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 개천(開天) Heaven opens

최용우 | 2021.01.17 20:45:44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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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1:43-51
설교자
최용우 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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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7 나무교회 주일낮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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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開天) Heaven opens
요1:43-51    
2021.1.17  나무교회 주일낮예배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요1:51)


 1.예수와 나다나엘
 2.더 큰 일을 볼 것이다
 3.하늘이 열리고(開天)
 4.하나님의 사자들이
 5.인자 위에
 6.오르락 내리락
 7.결론


1.예수와 나다나엘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후, 그분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확신합니다. 안드레가 예수님을 만난 후 형 시몬을 찾아갔던 것처럼, 빌립은 절친(confidant)인 나다나엘을 찾아갔습니다. ‘나다나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주셨다’ 혹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을 데리고 오는 것을 보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에게는 거짓이 없다.”(47절) 예수께서 누군가를 이렇게 칭찬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예수께 칭찬을 들은 나다나엘은 기분이 좋아져서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48절)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48절) 나다나엘은 왜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을까요?
 예언자 미가는 “메시아가 오셔서 세상을 평화롭게 한 후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미4:3-4)라고 예언했고, 예언자 스가랴도 ”그날이 오면, 너희는 서로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이웃을 초대할 것이다.“(슥3:10)라고 하였습니다. 나다나엘은 혹시 메시아가 오실까 하여 자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서성였던 것을 예수께서 어떻게 아시고 언급하시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과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친구 빌립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정도로 자신의 심령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라면 틀림없이 메시아가 맞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다나엘은 예수님께 고백합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49절) 나다나엘이 볼 때, 예수님은 과연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원자였습니다. 이후로 나다나엘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나다나엘은 ‘바돌로메의 아들’이라고도 불립니다.


2.더 큰 일을 볼 것이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의 고백을 들으시고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내가 너를 보았다고 해서 믿느냐? 이것보다 <더 큰 일을 네가 볼 것이다.>”(50절) 나다나엘은 예수님에게서 어떤 더 큰 일을 보게 될까요?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해 주시는 것 만큼씩만 볼 수 있을 뿐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세계는 참으로 깊고 오묘하고 신비한 세계입니다. 그 어떤 사상이나 교리나 말로도 하나님의 깊은 신앙세계를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성 어거스틴 같은 엄청난 사람도 그저 신앙의 맛만 보고 간다고 했는데 우리 같은 사람은 냄새도 못 맡고 가는 것입니다. 19세기 천재 아인쉬타인은 자신의 두뇌를 3%밖에 못 쓰고 죽었다고 하는데 우리같은 사람은 0.1%도 못 쓰고 죽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날 유튜브 동영상에서 아직 30대가 안 된 젊은 청년이 세계의 여러 종교들을 비교하면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는데 “종교는 심리적 안정을 위해 인간들이 생각으로 만들어낸 허상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갔습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이 구독자 100만명의 유튜버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얕고 경박한 신(神) 인식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허약한 내면을 보는 것 같아 민망했습니다
 나다나엘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빌립이 그에게 예수를 소개했을 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 수 있겠소?”(46절)하며 예수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 나다나엘에게 예수님은 새로운 세계인 ‘더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 그 깊고 높고 넓은 무한의 세계를 조금이라도 ‘본다면’ 우리는 우리의 보잘 것 없음에 절망하고 맙니다. 우리는 말 귀에 붙은 벼룩만도 못한 존재들입니다.


 3.하늘이 열리고(開天)
 예수님은 나다나엘과 빌립을 함께 보면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51절)
 개천(開天)! 하늘이 열린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는 10월 3일을 개천절(開天節)이라고 하며 그것은 단군이 고조선 건국하여 우리나라가 시작된 날이라고 보기 때문에 국경일로 지정되어 하루를 쉬는 것이지 실제로 하늘이 쫙 벌어져서 개천절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 하늘이 열린다는 말은 ‘상징적인 언어’입니다.
 ‘하늘’은 어떤 물리적 장소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인식의 개념으로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제 아내를 ‘사랑’ 합니다. 그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형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사랑은 존재합니다. 버스를 탔더니 수많은 예쁜 여자들이 의자에 앉아서 저를 바라보는군요. 그 중에는 제 아내도 있습니다. 저는 여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다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저는 그중에 아내에 대한 사랑만 있을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무엇으로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제게는 아내에 대한 ‘사랑’이 있습니다.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늘이 열렸다는 말은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이 드디어 인식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가 아내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제 친구가 “하나님을 보여줘봐. 그러면 믿을께” 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에게는 아직 ‘하늘’이 열리지 않아서 하나님이 뜬구름 같은 것입니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것입니다. 견성(見性)이란 ‘깨달음’입니다. 하늘이 열리는 것도 견성입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주시면 어느 순간에 ‘하늘’이 열려서 거기에 계신 하나님이 보입니다.


