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궁극이 | 2023.12.03 09:43:5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요6:32-34
설교자
김경형목사
참고
궁극교회 주일예배

632-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 것이 아니라.’ 모세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름 받은 하나님의 종이다.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참 떡이란 하늘에서 내려준 말씀으로, 하늘에서 내려서 사람에게 당신의 생명을 주는 거다. 믿는 우리들에게는 하늘의 생명이 있기 때문에 이 생명을 얻게 하려고 땅에서 훈련과 연단을 시키신다. 이러면 자연생명은 자동적으로 따라오는 거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해서 광야로 나왔듯이 예수 믿는 우리는 정신과 사상이 애굽 같은 세상을 탈출해서 광야생활을 하는 거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늘에서 만나가 내려서 먹였듯이 하나님께서 지금의 믿는 우리들에게도 하늘의 떡인 생명의 말씀을 주신다.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말씀을 받을 때는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소원성, 생명의 떡, 신령성, 성령님이 역사하실 수 있는 그 기운, 그 감화성의 말씀을 받는 거다. 이런 말씀을 주는 게 생명의 떡이요 참 종이다.

 

구약 때 생명의 떡을 모세라는 사람이 준 게 아니라 모세로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주신 건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로 통해 나온 이 말씀에 순종하며 약속의 땅으로 올라간 거다. 하나님의 신실한 종을 통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올라가면 하나님께서 잘 올라가라고, 힘 있게 올라가라고 당신의 생명의 떡, 즉 하나님의 생명, 기운, 그 뜻으로 살 수 있는 파워를 주신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께서 역사를 하신다. 이게 우리에게는 현실이요, 현재요, 실상이다. ‘예수 믿어서 세상에서 부자로 살자이렇게 믿는 신앙에는 이게 없다.

 

우리는 현실에서 성령님의 역사가 없는 예수를 믿어서는 안 된다. 교회라고 하면 반드시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생명의 말씀이 있어야 한다. 성도는 이 정신에 의해 세상을 살고, 현실을 이기고, 뚫고 나가는 거다. 가난이 오던, 부요가 오던, 미움이 오던, 사랑이 오던, 친절이 오던 뚫고 나가는 거다. 사람이 이게 없이 세상정신을 가지고 살다가 넘어진다면 무슨 기운으로 일어날 수 있겠느냐? 못 일어난다. 아침 해가 비취면 사라지는 풀잎의 이슬처럼 사라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면서 모세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하나님으로 성품화 되고, 성장되고, 실력화 되는 게 가나안을 향해 올라가는 거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가나안 쪽을 향해 곧바로 가지 않고 뺑뺑이를 돌면서 갔는데도 계속 말씀을 따라 갔기 때문에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 올라간다고 말을 하는 거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현실을 살면서 가난이 오고, 부요가 오고, 사업이 실패가 되어도 신앙만큼은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간다면 이 사람은 하늘을 향해, 그 나라를 향해 계속 올라가는 거다. 세상사람들은 이걸 이해를 못 한다. 물질적 개념의 지식으로는 이해가 안 된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나를 먹어라라고 하신 것은 주님의 정신과 사상을 가지라는 거다. 우리가 시간과 장소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활동을 하신 것처럼 똑같이 할 수는 없지만 예수님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상황이나 장소에 따라 나타나는 활동의 질은 주님과 똑같은 거다. 이게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거다. 그런데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쳤으니 나도 병자를 고치자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활동을 따라 하려고 한다. 질이 다른데 활동을 똑같이 한다고 해서 예수님과 똑같이 하는 거냐? 말이 안 된다.

 

하나님의 떡은 어디서 내리느냐? 하늘에서 내린다. 반면에 인간의 떡은 땅에서 올라온다. ‘하면 먹고 사는 것을 말한다. 너는 이 땅에서 뭘 먹고 마시고 사느냐?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너의 정신이 어디에서 내려오는 떡을 먹고 사느냐? 인간은 지식에 따라 양심의 판단도 달라지고, 지식을 따라 얻어진 세상의 것을 먹고 마시며 산다. 그 지식을 가졌으면 그 활동을 하게 되고, 그 활동을 해서 나온 것으로 먹고 산다. 믿는 우리는 생명의 양식, 영생,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상과 소원과 목적을 먹어야 한다.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건데, 구약에는 선재적 그리스도를 말한다. 이 분이 우리들에게 하늘의 생명을 주신다. 이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이다. 죽지 않는 영생의 생명이다. 우리가 계속 이룰구원으로 살면 이 생명이 우리 속에서 무한대를 향해 계속 성장을 한다. 진리이치를 하나를 깨달아도 이것은 하나님의 것이니 이 질은 시간적으로 무한대라서 자기에게 신령천국에서까지 그대로 효력을 준다. 많이 깨달으면 많이 깨달은 것으로 그대로 효력을 준다.

