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이사야 › 토기장이와 진흙

조용기 목사 | 2009.07.15 22:36:3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사64:8
설교자
조용기 목사
참고
2005년 8월 28일 주일 2부 설교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서론]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토기장이와 진흙”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은 토기장이시요 우리는 진흙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토기장이는 좋은 진흙을 갖게 되면 아름다운 도자기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좋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려자기나 이조백자 등은 오늘날에도 세계적인 예술품입니다. 임진왜란 때는 한국의 도자기공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오늘날 일본이 세계적인 도자기 생산국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본론]

1. 토기장이가 찾는 진흙

첫째로, 좋은 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기장이가 진흙을 찾아야 됩니다.
찰진 좋은 진흙을 찾지 아니하면 좋은 토기나 도자기를 만들 수가 없습니다. TV 프로에 보니 처음 일본으로 끌려간 한국의 도자기공들이 일본에서 좋은 진흙을 발견하지 못하여 좋은 도자기를 구워낼 수 없어 참담한 고생을 한 것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여러분과 저도 하나님이 친히 택하신 진흙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토기장이가 진흙을 선택하는 것처럼 우리를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아무 흙이나 갖고 도자기를 구울 수 없는 것처럼 아무나 붙잡아서 하나님이 천국백성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좋은 도자기를 만들 때 주로 고령토를 사용합니다. 고령토는 원래 중국의 가오링에서 많이 산출된다고 해서 그 이름을 고령토라고 불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경남 하동지방에 많이 있습니다. 이 고령토는 약간 회색을 띤 백색으로 조선백자 분청사기, 청자상감자기의 백색상감 등을 만들 때 사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동의 고령토는 지금까지도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흙이 있어야 됩니다. 아무 흙이나 가지고 도자기를 구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천국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를 선택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나 주님이 불러서 천국백성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5절로 16절에 보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내가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고 힘껏 뛴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시고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원하여서 택해 주셔야 하늘나라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1절에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행위로 말미암아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해서 불러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기에 응답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골라 선택해서 그 진흙으로 그릇을 만드는 것이지 아무 산이나 들에 가서 진흙을 파서 그로써 도자기를 만들지는 아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고 우리는 진흙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택한 진흙을 토기장이는 파서 공장으로 옮겨 그 진흙을 잘 씻어서 돌이나 지푸라기나 흙을 제하고 온전히 토기를 만들 수 있는 재료로 만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세상에서 파내어서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그릇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1장 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만세전에 우리를 예정하사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미 하늘과 땅과 세계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짓기도 전에 만세전에 우리를 보시고 아시고 주님이 택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셨다고 말씀하시니 하나님의 계획의 장대함을 보고 우리 마음에 감동을 느끼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토기장이로써 우리 같은 진흙을 만세전에 이미 택하여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이끌어야 예수께로 오시지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예수께로 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번 제주도에서 우리 실업인선교대회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성악가인 패티김 여사께서 간증하는 간증을 듣고 상당히 제가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패티김 여사는 46년간 음악인생을 보냈는데 어릴 때부터 어머님이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주님을 섬기면서 늘 “내일 교회 나가자. 