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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신 예수를 따라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03 추천 수 0 2018.09.19 18: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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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25:31-46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7-11-20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살아계신 예수를 따라

마25:31-46

 

참으로 어려운 시절 흔들리지 않고 의연한 자태를 보여준 자가 있다면, 자기를 베고 찍고 상처를 내는 자들을 향해서도 향기를 발하는 향나무에서 무언의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던 자가 있다면, 한평생 그 사람을 따르는 것도 커다란 즐거움일 것입니다. 복음서들은 바로 그러한 한 사람을 잊을 수 없어서 쓰인 문서입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 관한 글을 썼지만(루가 1:1) 우리가 가진 성서에는 4개의 복음서가 있고, 각각의 복음서는 그 복음서를 쓴 저자가 속한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해서 1세기 후반 유대의 역사를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복음서들을 기록한 이들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는 것은 66년부터 72년까지 진행된 유대-로마 전쟁입니다. 유대-로마전쟁은 전쟁의 참혹성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70년에는 로마군에 의해 거룩한 하느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역사가 타키투스에 의하면 예루살렘 공방전에서 60만이 죽었다고 하고, 요세푸스에 의하면 110만이 죽었다고 합니다. 로마군은 예루살렘 성전을 공략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 주위에 반-영구적인 진지를 구축하여 성 높이만큼의 벽을 쌓아 성전을 나와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잡아 십자가에 매달았고, 전쟁이 마무리 될 때쯤 예루살렘 주위는 10,000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 성 안에서는 과격파 유대인들이 결사항전의 의지를 높이기 위해 모든 식량을 쌓아놓고 불을 질러버려서 예루살렘 거주민들과 군인들이 굶어 죽었으며, 성전을 약탈한 로마군은 도망가는 유대인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규군만 6만 명에 이르는 대군을 투입했습니다. 이 로마 군대는 진압작전을 펴면서 수만 명의 식민지 청년들을 징발했으며 이들은 로마군을 따라 무자비한 학살자 대열에 끼어야 했습니다. 같은 동족을 죽여야 했던 유대인들은 유대-로마전쟁이 끝나고 고향에 돌아왔지만 정신은 파괴되었고, 온갖 병과 전쟁의 충격에 의한 스트레스에 시달렸습니다.

 

대로마 항전에 실패하고 잿더미가 된 유대사회를 복구하기 위해 바리새파 계열의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는 얌니야에 율법학교를 세우고 유대인의 단결을 외쳤습니다. 그는 온건파로 전쟁에 반대했던 인물이었으나 2대 수장이 되었던 가말리엘 2세는 전쟁에 가담했던 행동파 바리사이 랍비 출신으로, 전임자보다 훨씬 공격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엄격한 율법규정을 적용하여 모든 유대공동체의 신앙의 표준을 세우고, 이 가르침과 실천에 순응하지 않는 모든 집단을 구별해 내어 추방하고 잡아다 매질하였습니다. 이 때 18개조의 기도문이 만들어 지는데, 이 기도문의 제12조에는 예수를 따르던 회당 내의 사람들인 ‘나자렛 도당에 대한 저주’가 실려 있었고, 랍비적 바리새파의 숙청작업의 표적이 된 대상은 바로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었습니다.

 

마태공동체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도 예수를 따르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이 만난 예수에게서 전혀 다른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애굽 왕이 히브리 어린이들을 죽이듯이 로마의 주구가 되어 자기 백성을 학살하는 헤롯 정권이 아니라 오히려 연약함을 짊어지는 새로운 왕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백성들의 멍에를 함께 메어주어 백성들의 짐을 가볍게 해주고 백성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왕이었습니다(11:30). 그는 다투지도 않고 큰 소리를 내지도 않습니다. 그는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며,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습니다(12:17-21). 그는 제국주의적 민족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이방인의 갈릴래아로부터 하나님 나라의 운동을 시작합니다(4:12-17). 그래서 어둠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되고,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며(4:16), 이방인들이 그의 이름에 희망을 겁니다(12:21). 당시의 모든 왕은 군마를 타고 입성하지만 예수 메시아는 나귀와 나귀새끼를 타고 겸손하게 들어옵니다(21:5).2 그래서 그는 하나님이 택한, 하나님 마음에 꼭 드는 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왕은 전쟁으로 땅을 빼앗는 이가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할 것이다(5:5)라고 말하며, 전쟁을 일으키는 로마의 군주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아들딸이라고(5:9) 말하는 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예수를 따랐기 때문에 로마의 핍박을 받은 것은 물론 같은 유대인 동족에게 끌려가 어떤 이는 매를 맞아 죽었고, 어떤 이는 집안 재산을 빼앗겼습니다. 한 마을에 같이 살던 유대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해야 했고, 어떤 이는 고문을 견디다 못해 동료를 밀고해야 했습니다. 때론 밀고하고도 함께 추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서로 배신감에 분노하였고, 또 배신한 자신을 저주해야 했습니다. 온 동족을 학살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로마의 거대한 폭력, 또한 같은 동족에게도 수용되지 못하고 오히려 핍박을 받은 마태공동체는 무엇보다도 안팎으로 가득한 전쟁의 흔적과 폭력의 잔재들을 없애야 했습니다. 원수를 향한 분노를 삭일 수 없었던 공동체, 그러나 복수할 대상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복수는 꿈조차 꿀 수 없었던 공동체가 마태공동체였습니다. 마음속에 가득한 분노가 표출되지 못하면 그것은 곧 자기 안에 생채기를 내거나 자기보다 더 약한 이에게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면 직장이나 사회에서 상처받은 가부장은 아내에게 폭력을 행하고, 남편의 가정폭력의 희생자인 아내는 다시 자녀를 때리고, 그 자녀는 학교에 가서 이른 바 ‘왕따’를 괴롭히는 폭력의 먹이사슬이 이어지게 됩니다.

