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 하나님의 침묵도 응답입니다

이한규 목사 | 2010.09.16 13:41:5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요6:16-21
설교자
이한규 목사
참고
이한규 http://www.john316.or.kr

요한복음(40) 하나님의 침묵도 응답입니다 (요 6:16-21)

 

 <하나님의 침묵은 시험입니다 >

 복음서를 살펴보면 문제 속에서 다급하게 매달릴 때 예수님이 침묵으로 반응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옵니다. 왜 주님은 성도의 다급한 울부짖음에 침묵하고 왜 금방 문제해결을 주시지 않고 지체하실까요? 때로는 그런 의문이 들지만 분명한 것은 복음서에 나오는 모든 예수님의 침묵과 지연 장면에서 결코 실패와 실수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주님의 침묵은 일종의 테스트이지 불행과 저주의 표식이 아닙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을 베푸시자 사람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임금을 삼으려고 했습니다(15절). 그때 예수님은 산으로 기도하러 가시고 제자들은 배를 타고 건너편 가버나움으로 갔습니다. 그날 밤, 갈릴리 바다에 엄청난 폭풍우가 몰아쳤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헛수고였고 거의 희망이 사라졌을 때 제자들은 다급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오지 않으시나? 무슨 일 때문에 이렇게 지체하시나?”
 
 본문 19절 말씀에는 제자들이 십여 리쯤 갔을 때 예수님이 찾아왔다고 기록하지만 마태복음 14장 25절 말씀을 보면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때가 밤 4경이었습니다. 4경은 새벽 3-6시로 그들이 저물었을 때 배를 탔기에(요 6:16-17) 9시간 내지 10시간 정도 노를 저었다는 말이고, 그렇게 장시간 노를 저어가도 약 4킬로미터 남짓밖에 가지 못할 정도로 폭풍우가 심했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새벽 직전까지 제자들에게 오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마가복음 6장 45-48절을 보면 예수님은 기도하러 올라가신 산에서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은 바로 제자들을 찾아오시지 않았을까요? 그 정확한 이유는 몰라도 분명한 사실은 결과적으로 제자들 중에 털끝 하나 상한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물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체험하는 놀라운 응답이 있었습니다.

 주님의 침묵 후에는 더 큰 응답이 있고, 더 큰 체험이 있습니다. 가끔 우리의 다급한 기도제목에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땀을 흘리고, 헌신의 자리에서 후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결코 손해 보는 길로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침묵과 지연은 거절과 저주가 아닙니다.

< 침묵은 거절이 아닙니다 >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예수님은 나사로가 병들었다 하는 소식을 듣고도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했습니다. 결국 나사로는 죽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던 베다니의 삼남매 중의 한 명인데 왜 예수님은 지체했을까요? 이유는 몰라도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그처럼 주님의 침묵 후에는 더 큰 체험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거룩한 인도가 지연되고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늦게 오는 것에는 항상 은혜로운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침묵과 지연은 저주가 아니고 불행이 아닙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의 응답이 지연되는 것은 우리가 구한 것보다 더 크고 나은 응답을 가져다주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침묵도 응답입니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똑같습니다. 가끔 자녀들이 “껌 사 달라! 사탕 사 달라!”고 영양가 없는 것을 사 달라고 하면서 떼를 씁니다. 그때 부모의 판단에 좋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 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더 좋은 선물을 주면 그때야 아이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흐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처럼 성도의 기도 중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마치 “하나님! 껌 주세요! 사탕 주세요! 엉엉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침묵하십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의 침묵이 서러워서 계속 울지만 하나님이 그를 미워해서 그렇게 침묵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더 좋고 영양가 있는 것을 주려고 하기 때문에 잠깐의 침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영양가 없는 껌과 과자를 원하지만 하나님은 종합적인 영양을 고려해서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잠시 침묵으로 대응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 속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음성이 있습니다.

ⓒ 글 : 이한규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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