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태복음 › 사순절의 부름(Calling at Lent)

김영봉 목사 | 2013.03.13 13:32:4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마4:1-11
설교자
김영봉 목사
참고
와싱톤한인교회 http://www.kumcgw.org
2011년 3월 13일 <사순절 첫째 주일 설교>
“사순절의 부름”(Calling at Lent)
--마태복음 4:1-11


1.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저는 지난 보름 동안 휴가를 내어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교회를 든든히 지켜 주신 교우님들과 목사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뵙는 것이 방문의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이 여행을 통해 마음 가득 사랑을 담고 돌아왔습니다. 육신의 가족을 만나고 왔으니, 이제 다시 영적인 가족으로서 교우 여러분을 섬기는 일에 마음을 다하겠습니다.

계절의 순환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사용하는 달력이 달라집니다. 우리 사회는 대부분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만든 태양력을 사용합니다. 태양을 세상의 중심축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옛날, 농경사회에서는 달의 움직임을 따라 만든 월력 즉 음력을 사용했습니다. 달을 세상의 중심축으로 본 것입니다. 실제로 농사를 짓다 보면 그것이 더 옳아 보입니다. 달의 변화가 계절과 기후의 변화를 더 정확하게 예측하도록 도와줍니다. 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따라 교회력을 사용합니다. 믿는 사람들의 세계의 중심축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력에 따르면, 지난 수요일이 ‘재의 수요일’ 혹은 ‘성회 수요일’이었습니다. 이 날은 재를 머리에 쓰고 회개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그 날 새벽 기도회에서 교우들의 이마나 손등에 재를 발라 드렸습니다. 그날로부터 사순절이 시작되어, 부활 주일 전까지 40일 동안의 영적 여정이 이어집니다. 주일까지 합하면 46일이 되는데, 주일은 계산에서 제외합니다. 주일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고 감사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절 40일 동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생각하며 기도와 말씀 묵상과 금식과 사랑의 섬김으로써 십자가의 길을 추구합니다.

사순절 첫 번째 주일인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사탄에게 시험 당한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십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수는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모세의 피난 생활 40년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유랑 40년에서 볼 수 있듯, 40이라는 수는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를 체험하는 데 필요한 ‘충만 수’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 기간은 고난과 환난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머물러 있을 때 결국 환희와 축복의 날이 동터 오는 것입니다.

영적인 차원에도 임계점(tipping point)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조건 없이 부어 주시는 것이지만, 우리가 영적 생활을 통해 준비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사귐이 점점 깊어져서 임계점에 다다르면, 마치 끓는 물이 넘쳐흐르듯, 혹은 물레방아를 돌리는 물통에 물이 가득 차 물이 한꺼번에 쏟아지듯, 성령의 은총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수는 영적 임계점에 이르는 기간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40년이든 혹은 40일이든, 기도와 금식과 섬김과 인내로써 40이라는 수를 채울 때, 그동안 축적되었던 영적인 은혜가 쏟아져 내립니다.  

예수께서 40일을 선택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부름을 따라 나서기에 앞서 광야로 나가십니다. 그곳에서 금식과 기도와 묵상으로 하나님과 깊이 사귀십니다. 그분의 기도는 무엇을 구하려는 데 목적이 있던 것이 아니라 성부 하나님과 더 깊이 하나가 되는 데 있었습니다. 마음과 생각과 의지와 정서가 모두 하나님의 그것과 일치되는 것, 바로 그것이 그분이 광야 생활을 통해 얻으려 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아버지가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말씀을 자주 하시는데, 광야에서의 40일 동안 주님은 그 같은 영적 하나 됨을 추구하신 것입니다.


2.

그렇게,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영적 임계점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충만해질 때 어김없이 수반되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사탄의 방해입니다.