예수 믿으라.”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셨으나 마음에 조금도 감동이 오지 않아서 어머니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언간 세월이 지나서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이제 패티김 여사는 연세가 68세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년 전에 갑자기 마음속에 교회에 나가야 되겠다는 감동이 생겨서 마음에 결정을 내리고 스스로 교회에 나와서 결단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모시고 하나님 백성이 되었다고 간증을 했습니다. 어머님께서 평생을 통해서 그 딸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이 마음에 작정하시고 패티김 여사를 선택해서 구원하기로 하셔서 부르시니까 순식간에 그 마음에 결정을 하고 예수를 믿고 교회를 나오게 된 것인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교회에 나올 수가 없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전도하지만 우리 전도 때문에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전도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난 아무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도하면 우리 전도를 하나님이 통해서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예수를 믿고 너무나 기뻐서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저를 주께로 인도한 선교사님에게 하루는 오후에 와서 자랑을 했습니다. “야~ 내가 오늘 전도해서 몇 사람을 구원했다.” 그분이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나를 꾸짖는 것입니다. “어떻게 네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느냐? 너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다. 너는 그냥 전도할 따름이지 구원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그때 제 마음이 굉장히 화가 나고 그 선교사가 괘씸했습니다. 나는 죽도록 애를 써가지고서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고 난 다음 자랑을 했는데 칭찬은 안 해주고 얼굴이 시뻘게서 네가 누구를 구원한단 말이냐? 구원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꾸짖을 수가 있느냐? 굉장히 원망스럽지만 그 말이 평생에 저의 마음속에 교훈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구원할 수 없어요. 우리는 그냥 전도할 따름인 것입니다. 우리의 전도를 사용해서 구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열어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예수를 구주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셔서 교회로 불러 모으신 것이 마치 토기장이가 진흙을 파서 공장으로 옮겨와서 그것을 물로 잘 씻어서 깨끗한 진흙으로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늘나라 공장인 교회로 불러 오셔서 예수님의 보혈과 말씀으로 우리를 회개시키고 깨끗이 씻어주신 것입니다. 교회 와서 말씀 들을 때 우리 마음속에 감화, 감동이 오므로 우리가 죄를 회개하잖아요. 그리고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 마음을 씻고 또 말씀으로 정결함을 받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냥 죄인된 그대로 교회 와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교회 와서 반드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회개시켜 주시고 보혈로 씻고 말씀으로 정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말하셨으며
에베소서 5장 26절에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흙 같은 우리를 택하셔서 교회라는 거룩한 하늘나라 공장에 데리고 오셔서 말씀과 보혈로 씻어서 깨끗한 진흙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2. 그릇을 만들기 위하여

둘째로, 이제 이 진흙을 가지고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는 진흙을 부드럽게 부숴야 합니다.
토기장이는 진흙을 싣고서 공장에 오면 공장에서 깨끗이 씻고 난 다음에 그 진흙을 찰지게 만들기 위해서 부숴뜨리는 것입니다. 진흙 그대로 가지고는 할 수 없어요. 뭉쳐있으니까 그것은 그릇이 되지 않잖아요. 잘 부수고 깨끗하고 짓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하늘나라의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교회 와서 말씀과 성령으로 보혈로 씻어주실 뿐 아니라 그다음 우리를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그냥 쓰다듬어서 깨뜨려지지 않습니다. 두들겨야 깨지는 것이지요. 시련과 환난을 당해서 깨어지는 것입니다.
