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히브리서 › 믿음의 경주

하늘나라 | 2020.07.01 17:22:1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히12:1-2
설교자
이장규 목사
참고
고전교회

히12:1-2(믿음의 경주)


어릴 적 운동회 때, 아빠와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모든 식구들구경 나와서 응원을 해주면, 이 나서 달리기장애물 경주나, 축구나,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도 보면, 우리의 믿음의 경주에도,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습니다(1절상).

이 허다한 증인들은, 우리들이 믿음의 경주에서 겪게 되는 모든 것다 경험하고 승리했던 사람들입니다.


1.

우리가 생각하기에 “모든 것이 끝장 났다.”고 생각 될 때,

요셉응원할 것입니다.

“나도 으로 팔려가고, 설상가상 감옥에 까지 갔을 때, 끝장난 것 같이 보였겠지만, 그래도 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리라는 것을 잊지 않았을 때, 결국 애굽 총리가 되었다! 힘내라 힘내”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될 때,

응원할 것입니다.

“봐라, 너는 나만큼 잃어버려 봤느냐?, 자식 모두 잃고, 재산 모두 잃고, 내 건강마저 잃고, 아내마저 나를 모욕하고, 친구들도 나를 조롱하였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안했지! 결국 나는 배의 축복을 받게 되었어! 힘내라 힘내”


우리가 생각하기에 “이 시대에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가능한가?”하고 생각될 때, 아브라함응원할 것입니다.

“나는 앞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떠나라 하시니, 말씀만 믿고 떠났지!

결국 천하만민에게 복의 근원이 되었지!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했던 가나안땅을, 우리 후손이 차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했지만, 하늘나라에 가서 이 땅을 보니, 약속대로 우리 후손의 것이 되었더구먼, 힘내라 힘내”


우리가 생각하기에 “내 기도는 왜 응답되지 않지?”하고 생각할 때,

야곱응원할 것입니다.

“내가 내 자손 12지파를 위해서 기도한 것이, 내 생전에는 다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없었지만, 천국에 와서 나중에 보니, 다 이루어졌지 뭔가? 힘내라 힘내”


우리가 생각하기에, “나 같은 것은 별 희망이 없어”하고 생각할 때,

기생이었던 라합, 생과부였던 룻 등이 응원할 것입니다.

“그런 소리마세요. 우리들의 처지는 어땠는데?! 힘내라 힘내”

“...............”

“...............”


이것을 볼 때, 우리가 '무슨 생각과 무슨 말'을 하든,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증언을 해주지 못할 일들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믿음의 증인들의 '증언과 응원'이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믿음의 경주를 할 때, 힘을 낼 수가 있습니다.

용기를 낼 수가 있습니다.


무거운 것 즉 욕심이, 얼마나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 힘들게 하는 것임을 깨닫고,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예, 솔로몬의 우상죄)

얽매이기 쉬운 죄악이, 우리를 어떻게 시험에 빠지게 만드는지 깨닫기 때문에, 우리는 피할 수 있습니다.(예, 다윗의 간음죄)

또한 허다한 증인들이 인내했던 결과가 무엇인지를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인내하며, 믿음의 경주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예, 노아의 가족 구원)


2. 

그런데 우리가 믿음의 경주를 할 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는 것”(2절상)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증인들이, 근본적으로 승리했던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순교의 현장에서도 굴하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주위의 포악한 군중들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므로”(행7:55) 승리의 순교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모세“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하지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이는 것 같이 하여 참았다”(히11:27)고 했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믿음의 증인들은, 오직 예수님을 바라봄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어디에 있든지, 예수님만 바라보므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교회에 와서도,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평가에, 너무나 예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뭐라 해도, 예수님 앞에 떳떳하면, 나중에 결국은 예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주님 앞에 해야 할 마땅한 일들을, 묵묵히 하시기 바랍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주님은 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그러니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 봅시다"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실 때, 어떠하셨습니까?

1)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실 때, 자신은 완전히 무죄한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의 죄를 다 지셔야만 했기 때문에, 죄인과 같이 취급받아서 모든 수치와 멸시와 조롱과 아픔과 고통을 다 받으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그러나 이 일을 통하여, 이것이 죄인인 우리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였기 때문에, 이런 억울한 일을 참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억울해서만 참으신 것이 아니라,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았다”(2절중)고 했습니다.

그럼 앞에 있는 기쁨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죄로 인해 형벌을 받아 지옥의 고통을 받아도 마땅한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예수님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으면 이렇게 했겠습니다.

이 기쁨과 사랑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런 우리 예수님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어떤 고통스러운 죄악가운데서도,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위로 받고, 용서받고, 다시금 힘과 용기를 얻어, 믿음의 경주를 감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죄악으로 징계를 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며, 내가 지은 죄악 때문에 징계를 당하지만,

그러나 이미 예수님이 죄 값을 지불하였기 때문에, 멸망 받는 징계가 아니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연단 받기 위한 징계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어떤 어려움가운데서도, 원망불평하지 말고, 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또한 예수님은 이런 부당한 형벌을 받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므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는 기쁨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땅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천국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므로, 조롱받고 이상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처럼 부당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당연한 것을 순종하므로 받는 멸시와 수치와 조롱과 고난이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또한 이에 대하여 하나님이 우리를 칭찬하시며 상급을 주실 터인데, 이것이 또한 얼마나 황송하도록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봄’으로, 2020년 하반기믿음의 경주를 잘 감당할 수 있는 성도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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