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이사야 › 바른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한규 목사 | 2017.08.11 23:57:4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사60:1
설교자
이한규 목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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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사야 60장 1절)


< 바른 믿음을 가지십시오 >

 본문 1절을 보십시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런 말씀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정말 일어나 빛을 발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일어나 빛을 발하는 것입니까? 아무 변화도 없이 마음만 붕 떠서 사는 것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구절에서 “일어나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믿는 사람답게 바르게 살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바르게 되면 태도와 언어도 바르게 되고 생각과 삶도 바르게 됩니다.

 지금처럼 어두운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사람은 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가끔 보면 믿는다고 말하지만 믿음이 요구하는 바른 인간상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봅니다. 그러면 진정으로 복된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행위가 완벽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정신만은 똑발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바른 정신을 가진 바른 인간이 되지 않고 성공만 하면 안 됩니다. ‘큰 것’보다 ‘바른 것’이 진짜 성공입니다. 외면적인 것보다는 내면적인 것에 행복이 있고 비본질적인 것보다는 본질적인 것에 행복이 있습니다.

 ‘무엇을 얻기’보다 먼저 ‘사람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기도할 때도 바르게 큰 것을 구하십시오. 기도할 때 ‘무엇을 달라는 것’은 3순위입니다. 기도의 1순위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것’이고 기도의 2순위는 ‘하나님의 뜻에 더 잘 순종하려는 것’입니다. 문제해결 이전에 그런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왜 큰 축복을 구합니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좋은 사람을 키우고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바른 목적을 가지고 기도할 때 그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가 됩니다.

 어느 교회에서 교회 건축공사를 했습니다. 그때 그 교회 목사님에게는 건축 회사를 잘 운영하는 친동생이 있었지만 그 동생에게 건축을 맡기지 않았습니다. 동생에게 맡기면 정당한 요구를 못해 결국 교회에 누를 끼친다는 것입니다. 동생도 그런 형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속상해하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바른 믿음을 가진 형제들입니까? 친분 때문에 원칙이 흔들리면 교회도 힘들어지고 성도에게도 상처가 남습니다. 교회에서는 계산적인 관계나 이윤관계에 의한 관계설정이 없도록 힘써야 합니다.

< 원칙에 충실하고 정직하십시오 >

 인천에 살 때 신학교에 강의를 나가면서 교회를 개척하자 신학생들이 교회로 많이 찾아왔습니다. 교인들이 처음에는 좋아하다가 나중에는 신학생 인플레를 부담스러워했습니다. 다들 돕겠다고 오지만 정식 전도사로 쓸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한 학기에 4곳의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학생이 총 4백 명이 넘었기에 매 학기마다 불러만 주면 오겠다는 신학생과 전도사들이 수두룩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교회에 방문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면 은근히 다른 좋은 교회에 가서 열심히 봉사하라고 말을 돌렸습니다.

 그렇게 해도 스스로 찾아오는 신학생들이 많아서 한때 전도사급 신학생만 10명까지 있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은 정확한 사정도 모르고 “왜 목사님이 신학생들을 교회로 불러모을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강의를 듣고 목회를 배우러 오겠다고 하는데 막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 신학생들 중에 제가 오라고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아는 사람을 어떤 직분을 걸고 오라고 부르면 나중에 교회의 질서가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교회의 무질서는 좋은 열매를 낳기 힘듭니다. 당시에 제가 신학교에서 가르친 신학생 중 지금도 제가 부르면 무보수로 와서 봉사할 사람이 꽤 있지만 그렇게 하면 교회의 질서를 세우기가 쉽지 않습니다. 협력 전도사가 많다고 교회가 잘 부흥되는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가 머리만 많은 역피라미드 형이 되면 오히려 역동적인 힘을 잃기 쉽습니다.

 평신도 중에도 직분에 대한 암시를 주면 교회에 동참할 수도 있습니다. 교회성장만 생각하면 그런 편법에 대한 유혹을 받지만 그것은 복된 조치가 아닙니다. 어떤 직분이나 자리를 걸고 누군가 참여한다면 당장에는 좋지만 미래에는 큰 문제가 됩니다. 무엇이든지 원칙에 충실하기보다 편법을 동원하면 부작용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심 없이 공동체를 찾아온 사람이 계산과 이익을 초월해 헌신할 때 참된 은혜와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원칙에 충실하고 정직하십시오. 하나님은 순전하고 정직한 심령에 은혜를 주십니다. 왜 교회에 나옵니까? ‘좋은 것’을 얻기 전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자기를 좋게 만들지 않으면서 좋은 것을 얻지 못했다고 불평하면 그것은 성숙의 기회를 차버리는 태도입니다. 교회는 좋은 것을 얻으려고 모인 곳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모인 곳입니다. 성도의 중요한 기도제목은 이런 기도제목입니다. “하나님! 제가 나눔과 헌신의 의미를 아는 건강하고 정직하고 바른 성도가 되게 하소서!” 그런 성도가 세상의 빛 된 존재로 우뚝 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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