침묵에 놀라지요.

 

여러분, 그것 아세요.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것은, 침묵도 말이라는 거예요. 침묵은 내가 할 말이 없어서 안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침묵도 말이 되는 것이고, 그 침묵이 더 강력한 언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좋아하는 목사님이 저에게 말씀해 주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김 목사, 목사는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 시켜야 한다이런 말씀을 해 주세요. 그런데 사실 목회하다 보면, 이렇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도 잘 안돼요. 말하고 나면 후회하고, 조심해야 하는데 또 실수 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많아요.

 

어떻게 하면 내 안에, 좀 더 인자한 말이 나와서 그분에게 감화, 감동을 주는 말을 하지 못할까? 돌아서면 아쉽고, 돌아서면 부족하고, 돌아서면 늘 그런 생각이 있지요.

 

저는 목회할 때, 어떤 위엄이나 쓸데없는 권위를 내 세우는 목회자는 돼지 말자!’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목회자의 영적 권위는 강단위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전할 때 하면 됐지, 강단 아래에서는 편안하게 스스럼없이 다가와서 말할 수 있게 하고, 또 다가가서 말하는 목사가 돼야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제가 너무 권위가 없어서 그렇지, 어떤 권위 없이 우리 성도님들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 이것은 좀 실천되어지는 것 같은데, 문제는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은, 아직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요.

옳음을 칭찬할 때도 그렇지만, 그름을 이야기 할 때도 인자한 말을 가지고 성도들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해 주는 것이 더 필요하고, 그 부족함을 느낄 때가 참 많아요. 여러분은 다 인자 하시지요? 정말 인자한 말을 가지고 늘 사람을 감화시키는 그런 말을 하시지요?

 

여러분, 우리는 믿음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정말 서로가 서로를 세워주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인격을 깎아 내리는 것보다, 인자한 말로 서로를 세워주고, 그리고 그 사람을 감동케하는 말과 행동이, 더 단단한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음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미움은 기도로 가져가야 하고요, 칭찬과 격려는 입으로 가져가야 한다고 해요. 미움과 싫어함이 있을 때는, 말없이 기도해야 하고, 그 사람을 세우고, 그 사람에게 덕이 되고, 그 사람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만 있다면, 칭찬과 격려는 입에 달고 살아야 된다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갈릴리 해변과 그리고 많은 들판과 마을에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은 동일하게 조롱당하시고, 희롱당하셨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채찍 보다, 찔림 보다 그들이 준 조롱과 희롱이 어쩌면 더 견디기 힘들었는지 모릅니다.

 

오늘 힘들어하는 우리 시대에, 다들 코로나로 인하여 움츠리고 있는 이때에, 서로에게 필요한 것은, 내 안에서 누군가를 비판하고, 판단하고, 정죄하고, 그리고 그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인격을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자한 말을 가지고 사람을 감화 시키는’, 그런 칭찬과 격려가 더 필요한 때라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조롱당함과 희롱 당함을 통해, 우리에게는 믿는 사람으로서 인자한 말과 사람을 감화 시키는 말이, 그 사람을 세울 수 있고 치유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가르쳐 줍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그 사랑과 인자함이 우리 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인자함으로 살아가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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