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누가복음 ›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궁극이 | 2019.10.06 14:43:1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눅4:29-34
설교자
김경형 목사
참고
궁극교회 주일예배

429-34.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내리치고자 하되.

 

귓구멍이 뚫렸다고 예수님의 말을 듣던 자들이 분이 나서 씩씩거리는 걸 보면 자기들을 향해서 한 말을 아나봅니다. 인간은 참 이상한 존재요. 자기 속에 있는 좋은 말을 하면 왜 기분이 좋고 자기 속에 들어있는 나쁜 점을 지적하면 왜 기분이 나빠지는 것일까? 자기 돈이나 재산이나 물건을 빼앗아가는 것도 아닌데 그 말이요. 성경 하나님의 역사의 말을 들었으면 깨달아야 할 텐데 복된 생명의 말씀을 듣고 왜 자기들 속에서 분으로 부풀어 올랐을까?

 

이스라엘의 목이 곧고 패역한 과부들이고, 이스라엘의 목이 곧고 패역한 문둥병자라는 것을, 자기들의 마음이 그렇다는 것을 증명을 한 셈이 됩니다. 자기 속에 나쁜 것이 없으면 아무리 헐뜯고 깎아내려도 기분 나쁜 건 없잖아요. 안 그래요? 그게 들어있으니 그게 찔림을 받거든요. 그래서 기분이 나쁘다든지 이제 뽀로통하고 틀어져 나가고. 들었다는 증거지요? 안 들었으면 그렇지 않지요. 우리는 성경 역사계시 속에서 자기의 마음도 거기 들어있으니 찾아서 깨닫고 고치고 회개한 것을 실천하고 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동리 밖으로 쫓아내어 길 돌아가는 벼랑 끝에서 밀쳐죽일 생각으로 같이 갔는데 예수님께서는 그 가운데서 빠져나온 것입니다. 예수님 당신이 죽을 시기와 죽는 장소와 때는 당신이 더 잘 아십니다. 그리고 진리성도들의 죽는 것도 당신의 주권섭리에 있는 겁니다. 이것을 영적 차원으로 영의 눈을 가지고 정신 마음 상태를 한 번 봐 봐요.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는데 예수님은 피해서 유유히 가버렸어요.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지 아니했다 그 말이요. 이게 무슨 뜻일까?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요 그들의 그 사상과 그 정신 그 신앙사상은 세상 육적인 그런 질적인 사상이요. 그러니까 그런 질적인 것이 세상 육적인 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이걸 밀어버려서 떨어뜨려서 그 사상을 죽이게 할 수 있느냐 하면 없다 그 말이요. 그 이치를 가르쳐줘요. 그러니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하는 것은 그 신앙사상을 가졌다면 고향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그 신앙이라고 하는 질적인 면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그 사상에 예수님의 정신은 죽지를 않는다 그 말이요. 이해 됐습니까? 그 면에? 죽는 게 아니란 말이요. 영의 눈이 밝고 사건 속에서 정신이 어떻게 움직이느냐? 이것을 안다면 얼마든지 이길 수가 있는 거지요. 그리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그 신앙생명은 죽지는 않지만 그 신앙생명 위주로 사는 현재적 자기가 순교할 장소도 알아야 되고 자기 때를 알아야 된다.

 

예수님께서 고향 회당에서 가르쳤고 그들의 동리에서 쫓김을 또 받았고 고향에서 가르쳤는데, 고향에서 쫓김을 받았고 옳은 말씀을 외쳤는데 그렇더라 그 말이요. 그들이 죽이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이냐? 길이요 진리요 생명은 그들에게 필요가 없다. 그러니까 예수 당신의 가르침은 하늘나라의 그 교훈은 참사람 되는 것은 우리들에게 필요가 없다하는 뜻으로 쫓아내버렸단 말이요. 그들이 심판 때에 복음을 못 들었다고 변명은 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변명을 할 거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 옳은 진리이치를 가지고 부모형제나 일가친척들에게나 친구들에게나 동역자들에게나 얘기하면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참사람 되는 그 교훈의 이치가 필요 없다면 심판 안 되겠어요? 옳은 것을 들었느냐? 반드시 시험이 있다. 학교에서 공부를 했느냐? 가르침을 받았느냐? 반드시 시험이 있다. 시험 없는 게 아니다. 시험 있다. 어디든지 시험이 있다. 세상이라고 하는 곳은 시험이 있는 곳이다. 공부할 때는, 벌써 인간이 산다 그럴 때는 시험이 있다. 전제를 해. 아예 전제를 해. 시험이 없는 곳은 죽어야 돼. 또는 천국가야 시험이 없어.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시험이 있어. 훈련도 있고 시험도 있고. 그러니까 자기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세상 편하게 살려고 아예 생각을 갖지 마라 그 말이요. 늘 시험에 이길 준비를 하면서 살아라. 인생 삶이 그 과정이다.