 

예수 믿으면서 이 땅에 살면서 먹고 마시는 것은 전부가 임시성이다. 믿는 우리가 임시성의 물질을 영원성의 지식을 가지고 자타의 구원에 쓰게 되면 자기의 실력이 영원으로 바뀐다. 예를 들면 학생이 수업료를 학교에 갖다 주고 그걸 공부의 실력으로 바꾸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자기의 현실에서 물질과 관계를 지으면서 이것을 하나님의 지식으로, 생명의 지식으로, 진리지식으로, 구원으로 바꾸는 거다. 하나님의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다. 이 생명을 계속 받으면서 받은 것을 연속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줘라. 그러면 날마다 사는 거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당신의 모양과 형상대로 영육 결합체로 만드신 것은 우리를 아버지의 나라 신령천국을 하나님 아버지처럼 영원히 누릴 수 있는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을 주기 위해서다. 주님께서 이 생명을 가지셨는데, 이 생명을 참 떡이라고 한 것은 우리로 그 생명을 먹게 하신다는 점에서 이렇게 표현을 하는 거다. 그리고 생명의 떡을 먹게 한다는 것은 사람은 배가 부르면 만족해한다. 그러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의 말씀을 귀로 듣고 깨달으면 만족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예수 믿으면서 말씀의 이치를 깨달으면 기쁘고 즐겁게 만들어 졌다.

 

우리가 생명의 말씀을 먹으면 영적인 기운을 얻어서 영적인 기능과 지능 면의 활동이 나오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으로 성장이 된다. 깨닫는 것도 많아지고 지혜로워진다. 믿음의 눈치도 빠르고, 순종의 눈치도 빠르고, 무엇이든 척 척 해 나간다. 이게 다 자기의 영능의 실력이 커지는 거다. 자기가 말씀을 먹으면서 말씀을 따라 살면 이렇게 되는 거지만 안 하면 못하는 사람이 된다.

 

또한 생명의 말씀을 먹으면 존귀 영광자가 되고 사람이 비범해진다. 말하자면 우리는 세상법 위에 사는 거다. 하나님의 법 안에서 사는 거다.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갈수록 이렇게 된다. 세상에서 누가 사랑을 받느냐? 귀찮아서 못하고, 몰라서 못하고, 게을러서 못하면 사랑을 받지 못한다. 사람은 사랑의 존재다. 사랑을 못 받으면 병이 들기 마련이다. 여기에다 미움의 존재가 된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심은 우리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다. 그러면 예수님에게는 참 생명이 없어서 아버지의 것을 받아서 우리들에게 이게 아버지의 거다라고 하면서 주는 거냐? 아니다. 예수님도 생명의 분이다. 그런데도 아버지의 생명을 주러 오셨다고 하는 것은 교회의 인도자들을 염두에 둔 말씀이다. 즉 교회 인도자들에게 너는 누구의 생명을 주고 있느냐?’ 하고 묻는 식이다. 그러니까 교회 인도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생명의 말씀을 줘야 한다.

 

거짓 종들은 불타고 썩고 진동되고 요동되고 변질될 세상의 것을 준다. 세상의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아니다. 영원히 가는 게 아니다. 교회에서 이런 세상적인 말씀을 받은 교인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겠느냐? 세상이다. 그런데 예배에서나 부흥회에서나 기독교 테레비에서나 이런 가르침들을 공공연하게 볼 수 있다. 이런 것은 애굽의 바로 왕의 운동이기 때문에 하늘의 복음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부터 오심은 당신은 하늘의 존재라는 거다. 하늘로부터 오셔야, 하늘의 것이라야 참 생명을 줄 수 있다. 우리 주님은 세상 이방인들이 구하는 불타고 썩어빠질 세상의 것을 주러 오신 게 아니다. 종교적인 일에 열심을 내게 하고 충성봉사를 시킬 목적으로 오신 게 아니다.

 

예수 믿으면서 세상을 구하면 모래 위에 있는 집과 같아서 세상의 바람이 불면 다 날아간다. 이러면 자식도, 남편도, 아내도 주 안에 있지 않고 전부 세상으로 튕겨가서 세상적으로 살게 된다. 이건 믿음이 아니니 우리는 하나님의 본질인 진리생명에 적중성을 가진 신앙의 질을 가져야 한다.

