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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라온 사람들

마태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393 추천 수 0 2019.02.04 23:3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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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1-12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989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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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라온 사람들

마 2:1-12, 주현절 주일, 2019년 1월6일

 

1.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2.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3.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4.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5.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6.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7.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8.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9.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서 있는지라 10.그들이 별을 보고 매우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11.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12.그들은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동방박사 이야기


마태복음은 예수 탄생에 관한 아주 특별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이야기인데, 주일학교 어린이들의 성탄절 연극의 소재로 자주 등장합니다.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그 이야기는 헤롯 왕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경이 말하는 헤롯은 ‘헤롯 아켈라오’(Herod Archelaus)로서 로마 총독과 더불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최고 통치자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인 헤롯 왕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절에 어떤 특별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마 2:1,2절은 담백한 어조로 그 사건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헤롯 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왔노라 하니...

 

이 구절에 세 사람이 거론됩니다. 한 사람은 헤롯 왕이고 또 한 사람은 예수이고 세 번째는 동방 박사들입니다. 이야기 전체로 보면 헤롯과 동방 박사들의 활동이 주로 다뤄집니다.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러왔다는 동방 박사들의 말에 예루살렘이 시끄러워졌습니다. 그럴만합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삶이 팍팍했습니다. 뭔가 세상이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열망이 불탔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방 박사의 말에 귀를 기울였고, 또 어떤 사람들은 헛소문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헤롯 왕은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팩트를 알고 싶어서 유대교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서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메시야를 가리킵니다. 만약 메시야가 태어났다면 왕으로서의 자기 역할이 지대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미 5:2절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출생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바로 왼편에 있는 작은 마을입니다. 헤롯은 은밀하게 동방 박사들을 불러서 새로 태어난 유대인의 왕을 경배하려왔다는 주장의 근거가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그 아기를 찾으면 자신에게 알려달라고 일렀습니다. 헤롯은 자신도 경배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아기 예수를 정적으로 보고 없애버릴 생각이었습니다. 헤롯의 계획은 실패했습니다. 동방 박사들이 헤롯에게 아기 예수에 관한 것을 알리지 않고 자기들 나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성경 본문의 각주에 따르면 동방 박사들은 점성가들입니다. 당시의 점성가들은 최고의 지식인이고 과학자들이었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천문학자들이나 우주물리학자들입니다. 우리는 개인과 국가의 운명이 별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점성술을 더 이상 믿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별을 비롯해서 우주 현상과 지구의 자연 현상을 자세히 살피고 거기서 어떤 궁극적인 사실을 찾아보려는 자세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신앙적으로도 이런 자세는 옳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유일한 창조주라고 말합니다. 세상을 하나님이 홀로 지으셨다면 세상을 아는 것이 곧 하나님을 아는 것과 다를 게 없습니다. 마태복음 기자는 동방 박사들이 비록 이방인들이었으나 그들의 일을 신앙적인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예수 탄생 이야기에서 점성가들을 등장시킨 것입니다.


점성술이 현대 과학에서 용납될 수 없지만 가장 궁극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점성술 자체가 폐기된 것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지구는 전적으로 태양에 의존해 있습니다. 태양이 바로 하늘의 수많은 별들 중의 하나입니다. 어떤 시인은 태양을 가리켜 ‘아침에 뜨는 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태양 에너지가 10%만 줄거나 늘어도 인간은 지구에서 생존할 수 없습니다. 태양이 속한 은하계에는 태양과 같은 별이 천억 개가 있습니다. 천억 개는 상상이 가지 않는 숫자입니다. 우주에는 이러한 은하계가 천억 개 이상입니다. 현대 우주물리학자들이 관측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그렇고, 관측 너머에는 얼마나 더 넓은 우주가 있을지 모릅니다. 수없이 많은 별들과 태양과의 관계를 우리는 아직 모릅니다. 어느 날 은하계가 반으로 갈라질 수도 있고, 어느 별이 태양과 충돌할 수도 있습니다. 별과 우주의 메커니즘은 우리가 계산해낼 수 없습니다. 계산해내더라도 다시 그 계산을 뛰어넘는 신비입니다. 아득한 세계를 향해서 영적인 촉수를 예민하게 작동시킨 이들이 바로 점성가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런 점에서 영적인, 또는 영혼의 점성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눈에 보이게 증명되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일관되게 선포한 ‘하나님 나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이미 이곳에 현존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그런 믿음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불확실하다거나 비(非)실재라는 뜻은 아닙니다.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현존은 은폐의 방식이기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 경험을 광신적으로 추구하고, 어떤 사람은 냉소적으로 취급합니다.


