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창세기 › 사랑의 수고

조용기 목사 | 2009.07.28 17:13:2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창24:10~24
설교자
조용기 목사
참고
2005년 10월 2일 주일 3부 설교

“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는데 곧 그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그 약대를 성밖 우물 곁에 꿇렸으니 저녁때라 여인들이 물을 길러 나올 때이었더라 그가 가로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성중 사람의 딸들이 물 길러 나오겠사오니 내가 우물 곁에 섰다가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말을 마치지 못하여서 리브가가 물 항아리를 어깨에 메고 나오니 그는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내 밀가의 아들 브두엘의 소생이라 그 소녀는 보기에 심히 아리땁고 지금까지 남자가 가까이 하지아니한 처녀더라 그가 우물에 내려가서 물을 그 물 항아리에 채워가지고 올라오는지라 종이 마주달려가서 가로되 청컨대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그가 가로되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약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중 금고리 한개와 열 세겔중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가로되 네가 뉘 딸이냐 청컨대 내게 고하라 네 부친의 집에 우리 유숙할 곳이 있느냐 그 여자가 그에게 이르되 나는 밀가가 나홀에게 낳은 아들 브두엘의 딸이니이다”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사랑의 수고”라는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구약성경은 신약성경의 그림자라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성취될 것을 구약성경은 비유나 그림자로 예시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중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비유되고 그 아들 이삭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비유되고 그 종 엘리에셀은 성령님께 비유되고 종을 따라온 사자들은 오늘날 천사들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 교훈을 통해서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장가들게 하려고 했습니다. 이삭의 나이 이미 40이 되었는데 아직 홀로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의 모든 상속을 이삭에게 전달해 주고 이삭에게 예쁜 아내를 얻게 해주려고 그 종 엘리에셀을 불러서 다른데서 이삭의 아내를 구하지 말고 고향땅 메소포타미아에 가서 이삭을 위한 규수를 구해서 아내로 삼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약대 10필에 집안에서 좋은 모든 것을 잔뜩 싣고 사자들과 함께 먼 메소포타미아로 떠나게 했습니다.

[본론]
1. 이삭을 장가들게 하려는 아브라함


성경에는 창세기 24장 2절과 4절에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고 했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찌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찌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비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신부를 구하기 위하여 오늘날 천사와 성령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바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비유되고 이삭은 예수님께 비유되고 그 종 엘리에셀은 성령님, 사역자들은 천사에게 비유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인 주의 성도들을 선택하기 위해서 2천년 전에 성령님을 천사들과 함께 보내어서 이 땅에서 주의 백성들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라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4장 31절에도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고 하셔서 우리를 성령과 천사를 보내어서 택하신다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과 천사들은 오늘 온 천하만국에 다니면서 이삭의 아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되는 성도들을 선택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종 엘리에셀을 보낼 때 약대 10필에 온갖 좋은 것을 다 싣고 보냈다고 했습니다. 그냥 빈 약대만 보낸 것이 아닙니다. 약대 10필에 온갖 좋은 것을 다 실어 보냈다. 10이라는 숫자는 무한의 숫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실 때는 무한한 하늘의 은혜와 축복을 함께 해서 신부인 성도들을 선택하기 위해서 보내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 9절에는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우리 눈으로 본적도 없고 귀로 들은 적도 없고 마음으로 생각도 못할만한 놀라운 은혜의 선물을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도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라고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늘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 선택함을 받은 우리들에게 성령의 놀라운 은혜와 은총을 부어 주심으로 우리 신랑 예수님께서 얼마나 놀랍고 위대하신 분이며 천국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미리 가슴속에 느끼고 감동하고 흥분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신부를 구할 때 그냥 이삭에게 시집올 딸을 구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미리 이삭이 얼마나 아브라함의 총애를 받고 아브라함의 후사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집안에 있는 모든 좋은 것을 다 보냈습니다. 은금패물과 함께 의복과 좋은 선물을 잔뜩 보내어서 이삭의 신부될 사람이 이것을 받고 마음속에 흥분하고 기쁘고 즐거워하고 기대감에 넘치도록 그렇게 만들기를 원한 것입니다.

2. 리브가를 찾기 위한 기도

그런데 종 엘리에셀이 머나먼 사막을 지나서 메소포타미아에 도착하여 나홀의 성에 들어가서 우물가에 약대를 모두 다 엎드려 놓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서 신부를 구하기 위해서 기도한 것입니다. 나는 종 엘리에셀을 볼 때 감동적입니다. 그는 비록 아브라함의 종이었지만 모든 일을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기도해서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냥 가서 이삭의 신부를 구하기 위해서 이집 저집 돌아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를 했는데 여성들이 저녁때가 되면 우물가에 물 길러 오니까 좋은 곳으로 갔습니다. 우물가에 가서 그는 약대들을 꿇어 앉혀 놓고 그 자리에 엎드려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야웨여, 원컨대 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해달라고’ 그런데 어떻게 만났느냐? 조건을 분명하게 하나님께 세웠습니다.
