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데살로전 › 감사

nulserom | 2006.11.19 17:17:22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살전5:18
설교자
강종수 목사
참고
2006.11.19 주일 오전

감사(感謝)라는 한자는 느낄 감, 사례할 사 자로 생각이 있는 사람의 사례를 뜻합니다. 영어 탱큐(thanks)는 씽크(think)라는 생각에서 어근을 가지고 왔습니다. 본 절에 감사라는 헬라어 유카리스테오(eujcaristevw)는 감사하다, 감사를 표현하다, 감사를 드리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일년 중 3대 절기로 감사할 것을 명하셨습니다(출 23:14-17;레 23:4-8,15-21,34-43).

신 16:16『너의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17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무교절은 유월절기로 출애굽 한 해방을 기념하는 절기이며
칠칠절은 오순절로 가나안땅에 입성하여 얻은 곡식을 드리는 맥추절기입니다.
초막절은 장막절, 수장절이라고도 하는데, 10월에 가을 추수를 하고 창고에 들이는 것을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이란 절기는 수확의 감사제 즉 추수감사제의 성경적 기원이 된 것입니다.
출 23:16『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620년에 영국에서 핍박받고 메이틀라워호를 타고 미국으로 향한 퓨리탄(프로테스탄트)들이 도착하여 농사를 짓고 감사하게 된 추수감사제는 1941년 미국의회에서 11월 넷째 토요일을 추구감사절로 정하기까지 했습니다.
한국의 추수감사제는 1904년 장로교가 11월 10일을 감사주일로 지킨 것에서 시작되었다가 1914년, 각 교파의 회의를 거쳐 미국인 선교사가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입국한 날인 11월 셋째 주 수요일을 기념하여 감사일로 정하고 예배를 드리다가 그 후 수요일을 주일로 바꾸어 현재 11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감사라는 주제로 성경에서 주고자 하는 영적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구원에 대한 감사는 불변합니다

본 18절『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그 범사라는 것은 삶의 전반에 걸쳐 감사하라는 말입니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구원 주심에 감사해야 할 것이고 이 감사가 모든 감사의 기초가 되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원된 것을 가장 중요하게 감사하며 큰 절기로 드리듯이 기독 성도가 된 구원의 백성은 애굽같은 세상에서 빼내심을 받아 구원받은 것을 일생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살후 2:13『주의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구원의 하나님을 제대로 감사할 줄 알아야 험한 세상을 승리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기독교인의 역사관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준으로 조건적이고 문화와 환경적 요소에 민감하면서 감사했다가 말았다가 하는 성질의 감사가 아닙니다. 혹 어려움이 있어도 구원의 하나님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겨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합 3: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감사하며 제사를 드리는 물질과 시간은 대단합니다. 그들은 연간 제물을 총 189마리 드리고(민29:12-34), 총 171일을 하나님께 감사와 제사를 드린다고 시간을 바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정신의 삶이 오늘날 세계 부호들이 유태계 사람이란 사실입니다.
사람이 땀만 흘린다고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총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기적과 은총 가운데서 노력의 결실을 얻어야 많은 결실을 낳게 됩니다.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발을 씻겨드린 한 여인을 두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눅 7:47『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같은 죄인으로서 같은 예수님의 보혈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반응을 일으키는 정도는 다릅니다. 그것은 순전히 구원의 내용에 감격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 다를 것이지 인격과 감정차이는 아닐 것입니다.
감정이 없어서 죽을 사람 살렸는데 가만히 있을 겁니까? 감정따라 상황이 달라질 수 있습니까? 그럴 수야 없습니다.


