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가복음 › 나의 관심 예수님의 관심

크리스킴 | 2019.10.14 21:30:5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막3:7-12
설교자
김기성 목사
참고
말씀의 숲 교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https://www.youtube.com/watch?v=Q5vj56w_Hjg

나의 관심 예수님의 관심

(막3:7-12)


우리는 두 눈이 있어, 다 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우리는 보는 것만 봅니다. 다시 말하면,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관심 있는 것만 보게 됩니다. 본다는 것은 관심 있다는 것이고, 관심 있다는 것은, 따라가고 싶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온 나라에 퍼져갔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사방에서 몰려들었어요. 예수님이 지금 계신 곳은 갈릴리라는 작은 동네이지요. 그 갈릴리 호숫가를 중심으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갈릴리로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갈릴리에서만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유대와 예루살렘에서도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스라엘 지도를 보면, 가장 북쪽에 갈릴리 지방이 있고, 가운데는 사마리아 지역이 있고, 그리고 그 남쪽이 유대와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쪽에 있는 유대와 예루살렘 있는 사람들은, 북쪽 갈릴리로 가기 위해서는, 가운데 낀 사마리아를 통해서 올라가야만 최단거리인데, 그들은 사마리아를 통하여 가지 않았지요. 그 땅은 저주 받고, 더러운 땅이라 해서,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가서 삥 돌아서 갈릴리로 들어가지요.


그런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남쪽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도, 북쪽 갈릴리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꼭 만나 뵙기 위해서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예수님을 찾아 나온 것입니다. 한마디로, 전국이 야단이 난 것이죠. 예수님 한번 보기 위해서, 소문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한 것이죠.


여러분, 왜 이렇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아 온 것일까요? 이들이 분명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나온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병 고침을 받기 위함이지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귀신들린 자, 나병환자, 중풍병자,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한쪽 손이 마른 사람도, 예수님이 고쳐주셨지요. 그랬더니 아마도 온 나라의 병자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몰려 든 것이지요.


저는 그런 생각도 해봐요. 이 지하에서 우리 교회가 부흥되기는 참 쉬울 텐데, 제가 말기 암에 걸린 사람을 안수하였더니,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암이 보이지 않더라... 휠체어에 실려 온 분이, 안수 한 번에 벌떡 일어나 걸어 나갔다더라... 아니면, 박상대 집사님이 왼손을 쓰지 못했는데, 기도 받고 나았더라.


이 세 가지 중에 한가지만이라도 된다면,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부흥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것이 일어나지 않고 있지요.


또 하나 그들이 이렇게 예수님께 몰려든 이유는, 그 당시 정치적인 이유에서 찾아온 것이지요. 예수님은 그 당시 정치적인 권력과 연계되어 있는, 바라새인, 사두개인, 서기관들에게 말씀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틀린 것은 틀리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말 예수님께 모여든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서 속박 당하고, 로마의 식민지에 있는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독립시켜줄 분이라고 생각해서, 모여든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몰려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뒤로하고, 이상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9절-10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시작) 몰려드는 많은 무리를 보시고, 예수님이 무슨 행동을 하셨습니까? 제자들에게 배를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배를 타고 많은 무리들을 피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피해서 배를 타고 다른 곳으로 가셨을까요? 예수님은 사람 모이는 것이 싫으셨을까요? 아니 복잡한 곳이 싫으셨을까요?


여러분, 그것이 아마도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과, 몰려드는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는 목적과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목적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죠.


모여든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다분히 현실적인 이유였지요. 병 고침을 얻기 위해서, 또는 정치적인 억압에서 해방 얻기 위해서, 이들은 인생의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오면, 해결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나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관심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중요하겠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무엇인가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 영혼의 문제, 내 영의 문제를 치유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고, 고난당하시고,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은, 죽어가는 영혼의 문제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찾는 자들은, 영혼의 문제는 관심이 없고, 현실적인 문제에만 집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잠시 그 자리를 피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께 질문하나를 던져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 육체적인 문제 현실적인 문제가 사실 너무 급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먼저 해결해 주시면, 그 은혜를 가지고 우리의 영혼의 문제까지 예수님께 해결 받으면 안 될까요?’ 우리 관심의 순서가 좀 바뀌어도, 예수님을 향한 마음은 변치 않을 건대요?


가난한자 부자 되게 해 주시고, 병든 자 고쳐 주시고, 압제에서 억압 받는 자 먼저 해방시켜 주시고, 그 현실적인 어려움을 먼저 해결시켜 주시면, 서서히 우리의 영적인 문제를 해결 해 주시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옳은 말씀이지요. 맞는 말씀 아닌가요? 하지만, 가만히 보면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영혼의 치유함 없이, 내 영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 없이, 내 영혼이 구원받는 것 없이, 우리의 병만 낫는다면, 그 다음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본성은 죄 성이 다분히 있어요. 가만히 내어 두면, 악한 쪽으로 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병이 나았어요. 건강한 육체가 되었어요. 그리고 다시 삶의 현장으로 가요. 그런데 그 건강한 육신을 가지고 또 죄를 짓고 살지 않을까요?