 

처녀총각들 시집장가 가서 절대로 행복을 꿈꾸지 마라. 돈 많아 행복하겠다? 뭐 집이 커서 자동차가 좋아서 행복하겠다? 아니요. 천만의 말씀이요. 행복은 그런데서 오는 게 아닙니다. 행복은 사람에게 붙어있지 물건에 붙어있지 않아요. 사람이 문제요. 행복은 자기가 창출하는 거요. ‘산 너머 동네에 아, 저곳에 행복이 있겠구나하고 올라서면 또 높은 산이 있어. ‘, 저산 너머 행복이 있겠지.’ 아니요. 이 세상에서는 참 행복은 없는 거요. 그저 죽을 때까지 참사람 만들어지는 일에 열심을 품고 싸우고 지혜를 쓰면서 이겨나가고 하는 그 과정이 인생살이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이게 실력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조용한 바다는 재미가 없어. 파도가 쳐야 재미가 있어. 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헤엄을 못 치는 사람은 불행이지. 물만 잔뜩 먹고.

 

31: 갈릴리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이게 비교를 해보면 고향사람들은 참말로 악했습니다. 예수님을 벼랑에서 밀쳐 떨어뜨려서 죽이려고 했으니 그 말이요. 그러나 갈릴리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이 참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옳은 진리이치의 말씀은 가만 보면 아는 사람일수록 자기 집안사람일수록 이게 잘 안 받아들여요. 받아들이는 사람은 저 멀리 딴 데 있는 걸 많이 느낄 수가 있어.

 

말 안 듣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집안식구가 제일 말 안 듣는다. 맞지요? 제일 은혜를 많이 받을 수 있는 그런 장소요 그런 환경인데도 불구하고 제일 안 받는다. 명심해요. ‘원래 안 받는다가 아니고 제일 많더라 그 말이요. 참 제일 앙화다. 슬프다. 그러니까 그 좋은 축복을 다른 사람이 갖고 가더라. 귀한 것을 귀한 줄 모르니 귀한 것을 아는 사람이 달랑 들고 가는 수밖에 없다.

 

갈릴리 가버나움 동리는 예수님을 잘 받아들였어. 진리생명의 말씀을 잘 받아들인 그 겸손한 사람들은 주님의 위로와 사랑과 은혜를 많이 받게 되는 겁니다.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말씀을 기다리는 겸손한 자들이 안식일에 모이니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구나.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합당한 자들입니다. 나사렛 고향사람들도 안식일을 지켰겠지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구원을 쫓아내고 주님을 쫓아내고 죽이려고 한 그들이 안식일 날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가르침을 받을까? 옳은 진리이치는 싫다고 죽이려고 그랬고. 안식일은 지키는데 무슨 생각을 가지고 지키겠느냐 그 말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말씀을 받지 아니하면 네 가지 밭에서 첫째 밭에서 길가에 떨어졌으니 길가 밭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문제는 사람의 마음의 동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길가에서 받는 사람은 필요 없다고 길에다가 던져버렸고, 그러니까 이 새들이 와서 주워 먹었어. 무슨 뜻이냐? 마귀가 와서 너 같은 놈은 생명의 말씀의 씨앗이 필요 없다하고 뺏어가 버린다. 그러니까 열매가 있느냐? 없어요. 열매가 없는 거요. 진리이치 깨달음의 열매가 없는 거요. 그 신앙의 수준은 아주 저질이에요. 낮다. 일반적으로 죄를 짓는다그런 말이 아니고 신앙의 수준은 낮아. 일반이요. 일반. 거기에는 열매가 없습니다.

 

32: 저희가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세가 있음이러라.