음악경험을 예로 들어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작년 12월18일에 우리교회 반주자인 이 집사의 ‘이은혜 재즈 트리오’ 연주장에 다녀왔습니다. 피아노와 베이스 기타와 드럼이 만들어내는 재즈음악이 생생하게 경험되었습니다. 그날의 경험 이후로 다른 음악도 더 잘 느끼게 되었습니다. 수준이 높은 음악은 들으면 들을수록 더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그 음악에 많은 느낌과 경험들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입장에서 음악을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하나의 노하우를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악기나 가수의 소리가 어떤 세계를 가리키고 있다는 걸 느껴야합니다. 소리가 흘러가면서 만들어내는 근원적인 세계가 귀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음악 경험이 불가능합니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연구하다가 어느 날 특별히 이상하게 빛나는 별을 발견하고 먼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에만 매몰되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인생 전체를 걸 정도로 특별한 것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들이 처음 길을 떠날 때 과연 떠나야 하는지 말아야하는지 많이 망설였을 겁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은 당연히 말렸을 겁니다. 돈벌이도 해야 하고, 가족도 돌봐야하고, 사회생활도 해야만 합니다. 그래도 이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별빛이 그들에게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가 당시 가족과 친구와 주변 사람들의 인생은 모두 실패한 것이라고 매도하는 게 아닙니다. 영혼의 별을 본 사람의 인생과 그걸 못 본 사람의 인생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별을 본 사람은 길을 떠납니다. 영혼의 모험입니다. 하나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모험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어리석어보일 겁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신앙을 그들이 알아듣도록 설명하기는 힘듭니다. 다만 영혼의 별을 본 사람이기에 그들과 다른 인생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동방박사의 경배


동방 박사들은 헤롯 왕의 말을 뒤로 하고 다시 별을 좇아가다가 별이 아기 예수가 태어난 곳에 머문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궁극적인 진리를 찾은 사람의 기쁨은 무엇으로도 다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누가복음이 전하는 바에 따르면 예수 탄생을 가장 먼저 알게 된 목동들에게 천사가 이르기를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했습니다(눅 2:10). 동방 점성가들이 아기 예수를 만나는 장면을 마태복음 기자는 여전히 담백한 어조로 다음과 같은 보도합니다.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동방 박사들은 바로 앞에서 헤롯 왕을 만나고 왔습니다. 헤롯에게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을 겁니다. 특사 대우를 받지 않았겠습니까. 돌아갈 때 들리게 하려는 목적의 여행경비를 제공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당대 최고 권력자를 만나고 온 동방 박사들 앞에서 지금 벌어진 광경은 너무 대조적입니다. 막 태어난 아기 예수와 아기를 낳은 마리아가 보입니다. 성경에는 그 광경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습니다. 당연히 그 자리에 있었을 요셉에 관해서도 일언반구가 없습니다. 아기와 산모가 함께 있었다는 말만 합니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생존의 능력이 전혀 없는 존재입니다. 산모는 병자와 장애인을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사람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헤롯 왕이 아니라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태어난 아기를 경배하고 당시 가장 귀한 예물을 바쳤다고 합니다.


이 장면을 주제로 그린 명화가 많습니다. 파울 루벤스(1577-1640년)가 17세기에 그린 ‘동방박사의 경배’가 유명합니다.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보티첼리가 1475년에 그린 그림도 있고, 렘브란트가 1632년에 그린 그림도 있습니다. 그림에는 각각 화가의 특징이 나타나고 시대적인 화풍이 나타납니다. 화가가 생각하는 세계관도 드러납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렘브란트의 소박한 그림이 마음에 듭니다. 어떤 그림에는 군인들이나 귀족들도 나오는데, 그들은 옥신각신 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서로 다른 이들 그림의 공통되는 대목은 동방 박사들이 오직 아기 예수에게만 집중한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런 그림들을 보면서 마태복음이 전하는 동방 박사의 경배 이야기를 훨씬 실제적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입니다. 첫째, 새로운 생명인 아기에게 집중하는 세상이야말로 인류의 미래가 될 수 있습니다. 아기에게 집중한다는 것은 보살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떤 보살핌을 받느냐에 따라서 그 아기의 인생이 달라집니다. 어느 신학자의 말처럼 모든 어린아이들은 잠재적 메시아입니다. 아이를 보살피는 일은 개인에게만 맡겨질 수 없습니다. 사회 전체가 거기에 참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다 알다시피 유럽은 대학교까지 교육을 국가에서 책임집니다. 박사학위도 등록금 없이 받을 수 있습니다. 보편 복지가 실천되는 겁니다. 북유럽 국가들과 독일이 이런 점에서는 가장 앞서갑니다. 작년 연말에 우리나라에서는 유치원 문제로 나라가 흔들거릴 정도로 시끄러웠습니다. 유치원을 운영하는 분들은 유치원을 학원 같은 개인 사업으로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분들만 비판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가 총체적으로 자본주의에 구조적으로 물들었다는 증거입니다. 유치원 시절부터 돈과 경쟁에 묶이는 사회이니 출산율이 뚝뚝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돈을 경배하는 게 아니라 아기를 경배하는 세상이 오도록 노력해야하지 않을까요?