창세기 24장 14절에 보면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컨대 너는 물 항아리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약대에게도 마시우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인하여 주께서 나의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기도를 하되 막연하게 주여~ 이삭을 위해서 신부를 주옵소서. 그렇게 하지 않고 “제가 여기서 기도 할 테니까 소녀가 물 길러 와서 물을 길을 때 물을 내게 좀 마시옵소서. 그렇게 부탁할 때 내게만 물을 마실 뿐 아니라 약대에게도 물을 주겠다고 자원해 나오면 이가 하나님이 택한 줄 알겠나이다.” 분명한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분명하게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막연하게 복을 주시옵소서. 복을 주시옵소서. 무슨 복을 달라는 말입니까? 천하에 복이 얼마나 많은데. 분명한 복을 말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할 때 목표가 분명하지 아니하면 분명한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바라는 것이 분명해야 믿음이 확실하게 나타나서 하나님께 상달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엘리에셀은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여기에 교훈을 우리가 배워야 될 것은 것입니다. 그는 많은 소녀들이 물 길러 나올 것인데 아무나 붙잡고 이삭의 아내가 되어 달라고 간구하지는 않았습니다. 분명하게 조건을 내어 놓고 하나님이 그 조건에 응한 소녀를 택해 달라고 그렇게 했습니다. 기도를 끝마치자마자 리브가가 물동이를 어깨에 짊어지고 물 길러 왔습니다. 그래서 물을 길러서 올라오는 리브가를 붙잡고 “내가 목이 갈하니 물을 좀 주십시오.” 그러니까 리브가가 물을 마시게 하고 난 다음에 부탁도 안했는데 자원해서 “저 약대들도 사막을 건너오자니 얼마나 목이 말랐겠습니까? 약대에게도 내가 물을 마시우겠습니다.”

창세기 24장 17절로 22절은 그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종이 마주 달려가서 가로되 청컨대 네 물 항아리의 물을 내게 조금 마시우라 그가 가로되 주여 마시소서 하며 급히 그 물 항아리를 손에 내려 마시게 하고 마시우기를 다하고 가로되 당신의 약대도 위하여 물을 길어 그것들로 배불리 마시게 하리이다 하고 급히 물 항아리의 물을 구유에 붓고 다시 길으려고 우물로 달려가서 모든 약대를 위하여 긷는지라 그 사람이 그를 묵묵히 주목하며 여호와께서 과연 평탄한 길을 주신 여부를 알고자 하더니 약대가 마시기를 다하매 그가 반 세겔중 금고리 한 개와 열 세겔 중 금손목고리 한 쌍을 그에게 주며”

기가 막히게 응했습니다. 보세요. 기도의 목표가 분명하면 응답도 분명한 것입니다. 목표 없이 기도했으면 이것이 응답인지 저것이 응답인지 모르잖아요. 분명히 나에게도 물을 마시우고 자원해서 약대에게도 물을 마시우겠다 하면 하나님이 택한 소녀인줄 알겠다고 했는데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 하나님이 정확하게 응답했구나!’ 그는 뛰어가서 금고리와 금 손목고리 한 쌍을 그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놀랍게 하나님이 응답을 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리브가가 종에게 물을 마시우고 약대에게 물을 마시게 했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약대 한 마리가 사막을 건너오면서 목이 말랐는데 약대 한 마리가 대게 물을 얼마나 마시느냐. 80리터를 마십니다. 열 마리면 800리터의 물을 약대에게 먹여야 되는데 우물에서 물을 길어 약대가 있는 곳에 구유까지 40번을 왔다 갔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30분도 60분도 아닌 2시간을 왔다 갔다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 저녁 해거름에 밥 지으려고 물 길러 왔다가 2시간 동안 우물에서 물을 떠다가 약대의 구유에 붓고 나니 약대가 물을 “씁~” 다 먹어 버렸습니다. 또 물 달라고 웩 웩 웩 합니다. 또 가서 부으니까 또 쫙 먹어 버리고 맙니다. 이 약대가 80리터를 마시고 열 마리가 800리터를 마시니 걸음이 바쁩니다. 그는 뛰어 내려와서 물을 길러서 말구유에 붓고 또 뛰어 내려가는 바람에 다리도 긴장되어 아프고 물을 덮어써서 온 몸이 물로 다 젖었습니다. 그럼에도 불평 한마디 안하고 원망하지 아니하고 중간쯤 하다가 포기하지 아니하고 사랑의 수고를 계속한 것입니다. 이를 볼 때에 종이 감동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은 과연 다르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어마어마한 비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찾으러 오실 때 우리를 우물가에서 기다립니다. 우물가는 뭡니까?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우물가인 것입니다. 성령은 교회에서 성도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할 자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복음을 증거하고 난 다음에 결신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바로 성령이 교회에서 영혼구원을 얻을 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도 꼭 교회로 데리고 나와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물가인 교회에 와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에 하나님께서는 성도만 불러 모으는 것이 아니라 약대도 데리고 온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 오면 성도만 오고 여기에서 성령의 은혜로 구원만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교회 오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약대도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약대는 뭡니까? 물 달라고 고함치는 것이 약대인데 신랑 약대도 있고, 마누라 약대도 있고, 자식 약대도 있고, 시아버지, 시어머니, 친정식구들, 이웃들 약대들이 많습니다. 가족약대, 친척약대, 이웃약대, 고통스러운 약대가 많습니다.

