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 구원의 은혜 .....

이정원 목사 | 2010.09.15 18:40:2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요6:37-40
설교자
이정원 목사
참고
참사랑교회 http://charmjoun.net

2007·01·20

튤립이라는 꽃을 좋아하십니까? 이 꽃의 영어 철자는 TULIP입니다. 그런데 이 꽃 이름은 장로교회의 중요한 다섯 가지 교리를 기억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흔히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부르는 다섯 가지 교리의 첫머리 글자를 조합하면 TULIP이 됩니다.
  T는 Total depravity의 첫 글자로 ‘전적 타락’을 가리킵니다. U는 Unconditional election의 첫 글자로 ‘무조건적 선택’을, L은 Limited atonement의 첫 글자로 ‘제한 속죄’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I는 Irresistable grace의 첫 글자로 ‘불가항력적 은혜’를, P는 Perseverance of the saints의 첫 글자로 ‘성도의 견인’을 가리킵니다. 이 다섯 가지 교리의 첫 글자를 조합하면 튤립이라는 꽃 이름이 됩니다.
  이 다섯 가지 교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시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교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사람이 칼빈이기 때문에, 이것을 ‘칼빈주의 5대 교리’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에 대해서 설명하신 요한복음 6장에 이러한 내용이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이 다섯 가지 교리를 차분하게 정리해보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감격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적 타락(Total depravity)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구원을 받는 데 있어서 완전히 무력하게 되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셔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44절)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셔야만 예수님께로 와서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닙니다. 인간의 실상을 보면 이 말씀이 얼마나 진리인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존귀하고 죄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로 인간은 누구나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는 하나님을 찾거나 믿을 수가 없게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을 행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12)
  인간이 구원을 얻는 데 얼마나 무능하게 되었는가 보여주는 예를 얼마든지 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을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더러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36절)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으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엄청난 이적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자기들의 기대와 맞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다 주님을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민족이라는 유대인들은, 심지어는 제사장들과 율법의 전문가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까지도, 구약의 예언대로 오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대적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인간이 구원을 받는 데 전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은 오늘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는 처음부터 스스로 순순히 예수 믿은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고 믿은 후에도 얼마나 의심하고 뒤를 많이 돌아보았습니까? 기도해서 병이 낫거나 문제가 해결되면 믿겠다고 하고서는 정작 기도가 응답되면 딴 소리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 믿고 변화된 사람, 기도해서 병 나은 사람, 예수 믿고 기도 응답 받은 사람을 자기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가 하면 그토록 오랫동안 기도했는데도 도저히 마음을 열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은 스스로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인간은 철저하게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을 얻는 데 있어서는 전적으로 무능하게 되었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셔야만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것도 내가 스스로 한 것이 아닙니다. 나 스스로는 절대로 구원을 받을 수 없는데, 하나님께서 나를 강권적으로 이끄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시고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랍습니까?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
  

사람은 완전히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받는 데 있어서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자기 스스로 예수를 믿고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셔야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37절)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주시는 자들만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인류 가운데 일부를 택하셔서 그들을 예수님께로 이끌어 구원을 받게 하십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선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언제 택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지음을 받기 이전,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입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4) 이것은 우리 수준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나를 아시고 사랑하시고 당신의 자녀로 택해주셨다는 사실 앞에서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보시고 우리를 택해주셨을까요? 구원받을 사람들은 뭔가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점이 있기 때문에 택하셨을까요? 성경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는데, 그것은 그들이 의로운 백성이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민족들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이 똑같이 악한 백성이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실상은 이 민족들이 악함을 인하여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 네가 가서 그 땅을 얻음은 너의 의로움을 인함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을 인함도 아니요 이 민족들의 악함을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의로움을 인함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신9:4-6)
  그러면 무엇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해주셨을까요? 성경은 오직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택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조건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선한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 기뻐하신 뜻대로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나 야곱의 경우를 보면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보다 나은 것이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우상을 섬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무조건적으로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쌍둥이 아들 에서와 야곱 중에서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그것은 야곱은 더 선하고 의롭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야곱보다는 오히려 에서가 여러모로 더 나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을 택하셨습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조건도 없었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뜻대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아무것도 내놓을 것이 없고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는데, 아무 조건도 없이 나를 택해주셨습니다. 세상에는 오히려 나보다 착하고 유능한 사람들이 얼마든지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무 조건도 없이 나를 택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를 택해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은총에 다시 한 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제한 속죄(Limited atonement)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이것을 속죄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누구를 위해 그렇게 십자가에서 죽으셨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을 자세히 보면 예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만을 위해서 죽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10:11)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10:14-15)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또 성경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1:21)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죽으셨습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엡1:4-7)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속죄의 은혜는 오직 믿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결코 이 속죄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나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으며, 예수님께서 오직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할 때 우리는 나를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able grace)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37절)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신 사람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 중에서 이 은혜를 거절하고 구원받지 못하게 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택함 받은 사람은 이 구원의 은총에 저항하고 거절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은혜를 불가항력적인 은혜라고 부릅니다.
  만일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을 사람이 거부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들은 이 구원의 은총을 거절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조차 모른 채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생길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택하셨다는 것이 불완전하고 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셨다 하더라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있을 것이며, 믿지 않고 멸망당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안심하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는 택하신 백성들에게 불가항력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거부하고 대적하며 버티는 자라도 일단 택하셨으면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그는 교회를 없애버리려고 잔혹하게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를 갈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 사울을 택해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다메섹 도상에서 거꾸러뜨리시고 눈을 멀게 하셔서 사로잡으셨습니다. 그처럼 강하고 고집이 세고 그리스도와 교회를 증오하며 적대하던 바울도 하나님의 택하시고 구원하시는 은총 앞에서는 갓난아기처럼 무력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결국 사울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토록 적대하며 핍박하던 주님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불가항력적입니다.
  이 불가항력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오늘 나를 사로잡아 이렇게 믿고 구원을 받게 했습니다.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 일입니까?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이렇게 강권적으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한 번 구원하신 백성은 끝까지 책임을 져주십니다. 그래서 한 번 믿고 구원을 받은 성도는 절대로 버림을 받거나 하나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하리라”(37절) 결코 내어 쫓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택하신 자를 끝까지 책임지고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또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를 주님께로부터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10:28) 그래서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믿어 구원받게 하신 성도들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38-39절)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도록 끝까지 보호하시는 은혜에 대해서 감격하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8-39절)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조용기 목사님이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나는 오순절 교회의 목사지만 칼빈주의자입니다. 우리는 신앙고백을 장로교와 똑같이 합니다. 내가 어떻게 해서 예수를 믿었을까 생각해볼 때 장로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선택, 불가항력적인 은혜 말고는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폐병에 걸려 다 죽어가는 산송장이나 다름이 없는 새파란 십대 후반의 소년에게 무슨 소망이 있었겠습니까? 누가 그런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누군가를 보내시어 예수를 믿게 하시고, 더욱이 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의 담임목사로 세우시고, 오대양 육대주를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것이 하나님이 좋아서 무작정 하신 일이지 나에게 어떤 좋은 것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하셨다고는 도무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은혜가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지금도 시간만 나면 뛰어다니면서 복음 전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 중에 나 같은 죄인을 왜 택하여주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강권적으로 부르시고 믿어 구원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절대적인 능력과 주권으로 나를 붙드셔서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보호해주십니다. 이 은혜를 기억하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안심하고 담대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 식어지지 않는 감격으로 늘 이 은혜를 기뻐하며 찬송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더욱 뜨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댓글 쓰기

목록 삭제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