 

가버나움 사람들은 무엇에 놀랐습니까?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랐어요. ‘세상에 이런 말씀도 있느냐?’ 권세가 있는 말씀이요. 권세는 통치자가 갖는 권세입니다. 그 말씀을 듣는 자는 분명한 선택이 나오는구나. 권세가 있단 말이요. 아무리 생각해도 옳다 그 말이요. 이리저리 비교를 하고 빗대어 보고 늘어 뜨려 보고 구겨 보고 아무리 질감적으로 생각해도 옳다. 이때까지 그렇게 옳게 말해준 사람은 없었거든? 이 가버나움 사람들은 그렇게 잘 받아들였는데 앞에서 말한 고향사람들은 이상하게 들린다. ‘못 듣던 말인데 저게 뭐 이단이 아닌가?’ 이치적으로는 따져보지도 않고 생각해 보지도 않고 자기가 얼마나 오래 살았다고 이거 처음 듣는 말인데.’ 오래 살아봐라. 별 소리 다 들을 수 있어. 모든 정신 사상과 마음과 생각을 가르는 말씀이더라. 쪼개는 말씀이더라. 사람의 생각을 쪼개고 옳다고 하는 세상사람들의 그 옳음을 쪼개고. 그 옳음성이 어디까지 가는 거냐?

 

모든 사건과 사물의 이치가 분명하고 인간의 출생과 존재목적의 삶이, 원인 동기 목적이 분명하다. 누가 어떤 인간교주가 또는 도 닦는 도사가 또는 어떤 이방종교 지도자가 또는 어떤 유명한 종교지도자가 인간의 근본을 가르쳐 주겠느냐? 없습니다. 오직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이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어. 인간의 근본을 가르치는 건 성경밖에 없어. 분명히 알아야 된다. 아무리 세상을 오래 살아도 인간의 근본을 모르는 나이 많은 사람들도 참 많다. , 자기를 인간으로 왜 지었는지? 그리고 세상에 왜 살게 하는지?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근데 성경에서 가르쳐주는 거 외에 세상적으로는 없는 거요. 공자도 없는 거고 석가도 없는 거고 없는 거요. 인간의 출생목적과 존재목적을 가르쳐주는 것이 이게 성경인데 성경에서 바로 알면 자기가 이 세상에서 나그네 생활로 사는 존재목적이 뚜렷하다. 아무리 세상에서 공부를 훌륭하게 많이 해도 자기의 존재목적을 아는 사람은 없다. 성경에서 나오는 거다.

 

33-34: 회당에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가로되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회당 안에 어떤 사람이 있었지요? 깨끗한 귀신들린 사람이요,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요? 이 더러운 귀신은 목욕을 안 했나? 세수를 안 했나? 머리를 안 감았나?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 어떻게 많은 사람이 모인 회당 안에 있을 수 있었을까? 이상한 몸짓을 하든지 아니면 더러운 구역질나는 냄새가 나든지 하면 사람들이 회당장 밖으로 쫓아버릴 텐데 어떻게 회당 안에 있었을까? 쫓아도 쫓아도 자꾸 들어왔습니까? 그냥 그렇게 안식일이 되면 늘 있어온 사람인지, 오다가다가 들어왔는지? 만일에 외부적으로 더럽다면 사람이 못 들어오게 할 것이다. 전철만 타도 머리 안 감는 그런 사람 냄새나요. 그리고 전철 타면서 아무리 좋은 옷을 입어도 이게 속옷을 씻지 않았거나 오랫동안 목욕을 안 했거나 하면 당장 냄새가 나요. 그리고 전철 안에 어디서 파리가 날아 들어왔는지 몰라도 쫓아도 또 오고 쫓아도 또 오고 그럼 피해 앉는 거지요.

 

한 번은 본 정신이 아니야. 겉으로 볼 때는 멀쩡한데 이 청년이 30대는 안 됐어. 20대 후반. 이 청년이 어디서 잠을 잤는지 뒷머리가 떡이 됐어. 오랫동안 머리를 안 감은 거야. 그러니 옷은 말할 것도 없는 거지요. 이제. 옆에 서니 이게 시골화장실 냄새가 그냥 풀풀 나니까 그 주위 사람들이 다 도망을 가버려. 그래, 그 청년은 편안하게 가더구먼. 허허허.