성경에는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시련의 약대들을 많이 데리고 옵니다. 시련의 약대들에게 사랑의 물을 마시우는 사랑의 수고를 하는 것을 보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은 감사한 일이지만 그 구원이 확인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사랑을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으로 자라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셨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사랑으로 자라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약대들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사랑을 길러 내는 것이 약대입니다. 사랑의 물을 달라는 약대에게 매로 때리거나 발길로 차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을 달라는 약대들의 울음소리가 귀청을 울립니다. 남편도 아내에게 사랑을 달라고 웩, 웩, 웩 하지요. 아내도 남편에게 사랑을 달라고 웩, 웩, 웩 하지요. 자식들도 부모에게 사랑을 달라고 웩, 웩, 웩 하지요. 이 사회에 나가면 어느 곳에 가나 사랑에 굶주린 약대들이 고함 고함을 치고 있습니다. 왜 예수 믿고 난 다음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련을 내게 보내느냐? 그것은 바로 약대를 통해 사랑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14절에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갈라디아서 5장 13절에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위대한 영성가로 알려진 헨리 나우웬 박사는 하버드 대학과 예일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저명한 교수였습니다. 그가 글을 쓰면 저명한 작품이 되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하루는 20년 동안 가르치던 교수직을 홀연히 사임하고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데이브레이크(Daybreak)라는 장애인 보호시설의 평범한 직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그가 하는 일이란 어린 장애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몸을 씻겨주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를 찾아가서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습니다. “세계적인 학자인 당신이 어쩌다가 강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쳐야 될 일을 버리고 이렇게 데이브레이크라는 장애인 수용소에 와서 똥, 오줌 받아내고 목욕시켜주는 엉뚱한 짓을 하고 있습니까?” 그때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그동안 인기와 명성이라는 꼭대기를 바라보고 힘겹게 올라가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내 눈에는 나 자신의 성공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비로소 나는 내리막길을 쉽게 내려가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 비로소 내 눈에 예수님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그곳에서 자기가 깨달은 진리를 말했습니다. “내가 이곳에 서 돌보는 장애인들은 내 명성이나 내 지식이나 내 인기에는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훌륭한 교수고 저술가고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인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 장애인들은 알지도 못하고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 아이들의 유일한 관심은 내가 그들을 사랑해주고 그들이 사랑을 순수하게 받아주는가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학식과 명성과 수많은 저술이 아이들에게 아무런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하나 사랑뿐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에 목마른 인간 약대들이 허다히 많습니다. 여러분이 얼마나 지혜와 지식과 총명과 모략과 재능이 넘치고 지위나 명예나 권세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만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여러분이 얼마나 사랑을 베풀어 주는가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아~ 나는 유명한 인사다. 나는 큰일을 성취했다. 나는 존경받는 사람이다.”라고 으스대면서 자기 부인에게 “나를 존경하라.”라고 해도 부인이 관심을 갖는 것은 남편의 사랑에 관심이 있지 남편이 얼마나 유명하고 박식하고 존경을 받는가? 거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매일같이 거울보고 치장하고 눈썹을 그리고 입술 그리고 연지곤지 찍고 아름답게 하고 이렇게 있으면 나를 사랑하겠지··· 남편이 관심을 갖는 것은 아내의 예쁜 것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예쁜 부인하고 결혼한 사람들은 내 말을 들어 보세요. 여섯 달만 지나면 예쁜지 안 예쁜지 모릅니다. 진짜에요. 남편이 아내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지속적인 아내의 사랑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맛있게 음식을 만들어 주며 집안을 깨끗이 정리정돈하고 어린 아이들을 잘 돌보아주고 남편을 사랑해 주느냐. 거기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이 굶주린 것은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사랑에 목마른 인간 약대들이 허다히 많습니다. 이들의 울부짖음을 잠잠케 하는 길은 매와 훈육이 아닙니다. 오직 사랑의 수고로 물을 마시우는 길밖에 없습니다. 남편 약대가 웩 웩 하거든 물을 마셔 주십시오. 아내가 웩 웩 하거든 사랑의 물을 마셔 주십시오. 자식들 약대가 웩 웩 웩 하거든 사랑의 물을 마셔 주십시오. 그들이 필요한 것은 사랑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그들 마음속에 거대한 빈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은 물질로는 채울 수 없습니다. 지위나 명예나 권세로 채울 수가 없습니다. 그 공간은 사랑으로만 채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막을 건너온 약대처럼 사랑에 굶주려 있기 때문에 사랑으로 채워져야 되는 것입니다.