둘째, 동방박사들은 아기께 경배했을 뿐만 아니라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고 합니다. 그 세 가지 예물을 근거로 동방박사가 세 명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숫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두 명이라고 해도 좋고, 다섯 명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들이 바친 예물은 당시에 가장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걸 준비하기 위해서 돈도 많이 들었을 겁니다. 우리 인생에서 돈을 의미 있게 쓰는 게 중요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평생 돈을 쓰다가 죽는 것만큼 안타까운 인생도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이 없으면 생존이 위태롭고, 미래가 불안하기에 모두가 돈에 집중하면서 살기 마련입니다. 이런 체제는 정말 불신앙적인 겁니다. 그런데도 어떤 교회 지도자들은 자본주의를 기독교적인 체제인 것처럼 주장합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모든 문제들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보십시오. 조금씩 가난해져도 평화와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씩 작은 교회가 되어도 얼마든지 행복한 신앙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것입니다. 동방 박사의 예물에서 보듯이 우리 기독교인들은 실제 자신의 삶에서 예물을 드린다는 심정으로 살아야할 겁니다. 이런 문제를 개인의 도덕성에만 맡기지 않고 사회구조적으로 실행하려는 것이 보편복지 정책입니다.

 

별에 대한 집중력


우리는 지금 별을 따라와서 결국 아기 예수를 만나 경배하고 예물을 드린 동방박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동화처럼 따뜻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야할 삶의 방향을 정확하게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감동적인 삶을 살고 싶지만 현실이 우리를 무미건조하게 살도록 강요합니다. 현실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포기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속도가 더디더라도 성경이 말하는 그 감동적이고 의미 충만한 삶에 가까이 가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별에 대한 집중력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집중력입니다. 동방 박사들은 자기 나라에서부터 여기 베들레헴까지 별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별을 따라가다가 아무 것도 얻지 못할 개연성이 없지 않습니다. 중간에 다른 급한 일들이 일어나면 별 따라가기를 포기해야 합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별을 따라가는 열정 자체가 식어버리는 것입니다. 일상의 과잉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열정이 식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목사의 운명도 같습니다. 목회 자체에 과잉으로 노출되면 하나님을 놓칩니다. 목회를 전업으로 하는 목사도 하나님을 놓치는데, 철저하게 세속적인 원리에 의해서 작동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일반 신자들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놓친다는 말을 이상하게 생각할 분들이 있을 겁니다. 이걸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놓치는 것입니다. 삶과 인생이란 무엇인지, 왜 친구를 만나는지, 왜 결혼하고 아기를 낳고 돈을 버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거기에 매달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놓치는 삶입니다. 동방박사들은 자신들이 왜 순례를 시작했는지를 부단하게 생각했기에 베들레헴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없었다면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고향으로 되돌아갔을 겁니다. 이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자기를 절대화하고, 자기를 높이고, 자기를 확대하는 것만을 삶의 목표로 여기게 합니다. 별을 헛된 것으로 간주합니다. 별이 자신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여깁니다. 그런 방식으로 인생을 살다가 죽겠지요. 그것도 하나의 길이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길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2019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에게 별을 따라가는 또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동방 박사들처럼 별을 보고 생명의 근원을 찾아 순례하는 도반(道伴)입니다. 영혼의 차원에서 가장 친밀한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별빛이 더 또렷해지기를 바랍니다. 아기 예수를 경배하고 예물을 드린 동방박사들의 행운이 여러분에게 주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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