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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람이 되는 법

마가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303 추천 수 0 2018.09.21 23:5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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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9:33-35 
설교자 : 이익환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2월 25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복음서 강해 15  큰 사람이 되는 법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막9:33-35)

 

아주 오래 전 노래방에 가게 되면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란 노래다. 가사 중 이런 구절이 있다. “묻지마라 왜냐고 왜 그렇게 높은 곳까지 오르려 애쓰는지 묻지를 마라 고독한 남자의 불타는 영혼을 아는 이 없으면 또 어떠리” 20대 30대 초반 아직 사회적으로 자리를 잡지 못하던 때 이 노래를 비장하게 부르곤 했다. 그 때는 좀 더 높은 곳에 올라 꿈을 펼치고 싶은 열망이 가득했었다. 높은 곳에 오르는 것, 높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은 물을 필요도 없이 모든 남자들의 소원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노래를 알았다면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길 위에서 이 노래를 흥얼거렸을 것이다. 이들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가버나움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서로 다투었다. ‘누가 더 크냐’는 서열의 문제 때문이었다. 12명 제자들 안에 팀웤의 문제가 생겼다. 이 다툼의 발단이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한 예수님의 처방은 무엇이었을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가이사랴 빌립보 여행은 제자들에게도 중요한 터닝포인트였다. 제자 중 몇 명은 예수님이 영광스럽게 변모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들은 토라와 선지자를 대표하는 모세와 엘리야의 등장을 보며 ‘아, 예수님이 구약에서 오시리라 한 메시아임이 맞구나’라는 것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또한 마을에서 자신들이 쫓아내지 못한 귀신을 예수님이 쫓아내시는 것을 보았다. 메시아만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금 본 것이다.


그 마을을 떠나면서 예수님은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일만에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어쩌면 자기들의 기대에 맞게 그 말씀을 해석했을 것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신다는 말씀보다는 부활하신다는 말씀에 ‘메시아 왕국이 곧 시작되겠구나’하는 기대를 더욱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지상에서 펼쳐질 메시아 왕국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그들은 2년 넘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아마도 그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그들 마음 안에 일어나고 있는 더 높은 곳을 향한 욕망은 결국 다툼으로 이어졌다. 가버나움으로 가는 길 위에서 누가 더 크냐는 문제로 다툰 것이다. 그 발단이 무엇이었을까?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란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다. 이것은 베드로가 열두명의 제자들 중 넘버 원으로 치고나오는 기회가 된다. 예수님은 이 고백을 한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겠다고 약속하신다. 그 후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 이 세 제자만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신다. 택함 받은 이 제자들은 자만심이 생겼을 것이다. 반면 택함받지 못한 나머지 제자들은 시기심이 일었을 것이다. 잠시 뒤의 일이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몰래 나아가 주의 영광스런 나라가 시작되면 자신들을 각각 주의 우편과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베드로보다 더 높은 자리를 원한 것이다. 나머지 열 제자는 나중에 이 사실을 알고 이 둘에게 화를 낸다.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이 즈음 베드로는 예수님께 나아와 심각하게 질문한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베드로는 그 당시 용서의 문제로 씨름했던 것 같다. 베드로는 어쩌면 야고보와 요한 때문에 상처받았을 수 있다. 아니면 가롯 유다나 열심당원이었던 시몬과 부딪히며 그들을 용서하기 힘들었을 수 있다. 제자들은 서로 다른 성격과 야망 때문에 다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이 상황을 아셨다. 그래서 가버나움에 도착하여 집에 계셨을 때 그들을 불러 놓고 질문하셨다. ‘너희가 길에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그들은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이에 예수님이 티칭을 시작하신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제자들의 ‘누가 크냐’는 기준을 뒤집는 말씀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어린 아이 하나를 불러다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막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섬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을 섬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당시 고대사회에서 아이들은 수에도 치지 않는 대상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상징하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보잘 것 없어서 별로 섬기고 싶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내가 잘 섬겨야지’하면서 내 섬김의 목록 속에 결코 오르지 않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은 이런 아이들을 섬기는 것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예수님이 심판날에 의인들을 향하여 말씀하시는 장면이 있다. 마 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의인들이 우리가 언제 주님께 그랬냐고 질문하자 예수님이 답하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40절)