사탄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아, 이 무슨 전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사탄에 대해 혼란스러워합니다. 믿는 사람들 중에도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사탄의 존재를 인정하는 분들도 사탄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반면,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귀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귀신을 진짜로 보았다는 체험담을 늘어놓는 광경을 방송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리적인 혹은 정신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들을 무조건 귀신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이렇듯, 사탄을 인정하는 사람도, 부정하는 사람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 같은 혼란 때문에 아예 사탄에 대해 모른 체하고 살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정신과 의사이자 영향력 있는 저자인 모건 스캇 펙(M. Scott Peck)은 <거짓의 사람들>(People of a Lie)이라는 책에서 정신과 의사로서 사탄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임상 경험을 서술합니다. 그 같은 임상 경험을 통해 펙은, 사탄의 본질은 ‘속이는 자’라고 결론짓습니다. 이것은 펙의 새로운 발견이 아닙니다. 성경이 이미 오래 전부터 증언해 온 진실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입니다. 펙은 사탄의 속임수 중에 백미는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게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사탄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미 사탄에게 속은 것입니다. “사탄이 있다 해도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사탄에게 속아 넘어간 것입니다. 사탄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 중에 “사탄에게 당하여 귀신들리면 어쩌지?”하며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도 속은 것입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는 사탄의 공격에 무장 해제되는 것입니다. 사탄을 뿔 달린 귀신처럼 생각하는 것도 속은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과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영적 존재입니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존재입니다.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살려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예배하고 찬양하며, 사랑으로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그런 것을 통해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사탄은 이런 사람들을 그냥 두고 보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회복되고 충만해지면 사탄은 긴장합니다. 방해합니다. 유혹으로 혹은 속임수로 넘어뜨리려 합니다. 우리가 사탄에게 점점 위험한 존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영적인 공격을 음모합니다.

이 대목에서 이렇게 생각할 분이 계실지 모릅니다. “아, 영적으로 깊어지는 것은 좋은데, 사탄의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두렵습니다. 그러니 그냥 이대로 살겠습니다.” 혹시나, 귀신에게 사로잡혀 미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있는 한, 사탄이 우리를 사로잡을 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속여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벗어나 사탄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도록 유혹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적으로 깊어지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깊어질 때 두려움을 느끼는 쪽은 우리가 아니라 사탄이어야 합니다.

이제, 이 사순절 영적 여정을 통해 저와 여러분 모두, 사탄에게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존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기도와 금식과 말씀 묵상과 사랑의 섬김을 통해 영적으로 활짝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예민해질수록 사탄의 방해 공작은 더 강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곧 우리의 영적 상태를 말해주는 바로미터가 됩니다. 사탄의 속임수와 유혹을 느끼는 만큼, 우리는 영적으로 살아
있는 것입니다.

3.

예수께서 금식과 기도를 통해 성부 하나님과 깊은 연합을 이루어 가자, 사탄이 음모를 꾸밉니다. 공격의 무기는 속임수와 유혹입니다. 먼저, 돌을 떡으로 만들라고 유혹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고 유혹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자신에게 절을 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런데 이 유혹을 던지면서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로써 아주 은밀하지만 교활한 함정을 팝니다.

예수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사탄은 바로 그 믿음을 흔듭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 안에는 다음과 같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너는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하지만 나는 그것을 인정할 수가 없어. 네가 진짜 그렇다는 것을 나에게 증명해 봐!” 역시, 사탄은 속임수의 달인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로 사탄은 적어도 두 가지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첫째, 이 질문으로 사탄은 예수님의 믿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바위 같은 확신이라고 해도 옆에서 지속적으로 의심하는 말을 던지면 그 확신이 부슬부슬하게 허물어집니다.

제 어릴 적, 어른들이 어린아이들을 놀리는 메뉴 중에 그런 것이 있었습니다. “너, 사실은 다리 밑에서 주어왔어.”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위험한 장난입니다만, 저도 그런 장난에 심하게 흔들린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심술  궂은 삼촌은 여러 가지의 ‘거짓 증거들’을 들이댑니다. 아버지 얼굴은 길죽한데 너는 왜 얼굴이 둥그렇냐? 네 어릴 때 사진이 별로 없지 않느냐? 가끔 물건을 팔러 오는 아주머니가 끌리지 않더냐? 처음에는 들은 척도 않던 어린아이는 점점 믿음을 잃어버리고 마침내 “으앙!” 하고 울어 버립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질문은 이처럼 예수님의 믿음을 흔들어 놓는 효과를 가집니다. 하나님의 아들임을 인정하는 듯이 말하면서 실은 강한 의심을 심어 줍니다. 사탄은 예수님의 마음속에 이와 비슷한 질문들을 끊임없이 제기함으로써 요단강에서 얻은 확신을 흔들려 합니다. 예수님은 어릴 적부터 성부 하나님께서 선택한 특별한 아들이라고 믿고 자랐습니다. 요단강에서 세례 받을 때,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고 비둘기처럼 임하는 성령의 체험을 했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더 이상 흔들릴 수 없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탄은 바로 그 믿음을 흔들고 있습니다.     