 

그리고 그 뭐요? 향수 같은 거 진하게 뿌리지 말아요. 어떤 사람은 코에 괜찮은데 어떤 사람은 머리가 아파. 그런 현상이 있어요. 사람마다 향수냄새를 잘 맡는 사람도 있고 아이고, 못 맡겠다는 그런 사람도 있고. 음식도 마찬가지고. 여러 가지 형태가 있구나.

 

그리고 우리 청년들, 제발 머리 감고 이게 무슨 미국사람들이 오토바이 큰 거 타고 다니면서 머리에 팍팍 젤을 발라서 세워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그러지 말아요. 좀 자연미가 나게 살아라. 자꾸 이상하게 만들어놓고 사람의 눈을 자꾸 돌아가게 하면 그것도 좀 그렇다. 혹시 몰라. 이제 그렇게 해가지고 남자들도 패션쇼 하는데 있잖아요. 그런데 가서 그런다면 그건 직업이니까 그건 알아주겠다. 직업이니까. 근데 평상시 다닐 때는 그러지 않는 게 좋겠다. 어때요? ‘목사님 참말로 고리타분하다. 별 걸 다 간섭하네.’ 그 이제 그거 머릿기름은 아니지요? 머릿기름은 아니야. 기도할 때에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하는 건 뜻이 있어요. 계시의 뜻이 있어요.

 

어쨌든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는 깔끔하게 하세요. 그게 옳은 거고 공중도덕성을 잘 지키는 거요. 신적 도덕성이요. 옷을 입을 때에 또는 무슨 치장을 할 때 혐오스럽게 하지 마라. 그러면 안 된다. 보아서 편안한 거. 무난하고 편안한 거. 그러나 속사람을 꾸미는 데는 그 누구보다 아름답게. 그 사람의 품위는 인격에서 나와야 되는 거요. 겉으로 가지고 품위를 나타내려고 그러지 마라. 요건 다른 말로 하면 튀려고 그러는구나. 튀어봐야 벼룩이지 뭐. 물론 젊었을 때는 뭐 한 때는 그렇다. 이해는 가요. 뭐 늙어죽을 때까지 그러겠어? 그러나 젊은 사람이 빨리 깨닫는다면 참 이게 돋보인다.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이란 겉으로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러운 성격 더러운 성질 더러운 생각 더러운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그 마음 품어도 사람들은 겉이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지요? 속사람을 말하는 거다. 그 사람의 정신을 말하는 거다. 마음을 말하는 거다. 그래서 일반적으로요 평소에 더러운 성격 더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자기가 원치 않는 사건이라든지 뭐 우리 인간이 볼 때 돌발적인 어떤 일이 생기면 자기 마음을 못 잡아요. 다시 말하면 미쳐버린다. 그러니까 자기의 성격과 성질에 의해서 이게 참말로 더럽다 그 말이요. 그래서 사람들은 말하기를 참말로 성질하고는 더럽다그래요 성질하고는 참말로 깨끗하다그래요? ‘참말로 더럽다.’

 

이 더러운 성격 성질 이게 가만 보면 사람이 묻는 말에도 대답을 안 해. 좋은 성격 성질이요? 더럽다. 좀 더 가만있으면 되겠는데 귀가 따갑도록 또 나불거리는 거 참말로 더럽다.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그냥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딱 다물고 묻는 말에도 대답을 않고, 자기 기분 좋으면 그냥 헤헤거리고. 그 좋은 성격인지 알아요? 더럽다. 그러니까 성경이 귀신이다 그러면 그 사람의 성격과 성질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어요.

 

겉모양이 더럽다고 해서 얼른 들어오는 거 아니에요. 아무리 공부 많이 하고 아무리 부자고 아무리 높은 자리 앉아있어도 그 성격 성질이 들어오면, 가지고 있으면 그냥 들어간다. 냄새 맡고 그냥 들어간다. 그걸 알아라. 지조가 없고 정조를 팔고 명예를 더럽히고 인격에 손상을 주고 치사하고 성질 잘 삐지고 지독하게 인색하고 자기 몸을 흉하게 만들고 욕 잘하고, 말하자면 인격과 정서에 관한 것이라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그냥 가만있으면 잘 몰라요. 안 그래요?