시편 51편 17절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상해야 깨어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에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하나님이 우리를 상하게 하시고 징계를 내리시고 그래서 우리를 깨뜨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들부들하고 순종하는 마음을 갖게 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중세의 한 수도원에 젊은 수도사 한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좋은 수도사가 될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그 수도원에서 가장 존경받는 나이든 수도사를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수도사님! 어떻게 하면 수도사님처럼 훌륭한 수도사가 될 수 있습니까?” 마침 땅을 고르고 있던 나이든 수도사가 단단한 흙덩이를 가리키며 “자네 이 흙에 물 좀 부어주게.” 젊은 수도사는 아무 생각 없이 물을 떠와서 그 흙덩이 위에 물을 부으니까 흙덩어리가 물위에 떨어지자 좌르르 흘러내려 버렸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나이든 수도사가 곡괭이로 흙을 산산이 부서뜨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물을 부어 달라고 했습니다. 젊은 수도사가 물을 붓자 이번에는 물이 흙에 다 스며들어가서 흙이 물에 축축이 젖었습니다. 그제야 나이든 수도사가 말했습니다. “보았는가 흙이 부서지지 않고 덩어리로 있을 때는 물을 부으면 다 흘러내려 버리고 그 흙덩어리에는 아무씨도 심을 수가 없고 아무 채소도 뿌리를 내릴 수가 없네. 그 속에는 식물이 자랄 수 없지. 자네가 훌륭한 수도사가 되고 싶다면 먼저 진흙덩어리로 남아있지 말고 부셔져야 되네. 자네가 부셔져야 성령의 생수도 말씀의 생수도 자네 속에 스며 들어와서 하나님의 생기가 넘쳐날 수 있게 된다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단단한 흙에는 물이 스며들지 못합니다. 진흙을 부셔트려야 비로소 토기장이가 원하는 그릇의 모양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흙을 부셔뜨려서 적당히 물을 섞어 찰지게 만들어야 농노에 얹어서 그릇을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진흙 그대로 물을 섞어 놓으면 그대로 물 섞인 진흙이지 찰지지 않습니다. 그것을 잘 짓이겨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과 말씀의 물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가 하나님 손에 말랑말랑하게 찰지게 되어서 하나님이 우리를 마음대로 만들 수가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손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들 수 없지 않습니까? 우리를 깨뜨려서 말씀과 순종을 통해서 찰지게 만들어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순종을 어떻게 합니까? 깨어져야 순종하지 자기중심에 서서 뻣뻣하게 있을 때는 순종하지 않지 않습니까? 나무가 뻣뻣하게 있으면 바람이 불면 꺾어지잖아요. 그러나 대나무는 바람이 불면 쏵 허리를 굽혀서 바람부는데로 순종하잖아요. 우리가 뻣뻣하게 서있으면 하나님의 명령을 반항하다가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종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허리를 굽히고 따라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해야 하나님 손위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14절로 15절에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본의 뇌성마비 시인 미즈노 겐조는 1946년 초등학교 4학년 여름에 심한 이질에 걸려서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뇌성마비가 되어 눈, 귀, 뇌, 내장 외에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환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극한 절망 속에서 미즈노는 한 목사님을 만나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마음속에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마음속에 희망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희망의 복음인 것입니다. 좌절과 절망과 죽음에 처한 사람도 말씀을 들으면 그리스도를 통해서 희망이 솟아나는 것입니다. 이 미즈노는 희망이 넘쳐났습니다. 마음속에 희망이 생기자 혼자 성경을 읽을 수가 없기 때문에 늘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어머니는 미즈노를 기대어 앉게 한 다음 성경을 펼쳐주면 한 면을 읽고 다시 책장을 넘겨주면 또 읽고 하는 식으로 성경을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전신이 마비되고 눈알만 살아있기 때문에 눈만 왔다 갔다 하지 입도 움직이지 못하고 손발도 움직이지 못하니 어머니가 늘 성경책장을 넘겨줘야 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어머니가 책장을 넘겨주지 않고 앉아서 졸았기 때문에 한 면을 수십 번씩 번갈아 읽었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희망을 얻은 미즈노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벽에 고쳐놓은 알파벳을 어머니가 차례로 하나씩 짚어갈 때마다 자기가 말하고 싶은 글자가 나오면 눈으로 깜박깜박하면 어머님이 그 글자를 적고 또 쭉 짚어나가면 그 알파벳에 맞는 글자가 나오면 눈을 깜박깜박하면 어머니가 그것을 적고 그래서 시를 적습니다. 그러니 한 단어를 만드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겠습니까? ‘ㄱㄴㄷㄹ’부터 ‘ㅏㅑㅓㅕ...’ 쫙 적어놓고 ‘ㄱ’을 손가락질하고 ‘ㅏ’를 하면 아니면 눈으로 옆으로 아니라고... ‘ㅑ’를 찍으면 맞으면 눈으로 깜박깜박 해줍니다. 이렇게 눈만 쳐다보고 어머니가 알파벳을 손가락으로 지적하면서 글자를 만들어서 시를 짓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쓴 시가 지금은 여러 권의 시집이 되었습니다. 그의 시중에 이런 시가 있습니다. ‘내가 괴롭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리다. 모든 형제, 자매들도 괴롭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지지 않았으리라. 만일 우리 주님이 괴롭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없었으리라.’ 고난 중에 말씀을 만나자 그의 영혼이 찰지게 되어 하나님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빚어졌던 것입니다. 