지난달 가정과 상담이라는 잡지에 이런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오늘날 증가하는 가정파탄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가정주부들이 술주정뱅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알코올중독자가 된 가정주부가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국민보건조사에 의하면 지난 1998년 3.1%에 불과하던 주부 알코올 의존자 환자가 2001년 10.5%로 세배나 늘어나서 그 숫자가 약 55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그들은 대게 남편과의 갈등이 심해서 마음에 괴롭고 사랑의 공허를 채울 수가 없어서 술로써 그 마음에 공허를 채워서 기어코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난 다음에는 남편에게 버림 당하고 자식들에게 소외당하고 가장 외롭고 비천한 존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요즘 법은 또 매 맞는 남편으로 인한 소송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매 맞는 여성들이 많아서 소송이 많았는데 요사이는 여성의 파워가 커지면서 매 맞는 남자들이 날로 늘어가고 있습니다. 못난 남자지요. 그러나 맞는 것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때리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지난 2002년에는 161건이던 것이 2004년에는 매 맞는 남편이 205건으로 남편을 보호하기 위한 판결문이 증가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웩웩 우는 아내에게 사랑의 물을 잔뜩 먹였으면 아내에게 매를 안 맞지 왜 매 맞을 때까지 기다립니까? 또 요즘 법원에는 매 맞는 남편뿐 아니라 핵가족으로 인한 노인문제도 심각해져서 65세 이상 고령자 10만 명 중에 자살로 인한 사망자가 2003년 현재 72.5명으로 20년 전인 1983년에 비해 5배나 늘어났습니다. 이제는 고령화되는 사회가 이르렀습니다. 집집마다 노인들이 있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고 남편, 아내도 이제는 노인의 고령자가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령자들이 굉장히 어려운 사회입니다. 오늘날에는 일찍이 퇴직을 하고 갈 데가 없어서 등산을 한다든지 그렇지 않으면 공원에 가서 하루 종일 날을 보내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거기에다 생활수단도 없고 의지할 데도 없고 자식들에게 박대당하고 결국에는 자살로 몰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지난 24일 BBC 방송은 캐나다 토론토대학 연구팀이 미국 심장학회에 제출한 보고서를 인용해서 방송을 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매일 배우자에게 격려를 받을 경우 혈압이 쑥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가사일도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여자들이 빨래하고 집안 소지하고 애들 돌보는 것이 굉장히 스트레스입니다. 그것이 하루 이틀이 아니고 일년 365일 계속 해보세요. 얼마나 스트레스가 걸리는지 그러면 혈압이 솟아오릅니다. 그 혈압이 솟아오르는 것을 어디에서 풀 수가 있습니까? 남편하고 조그마한 일만 뒤틀어지면 웩 웩 하고 고함치므로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하는데 그런 아내에게 남편이 사랑을 베풀어 주면 사랑의 따뜻한 말, 사랑의 터치, 사랑의 포옹을 해주면 혈압이 쑥 내려가 버립니다. 아내의 혈압을 낮추려면 사랑의 물을 마시우세요. 남편은 직장에 가서 상사들에게 꾸중을 듣고 하급자들에게 욕을 얻어먹을 때도 있고 경쟁에 시달리고 여러 가지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스트레스가 잔뜩 걸려 집에 오니까 조금만 신경을 건드리면 폭발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부인이 남편에게 따뜻한 사랑으로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도와주면 혈압이 쭉 내려가 버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혈압이 올라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놓아서 터지는 것이 문제지요. 혈압을 낮춰 주는 것은 사랑의 묘약밖에 없는 것입니다. 모두 다 굶주린 약대들이기 때문에 사랑의 물을 마시우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연구팀을 이끈 토브교수는 이번 연구는 부부사이의 결속력이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했었습니다. 가족을 위해 우리는 오직 사랑의 물을 마시우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의 수고와 사랑의 물을 달라는 약대에게 매를 때려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매를 때리거나 자꾸 잔소리 하거나 교훈을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하나님이 다 해결했지요. 하나님만큼 지혜로운 분이 누가 있으며 지식이 많은 분이 총명과 모략과 재능이 많은 분이 어디 계십니까? 하나님이 교훈과 지식으로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했었을 것입니다. 매로써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면 하나님보다 무서운 매를 가진 분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을 택했습니까? 지식과 지혜와 총명과 모략과 재능도 아니고 매도 아니고 협박과 공갈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피를 줄줄 흘리며 몸 찢고 축 늘어져 십자가에 달린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으로써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랑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고 사랑만이 회개시킬 수 있고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랑의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문제의 해결은 사랑입니다. 자녀문제의 해결도 사랑인 것입니다. 높은 자와 낮은 자의 문제도 사랑인 것입니다. 노사갈등의 문제도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 이외에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다른 방법을 사용했겠지요. 