둘째,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그분에게 주신 능력과 은사를 헛되이 사용하게 만듭니다. 인간에게는 자신을 과시하고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망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알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우리는 뭔가를 통해 자신을 입증해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인생은 허비되고 사람은 추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일에 전념하는 것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하고 과시하는 일에만 전념하는 것은 부질없고 추한 일입니다.

어릴 적에 당했던 장난이 또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남자 아이들만 당하는 놀림입니다. 어른들이 남자 아이에게 묻습니다. “너 남자냐, 여자냐? 보아하니, 너 여자구나? 여자 맞지?” 그러면 아이는 목소리를 높여 대답합니다. “아니에요. 나, 남자 맞아요!” 어른은 빙긋이 웃으며 고삐를 조입니다. “그래? 그럼, 네가 남자라는 것을 증명해 봐!” 아이는 씩씩 거리며 바지를 끌어내립니다. 그것이 부끄러운 일인 줄 알면서도 남자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유치한 단계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는 일평생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에 끌려 다니기 쉽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내 보여줄 기회를 노리고 벼릅니다. 이 욕망에 이끌려 살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소명도 망각하게 됩니다. 결국, 인생은 껍데기가 되어 버립니다. 인생을 허비하고 낭패로 만드는 방법 중에 가장 유효한 방법은 바로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살아가도록 유혹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인간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이 욕망을 겨냥했습니다.

4.

사탄이 예수님을 유혹하면서 던진 말, 즉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이라는 말은, 예수님이 금식과 기도로써 다지고 있던 정체성 즉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믿음을 흔들고, 그 믿음을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 허둥대게 만드는 탁월한 공격 방법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명을 망각하고, 그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재능을 허비하게 됩니다. 돌을 빵으로 만들라는 유혹도,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는 유혹도, 그리고 자신에게 절하라는 제안도, 알고 보면,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보라는 제안입니다. 이 모든 제안을 예수께서는 단 칼에 거부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참으로 이상합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입증하기 위해서 노력하면 할수록 그 사실이 더욱 의심스러워집니다. 그렇게 자신을 입증하고 과시하기 위해 평생을 허둥대며 허비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탄이 예수께 던진 유혹의 정체입니다.

이런 상상을 해 보십시다. 어떤 아이가 다리 밑에서 주어온 아이라는 삼촌의 놀림에 울고 말았습니다. 삼촌은 우는 조카를 달랩니다. 다 거짓말이라고, 삼촌이 너를 놀리느라고 그랬다고 다독입니다. 아이는 삼촌의 말에 비로소 안심을 하고 울음을 그칩니다.

그 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삼촌이 한 말들이 다시 생각납니다. “혹시, 삼촌이 마지막에 한 말이 거짓이 아닐까? 삼촌 말대로 내가 주어온 아이가 아닐까?” 그런 의문이 들자, 삼촌이 놀리느라고 꾸며낸 증거들이 다시 그럴 듯해 보입니다. 그 아이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그래, 내 스스로 증거를 찾아보자. 내가 엄마 아빠의 진짜 자식인지 내 손으로 입증해 보자.”

다음 날부터 그 아이는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증거를 찾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증거를 모을수록 의문은 더 많아집니다.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의심되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그 아이는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할 일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노력하면 할수록 더욱 의심은 커집니다. 때때로 홀로 있는 시간이 되면 마음 깊은 곳에서 의심이 고개를 내밉니다. 도리질 쳐 그 의문을 떨쳐 내려 하지만, 그 의문은 도대체 떠나지 않습니다. 결국, 이 아이는 한 순간도 아버지의 아들로 살아보지 못합니다.

