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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 목사 | 2012.12.13 20:36:0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눅10:25-37
설교자
김동호 목사
참고
2012.7.22 http://www.godswill.or.kr/index.php?mid=media_1&page=2&document_srl=2107

1.jpg섬기는 교회.
눅 10:25-37.

높은 뜻 섬기는 교회가 시작 된지 9개월이 지났습니다. 크고 넓은 예배당에서 교회생활을 하시다가 갑자기 좁은 공간에서 교회생활 하시는 것 적응하기 어려우셨지요? 그래도 늘 뵈면 열심히 그리고 아주 건강하게 그리고 해피하게 교회생활을 하시는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여러분들은 저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들입니다. 우리 높은 뜻 섬기는 교회의 뿌리인 청량리 중앙교회는 제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23년을 다녔습니다. 청량리중앙교회에서 중고등부, 청년부, 교육전도사, 전임전도사, 부목사를 하였잖습니까?

이춘익 장로님은 제가 중고등부 다닐 때 선생님이셨습니다. 우리 이요일 장로님과 이철주 장로님은 요즘 애들 말로 절친입니다. 높은 뜻 섬기는 교회에는 후배와 주일학교 때 가르쳤던 학생들도 많이 있습니다.

제가 누구인지를 우리 다른 높은 뜻 교회 교인들보다 여러분들이 훨씬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허물없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 이름은 아시겠지만 동호입니다. 동녘 동(東)자에 하늘 호(昊)를 씁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날 비바람이 불어 나무가 꺽이는 등 요란했는데 제가 태어나는 시간 비와 바람이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였다고 저희 외삼촌께서 지어주신 이름인데 저는 제 이름이 좋습니다. 정말 제 삶이 비온 후 개인 하늘과 같은 삶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큰 아들 이름은 부열입니다. 아비 부(父)자에 기쁠 열(悅)자를 씁니다. 부열이는 청량리중앙교회 전도사 시절 태어났습니다. 형제 없이 외롭게 자라던 제가 아내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미리 지어 놓았던 이름입니다. 우리 아이도 자기 이름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정말 父悅이가 되려면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노력을 합니다. 제 큰 아이 부열이는 정말 부열이입니다.

손녀가 벌써 셋입니다. 올 연말에는 손자가 하나 더 태어날 것 같습니다. 제 손녀들의 이름은 민희, 세희, 국희입니다. 제가 손녀들의 이름 끝자로 희자를 정해 주었고, 손자들의 이름 끝자로 욱자를 정해 주었습니다. ‘희’자는 햇빛 曦자를 쓰고, ‘욱’자는 아침해 旭자를 씁니다.

民曦는 민족의 빛이라는 뜻이고, 世曦는 세상의 빛, 그리고 國曦는 나라의 빛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손주들의 이름에는 다 ‘섬김’과 ‘축복’의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자신만을 위하여 살지 말고 나라와 민족과 세상의 빛으로 나라와 민족과 세상을 섬기며 살라는 소원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름 속에 철학이 담겨져 있고, 나름 삶의 의미와 목적과 방향이 담겨져 있습니다.

아들 삼형제를 키울 때 이름에 그 뜻을 담지는 못했지만 세상을 섬기고 축복하는 사람으로 키우려고 나름 노력하였습니다. 부열이가 고3때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아서 꼭 한 번 불러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소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5천 명 분을 혼자서 먹는 사람과 5천 명을 먹이는 사람. 사람들은 5천 명분을 혼자서 먹는 사람을 잘 산다 하지만 하나님은 5천 명을 먹이는 사람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하신다.”

“사람들은 보통 ‘공부해서 남주냐?’며 공부하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다. 공부는 남 주려고 하는 것이다. ’공부해서 남줘라‘”

이 말이 자극이 되었는지 다음 날 자기 책상 맞은 편에 큰 모조지 전지에 ‘공부해서 남주자!’,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자!’,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는 글을 크게 써 붙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공부 죽어라고 하고 있습니다.