하나님은 인생문제의 해결의 유일한 수단으로써 십자가를 택한 것입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 그 말 한마디에 열두 영 되는 천사가 대령하는 그 그리스도가 다른 방법을 다 포기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 흘리는 사랑의 진술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사랑이 문제해결의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1980년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테레사 수녀가 한번은 영국 BBC방송의 멜콤 머그릿지 기자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테레사 수녀에게 “당신은 일생을 죽어가는 사람들 곁에서 살아왔는데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테레사 수녀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들 자신이 버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도록 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심으로 그들을 사랑하고 보살펴 주는 이웃이 있다는 것을 살아있는 단 몇 시간만이라도 느끼게 해주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죽어가는 사람이 지위나 명예나 권세나 돈이나 부귀나 영화가 필요하겠습니까? 지금 몇 시간 후면 죽을 것인데 뭐가 필요합니까? 죽어가는 사람에게 끝까지 필요한 것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이것이 죽음의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안심이요, 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에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랑이란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도움이 필요한 약대들을 많이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사랑의 물을 먹이는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만 사랑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태어난 어린 아기도 여러분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어느 저명한 소아과 전문의가 체중미달의 연약한 어린아이를 치료하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회진하다가 연약한 아이의 기록표를 발견하면 이렇게 처방을 써놓았습니다. “이 아기는 3시간마다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3시간마다 간호사가 와서 어린 아이를 그의 침대에서 끌어내어 안고 흔들어 주고 등을 두들겨 주고 뽀뽀해주고 얼굴을 비벼주면 그 아기는 안 죽고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면 좋은 온도에 좋은 침상에 맛있는 우유를 주어도 어린아이는 죽어요. 사람은 밥만 먹고 못삽니다. 세상노래에도 밥만 먹고 사느냐고 했는데 사람은 밥만 먹고 살지 못합니다. 사랑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육신적인 영양실조는 별로 안 되고 영양과잉이 되어 뚱뚱해지고 있지만 오늘날 세상에 가장 불행한 것은 영적인, 정신적인 영양실조가 걸렸습니다. 사랑의 비타민 결핍으로 온갖 불안, 초조, 염려, 근심, 저주, 고통, 투쟁이 생겨난 것입니다. 사랑의 비타민이 결핍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에게 돈 달라고 해서 돈 주고, 옷 주고 게임한다고 돈 주고 이렇게 해서 자녀가 올바르게 자란다고 생각하면 큰 오해인 것입니다. 자녀들은 아버지가 함께 놀아주고 어머니가 따뜻이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랑의 관계가 필요합니다. 옛날 우리가 자랄 때는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같은 집에 있어서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 늘 안겨서 할아버지가 머리 쓰다듬어 주고 얘기하게 해주고 밤에는 할머니 쭉정한 젖을 만지고 그 젖을 빨고 할머니가 등허리를 툭툭 때리면서 “아이고 내 새끼야~ 아이고 새끼야~ 귀하지.” 이것이 옛날 사람들을 건전하게 자라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사랑의 비타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요새는 아버지가 함께 놀아 주지도 않고 할아버지 할머니는 핵가족 제도가 되어서 이미 떠나버리고 없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옛날이야기 해주고 ‘아이고 내 새끼!’하고 품어줄 어머니도 없고 전부 각자 자기 방에서 TV나 보고 게임이나 하니 사랑의 비타민이 부족해서 영양결핍에 걸려 인격적으로 삐뚤어지고 삐뚤어진 행동을 하고 나중에는 문제아가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어린 아이들이 사랑이 필요하고 모든 죽어가는 사람이 사랑이 필요합니다. 아내도 사랑이 필요하고 남편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노인도 어린아이도 사랑이 필요합니다. 온 천지가 물 달라는 약대 소리로 귀가 요란스럽습니다. 여기가도 웩, 저기가도 웩, 여기가도 웩, 저기가도 웩. 전부 사랑의 물을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를 택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고 난 다음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자격이 없는가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사랑의 실천이 있는가 없는가를 시험해 보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약대가 많아요. 우리 남편이 왜 약대고 우리 아내가 왜 저 모양이냐? 자식들이 골치가 아프다. 우리 친정은 우리 시집은 이렇게 문제의 사람들이 많다. 다 약대들인 것입니다. 저도 최근에 내게 아주 골치 아픈 사람이 생겨서 내게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내가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아이고~ 저녁석 콱 쥐어 박았으면 좋겠다.’ 그런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께서 ‘야 임마! 