사탄이 예수님에게 노린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하고,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 그분에게 주어진 것들을 허비하도록 만들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로서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돌로 떡을 만들거나 성전에서 뛰어내리기를 선택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주어진 사명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속임수의 정체를 알았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도 않았고, 그것을 증명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로 사는 일에 전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에 충실했습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 점에 대해 참으로 탁월한 통찰력을 보여 줍니다. 그에 의하면,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너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나는 성부 하나님께서 택한 아들이다.”라고 믿는 믿음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흔들리지 않고 당신의 길을 가도록 붙들어 주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배척당할 때, 하나님의 택함 받은 아들이라는 믿음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낙담하거나 타협하지 않도록 붙들어 주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높임 받고 칭송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은 그분으로 하여금 교만해지거나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믿음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길을 흔들리지 않고 걷도록 만들어 준 힘이었습니다.

거짓의 아비 사탄은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삶과 사역의 기둥이 되는 그 믿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확신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40일 동안의 광야에서의 영적 여정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을 확고하게 하는 여정이었습니다. 그 믿음이 견고하게 서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쪽은 사탄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흔들 수 없는 믿음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 어떤 증거로도 그분의 믿음을 흔들 수 없었습니다. 그 어떤 제안으로도 그분으로 하여금 솔깃하게 만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40일 동안의 영적 여정에서 그분이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습니다.

5.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며 나는 그분의 자녀라고 믿는 믿음은 예수님에게만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게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다면, 우리는 이미 성부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것은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과 사귀다 보면 그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진실로 나를 사랑하시며 나를 아들로 혹은 딸로 받아들여 주셨다는 사실을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은 예수님에게 절대적이었습니다만, 저와 여러분에게도 절대적입니다. 다른 것이 다 있어도 이 믿음이 흔들리면 우리의 인생은 허물어지고 맙니다. 변변한 것 하나 없다 해도 이 믿음이 든든히 서 있으면 우리의 인생은 든든히 설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우리는 무엇을 입증하기 위해 혹은 누구의 인정을 받기 위해 부심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 안에서 나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나에게 주어진 것으로 무엇인가를 과시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고 나에게 주어진 소명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나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탄은 이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도 보고 싶지 않고, 내가 하나님 안에서 나로서 살아가는 것도 보기 원치 않습니다. 나를 속여서 무엇인가를 입증하고 과시하기 위해 평생을 허둥대며 인생을 허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사탄의 목적입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사탄은 오늘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 믿는 사람들을 속이고 유혹하려 합니다. 사탄의 공격의 초점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녀’라는 우리의 신분에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받아들여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무조건, 영원히 사랑하신다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어릴 때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라났습니다. 뭔가 사랑받을만한 행동을 해야만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사랑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렇게 조건적인 사랑을 경험하며 자란 우리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우리의 정체를 아주 쉽게 의심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큼 한 일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우리는 대부분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스스로 하나님의 사랑 받을 자격이 있다고 믿는 분이 있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바로 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나에게는 사랑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써 값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되었으며, 하나님은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니, 도대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조건적인 사회 안에서 자라면서 무조건적인 제안에 대해 의심하도록 길들여졌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듣고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뭔가 숨겨진 함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인 다음, 그 믿음을 든든히 붙들고 살아가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복음과 반대되는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24시간 우리가 노출되어 있는 다양한 매체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더 배워야 하고, 더 벌어야 하고, 더 날씬해져야 하고, 더 예뻐져야 하고, 더 키가 커야 하고, 더 좋은 차를 타야하고, 더 비싼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거짓말입니다. 사탄은 모든 매체를 사용해 우리의 마음을 흔듭니다. 이 같은 선전에 노출되어 있다 보면, 우리는 어느 사이에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고 과시하기 위해 분투하게 됩니다. 거짓의 아비에게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사순절의 영적 여정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내게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을 지키는 일은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대중 매체가 전달하는 사탄의 거짓말 때문입니다.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거짓말. “지금의 너로는 안 된다.”는 거짓말. “사랑받을 자격이 있음을 입증해 보라.”는 거짓말. 이 거짓말에 속지 않기 위해서는 진실을 전달하는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진리의 음성을 듣기 위해 우리는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를 위해 사랑으로 섬깁니다. “너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진실. ‘하나님은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는 진실. ”사랑받을 자격을 입증하려 하지 말고, 사랑받는 자녀로 살라.“는 진실.

