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이사야 ›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조성심 | 2004.07.13 11:37:08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사11:6-8
설교자
조성심 자매
참고
새길교회
 마태복음 5장 9절에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셨을 때, 그 앞에 나오는 무리들을 향하여 들려주신 여덟 가지 복 가운데 하나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라 하셨는데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은 바로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조금 전 이라크의 비참한 전쟁 상태를 보았고, 그 전화 속에서 생명을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최순님 자매의 아픔을 기억하는 평화의 감수성도 들었습니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이렇게 평화를 이루기 위해 헌신하고 있는 이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평화란 무엇일까요?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성서에서 평화라는 단어는 구약에서는 ‘샬롬’, 신약에서는‘에이레네’로 사용되고 있고 이는 모두 영어로 peace로 번역됩니다. 우리말로는 화평, 평안 등으로도 번역되었습니다. 구약의 ‘샬롬’은 우리의 삶이 총체적으로 평안을 누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몸과 마음 그리고 삶의 조건들이 안정 상태를 이루며 인간의 인권을 보장받으며 살고 있는 상태. 고통과 갈등이 극복되어지는 상태를 샬롬이라고 합니다. 먹는 것, 잠자는 것, 생활하는 것 등이 보장되며, 사회적 긴장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며 전쟁의 위협이나 폭력의 횡포나 권력의 억압이 없는 세상에서 평안을 누리는 상태를 샬롬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정의가 이루어지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적 조건과 전쟁과 어떤 종류의 억압도 발생되지 않는 세상이 이루어지는 상태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참으로 평화를 갈망하면서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들은 늘 외세의 압력으로 시달렸고 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에서 평화와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전쟁은 가난을 가져왔고 권력자들의 횡포는 심해지고 민생은 불안하고 고달팠습니다. 일상의 평안으로부터 사회와 민족의 평안 모두가 간절하게 기다려지는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평화에의 갈망도 컸습니다. 이런 민족을 향하여 이사야 예언자는 평화의 세상을 외쳤습니다.

  “그 때에는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 젖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 곁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다”(사 11:6-8)

  이 예언의 말씀은 강한 것과 지극히 힘없는 것이 공생 공존하며 서로 해함도 없고 상함도 없이, 약한 자의 권리가 보장되며 서로 함께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존의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은 하나님의 영으로 가득해진 세상이 될 때 가능하다고 합니다.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성서는 이러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길이 무기나 군대의 강력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미가 예언자는 4:3절에서 “주께서 민족들 사이에 분쟁을 판결하시고 원근 각처에 있는 열강 사이에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나라마다 칼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사람마다 아무런 위협을 받지 않으면서 살 것이다. 이것은 만군의 주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무력으로 이루는 평화는 더 큰 무력을 부르고, 결국 무력으로 모두 망하게 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무력의 증강에 의한 평화는 로마의 평화입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평화는 무력을 버림으로, 우리의 마음이 낮아지고 욕심으로부터 벗어나고 약한 자들을 돌보는 하나님나라의 새 질서를 이루어 나갈 때 이루어지는 참 평화입니다.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사람이 되며 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즉 세상의 질서와는 거꾸로 인 하나님나라의 질서를 세우며 그 일을 위하여 자기를 버리는 때, 평화를 이룰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신약성서의 평화라는 희랍어 ‘에이레네’의 더 깊은 의미는 전쟁이나 고통과 갈등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의미하기보다는 전쟁이나 고통, 갈등을 극복하기 위하여 애쓰고 힘쓰며 그것을 위하여 온 마음으로 실천하며 노력하고 있는 상태가 바로 ‘에이레네’라고 합니다.

  멀리는 이라크 전쟁을 비롯하여, 민족들 간의 분쟁을 그치게 하기 위하여, 우리의 남북관계를 평화 공존으로 만들기 위하여, 약한 자들과 연대하기 위하여, 그리고 바로 옆 사람과의 관계에서 맺힌 것을 풀기 위한 애씀과 노력으로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어려움을 감내하는 과정 중에 있다면, 우리는 평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생물학적 여성이 무조건 평화의 본능을 가진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가부장적 구조에서 평화를 상대적으로 박탈당하고 사는 여성들의 경험은 비평화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한 능력으로 키워졌고, 여성들의 그러한 일상적 삶 자체가 평화를 위한 투쟁일 수 있기에, 여성들이 평화를 더 많이 이루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한 일을 시작하고 있다면 남성도 여성도 모두 그 일을 시작하신 이인 예수의 손을 함께 잡고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이루기 위하여 일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주님,
새 길 위에 선 여성들이 주님 앞에 ‘평화’를 나누는 시간을 갖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삶에서 보여주신 그 길을
즐거운 마음으로 걷게 하시고,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도 죄인들의 용서를 구하시던
평화의 능력을 덧입어서,
우리가 서 있는 그 곳이 평화의 장소가 될 수 있도록
영과 혼이 애쓰고,
자기를 낮추고 자기를 버리는 일에 힘쓰는
예수 따르미’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받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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