부열이는 우리 나이로 35살입니다. 지금 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개발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코스웍을 마치고 이제 논문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부열이의 전공은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의 저개발 국가를 어떻게 잘 개발하여 남의 도움이 없이도 살 수 있게 할 것인가를 공부하는 것입니다.

부열이는 지금 우리나라 코이카의 지원을 받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에이즈 퇴치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말라위를 갔다가 지금 귀국하고 있는 중입니다. 몇 주전에는 방글라데쉬를 다녀왔고 8월 4일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데 돌아가자 마자 에티오피아를 갈 예정입니다. 부열이는 정말 공부해서 남 줄 아이로, 그리고 벌써 남 주는 아이로 자란 것 같습니다. 기쁘고 감사하고 아비로서 참 자랑스럽습니다.

부열이 뿐만 아니라 우리 지열이와 정열이도 다 잘 컸습니다. 셋 모두의 의식과 무의식 속에 자기 혼자만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정말 잘 사는 것이 아니라는 확실한 철학이 심겨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렇게 잘 큰 것은 그냥 하루 아침에 된 것은 아닙니다. 나름 훈련과 교육이 있었습니다. 그 교육과 훈련이 몸에 배어 드디어 세상을 축복하고 섬기는 것을 삶의 의미와 목적으로 삼고 사는 아이들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섬김과 축복을 가르치기 위하여 사용한 훈련과 교육은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하여 돈을 나누어 쓰는 훈련이었습니다.

첫 번 째 한 훈련은 돈 잘 쓰기 훈련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아주 어렸을 때 한 달에 500원 정도를 벌어서 어려운 사람 돕는데 쓰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한 달에 약 5,000원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큰 아이가 빈 방에 이불을 깔아주겠다며 500원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열이는 저희 부부 이불 깔아주는 일을 하고 500원을 벌어 구제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둘째 지열이는 신발장 정리를 자기가 맡겠다고 하고 500원을 벌어 돈 잘쓰기 운동 회원이 되었습니다. 셋째 정열이는 그때가 85년 1월이었으니까 아직 세 돌이 채 안 되었을 때였던 것 같습니다. 막내가 뒷짐까지 지고 일자리를 찾으러 온 집안을 돌아다녔습니다. 자그마한 집구석에서 500원짜리 일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막내가 근사한 일을 찾았습니다. ‘빈 방에 불꺼 줄테니까 주세요’ 기가막혔습니다. 제가 기가막혀 말을 못하니까 그것은 500원 짜리가 안 돼서 그러는 줄 알고 한 마디 더 하였습니다. ‘텔레비전 플러그도 뽑아 줄께요’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해서 돈 잘 쓰기 운동 회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늘 자기보다 힘들고 어려운 이웃을 위하여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89년도 영락교회 협동목사로 있을 때 제 봉급이 제법 많았습니다. 아이들이 컴퓨터를 사 달라고 하기에 부담 없이 사 주었습니다. 그때 컴퓨터 값이 50만 원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텔레비전 뉴스에서 천호동에 사는 일가족 4명이 집세 올려달라는 주인의 말에 집세를 올려줄 수 없어 쫒겨나게 된 것을 비관한 자살한 사건이 보도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돈이 하필 50만 원이었습니다.

그날 참 괴로웠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생각나게 해 주신 말씀이 레위기 19장이었습니다. 레위기 19장에 보면 추수할 때 가난한 이웃을 위하여 밭의 네 귀퉁이를 남겨 놓으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단을 들고 가다가 떨어트리면 가난한 자를 위하여 버려두고 줍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꿀병을 담았던 오동나무 상자를 저금통처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에 ‘이삭줍기’라고 썼습니다. 아이들에게 레위기 19장과 어제 텔레비전 뉴스 이야기릏 해 주었습니다. 우리도 늘 평소에 가난한 이웃들을 위하여 네 귀퉁이를 남기는 마음으로 돈을 모으자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부열이가 제일 먼저 그 통에 돈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통 앞에 붙여 놓은 메모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1. 김부열. 120원. 방바닥에서 주은 돈.>

2001년 10월 7일 높은 뜻 숭의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를 시작하면서부터 교회를 위한 교회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높게 세웠습니다. 교회가 존재해야만 하는 목적을 위하여 존재하는 교회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가 되겠다는 뜻을 정하였습니다.