이 미즈노는 그런 고난을 통해서 마음이 깨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사용하는 시인이라는 그릇으로 만들어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서 우리 마음이 찰지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찰진 흙을 농노에 얹어서 옛날 사람들은 발로써 눌러서 농노를 빙글빙글 돌리면서 찰진 진흙으로써 그릇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택한 진흙으로 불러서 씻어서 깨끗해서 하나님의 손으로 농노에 얹어서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아이 나는 목사도 아니고 교사도 아니고 지역장도 구역장도 아닌데 무슨 그릇이냐?” 하나님은 우리 각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쁜 그릇을 만들었는데 그 그릇 중에서 기뻐하는 그릇도 있고 소망으로 넘치는 그릇도 있고 사랑으로 넘치는 그릇도 있고 구제를 하는 그릇도 있고 가르치는 그릇도 있고 형형색색의 그릇이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사람은 다른 아무 사업을 안 한다고 할지라도 얼굴에 언제나 기쁨이 넘치는 그릇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만나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마음이 답답하고 괴로워도 그분의 얼굴만 보면 태양처럼 빛납니다. 즐거움이 넘칩니다. 하나님의 기쁨의 그릇이 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갖다 주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은 위로의 그릇이 되어서 사람들마다 위로를 받고 사람들을 격려하고 힘을 주고 위로해주는 놀라운 그릇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형형색색의 그릇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로마서 9장 21절에 보면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형형색색의 여러 가지 그릇을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다행히 또 하나님께서 주의 종이라는 그릇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는 주의 종이 안 되면 장로라는 그릇도 있고 권사라는 그릇도 있고 안수집사라는 그릇도 있고 평집사 그릇도 있고 지역장, 구역장 그릇도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기쁨을 나타내는 그릇도 있고 소망을 나누는 그릇도 있고 사랑을 나누는 그릇도 있고 구제를 나누는 그릇도 있고 어떤 그릇이든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데로 그릇을 만드는 것입니다. 큰 집에는 많은 손님을 대접하기 때문에 온갖 그릇이 많습니다. 한 종류의 그릇만 있으면 큰일 나지요. 크고 작은 그릇이 많이 있는 것처럼 하늘나라는 큰 나라 아닙니까? 그 하늘나라 백성들을 대접하기 위해서는 온갖 종류의 그릇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어떤 그릇인가를 살펴봐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떤 그릇으로 만들어서 사용하시는지 자기의 직분을 알아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그릇에 충성을 다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는 목사 아니니까 난 안할란다.” “나는 장로 아닌데 내가 뭘 섬기겠는가?” “나는 권사도 아닌데 왜 열심을 다해?” “지역장도 아닌데 내가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돌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릇을 만들기 때문에 내가 큰 그릇이든지 적은 그릇이든지 영광스럽던지 천한 일을 하는 것이든지 모두다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에 위대한 것입니다. 나를 섬기면 위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그릇이기 때문에 어떤 그릇이 되었든지 하나님 손에서 사용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위대하지 않아요?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우주와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섬기는 그릇된 것을 우리는 기쁘게 생각하고 감사하게 생각해야 될 것입니다.

3. 불가마에 넣어 굽다

셋째로, 농노에 얹어서 하나님이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면 그 그릇을 불가마에 넣어서 구워야 되는 것입니다. 불가마에 넣어서 굽지 아니하는 질그릇은 그냥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아무리 농노에 얹어서 좋은 형태의 그릇을 만들었을지라도 굽지 않은 그릇은 그대로 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불가마에 넣어야 되는데 우리의 불가마는 시련과 환난의 불가마가 있고 성령의 뜨거운 불가마도 있습니다. 먼저 시련의 불가마를 우리는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불로 굽지 않는 진흙은 쉽게 부스러짐같이 우리도 시험과 환난의 불가마를 지나지 아니하면 아무리 하나님이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어 놓으실지라도 우리는 쉽게 부서지고 쓸모없게 되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하나님은 여러 가지 시험과 환난을 통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한 노인이 도끼자루에 쓸 나무를 구하러 손자와 함께 산에 올라갔는데 산을 깡충깡충 뛰어 올라가던 손자는 산 중턱도 못가서 도끼자루에 합당한 나무를 찾았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향해서 고함을 쳤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여기에 괜찮은 나무가 있어요. 이 나무를 베어서 도끼자루로 만들면 아주 훌륭한 도끼자루가 될 것입니다. 더 올라갈 필요 없어요. 할아버지! 