4.하나님의 사자들이
 예수님은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51절)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은 꿈에서 천사들이 층계 위로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라고 예언하십니다. 하나님의 사자들이 하늘과 땅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인자’라는 사다리를 통해서 오르락 내리락 하더라....‘인자’가 ‘하늘에 이르는 계단’(stairs to heaven)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막힘없는 소통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을 잇는 사다리입니다. 성부 하나님이 보실 때 예수님은 ‘땅으로 내려가는 사다리’가 되고, 우리 편에서 보면 예수님은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됩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은 그분 안에서 우리를 만나십니다. 하나님은 인자라는 사다리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인자라는 사다리를 통해 하나님과 소통합니다. 그렇게 인자를 통해 하늘에 이르는 길이 활짝 열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빌립과 나다나엘 그리고 모든 믿는 사람들이 장차 보게 될 ‘더 큰 일’입니다.
 사람들은 영이 어두워져서 천사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 세상에는 인간들의 숫자보다 천사들의 숫자가 더 많습니다. 천사들은 우리를 돕기 위해 존재하는데 우리가 천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천사들은 할 일이 없어서 우리를 떠나고 맙니다. 오르락 내리락 하는 사자들(천사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우리의 기도를 전달하는 일꾼들입니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천사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 하겠습니다.


5.인자 위에
 예수님은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51절)
 ‘인자(人子)’는 사람 ‘人’에 아들 ‘子’가 합해진 말입니다. ‘사람의 아들’이라고도 번역합니다. 영어로는 the Son of Man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인자’라고 부르셨는데 ‘인자’라는 단어에는 아주 깊은 종교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인자라는 칭호의 뿌리는 다니엘서 7장 13절입니다. 다니엘은 환상 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를 봅니다. 겉으로 보기에 사람 같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라고는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그를 ‘인자 같은 이’라고 부릅니다. 그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왕으로 다스릴 분입니다. 다니엘이 이 독특한 경험을 한 이후로, ‘인자’라는 말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당신 자신을 가리켜 ‘인자’라고 부른 이유는 당신의 인성을 강조하려는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신의 숨겨진 정체 즉 우주의 영원한 통치자로서 당신 자신을 강조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며 ‘인자’라고 할 때는 항상 유대인들 앞이었습니다. 성경에 정통한 유대인들은 그 누구보다도 ‘인자’라는 칭호의 뜻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바로 ‘인자’라는 것을 유대인들이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인자’라는 호칭에 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과 당신의 나라에 대한 모든 비밀을 ‘인자’를 통해 계시하셨습니다. ‘인자’가 땅에 이르는 사다리가 되신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버지의 품속에 계신 외아들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알려주셨다.(요1:18)


6.오르락 내리락
 예수님은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51절)
 ‘오르락 내리락’은 소통(疏通 communication)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을 일방적으로 통치하시지 않고 소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을 창조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인간의 뜻을 무시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종교와 미신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미신은 인간의 의지를 무시하고 신의 뜻을 일방적으로 강요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을 담당하는 역할은 천사들이 맡습니다. 왜냐하면 영이신 하나님의 뜻이 물체인 세상에서 이루어지려면 ‘변환’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약간의 시간차가 발생합니다. 그 역할을 천사들이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기도를 하면 하늘에서는 그 기도가 즉시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천사들이 기도의 응답을 가지고 부지런히 날아와 보니 기도하던 사람은 “에잉, 기도해도 소용없네.” 하면서 벌써 자리를 털고 돌아가 버렸다면 기도 응답을 가지고 왔던 천사는 다시 기도 응답을 가지고 하늘로 올라가버립니다.
 아니면 ‘기도하면서도 의심을 하고 앉아 있으면’ 기도 응답을 수령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도로 가지고 올라가 버립니다. 영이 깨어나서 민감해지면 눈을 감고 있어도 이러한 영계에서 벌어지는 현상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집니다. 어떤 분이 죠지 물러가 기도하던 기도실 앞에는 천사들이 기도 응답을 가지고 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만약 나다나엘과 빌립의 의식이 개천(開天)하여 이러한 모습을 보았다면 ‘하나님의 더 큰 일’을 보았다며 기뻐하였을 것입니다.


7.결론 기도
 나의 선입견과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어느 순간 하늘이 열리면 이 세상이 완전 다르게 보입니다. 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하나 됨의 깊이가 깊으면 깊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더 밝히 보게 됩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새로운 세상에서 눈을 뜨게 됩니다. 천지개벽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영의 눈이 밝아지면 이 세상 그 어떤 비경보다도 더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습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사실은 나를 돕는 ‘천사’인 것을 보게 됩니다. ⓒ최용우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지금 얼마나 눈이 열려, 얼마나 하늘을 보고 있으며, 얼마나 하늘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는지요?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봅니다. 주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그 큰 일을 우리에게도 보여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참고자료
1.The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두란노)
2.김효성<신약성경강해-요한복음>p.328-330
3.김영봉<하늘에 이르는 층계(Stairs to Heaven)>
  2011년 2월 13일 주일설교 http://cyw.pe.kr/xe/591271
4.아이언사이드<요한복음1>p.6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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