그것이 네 약대다. 네가 왜 원망불평 하느냐? 하나님의 성령께서 사랑의 물을 주라고 네 근처에 데려온 약대인데 그 약대를 네가 저주하거나 주먹을 치거나 발길로 차면 약대가 안 울 것 같으냐? 더 운다. 약대에게 물을 주라!’ 마음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하나님 맞았어요. 내가 원망, 불평할 것이 아니라 약대에게 물을 먹여야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약대를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만 끌어안고 사랑을 베풀고 약대에 물을 주니까 그 사람이 변화되더라구요. 내가 오늘 설교하는 것은 그 약대 때문에 오늘 이 설교를 만든 것입니다. 내 약대에 물을 주다가 아이고 이 소식을 우리 성도들하고 나눠야 되겠다. 약대에 물을 줘요. 그렇지 않으면 마음에 시험이 들어요. 그러나 남편도 약대로 보면 시험에 안 들어요. 아내도 잔소리 하거든 약대에게 물 달라 하는구나. 시험에 안 들어요. 자식들이 괴롭히면 ‘아이고 저 적은 약대들 사랑의 물을 더 줘야 되겠구나!’ 듬뿍 사랑을 줘야 됩니다. 사랑을 하는데 내가 수고 안하고 되겠어요? 리브가는 약대 물구유에 왔다 갔다 하는데 40번이나 두 시간 동안 오르락 내리락하고 물을 다 온몸에 덮어 썼습니다. 약대에 물을 주는 데는 내가 수고를 해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수고가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수고가 따랐습니다. 독생자를 주셨으며 예수님이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사 그 수고는 뭡니까? 십자가에 몸을 찢고 피를 흘리며 한없는 고통을 감내하는 수고를 겪은 것입니다. 약대에 물을 먹이는 것은 힘들고 수고롭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지요. 어떤 사람은 성격이 더 거칠고 욕심이 많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데 왜 그러느냐? 사실 알아보면 그 사람들이 성질이 고약하고 욕심이 많고 거친 이유는 사랑결핍증에 걸린 징조인 것입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훈육이 아니고 채찍이 아닙니다. 사랑을 베풀면 거칠고 욕심 많고 무자비한 사람들이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약대에 물을 먹이고 난 다음에 어떻게 했습니까? 그 약대가 싣고 온 금은보화가 당장 리브가에게 주어졌지요. 우리가 크리스챤으로써 사랑의 물을 먹이면 그 결과가 무엇이냐 성령이 가져온 보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복 안 받아요?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사랑을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성령이 보화를 풀어 놓지 않은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율법주의자가 되어서 자꾸 이웃을 바라보고 이웃을 벌거벗기고 할퀴고 먹칠하고 짓밟고 율법주의적 행동을 하면 성령이 보배 보따리를 풀어놓지 않습니다. 사랑의 물을 먹이지 않기 때문에. 그리고 ‘나만 교회 오면 되었지, 성수주일하고 예배드리고 십일조 내고 성찬에 참여하고 이러면 되었지 다른 사람에게는 난 관심 없다. 다른 사람이야 살든 죽든 지옥가든 내가 무슨 관심이냐?’ 이것도 사랑의 물을 먹이지 않기 때문에 성령이 보화의 보따리를 풀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이 복 받지 못하는 것은 약대에게 사랑의 물을 먹이지 않기 때문에 성령이 보화의 보따리를 풀어놓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사랑의 물을 먹이는 수고를 하면 보화를 풀어 놓습니다.

3. 물먹은 약대 타고 시집간 리브가

리브가가 10마리 약대에게 물을 다 먹이고 난 다음에 엘리에셀이 약대에 싣고 온 금은보화를 리브가에게 준 것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면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한다.”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영혼이 잘되어야 그 다음에 범사 보화도 생기고 치료도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약대가 싣고 온 모든 보화는 신부에게 그 다음 신부 집에 다 내려놓게 된 것입니다.

창세기 24장 50절로 53절에 보면 “라반과 브두엘이 대답하여 가로되 이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으니 우리는 가부를 말할 수 없노라 리브가가 그대 앞에 있으니 데리고 가서 여호와의 명대로 그로 그대의 주인의 아들의 아내가 되게 하라 아브라함의 종이 그들의 말을 듣고 땅에 엎드리어 여호와께 절하고 은금 패물과 의복을 꺼내어 리브가에게 주고 그 오라비와 어미에게도 보물을 주니라”
호박이 넝쿨째 떨어졌어요. 딸 하나 잘 뒀다가 집안이 다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딸에게만 은금 패물을 준 것이 아니라 그 집안 식구들에게도 다 보화를 부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왜 잘사는지 압니까? 우리 한국에 하나님의 며느리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들이 1천 2백만이 있습니다. 5만 교회와 10만 주의 종이 있습니다. 우리 주의 종들에게 성령께서 금은보화의 보따리를 풀어 놓으니까 우리 친정인 대한민국에 안 믿는 식구들도 다 호박이 넝쿨째 떨어진 것입니다. 물론 안 믿는 사람은 그런 말하면 ‘에이~ 저런 이기주의적인 말을 한다.’ 그렇게 말을 하더라도 복 받은 것은 사실 아닙니까? 우리 한국이 어떻게 되어서 88올림픽을 해서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고 2002월드컵으로 세계 구석구석마다 우리 대한민국을 알게 되고 또한 WEF의 발표에 의하면 117개 중에 2005년 국가별 경쟁력이 평가 10위가 되고 세계에 제12무역대국이 되고 GNP의 대국으로 11번째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해방이후에 반세기 동안에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국가는 대한민국밖에 없습니다. 6.25사변의 잿더미 위에서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우리가 잘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정치인들이 정치를 잘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사회가 안정되어 그런 것도 아닙니다. 혼란과 투쟁과 분쟁과 시기, 분노, 질투, 데모 온갖 일이 다 있었지만 우리 한국에 꾸준히 교회가 서고 성도들이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하며 사랑의 수고를 하므로 성령께서 보화의 보따리를 풀어 놓았기 때문에 우리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신명기 28장 12절에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찌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했으며