이 나무를 베어서 도끼자루를 만듭시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 나무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것은 안 된다.”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산을 좀더 올라가야 해!”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자는 화가 나서 “할아버지 다리도 아프고 산에 올라가는데 힘이 드니까 이 나무를 택합시다. 할아버지 이 나무 보지도 않으시고 비평만 하십니까? 이 나무좀 보세요. 안된다고 말만하지 마세요.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요.” 이 말에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면서 “얘야, 나무가 아무리 겉으로 좋게 보여도 낮은데 있는 나무들은 높은 곳을 휩쓸고 지나가는 폭풍우를 맞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토록 괜찮게 보여도 속은 아주 비었고 물렁물렁 하단다. 이러한 나무를 베어서 도끼자루를 만들어 놓으면 도끼를 몇 번 흔들지 아니해서 나무가 부러진다. 겉으로 번지르르 하다고 좋게 보지 말아라. 나무가 폭풍우를 만나서 많이 흔들리고 시련을 겪어서 속이 단단하고 알차야 멋진 도끼자루가 된다. 그러므로 너 보기에 아무리 좋게 보여도 산중턱에 있는 나무로써는 도끼자루를 만들지 못한다. 반대로 높은 곳에서 사나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자란 나무들은 그 바람을 이겨내기 위해서 아주 단단해지지. 그래서 도끼자루는 산위의 나무로만 만들어야 한단다.” 이렇게 그 손자에게 할아버지가 교훈을 했다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습니다. 맞습니다. 불같은 시련을 겪지 않은 인생은 어려움 앞에서 쉽게 굴복하고 맙니다. 시련을 통해야 순종하는 강한 신앙인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일본의 어느 회사가 직원들을 선택하는데 어디에서 직원면접시험을 하느냐 보니까 후지산 꼭대기에서 직원 면접을 합니다. 후지산이 굉장히 높지 않습니까? 그 산에 꼭대기에 올라온 사람만 면접을 한다고 그럽니다. 그만큼 체력이 강해야 회사원으로써 일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체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신청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그릇은 불가마에 구워야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이 선택한 진흙이요, 깨뜨려서 하나님께서 농노에 얹으셔서 아름다운 모양의 그릇을 만드셨다할지라도 이것이 구워져야지 시험과 환난을 통하여 속이 강해지고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지 그렇지 않고 약한 진흙으로 있으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어서 그냥 부스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시련을 통해야 순종하는 강한 신앙인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로 13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1장 3절로 4절에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불같은 시험을 통해서 인내가 만들어지고 강해져서 부족함이 없게 되어서 하나님이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깨어지지 않고 튼튼한 그릇이 되게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철물공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 신앙생활을 시작한지 8년 내내 믿지 않을 때보다 더 많은 어려움과 시련을 겪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불신자 친구가 하루는 그를 찾아와서 말했습니다. “자네는 예수를 믿고나서 시련을 더 많이 겪는 것 같군. 참 딱해서 볼 수가 없네.” 그러자 철물공은 자신이 들고 있던 철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철을 보게. 이것은 마차 스프링을 만들 것인데 불에 달구고 두드리고 찬물에 넣어서 단단하게 만들어야 하네. 한번 만에 단단한 스프링이 되지 않아. 불에 달궈서 다시 물에 넣고 또 불에 달궈서 물에 넣고 두들기고 해야 단단해지는 거야. 만일 철이 무르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지. 마찬가지로 내가 예수 믿은 후에 시련을 더 많이 겪은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쓰시려고 단련하시는 것일세. 나중에 약해서 버려지는 것보다 지금 고난을 받고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강해지는 것이 좋지 않나? 걱정하지 말게. 딱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자네가 딱한 사람이네.”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맞아요. 마차 스프링을 만들었는데 약하게 만들어 놓으면 마차에 넣었을때 부스러지면 못쓰게 되잖아요. 부스러지기전에 물에 넣고 불에 넣고 두들기고 또 물에 넣고 불에 넣고 두들겨서 많은 시련을 통해서 단단해진 스프링이 되어야 마차에 장치를 해도 부러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련과 연단을 통해서 만들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사용하려고 적소에 넣었을 때 부스러져 버리면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용할 사람은 많은 시험과 환난과 연단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주의 종이 쉽게 되나요? 주의 종이 되려면 평신도보다 더 많은 불과 물을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믿음이 강해지고 하나님에 대한 헌신이 깊어져야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지요. 