 

이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더니 심령골수를 찌르는 말씀에 크게 소리를 지르기를 감탄사가 나와요. ‘, 나사렛 예수여.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아니, 왜 또 우리가 붙어있냐? 몇 사람이 여러 사람이요? 한 사람이요, 여러 사람이요? 문자적으로면 여러 사람이요, 한 사람이요? 한 사람인데 왜 우리가그러고 있느냐고? 우리가?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그러니까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 들어있는 모양이요. 이 귀신은 한 명 두 명이요, 한 마리 두 마리요? 어떻게? 한 놈 두 놈이요? 한 님 두 님이요? 저질로 노는 사람은 존경어가 잘 안 붙지요.

 

이 사람이 말을 듣더니 예수님의 그 말씀에 되게 쇼크를 받은 모양이요. 그런데 그 사람 속에 귀신이지. 그 귀신들이 여러 마리인가 봐. 아마.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안다. 하나님의 거룩한 자다.’ 이 거룩한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하고는 인격적 연관관계가 없잖아요? 맞잖아요? 인격적 연관관계가 없어요. 그러나 그 사람과는 관계가 있어요. 귀신하고는 관계가 없는데 그 사람하고는 관계가 있어요. 사람에게는 영원 궁극적 구원목적으로 지었기 때문에 관계가 있지요? 그런데 우리가 당신과 상관이 없다는 이 말은 무슨 소리냐?

 

더러운 귀신이 사람을 붙들고 상관이 없다고 하는 이 더러운 귀신이 사람을 붙들고 왜 회당에 앉아서 안식일 날 말씀을 듣느냐 그 말이요. 상관이 없다면 들어오지를 말아야지. 안 그래요? 오늘날 교회 안에 예수 믿으면서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는 안 짓고 교회 오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까? 많이 있지요? 세상적으로 흐르는 그런 교회는 거의가 그런 겁니다. 알지를 못해서 그렇지요. 예배는 열심히 드리는데 인격적 의사단일성으로 예수님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어. 전혀 관계가 없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이 강론이 되는 것이고 따라서 순종자는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안식일을 거룩 되게 만들고 안식일을 지키라그랬거든요? 그러니까 너를 거룩하게 만들어주마.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주마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그 안에 들어있는 말씀이요. 창세 때부터 그게 들어있는 거요.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의 온전한 사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이 마지막 시대에 비진리적이며 세상적이며 거짓된 신앙사상의 그런 교회에서는 성경 찬송으로 예배한다고 하지만 당시의 바리새파와 종교지도자들처럼 예수님과 인격적으로는 아무 상관이 없는 설교와 기도더라. 그래서 예수님이 그들에게 뭐라 그랬어요? ‘이 독사의 자식들아. 마귀새끼다. 너희들의 아비는 마귀니라.’ 그러니까 그들이 뭐 일반적인 나쁜 일하는 가요? 근데 인격적 이게 하나님과 성경가지고 관계없이 그들의 소원 목적으로 걸어놓고 예배하더라. 왜 독사의 자식이냐? 그 사상가지고 또 자꾸 가르쳐 나가고 그 독을 넣는단 말이요. 그런 의미로써 독사의 독은 이빨에 있다는 거요. 물리면 독이 들어가요.

 

세상 물질적 종교적인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그 신앙정신 그 사상은 참말로 불결하고 더러운 겁니다. 말하자면 거룩하지 못하다. 거룩하지 못한 것이 어디에 선 것을 보거들랑? 거룩한 곳. 거룩한 곳이 어디냐? 하나님이 앉을 자리에 세상 것이 앉아서 하나님처럼 하거들랑 너희들은 산으로 올라가라. 도의 봉우리로 올라가라. 오늘날 많이 있습니다. 이 강대상은 불이 나면 다 타는데 신앙정신적 차원에서 거룩한 것이 있어가지고 외쳐야 한다. 세상 것으로 들어 있어가지고 외치면 그건 아니지요. 그걸 알아라. 그냥 교회 다니는 게 아니다. 뱀 기어가는 소리, 바람소리, 우는 소리, 방언소리, 따발총 쏘는 소리, 세상과 세상 것을 달라고 부르짖고 밥도 먹지 않고 발을 동동 구르고 몸을 흔들고 몸을 비틀고 혀를 날름거리고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부르짖어도 요건 참말로 더러운 귀신이 들렸구나. 알겠어요?