6.

얼마 전, 대학에 가 있는 딸과 아내가 통화를 하는데, 아이가 여러 가지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힘들어 하고 지쳐 있으며 그래서 자신감도 많이 떨어져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루를 지내고 나서 주일 저녁에 다시 전화를 했습니다.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입니다. 감사하게도, 들려오는 목소리가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아침에 예배에 갔었느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왔다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잘 했다고 칭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왜 매 주일 예배에 참석해야 하고, 왜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기도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대략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네가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혹은 인터넷이나 TV에서 듣는 소리는 끊임없이 너의 신분을 망각하게 하고, 지금의 너로서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만일 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면 너는 너 자신을 사랑받을만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할 것이고, 매일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다. 네 마음은 언제나 불안하고 초조해질 것이다. 그 어떤 성공으로도 네 마음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의 너는 충분히 사랑받을만하며,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너를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말해 주는 곳은 교회밖에 없다. 그 진리가 들리는 곳은 예배 밖에 없고, 그래서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다. 너 자신을 거짓말에 넘겨주지 말아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을 절대로 떠나지 말아라. 그래야 네가 산다. 네가 살아야 엄마 아빠도 산다.”

이런 말을 하면서 “아, 내가 또 설교를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아차 싶었습니다. 다행히도 아이가, “그건 그래요, 아빠!”라고 대답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 자신을 거짓말에 넘겨주어서는 안 됩니다. 진리를 말하는 음성에 귀 기우려야 합니다. 한 번만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진리의 음성에 귀 기우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우리 내면에 있는 뿌리 깊은 불안감으로 해방되어,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로서 그리고 아들로서 기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순절의 영적 여정을 통해 영적으로 활짝 깨어나게 되기를 다시 한 번 간절히 바랍니다. 사순절의 영적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서의 신분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더 이상, 내가 누구인지를 입증하고 과시하기 위해 분투하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영원하고도 고귀한 신분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로서 그리고 아들로서 살아가는 일에 전념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주님,
영적 세계를 망각하고
물질에만 빠져 있는 세상 속에 저희가 삽니다.
사탄의 속이는 음성은
끊임없이 저희의 마음을 흔듭니다.
이런 세상에 살면서
영적으로 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도록
저희를 흔들어 주소서.
사순절의 영적 여정을 통해
저희를 활짝 깨어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살아가는 일에
마음 다하게 하소서.
아멘.


 

<속회 자료> 2011년 3월 13일 <사순절 첫째 주일 설교>
“사순절의 부름”(Calling at Lent)
--마태복음 4:1-11

1. 찬송을 부르며 시작합니다. 219장
2. 한 사람이 대표로 기도합니다.
3. 마태복음 4:1-11을 다시 읽습니다. 예수께서 받으신 유혹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10분)
4. 말씀의 나눔 (한 질문에 대해 15분 정도를 할애하십시오. 전체 나눔 시간이 90분을 넘지 않게 하십시오.)

1) 오늘 말씀을 통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한 가지씩만 나누어 보십시오.
2) 사탄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했었습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사탄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3) 사탄에게 당신은 어떤 존재로 보이겠습니까? 그냥 두어도 아무런 위험이 없는 존재입니까?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위험한 존재입니까?
4) 당신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까? 그렇게 믿으십니까? 그것이 의심되는 때는 언제입니까? 어떻게 하면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5. 중보기도
1) 사순절의 영적 여정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사탄에게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존재’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2)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확신하도록 기도하십시오.

6. 찬송을 부르며 헌금을 드립니다. 212장
7. 광고 후 주기도문을 드림으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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