온실에 화초처럼 길러가지고서 주의 종으로는 절대로 쓰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주의 종들이 중간 탈락하는 것은 시험과 환난을 통해서 너무 고통스러우니까 그만 부스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시험과 환난을 이겨야 좋은 그릇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의 불가마를 통하게 하시는 이유는 단단하고 강한 신앙인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불가마를 통해야 어려움을 만나도 부서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난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멋진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환난과 고통의 불가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거기에 보태어서 성령의 불가마를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성령의 불을 받아야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의 영롱한 빛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릇을 불가마에서 구워서 내놓으면 아름다운 색깔을 내잖아요. 그냥 불만 붙여놓고 구워서 아름다운 영롱한 색깔이 나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유약을 칠해서 불가마에 넣어서 구우면 아름다운 색깔을 가지게 되는데 그 유약이 성령의 유약인 것입니다. 성령의 유약을 발라서 성령의 불가마를 통하면 우리가 영롱한 색깔의 의, 평강, 희락,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진 그릇이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온 천하에 보내어서 영광으로 사용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영국의 조지 왕이 도자기 공장을 방문했는데 가는 길목에 똑같이 생긴 두 개의 꽃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나는 윤기가 있어 번쩍번쩍하고 아름답고 하나는 투박스럽고 광채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지 왕이 물었습니다. “한 도자기는 윤기가 나고 아름다운데 나머지 하나는 모양은 같은데 왜 저렇게 볼품이 없는가?” 그 물음에 안내자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윤기 나는 도자기는 불가마에서 구워진 도자기이고 투박하고 못생겨 보이는 도자기는 구워지지 않은 도자기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의 불가마에 들어갔다 나온 성도와 그렇지 않은 성도는 이처럼 차이가 납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하늘나라 영광이 반짝반짝 빛나지만 성령 충만하지 않은 사람은 아직 세상 미련이 붙어 있어서 세상 빛이 비취는 투박한 신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가마에 들어갔다 나온 성도만이 믿음, 소망, 사랑, 의, 평강, 희락의 영롱한 빛을 내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온 천하에 증거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에 시련과 환난의 불가마만 통할뿐 아니라 성령의 불가마를 통해야 되는 것입니다. 바울선생은 에베소교인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느냐”고 했습니다. 성령 받아야 돼요. 성령 충만해야 돼요. 그래야 하늘나라의 영롱한 영광의 빛을 비취는 귀한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시련과 환난을 통해서 내적으로 인격이 강한 인격이 되고 헌신과 충성스러운 그릇이 되었다할지라도 역시 성령의 불가마를 통해야 하나님의 영광이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성령의 불세례를 받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 집안에서뿐 아니라 온 이웃과 온 사회와 국가, 세계에 나타낼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진흙 같이 버려진 우리들을 택하사 하늘나라의 영광을 담는 아름다운 천국 그릇으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하며 만들어진 데로 우리는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쓰실까? 저는 어제 시청 앞 광장에서 우리 크리스챤 사회봉사 엑스포에 마지막 설교를 했습니다. 제가 설교를 하기 전에 희야라는 자매님이 피아노 연주를 했는데 나는 너무나 감동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대기실에서 같이 앉아 있는데 이 희야라는 자매님은 무릎밖에 없어요. 다리가 그렇게 짧아요. 그리고 손가락은 양손 다 두 손가락 밖에 없어요. 그런데 앉아서 연방 설교를 하는 설교를 듣고는 이 두 손가락 네 손가락 가지고 박수를 치고 감사를 해요. 그래서 난 가만히 앉아 나는 사지가 멀쩡한데 저 자매님은 무릎밖에 없고 네 손가락만 가지고도 저렇게 얼굴에 광채가 나고 하나님을 사랑하니 내가 부끄러운 생각이 났습니다. 나는 저 자매보다 사지가 멀쩡하고 건강하니 얼마나 감사해야 되겠는가. 그다음 제가 설교하기 전에 그 희야 자매님이 피아노를 치는데 이 네 손가락으로 얼마나 피아노를 기막히게 치는지 몰라요. 거기에서 제가 하나 느낀 것은 꿈과 믿음이 있으면 불가능이 없구나. 인생을 포기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 내가 꿈을 가지고 할 수 있다는 믿음만 가지면 어떤 일도 할 수 있겠구나. 이 네 손가락으로 기가막히게 피아노를 쳐서 저는 정신없이 그 피아노 치는 것을 보고 야~ 하나님이 택하신 그릇은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구나~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 좌절하고 절망하고 스스로를 버리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서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주님 손에 내 인생을 맡기고 나는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긍정적인 꿈과 믿음을 가지면 어떠한 형편에 있는 그릇이라고 하나님은 사용하시는구나. 나는 이것을 가지고 굉장히 마음에 감동을 느꼈습니다.