신명기 12장 7절에 “거기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을 인하여 너희와 너희 가족이 즐거워할찌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신앙의 유산이란 놀랍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온 가족이 축복을 받습니다. 미국의 메사추세스주에 뉴햄프턴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약 3만 5천명이 사는 작은 도시로 특산물이나 관광 상품이 없이 조그마한 오두막집 하나로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있습니다. 그 집에는 미국 역사를 새로 만든 위대한 집이라는 간판이 붙어있고 그 밑에는 2백년전에는 조그마한 오두막집이었다는 글이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로 그 집 출신 인물들을 기록하여 놓았는데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 오두막의 본래 주인은 18세기 미국 대각성운동을 일으켰던 프린스턴대학의 총장까지 역임했던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와 그 아내 사라의 집입니다. 조나단 에드워드와 사라는 18세기에 타락해가는 미국에 새로운 성령의 운동을 일으킨 위대한 설교자요, 전도자요, 기도자였던 것입니다. 그의 아내는 사라입니다. 그들은 슬하에 12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많이도 낳았습니다. 그러나 축하의 상을 받아야 될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 한국은 애를 안 낳아서 큰일 났습니다. 자식을 안 낳으면 한국 인구가 줄어들고 인구가 줄어들면 노동인구가 줄어들고 많은 사람들이 다 연로하여 고령자가 되면 그들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돌봐 줄 자원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나이 먹어가는 사람들이 앞으로 잘살게 되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가 일을 열심히 해서 많은 돈을 벌어서 그것으로써 세금을 내고 국가에서 우리를 위해서 잘 돌봐 주어야 되는데 이 젊은 애들이 없어지면 일할 식구가 없어지지 않습니까? 거기에다가 외국 노동자들을 자꾸 데리고 오면 문화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날 수 있고 여러 가지 어려운 시련이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애 많이 낳는 자가 애국자인 것입니다. 세월이 참 변했지요. 옛날에는 아들딸 분별말고 하나놓아 잘 기르자 했는데 이제는 아들딸 무조건하고 많이 낳아라.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드는 아들, 딸 12명을 낳았으니 훌륭해요. 내가 존경을 해요. 나는 셋밖에 못 낳았으니 낙방생입니다. 그런데 그가 5대를 지나면서 후손이 1,392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런데 이들 자손 가운데 보십시오. 조나단 에드워드와 아내 사라가 주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는데 그 후손들을 쭉 조사를 해보니까 부통령이 한사람 생겼고 대학총장이 13명, 주지사가 3명, 시장이 3명, 변호사가 149명, 판검사가 48명, 목회자가 116여명, 사업가가 75명, 발명가가 25명, 교수가 66명, 차관급 공무원이 82명, 의사가 68명이 배출된 것입니다. 이 외 장로와 집사도 286명이나 되었고 그들 가운데 깡패나 도둑놈이나 감옥에 들어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은 조나단 에드워드와 그 아내를 통해 수많은 자손들이 복을 받고 그들이 한 나라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신부인 성도 때문에 그 집안뿐 아니라 온 나라와 민족이 보화를 받을 수 있게 만들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 증명되었습니다. 오늘날 선진국가들의 경쟁 연합체인 OECD 회원국이 30개국인데 이중에서 일본과 터키 두 나라를 제외한 28개국 모두가 기독교 국가인 것입니다. 국민들이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섬기자 성령이 그 나라에 물질적인 보따리를 풀어 놓으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이 6.25사변 이후 잿더미에서 일어나게 된 것도 우리 한국에 1,200만 성도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신부인 성도들을 위해서 성령이 가지고 온 하늘의 모든 보화를 풀어 놓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20%가 아니라 50%, 100% 한국 민족들이 복음화 되고 예수를 믿게 된다면 하늘의 복이 막 쏟아지고 복이 떨어지는 소리가 소낙비 소리같이 들릴 것입니다. 6.25를 통해서 북한도 초토화되고 남한도 황폐화 되었지요. 똑같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세기만에 북한은 세계 일등 거지국가이고 남한은 세계에 새로운 선진국으로써의 도약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무엇이 다릅니까? 똑같은 조그마한 손바닥만 땅위에 똑같은 민족이 무엇이 달랐습니까? 북한에는 교회가 없고 공개적인 성도들이 없고 예배가 없습니다. 성령님이 공개적으로 역사할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는 교회가 있고 성도가 있고 찬양이 있고 예배가 있고 성령께서 공개적으로 역사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북한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보화 보따리를 안 열어 놓았지만 이곳에서는 성령이 보화의 보따리를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만 연 것이 아니라 우리 친정집에도 다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 잘 믿는 것이 제일 축복을 받는 직접적으로 통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리브가가 약대에게 물먹인다고 고생은 많이 했지만은 나중에 시집갈 때 걸어서 안 갔습니다. 자기가 물먹인 수고한 약대를 타고 철렁철렁 하면서 기다리는 신랑 이삭에게로 간 것입니다. 그 약대가 효과를 발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 약대에게 물먹인다고 고생했지만 그 사랑과 인내가 우리 천당 갈 때 영광의 수레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 24장 60절로 61절에 “리브가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우리 누이여 너는 천만인의 어미가 될찌어다 네 씨로 그 원수의 성문을 얻게 할찌어다 리브가가 일어나 비자와 함께 약대를 타고 그 사람을 따라가니 종이 리브가를 데리고 가니라”