나의 내적인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았는데, 건강한 육신으로 회복되었다면, 그 건강한 몸은 또 다시, 죄를 짓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예를 들어 이런 것과 같습니다. 술을 많이 먹어요. 간이 안 좋아집니다. 간염이 되고, 간경화가 되고, 간암 직전까지 갑니다. 그래서 큰 병원에서 수술도 받고 치료를 받습니다. ‘내가 낫기만 하면, 건강을 위해 절대 술 담배 안하겠다!’ 마음으로 다짐합니다. 그런데 나았습니다. 퇴원합니다. 건강이 너무 좋아집니다. 그런데, 건강해 졌다는 이유로, 잊어버리고 조금씩 틈을 줍니다. 서서히 한 모금씩 먹고, 또 먹고, 또 먹습니다.


그러면, 다른 상황을 보죠.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에, 매일 같이 그 병원을 돌고 기도하는 병원 목사님을 만납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진지하게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혹시 내가 죽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냥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일까? 아니면, 죽음이후 또 다른 곳이 있을까?


병원에 누워있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죠. 목사님의 말씀을 듣다가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되고, 죽음 이후에 갈 곳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은혜를 얻게 됩니다. 그 가운데 수술도 잘 되었습니다. 병이 완쾌 되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만났기에, 퇴원 후에도 교회를 다니게 됩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술 담배 끊기 어려웠지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건강에 안 좋은 것을 끊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똑같이 병이 나았어요. 전자는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수술을 잘 받고 퇴원했어요. 또 후자는 하나님도 만나고, 수술도 잘 받고 퇴원했어요. 그렇다면 전자와 후자만 놓고 본다면, 누가 병원에 다시 들어올 확률이 더 적을까요?


여러분, 영혼이 치유되지 않으면, 우리의 속사람부터 치유되지 않으면, 병이 낫는 것도, 나라가 해방되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오히려 그들에게는 해가 되고, 악이 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우리 말씀의 숲 교회가 가야될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이 시대에 교회는 누구의 길을 따라가야 할까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길을 따라가는 공동체이지요.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는 현실적인 필요를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사람들을 부자 만들기 위해서 존재하는 곳이 아니지요. 교회는 정치적인 부분에, 잘사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내 영의 문제, 죄의 짐에서 벗어나고, 영혼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죠.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여전히 아직도 일차원적인 것에 머물러 있지는 않는지요?


‘교회만 다니면, 인생의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 됩니다. 자녀들이 복을 받고, 사업이 잘되고, 모든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도 얻고, 좋은 배우자도, 안 되는 임신도 됩니다. 병 고침을 받고, 염려 없이 살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헌금’ 많이 하세요? 라고 하지 않습니까? (무당집에 가도 똑같다고 말씀드리자나요- 복채나 헌금이나..)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솔직해 져야 합니다. 아니 교회는 더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교회에 와도, 어쩌면 인생의 현실적인 문제가 풀릴 수 있지만, 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병이 나을 수 있지만, 낫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 그 무거운 현실적인 문제의 십자가를 지고, 나 혼자 가는 것처럼 보이는 고난을, 예수님이 함께 지고 가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으면, 현실적인 문제와 어려움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해야 교회가 정직한 것이고, 이렇게 말해야 교회가 교회다운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에 교회는, 어쩌면 사람들 많이 모으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그 다음은 무엇을 할까요? 교회를 크게 지을 생각을 하게 되죠. 교회를 크게 지으면 어떻게 할까요? 또 채우려고 하지요. 채우면 어떻게 할까요? 누군가는 가지려하고, 군림하려고 하죠. 왕처럼 자신의 왕국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무너질까 자녀에게 세습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으로 가는 교회의 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절대 이 땅에 오셔서 군림하시거나, 사람들을 모이려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오늘 말씀처럼 사람들의 관심과 예수님의 관심이 다르면, 예수님은 과감히 뒤로 물러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피하셨습니다.


사방 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와도,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낮은 자리에서 그들을 섬기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정신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는 이 정신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맙니다.


여러분, 우리의 관심이, 예수님의 관심을 따를 때, 그 교회는 건강한 교회요. 바른 교회요. 그 안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예수님의 능력이, 분명히 있음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관심은 무엇입니까? 내 영혼이 예수님으로 먼저 만족되면, 내 안에 찾아오는 기쁨과 평강은, 그 모든 현실적인 문제에도 버틸 수 있는 힘을, 예수님이 주실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예수님의 관심입니다.


그 관심이 해결될 때,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이 내 안에서 넘쳐, 현실적인 문제와 어려움이, 지금 당장 나에게 있어도~~, 내 영혼 평안해, 주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해! 라는 그 능력이 여러분 안에 있게 되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여러분 안에 채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관심과 나의 관심은 다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관심을 따라야 하고, 우리 또한 예수님의 관심을 따라야,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나의 죄 짐을 벗어, 내 영혼에 기쁨과 만족을 주시는, 그 예수님의 관심을 따르시길 바랍니다.


그 한없는 은혜가 여러분을 덮을 때, 우리는 그 은혜를 가지고 살 수 있음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관심을 늘 따르는, 우리 교회가 되고,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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