2. 범사의 생활을 인도하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런 감사는 생각하기 나름인데 감사하는 정신으로 살면 아주 좋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내 힘으로 산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겠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산다고 생각하고 감사할 줄 알면 모든 일에 은혜를 더 얻을 수 있습니다.
시 116:12『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

손을 움직이고 일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그리 못하는 사람에 비해 감사하는 것입니다. 병원 가 보시면 잘 움직이는 자체가 감사한 것입니다. 말하고 뛰는 것이 감사합니다. 찬송하고 박수 치는 것이 감사합니다.
감옥 죄수들을 보게 되면 자유로운 몸으로 살고 있음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4가지로 감사했습니다.
첫째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
둘째는 철학의 도시 그리스에 태어난 것
셋째는 소크라테스같은 스승을 만난 것
넷째는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습니다.

본래 기독교인이 범사에 감사하는 말을 하게 되는 근본 이유는 사실 구원의 체험을 얻고 보니 무엇이든 부족함보다 자족하고 고마울 따름이라는 감사의 느낌이 생긴 것입니다. 구원의 감사가 따로 있고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의무 같은 것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본성은 욕심이 많아서 가져도 더 가지고 싶은 갈급함 때문에 항상 감사보다 불만이 많게 마련입니다.
현대인의 스트레스는 부족이 아니라 과도한 욕심으로 인해 스스로 가진 욕망의 갈급함입니다.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치유될 수 있습니다.

딤전 6: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그러나 주의 복음증거를 위하여 물질과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힘과 노력의 기초입니다. 태만이나 이 정도면 되었다는 식이 아니라 모든 도전에 대한 정서가 감사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빌 4:6『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 다리 밑에 거지가 동네 불이 났을 때 거지 아들이, '아버지 우리는 집이 없어서 불 날 것이 없어서 좋아요' 라고 한다면 얼마나 비참하겠습니까? 그것은 감사하는 것과 다른 차원입니다. 문화에 대한 책임을 모르는 자의 소리입니다. 비전이 없는 자의 목소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삶의 정진을 위해 노력하고 땀흘리며 일해서 발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사에 감사를 안고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본 장은 데살로니가교인들이 주의 재림을 놓고 왈가왈부하면서 그 시기에 논란을 가지고 있어서 항상 긴장하고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권하면서 범사에 감사함으로 승리할 것을 가르친 내용입니다.
오늘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환난과 어려움에도 범사에 감사하며 이길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빌 4:12『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3. 감사는 우리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입니다

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예수 안에서 구원을 얻고 예수 안에서 역사관이 달라져서 내세를 알고 지구촌을 이끄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알게 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특히 인생으로 태어나 구원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감사하는 삶의 정신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향하신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라고 해서 감사할 것은 하나님께 억지로 하나님 위해서 한다는 말이 아니고 우리 자신을 위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말씀입니다.
감사함은 우리 자신의 영혼과 생활을 잘 되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뜻, 곧 선하시고 축복된 삶을 얻을 길이 된다는 말입니다.

이웃을 위해 축복의 말을 잘 하고 살아야 하는데, 알고보면 이웃에게 평안의 행복을 비는 것은 결국 스스로가 잘 되는 길이 됩니다.
마 10:12『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감사함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향하신,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을 위하기 전에 우리 자신이 잘되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축복된 뜻이란 말씀입니다.


조선 건국 이래 최고의 물질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세계가 지금 최고의 과학 문화와 물질시대를 살아갑니다. 이런 와중에 돈이란 것을 신처럼 귀하게 여기다가 영혼이 망가져 가고 있습니다.

히 13:5『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신 주의 말씀 기억하면서 범사에 우리가 얻은 환경 감사할 줄 알고 구원의 은혜를 기초하여 범사에 감사하는 마음이 넘칠 때 비교의식으로 스트레스 받는 일도 없을 것이며 오히려 삶이 즐겁고 그러므로 더 윤택해질 수 있는 기회가 올 것입니다.

불만의 사람보다 감사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승리의 비결인 줄 알고 범사에 감사하면서 밝은 얼굴, 자족하는 얼굴, 즐겁게 일해나가는 얼굴, 지금 감사로 비전을 달려가는 멋진 얼굴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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