여러분 약대를 타고 리브가가 갔다. 그러나 얼마나 좋습니까? 자기가 물먹은 그 약대를 타고 갈 때 마음에 감개무량했습니다. ‘아~ 내가 물먹인다고 고생은 했지만 내가 이 약대를 타고 가는구나!’ 마음이 감개무량합니다. 우리가 인간약대에 물을 먹인다고 고생했지만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여러분의 생활 속에 만들어진 것이 뭡니까? 여러분 금보다도 귀한 믿음의 영광인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천국 갈 때 사랑과 수고가 만든 영광의 연단된 믿음의 수레를 타고 천국에 갑니다. 그냥 홀랑 빈손 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수고를 하는 사람은 영광의 수레를 타고 천국을 갑니다. 내가 수고했지만 그 수고가 영광의 면류관이 되게 만들고 영광의 수레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애먹이는 남편이 축복이 되고 고통 주는 아내가 오히려 축복이 되고 괴롭히던 자식들이 사랑의 연단을 받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북한 때문에 고생이 많아요. 북한 약대가 밤낮 고함을 칩니다. 북한에서. 웩, 웩웩웩. 웩~ TV를 봐도 북한 약대의 울음소리, 라디오를 들어도 신문을 봐도 북한 약대소리가 납니다. 원자탄 만들었다 웨~엑~ 미사일 만들었다. 웨~엑~ 전부다 물 달라고 고함을 칩니다. 어떻게 하겠습니까? 북한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돼요? 우리도 같이 주먹을 쓰고 발길로 차고 네가 원자탄 만들었냐? 우리도 원자탄 만들께. 너희가 미사일 있냐? 우리도 미사일 있다. 이렇게 하면 박살나는 것밖에 없지요. 약대가 웩웩 부르짖거든 물을 마시워야 됩니다. 쌀 달라면 쌀을 줘야 합니다. 비료를 달라면 비료주고 옷을 달라면 옷 주고 돈도 주고 약대에 물을 자꾸 먹이다 보면 나중에 잠잠해져 버려요. 물 마신 약대가 울부짖을 이유가 없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북한을 준 것은 우리 대한민국이 북한에 물을 먹여서 하나님께 복 받으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북한이 우리에게 고통스럽고 괴로운 존재같이 보이지만은 결국은 보면 사랑을 실천하므로 말미암아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고 복을 받고 영광을 얻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황금수레를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불평하지 마십시오. 괴롭지만 약대의 물을 먹여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손해나는 것 같지만 우리의 손해는 하나님이 보충하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도와주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늘 축복으로 부어주니 그것은 감당할 수 없지요. “주라. 그리하면 돌려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해
서 안겨 주리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죄사함은 보혈로 받습니다. 그러나 상급은 우리의 사랑의 수고를 통해서 아름다운 황금 면류관을 받고 황금수레를 상급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3절에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 주변에는 사랑에 목마른 인간 약대들이 허다히 있습니다. 한번 살펴보세요. 제 설교 듣고 있는 여러분이 속으로 ‘아~ 그래. 우리 남편이 약대다. 그것도 조그만한 약대가 아니고 대 약대다. 대 약대!’ 그렇게 생각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남편 ‘아~ 우리 아내가 골치 아픈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까 암약대구나. 암 약대라. 고함치는 것을 보니 내가 이제부터 물을 먹여야 되겠다. 아이고! 우리 자식들 때문에 골치 아프다. 그러나 오늘 보니까 그것도 새끼 약대구나. 물을 달라는 구나!’ 해결책은 무엇이냐, 원망과 불평도 아닙니다. 주먹도 아닙니다. 교훈도 아닙니다. 이혼도 아닙니다. 물먹이는 것입니다. 사랑의 물을 먹이세요. 한없이 물을 먹습니다. 사막을 지나온 약대가 목이 말랐으니 80리터가 아니라 100리터라도 마실 것입니다. 물을 자꾸 마셔도 마시고 마시고 또 마시면 언젠가는 배가 터지라고 물을 채우면 그 다음 물 달라고 안합니다. 그 다음에야 웩웩 소리가 그치는 것입니다. 그때까지 물을 마시우면 고생은 했지만 그 다음에는 성령이 ‘잘했다. 내 아들아. 잘했다. 내 딸아.’ 보화를 열어 놓는 것입니다. 은금보화가 쏟아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보화, 물질적인 보화가 쏟아지고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울부짖음을 잠잠케 하기 위해 채찍질이나 억압을 하지 마십시오. 소용없어요. 사랑의 수고로 물을 마시우고 마시우고 마시우면 종결은 납니다. 한없는 물을 요구하는 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결국에는 승리를 가져오게 되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인간약대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몸 찢고 피를 흘려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생명수를 마시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아서 성령께서 이끌고 온 약대들에게 물을 마시우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고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의 보화를 받고 축복을 받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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