마태복음 18장에서는 오늘 본문의 내용이 조금 다른 각도에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 나라에서 누가 크냐는 질문을 한다. 이에 예수님은 어린 아이를 세우시고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나님나라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신다. 어린아이는 권력에 관심이 없다. ‘누가 크냐’가 그들에겐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누가 크냐’라는 것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나라에서는 큰 자인 것이다.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이 잘 섬기려하지 않는 지극히 작은 자를 섬길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나라에서는 큰 사람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팔에 안겨 있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제자들은 누가 크냐고 다투었던 자신들의 모습이 부끄러웠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결론과 같은 말씀을 전하신다. 막 9: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누가 큰지 다투지 않고 서로 화목할 수 있는 비결은 너희 속에 소금을 두는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자, 여기서 소금을 둔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소금은 고대로 부터 귀한 물건이었다. 고대사회에서 소금은 같은 양의 황금과 교환될 정도로 비쌌다. 현금가치가 있어 소금을 주고 노예를 사기도 했다. 한달 월급을 뜻하는 영어 salary가 salt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소금을 사도록 주는 돈이 한 달 봉급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소금은 부패하지 않는 것을 상징했다. 그래서 제단에서 태워지는 모든 소제물에는 반드시 소금이 쳐져야 했다. 레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예수님에게 있어서 제자들은 하나님께 드려져야 할 산제물이었다. 그들은 그들 안에 소금이 있어 맛을 잃지 않고 변질되지 않아야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소금의 맛을 잃지 않는 자, 즉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지닌 자가 되라는 것이다.


또한 소금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언약을 상징한다. 대하 13: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 하나님은 약속의 불변성을 강조하시기 위해 그것이 소금언약이라고 말씀하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을 보면 가롯 유대 앞에 놓여 있는 소금통이 엎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주님과의 언약을 엎어버린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금을 두고 회목하라는 것은 너희가 서로 변하지 않는 언약의 자녀임을 기억하라는 의미도 담긴 것이다.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와 불편해지는 이유가 뭘까? 그것은 우리가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 안에 소금의 맛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서로 간에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보다는 누가 더 크냐는 세상의 우월의식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분쟁이 나고 다툼이 나는 것은 여전히 세상적인 방식으로 서열을 따지고 다른 사람 위에 서려는 습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섬김 받으려 하지 겸손히 작은 자까지도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에 화목이 깨지는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자를 일곱 번만이 아니라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소금의 맛을 잃어버렸기에,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붙들고 살지 못하기에, 우리는 세상에서 뿐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상처받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나라에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길 위의 제자들처럼 ‘누가 더 크냐’는 것이 화두인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누가 더 큰 집에 살고, 누가 더 큰 차를 타고, 누가 더 큰 교회를 다니냐가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방식은 큰 사람이 되기 위에 작은 자를 실족하게 하는 일이 허다하게 벌어진다. 경쟁사회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오르는 것이 유일한 목적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남들보다 높은 곳에 올랐을 때 느끼는 비교 우월감은 짜릿할 것이다. 세상에서 큰 자라는 대접을 받으며 성취감에 젖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추구할수록 하나님 나라에선 작은 사람이 될 뿐이다.


그런데 ‘누가 크냐’라는 관심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우리의 뿌리 깊은 본능이다. 제자들은 이후에도 더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한 야심을 보인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만찬을 하시는 자리에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면 이 섬김의 문제를 다루신다. 요 13:14, 17,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낮은 자가 높은 자의 발을 씻기는 것이 세상의 원리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 백성은 세상의 서열과 상관없이 서로가 발을 씻어 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서로가 낮은 자의 위치에서 발을 씻겨줄 수 있는 삶이 결국 복이 있는 삶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35절)’ 하나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되라는 이 예수님의 초대에 응답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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