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 말씀이 어렵습니까? .....

이정원 목사 | 2010.09.15 18:38:3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요6:60-71
설교자
이정원 목사
참고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7·01·13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수는 12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발표된 인구주택총조사에 의하면 2005년도 우리나라 기독교인의 수는 861만 명이었다고 합니다. 위의 통계에 의하면 지난 10년 동안 기독교인수는 14만 명이 감소했습니다. 반면에 카톨릭은 같은 기간에 219만 명이 늘어 74.4%의 높은 증가율을 보였습니다.
  얼마 전에는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들이 많다는 통계가 나왔고, 그 이유를 자세히 분석해보는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개신교에서 카톨릭으로 개종한 사람들을 상대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카톨릭은 술, 담배, 조상숭배에 대해서 관대하다는 것과 사회정의에 적극적이라는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반면에 교회의 부패와 부정적인 요소들에 실망했기 때문이라는 응답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 중에서 교회는 전도와 봉사와 헌금을 강조한다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절) 사람들이 이렇게 예수님을 떠나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말씀이 어려워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대거 예수님을 떠나게 된 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습니다.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60-61절)
  처음에 이 사람들은 예수님께 와서 말씀을 들었으며, 오병이어의 놀라운 이적을 맛보았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은혜롭고 특별한 체험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분이라면 우리의 왕이 되시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겠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예수님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말씀 듣기를 거부했고, 결국 그 말씀 때문에 예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없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이 어려워서 알아들을 수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기대했던 말씀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무슨 병이든지 다 고치신다는 말을 듣고 몰려들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권세 있는 말씀을 선포하셨으며, 엄청난 이적까지 행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분이라면 자기들이 당면하고 있던 문제들 역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 마디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이적 행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만나를 내리는 이적도 한 번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부당한 압제를 함께 거론하며 대책을 제시해주시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영원히 산다는 말씀만 반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관심사와는 전혀 상관도 없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만 계속하시자 유대인들은 조바심이 나고 답답하고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들을 수가 없었고, 마침내 예수님을 떠나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오직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곧 우리의 구원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오직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는 설교시간에 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가 하면,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다루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설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북한의 핵무기는 어떻게 될까요? 내년 대선은 어떻게 진행될까요? 경제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이며, 부동산 거품은 과연 어떻게 되까요? 이 모든 문제들은 우리에게 중요하고 심각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근본적인 문제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다른 어렵고 복잡한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이 문제가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유대인들의 모든 형편과 그들의 마음을 아셨지만, 그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런 문제들을 다루셨더라면 아무도 예수님을 떠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인기는 급속도로 높아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교회는 오직 복음만을 전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복음만 전하는 교회가 올바른 교회이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입니다. 사람들의 구미에 맞추는 교회는 결코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세상적인 관심사를 듣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지 않도록 하십시오. 사람을 사귀거나 취미 때문에 교회에 나와도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간절하게 사모하는 마음으로 예배에 나오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은 세상에서 교회밖에 없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어렵다고 불평하는 유대인들에게 말씀의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63상) 예수님께서 “내가 생명의 떡이니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은 영적인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영적인 의미라는 것은 62절을 보면 더욱 분명해집니다.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62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살과 피를 주시겠다는 것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의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예수님의 육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63하) 우리는 더 이상 예수님의 육신을 볼 수 없습니다. 하물며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의미로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믿음으로 그분의 살을 먹고 그분의 피를 마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주님과 완전히 연합되어 하나님의 구원받은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주님의 말씀이 영이요 생명일까요? 어떻게 그 말씀이 우리를 구원하며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할까요? 어떻게 그 말씀이 살아 있으며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할까요? 어떻게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될까요? 그 비밀은 바로 성령님께 있습니다. 성령님은 성부, 성자와 동등하신 제 3위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언제나 말씀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실 때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며, 우리의 성품과 삶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특별히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여 예배할 때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이 시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마음을 감화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닫게 해주십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도록 힘을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화하심을 입어 말씀을 받아들일 때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서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새 힘을 얻으며 변화됩니다. 