처음부터 예산의 30% 이상을 밖으로 내겠다고 정하였습니다. 오늘 오후 예배 시간에도 제가 설교를 하라고 하여 준비했는데 그 때 지난 10년 10개월 동안 높은 뜻 교회가 걸어 온 길을 설명드리려고 합니다.

부족하지만 뜻을 정하고 노력을 하였더니 하나님께서 이제 정말 제대로 세상을 섬기고 축복할 수 있는 힘과 기회를 저희들에게 주시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이름은 높은 뜻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공모를 해서 지은 이름입니다. 교회의 이름 속에 여러분들의 정체성이 있고, 교회의 나아가야할 방향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름만 ‘섬기는 교회’로 정하였다고 여러분의 교회가 섬기는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높은 뜻 섬기는 교회가 섬기는 교회가 되려면 분명한 뜻과 목적을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훈련을 피나게 하여야만 합니다.

그런데 아주 조심스러운 이야기입니다만 제 눈엔 그게 잘 안보입니다. 벌써 높은 뜻 섬기는 교회가 시작 된지 9개월이 되었는데 말입니다. 물론 지금은 높은 뜻 섬기는 교회가 무슨 큰 일을 하는 것 보다 차분히 예배하는 것을 통하여 은혜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높은 뜻 숭의교회도 시작하고 2년 동안은 이런 저런 일 하지 않고, 직분도 임명하지 않고, 하다못해 구역조직도 하지 않고 예배만 드렸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세상을 섬기고 축복하는 교회가 되는 일을 2년 후부터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입니다. 강도만나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레위인과 제사장은 못 본 척 그냥 지나갔지만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내려가 그를 나귀에 태우고 여관에 데려가서 치료비와 숙비까지 주며 치료를 부탁하여 결국 그를 살렸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주일 높은 뜻 씨앗이 되어 교회에서도 설교를 하였습니다만 이번 미국 코스타 학생들 집회의 주제가 ‘이웃’이었고 첫날 아침 주제 설교의 본문이 오늘 우리의 본문이었습니다. 이 본문을 가지고 숭실대학교의 교목실장이신 김회권 목사님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 본문은 코이네라고 하는 헬라어로 기록이 되었답니다. 거의 코이네라고 하는 헬라어에서만 표현이 될 수 있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어떤 행동과 동작이 그때 우발적으로 된 것인지 아니면 계속 반복되는 행동을 통하여 연속적으로 이루어 진 일인지를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리면 강도만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간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날만 그런 것이 아니고 평소에 늘 그래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날도 그렇게 한 것이었고.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만난 사람에게 그날 그렇게 하였던 것은 그날만 어쩌다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은 언제나 그런 일이 있을 때 그렇게 해 왔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마치렵니다.

저는 정말 높은 뜻 섬기는 교회가 높은 뜻 섬기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세우고,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들을 찾아보고, 혹독하리만큼 강한 훈련을 통하여 정말 섬기는 일에 대표선수같은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려면 그 싹수가 벌써 보여야만 합니다. 그 냄새가 벌써부터 나야만 합니다. 제 말을 흘려듣지 마시고 아프지만 뼈에 새겨 들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늘 우리 높은 뜻 섬기는 교회에 주시는 말씀과 마음으로 받아 주셔야만 합니다.

이름과 무늬만 섬기는 교회가 아닌 진짜 높은 뜻 섬기는 교회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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