 

마태공동체는 로마가 제공한 폭력의 먹이사슬에서 마지막 희생양이 되었던 예수의 죽음을 기억했기에, 자신들이 그 폭력의 사슬을 끊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폭력을 넘어서는 엄청난 윤리적 힘을 자신들의 자아 정체성으로 삼고 견고한 자아구축을 시도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5:3).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사람은 누구나 재판을 받아야 하며 자기 형제를 가리켜 바보라고 욕하는 사람은 중앙법정에 넘겨질 것입니다. 또 자기 형제더러 미친놈이라고 하는 사람은 불붙는 지옥에 던져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예배하러 갈 때 당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교회에 가기 전에 먼저 그를 찾아가 화해하고 나서 예배를 드리십시오.”(5:22-24).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신 말씀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앙갚음 하지 마십시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돌려대고 또 재판에 걸어 속옷을 가지려고 하거든 겉옷까지도 내 주십시오. 누가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가 주십시오. 달라는 사람에게 주고 꾸려는 사람의 청을 물리치지 마십시오. 원수마저도 사랑하고 당신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십시오.”(5:38-42, 44).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5:10).

 

이들이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이 정도의 놀라운 도덕적 가치를 지켜 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늘 자신들의 곁에 계시다는 임마누엘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서의 처음을 장식하는 예수 탄생이 임마누엘의 약속의 성취로 시작되고(1:23), 예수의 마지막 명령이 임마누엘의 약속으로 끝이 납니다.(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공동체는 미가야 예언자가 외친대로 날마다 정의를 실천하고 조심스레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겠다고 매 순간 다짐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마태 본문에 의하면 우리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 끝 날의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 왕으로 오시는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25:40)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25:45)

 

곧 우리 곁에 있던 보잘 것 없던 그 사람이 우리와 늘 함께 계셨던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이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보잘 것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굶주리게 됩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강한 자만이, 원래 가진 것이 많았던 자들만이 살아남는 세상에서 헐벗고 병들기 쉽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은 승자독식의 세상에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가 되어 길바닥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누가 보잘 것 없습니까? 어린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은 어린 녀석이 뭘 아냐면서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집니다. 생명 살리는 가사노동은 돈이 되는 직장의 노동보다 보잘 것 없다고 여겨질 때가 많습니다. 머리 쓰는 일보다 몸으로 하는 일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래서 몸으로 일하는 사람도 역시 보잘 것 없는 사람, 있으나 마나 한 존재처럼 대우를 받습니다. 능력 있는 젊은이들이 활개 치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는 역사의 모진 풍상을 겪은 어르신들의 경험이 무시되기도 합니다. 또 가끔은 자기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이 보잘 것 없음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발견하고,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한 것이 바로 하나님께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마태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가장 화려한 문명의 제국인 로마의 폭력과 그 폭력에 희생된 한 유대 청년의 작은 삶을 통해 바로 모든 폭력과 모든 억압이 바로 더 뛰어난 것, 더 강한 것, 더 효율적인 것, 더 많은 것을 추구하는 것에서 나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의 미꾸라지가 온 물을 흐려놓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아흔 아홉 마리의 양을 위해서 한 마리의 양을 포기하는 것 또한 공동체가 해서는 안 될 일임을 알고 있었습니다(18:10-14). 그래서 두 세 사람만 모여도 예수님이 함께 하시겠다고 하셨고(18:19-20), 공동체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용서를 빌면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18:21-22). 제국의 폭력이 자신에게 전염되었을 것을 염려하여, 가장 무력한 존재인 어린아이를 받아들여 늘 자신을 낮추는 연습을 하였고(18:1-5), 보고(눈) 만지고(손) 걸어가는(발) 모든 행동이 누군가에게 악으로 작용할까봐 노심초사 하였습니다(18:6-9). 일상의 삶에서 녹아나는 진실과 정의를 실행하기 위해 겉으로는 옳은 척하고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 찬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들보다 더 철저한 자기수행을 하였습니다(5:20, 4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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