 

믿는 사람이 하나님의 의사단일로 살면 이 사람은 무엇을 하던 자기를 반석 위에 올려놓는다. 보존이다. 성경 속에는 이런 게 들어 있는 건데 이걸 무시하고 예수를 믿으면 뭐가 되겠느냐? 반석 위에 놓여 있어야 보존이 되는 건데 사람부터가 기초를 반석 위에 놓지 않고 있다면 이 사람은 세상의 풍랑이 불면 날아가게 된다. 이게 마지막 시대의 교회의 신앙의 행태다. 그래서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하신 거다. 신앙의 본질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말세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라고 하신 말씀을 해석을 못한다.

 

믿는 사람은 그 어떤 크고 작은 사건 환경을 만나도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게 자기의 존재가치다. 존귀영광의 가치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무엇을 줄까? 어떻게 하면 올려줄까?’ 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도에게 무엇인가 신령한 것을 주고 싶어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참 생명을 가진 분이다. 내가 이 참 생명을 가지고 살면 주 안에 사는 것이라서 하나를 가져도 이건 참이요, 따라서 지금 당장 죽어도 이 참을 가지고 천국에 가게 된다. 참을 많이 가졌느냐? 그러면 많이 가지고 간다. 이게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요가 되는 거다. 질적으로 직통이다.

 

이런 게 있기 때문에 구약에 보면 선지자들의 저주나 축복이 즉각적으로 들어간 거다. 이것은 선지자가 질적으로 하나님과 직통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자기가 진리본질로 예수를 믿으면 내가 이룰구원을 위해 어떻게 어떻게 해야 되겠구나하는 것이 즉각적으로 판단이 되어서 그 어떤 사건 환경 가운데서도 자타의 이룰구원을 위해 움직여 들어간다.

 

인간은 자기 몸 밖의 사건 환경을 자기 마음대로 좌우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본질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구원을 위해 상황을 만들어 가신다. 악한 자들이 다니엘의 세 친구를 해하려고 할 때 하나님은 악한 자들이 꾀를 이용해서 믿음이 있는 세 사람을 높이셨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에게도 그랬다.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라고 했는데, 이것은 신앙의 싸움은 말씀으로 무장을 하고 열심히 싸우면 이긴다든가, 싸우기만 하면 이기게 해 주신다거나 하는 것 이전에 말씀으로 무장을 한 신앙의 싸움은 싸움에 나가기 전에 이미 이긴 것으로 들어가 있다는 거다. 즉 진리의 신앙의 싸움은 백 날 싸워도 이미 이기고 싸우는 싸움이라는 거다. 세상에는 이런 싸움이 없다.

 

믿는 우리가 참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게 하나님께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만드신 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 안에 들어 있다. 나를 예수님처럼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 게 세상을 만들기 전, 인간을 만들기 전부터 하나님의 의지 속에 들어 있는 거다. 이 목적은 어떤 시대가 와도, 전쟁이나 풍년이 와도, 지진이 일어나도, 하늘이 꺼져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으면서도 봄바람만 불어도 변한다. 철이 바뀌면 변한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

 

예수를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인간 자기를 왜 만드셨는지를 생각해 봐라.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녔어도 이것을 모르고 있지 않느냐? 모태신앙이라고 하면서, 집사이면서, 장로이면서 목사이면서 이것을 모르고 있다면 기가 막힐 일이다. 수 년, 수십 년을 교회에 다녔어도 이것을 모른 채 다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너에게는 성경이 없었더냐? 성경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모르고 있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세로부터 세상 마지막 날까지의 모든 사람에게 참 생명의 사람으로서 온전적 완전적 기준적 근원적 표준적 실상자시다.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이 세상에는 그 어떤 종교인이라고 해도 이런 실상자가 없다. 예수님 외에 모든 이방종교에 죄와 죽음과 사단과 마귀의 시험을 이긴 자가 있느냐? 없다. 다 케오 되었고, 참 생명을 알지 못한 채 죽었다. 그런데 왜 이런 이방신을 왜 믿느냐? 하나님 다음이 인간 자기인데 왜 귀신에게 얻어맞고 사느냐?

 

우리는 천사보다 높다. 다만 지금은 시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천사보다 조금은 못하지만 우리가 부활의 몸을 입으면 천사보다 위가 된다. 그러면 질적으로 마귀가 높으냐, 하나님의 심부름을 하는 천사가 높으냐? 천사가 높다. 마귀가 하는 짓은 저질이다. 그런데 천사보다 높은 존재인 믿는 우리가 마귀에게 짓밟히고 귀신에게 이용을 당한다면 이게 무슨 꼴이냐?

 

믿는 사람이 사단 마귀에게 당하는 것은 자기 속에 든 질이 타락성이라서 그렇다. 자기가 머리를 안 감고 목욕을 안 하고 있으면 똥파리가 날아오는 것처럼 우리가 타락성으로 되어 있으면 마귀가 달라붙는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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