 

그 더러운 귀신이 예수님을 모른다고 합니까, 안다고 하는 겁니까? 성경에 보니까 안다고. 모르는 게 아니고 안다. 그러면 오늘날 지하실이나 산이나 기도원이나 이런 데서 말씀드린 뭐 예언 방언 뭐 성령 받는다 하는데 그게 성령입니까? 성령은 그런 짓거리 안 시킵니다. 성령님의 역사는 성경을 보게 하고 그 다음에 성경을 깨닫게 하고 그 다음에 성경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역사를 해요. 근데 그건 없고 자꾸 이상한 몸짓과 어떤 신비로운 체험을 해가지고 자꾸 나도 성령체험 했네이따위 소리. 그게 더러운 귀신입니다. 알겠어요? 더러운 귀신 들었다가 나간 적 있습니까?

 

예수님을 안다고 하지만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성은 닮지 못하는 겁니다. 예수님을 안다고 하면서 예수님과 관계없이 안식일 날 회당 안에서 하나님 말씀 듣는다고 앉아있고 안식일을 지킨다고 앉아있는 겁니다. 마치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배의 거창한 의식을 지키고 하나님께 영광 영광하지만 예수님과 하나님과 전혀 관계없는 안식일을 지키고 있더라. 그 정신가지고 어떻게 거룩한 분을 닮겠습니까? 예수님을 죽이는데 어떻게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질까? 그건 안 된다. 되는 게 아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을 위해서 부르짖게 가르치는 목사나 그런 소원 목적을 가지고 부르짖는 교인들이나 기도하는 그들이나 똑같은 영입니다. 알겠어요? 똑같은 영이요. 성령은 그런 짓거리 안 해요. 아무리 성경을 봐도 성령은 그런 짓거리를 안 해요. 성경에 우리에게 계시로 가르쳐주기 위해서 무슨 뜻을 깨닫게 해주기 위해서 부분적으로 비슷한 것이 있어요. 그러나 아니에요. 마음과 정신 사상이 성격 성질적으로, 신앙의 성격 성질이 있어요. 일반적인 성격 성질도 있지만 신앙하는 그 면에서도 신앙의 성격과 성질이 있어요. 고쳐야 돼요. 고쳐요.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더러운 귀신들린 자들이 회당 안에 많이 있었던 것처럼 왜 그렇게 말을 할까? ‘우리를하는 그 말 속에는 사실 현재의 우리까지 포함된 계시적으로 한 말일 수도 있다. 그 때 그 당시 귀신들린 사람은 한 사람이었는데 귀신들이 그 사람의 입을 열어서 우리를하는 그 속에는 그 때 당시뿐만 아니라 오늘날 그와 같은 신앙사상으로 살고 있는 그 성질까지 성격까지 포함해서 우리를하고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다 그 말이요. 한 사람 속에도 복합적으로 들어가서 있을 수도 있고.

 

오늘날 예수 믿는 교인들이 그와 같은 사상을 가지고 믿기 때문에 다 같이 쓸어 담아서 포함해서 우리를하는 거기에 자기는 없어야 되지 않겠냐? 그런 짓거리하는 우리를귀신이 우리를하는 거기에 자기는 없어야지. 오늘날 말하자면 궁극교인은 거기에 없어야지.

 

그래서 우리교회는 집사 되기도 어렵고 장로 되기도 어렵고 목사 되기도 어렵고 참 어려워요. 그거 왜 그러냐? 속에 뿔이 돋아나고 있기 때문에 그 뿔을 자꾸 잘라야지 뿔이 크도록 내버려두면 사람을 떠받아 넘겨버려요. 부모형제고 뭐고 다 떠받아 넘겨버려요. 사람이 다치지요. 다른 말로 하면 그 뿔을 잘라야, 하나도 없이 잘라야지. 뿔이 없으면 못 받을 테니까. 말하자면 순한 양이 된다 그 말이지요. 그것도 빨리 뽑히는 사람이 있고 늦게 뽑히는 사람이 있고 죽을 때까지 해도 안 뽑히는 사람이 있어. 그 뿔은 자기가 뽑아야지 하나님이 뽑으려면 여기는 아주 큰 고통스런 사건을 줘야 된다. 들어도 들어도 알면서도 고치지 않을 때는 이건 악하다. 그 다음에 하나님의 어떤 징계 징벌이 사건이 들어가야 된다. 반드시 그렇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성질을 가만 보면 꼭 그거 들어있어.