화니 크로스비 여사는 소경으로 태어났지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가를 무려 500곡을 작시했습니다.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인도 하시니 /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등 우리가 즐겨 부르는 찬송 중에 크로스비 여사가 작사한 찬송이 많습니다. 그는 장님으로 태어났지만 그로써 좌절하고 낙심하고 절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꿈과 믿음을 가지고 그를 내놓으니까 하나님이 그 질그릇을 사용하셔서 이 놀라운 찬송가 작시가로써 사용하여 주신 것입니다.
헬렌 켈러는 소경에 벙어리에 귀머거리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박사학위를 세 개나 따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장님에 귀머거리에 벙어리면 손 털어 버리고 포기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고 예수그리스도께 의지하고 자기를 하나님 손에 맡기니까 토기장이인 하나님이 그런 질그릇도 놀라운 영광스러운 그릇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적인 복음가수로 알려진 레나 마리아 역시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었습니다. 다리 한쪽도 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장애자 올림픽 대회에서 수영으로 금메달을 두 개나 땄고 지금은 천상의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세계의 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고 다리하나가 없는데 보통사람 같으면 포기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러나 그는 있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내어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그 진흙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이 사용하는 영광스러운 그릇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팔도 없고 외다리밖에 없는데도 장애인 올림픽에 나가서 수영에 금메달을 두 개나 따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주를 찬미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지가 성한 사람들이 ‘나는 못해요. 나는 안돼요. 나는 할 수 없어요.’ 좌절하고 절망하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탄식하고 부정적이 된다면 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 될 것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처지에 있던지 우리가 하나님 손에 얹어 놓으면 하나님은 이 질그릇을 가지고 멋진 그릇으로 만들어 놓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입니다. 그는 전지전능, 무소부재하십니다. 그에게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으니 우리가 깨어지고 순종해서 주님께 우리 자신을 맡겨 놓으면 하나님이 농노위에 우리를 얹어서 하나님이 멋진 그릇을 만들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는 그릇이 되어요. 사랑하는 부형님! 여러분 하나님의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매님 여러분! 어떠한 처지든지 여러분은 하나님이 사용하는 놀라운 그릇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맡기고 난 다음 어떠한 시험과 환난의 불가마를 통해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여러분을 아름다운 하나님의 그릇으로 만들어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가마를 통해서 충만해지면 하나님은 여러분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영광을 담아놓는 그릇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흙같이 버려진 우리를 택하사 하늘나라의 영광을 닮는 아름다운 천국 그릇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형편이든 우리 자신을 하나님 손에 맡기면 하나님께서 최선의 그릇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시는 것입니다.
저는 17살에 폐병에 걸려 쓰러졌을 때 내 앞날은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희망은 좌절되었습니다. 전후에 우리 한국사회는 처참하게 파괴되고 삶은 어렵고 힘든 곳에 폐병환자가 되어 학업도 중지하고 머리는 이만큼 길러서 수염은 깎지 아니하고 나는 정처 없이 방황하게 될 때 내 인생은 버려진 인생이요, 이제는 앞날이 캄캄했습니다. 정말로 그 영혼의 깊은 밤은 형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내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고 내가 예수에게 제 인생을 맡겼을 때 주님은 그 질그릇을 사용하셔서 오늘날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나 하나님의 성령으로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러므로 결코 여러분은 인생에 낙심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토기장이시오, 우리는 질그릇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못 만드는 토기는 없습니다. 어떠한 질그릇도 하나님은 만들어 내실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나는 못났다. 부족하다. 별수없다. 버림받았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으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용하려고 택한 진흙입니다. 하나님께 맡겨 놓으십시오. 그리고 기도하고 찬미하십시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을 하십시오.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십시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감사하고 찬양하고 믿으십시오. 주님께서는 여러분을 놀라운 그릇으로 만들어 내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이 많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여!
하나님은 토기장시이오 우리는 진흙입니다. 못된 많은 삶을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셔서 하나님이 사용하는 진흙으로 씻어 주시고 깨뜨려 주시고 이겨주시고 살찌게 만드시고 그릇을 만드시고 불가마에 구워서 아름다운 인생이 되게 만들어 주심을 감사합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여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 스스로가 우리를 만들어가지 않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님께 내어 맡깁니다. 주의 원하시는 그릇으로 만드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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