성령께서 말씀과 함께 역사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며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것을 기대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떠나가는 사람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더 이상 들으려하지 않고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듣고 떠나갈 때 섭섭해 하시거나 당황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너희 중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있느니라 하시니 이는 예수께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군지 처음부터 아심이러라”(64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들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처음부터 그 중에 누가 믿지 않을 것인지 다 알고 계셨습니다. 심지어는 친히 택하셔 세우신 열두 제자 중에서 누가 주님을 배반하고 팔 것인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아시면서도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처음부터 다 아시면서 가룟 유다를 그냥 두셨습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억지로 쫓아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고 떠나간 자들은 마침내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이렇게 하나님 자녀로 남아 있다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진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여기 남아 있는 것은 내 스스로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로 된 것입니다. “또 가라사대 이러하므로 전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 하시니라”(65절)

영생의 말씀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이제 몇몇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물으셨습니다.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67절) 그때 베드로가 대답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68절)
  베드로는 예수님께 영생의 말씀이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베드로는 전부터 다른 랍비들의 설교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구약에 능통했으며, 좋은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메시지는 베드로를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달랐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베드로를 완전히 변화시켰습니다.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서의 주님을 만났던 일을 평생 잊을 수 없었습니다. 밤새도록 고생했지만 베드로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던지자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며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셨고, 그날 베드로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그 말씀을 들음으로 베드로는 완전히 변화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도 이 말씀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듣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말씀은 영생의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이 영생의 말씀을 듣습니다. 날마다 개인적으로 이 영생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가정교회에 모여서 이 영생의 말씀을 나눕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으로 떠나가지 않고 이렇게 교회에 남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마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남아 있는 사람들 중에 마귀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 열둘을 택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너희 중에 한 사람은 마귀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를 가리키심이라 저는 열둘 중의 하나로 예수를 팔 자러라”(70-71절) 사람들이 대거 떠나갈 때 가룟 유다는 그들과 함께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었기 때문이었을까요? 그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남아 있었던 것은 베드로처럼 영생의 말씀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가룟 유다는 열두 제자 중에서 가장 지식인이었고 수준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자 공동체의 회계를 맡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를 마귀라고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가룟 유다가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전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겉으로는 다른 제자들과 별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중심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 떠나갈 때 다른 제자들과 함께 남아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마귀였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두려운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렇게 교회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무엇 때문에 이곳에 남아 있습니까? 오늘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사랑이 없다, 뭐가 맞지 않다고 불평하면서 교회를 떠나갑니다. 심지어는 교회가 봉사와 전도와 헌금을 요구한다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말씀을 믿지 않고 예수님을 떠나간 유대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구해야 할 것은 오직 영생의 말씀입니다. 이 교회에 말씀이 없다고 생각된다면 언제든지 떠나십시오. 그러나 이곳에서 영생의 말씀이 충실하게 선포되고 있다면 끝까지 여기 남아 있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당신에게 가장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 남아 있는 것만으로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오늘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를 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여전히 가룟 유다처럼 남아 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를 마귀라고 부르셨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을 보았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그들의 임금으로 삼으려 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만이 그들의 구주요 소망이 되시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잘 살고, 출세하고, 병이 낫고, 나라가 독립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그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런 일들에는 거의 관심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직 그들이 구원받는 것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결국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오늘 당신은 무엇을 얻으려고 이 자리에 오셨습니까? 당신의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해결 받아야 할 문제도 많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 그런 것들은 잠시 접어두십시오. 그리고 오직 말씀을 굳게 붙잡도록 하십시오. 이 말씀에 목숨을 거십시오.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구원을 받도록 하십시오.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여 완전히 변화 받도록 하십시오. 베드로처럼 고백하십시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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