 

그러니까 제가 어느 한 개인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이치가 바로 그러하니 자기가 못 고치고 어떤 상황적으로 고통스런 사건이 부딪혔을 때에 그게 예언이 되는 겁니다. 알겠어요? 예언이라고 하는 것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요. 그 사람의 성격 성질을 고치지 않을 때는, 회개하면 해당하지 않지요. 근데 그대로 나갈 때는 너는 고통을 좀 당해야 되겠구나요게 들어있어요.

 

그리고 목사님들에게도 늘 얘기하지만 제발 우리 성도들도 교인들도 하나님께서 만들어놓으신 자연법칙을 깨뜨리지 말아라. 네 몸이 망가진다. 반드시 그렇게 돼 있다. 네 몸이 망가진다. 그런데 그걸 잘 감지를 못해요. 몸이 꽈당 그게 아니고 이게 항상 누적돼 있어. 생활의 패턴 잠자는 패턴이 달라져 버려. 한 마디로 잠 안 자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늘 밤에 잠을 잘 안 자고 뭘 하든지 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요? 경험해 본 사람? ’, 내가 이러면 안 되겠구나그거 있잖아요? 금식기도든 뭐든 어쨌든 잠을 안 자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지요? 피곤하다. 피곤하면 그 다음에 또 오는 거 어떤 병이 오지요? 종합적인 병이 와요? , 여러 가지 현상이 나요. 잠 안 자면 피가 말라요. 알겠어요? 피가 말라요. 피곤하면 계속 자지요. 자봐요. 그게 개운할 것 같으냐? 아니요. 그 다음에 오는 것은 두통이다. 내가 실험을 하고 하는 얘기요. 안 하고 하는 게 아니요.

 

새벽에 일어나면 가만 보면 다 잠을 자고 있지. 불을 켜고 공부하면 잠을 못잘 것 같고, 또 잡니다. 그러면 빨이 일어나지냐? 아니요. 더 자버려요. 나중에 일어나면 머리가 되게 아파요. 일어날 시간에 일어나야지 안 그러면 머리 아파. 머리 아프면 또 약 먹어야지. 병원에 가야지. 여러 가지 현상이 생겨. 잠 안 자면 사람이 미쳐버려요. . 그런 현상도 생기고. 그럼 감기는 안 걸리겠어요? 밥맛은 있겠어요? 이건 종합적으로 다 들어간다. 제발 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자연법칙을 좀 지켜라. 최소한.

 

근데 요즘은 참 그 이게 밤 12시가 되면 그 때부터 시작되는 장사가 있습니까? 12시 넘으면 명동거리는 아주 대낮이 되는 겁니까? 나는 안 가봤어. OO, 안양 1번가가 그래? 몰라? 불을 환하게 켜놓고 그 때부터 청춘남녀들 끼고 그 때부터 쇼핑이다 뭐다. 그런 사람 낮에 잠 안 잘까요? 만날 그럴까요? 잠 안 자고? 그래서 이게 가만 보면 제 혼자 생각하는데 이게 씨가 따로 있나보다자꾸 그런 느낌이 들어와요. 어디 씨가 따로 있겠어요? 자기가 그렇게 사니 그 족속이 돼버려.

 

특히 우리 목사님들 세계서는 제발 낮밤 잘 지켜요. 안 된다. 텔레비전 때문에 일찍 못 자면 텔레비전 없애버려요. 못 없애겠거들랑, ‘자기가 없애면 귀신이 붙겠구나그런 생각이 들면 나보고 치워달라고 그래요. 잘 치워줄게. 안 돼요. 그건 안 돼요. 사람이 규모 있는 생활을 해야지 결국은 고통 고통으로 서서히 자기를 고통으로 잠식시키고 큰 환난으로 들어가게 하는 요인이 된다. 반드시 알아야 된다.

 

, 이제 더러운 귀신이 가만히 들여다보면 회당 안에 있어. 이방불신자가 들어온 게 아니에요. 그 유대인이에요. 그러나 안 보여. 예수님이 그 때 안 왔으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그 말은 안 나왔을 거라. 맞잖아요? 예수님의 옳은 말씀으로 하니 이게 속에서 막 부딪혀서 속에서 야단법석이 일어 난 거지. 우리 속에도 그런 거 많이 있지요? 부딪히는 거 있지요? 없어요? 내가 노골적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성경에 얘기하니까 자기와 별로 관계없는 것처럼 여겨져요.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자기가 거기 있다. 있다. 성격 성질적으로도 있다.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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