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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왕인가?

요한복음 정용섭 목사............... 조회 수 325 추천 수 0 2018.09.08 16: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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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6:1-15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97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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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왕인가?

요 6:1-15, 성령강림 후 10주, 2018년 7월29일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2.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자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보았음이러라 3.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4.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5.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하시니 6.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7.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8.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시니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가 오천 명쯤 되더라 11.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12.그들이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13.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 14.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15.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오병이어 이야기


오병이어(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이야기는 네 복음서에 다 나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갈릴리 호수 건너편으로 갔다는 말로 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그곳까지 많은 사람들이 예수 일행을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이 특별한 능력으로 병자들을 고친 사건을 직접 보기도 하고 소문으로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특별한 인물로 생각하고 몰려든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요즘도 벌어집니다. 환자를 잘 본다는 의사에게 환자들이 몰리고, 유명 가수의 콘서트에 팬들이 몰립니다. 수능 점수 잘 받도록 강의하는 강사에게 입시생들이 몰립니다. 설교를 잘해서 은혜를 크게 끼친다는 목사의 교회에 사람들이 쏠리는 것도 비슷한 현상입니다.


예수님은 제자 빌립에게 ‘이 사람들에게 줄 먹을거리를 어디서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빌립은 당황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준다고 해도 이백 데나리온으로 부족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백 데나리온을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최소 2천만 원 정도 됩니다. 이런 정도의 돈이 예수 일행에게는 없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은 돈이 있어도 먹을거리를 구입할만한 상황이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큰 도시의 시장이 아니라 인가에서 멀리 떨어진 들판에 머물고 있는 중입니다. 이런 대화를 듣고 있던 안드레가 말을 보탭니다. ‘어떤 아이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이걸로 이 많은 사람들의 끼니를 해결한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보리떡을 들고 온 이 아이는 눈치가 빨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들의 끼니를 걱정하는 예수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고 자기 가족들이 먹으려고 준비했던 것을 예수님 곁에 있던 안드레에게 전했을 겁니다. 2백 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하다는 빌립의 발언과 보리떡 다섯 개뿐이라는 안드레의 발언은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입니다.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건 현재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아들이고 다른 방법을 찾는 게 합리적입니다. 만약 제가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면 가능한 빨리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서 각자 먹는 문제를 해결하거나, 아니면 한 끼를 금식하면서 예수님에게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나 듣자고 제안했을 겁니다.


그 순간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풀밭에 앉게 했습니다. 오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보리떡을 손에 들고 축사하신 후에 앉아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라 하시고 물고기도 똑같은 방식으로 나눠주게 했습니다. 거기 모인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겁니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믿을 사람이 오늘날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이런 초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교회 안에서도 그런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도대체 당시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여기서 분명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원칙에 따르면 하나의 빵을 반쪽으로 떼어내는 순간에 그 반쪽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일은 하나님의 창조 원리에 위배됩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한다고 해서 일부 지역만 비가 그치거나 강도의 칼이 꽃다발로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빵을 반으로 나누면 반쪽짜리 두 개가 되는 게 바로 하나님의 창조 원리이고, 그것을 부정하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부정하는 겁니다. 마술은 창조 세계를 초월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빵을 검은 보자기에 감춘 다음 손을 그 안에 넣었다가 다시 빼는 동작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커피를 ‘리필’하듯이 공급했다면 그건 마술입니다. 성경기자의 묘사를 잘 보십시오. 검은 보자기나 특수 제작된 상자나 마술사가 입는 특별한 복장에 대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손이 등으로 간다거나 좌우 손바닥을 과장되게 교차하는 몸동작도 없습니다. 은밀한 방식으로가 아니라 사람들의 눈에 확 드러나게 빵을 들고 기도했을 뿐입니다. 아무도 이 이야기에서 마술의 호기심과 재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만나 이야기


오병이어 이야기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성경 전체가 말하는 몇 가지 관점이 필요합니다. 저는 그것을 신약과 구약에서 각각 한 대목씩 말씀드리겠습니다. 마 4장에는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마귀에서 받은 시험 이 나옵니다. 첫 시험은 돌을 떡으로 만드는 능력에 대한 것입니다. 정말 매력적인 능력입니다. 고대인들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예수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게 분명하다면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어야만 합니다. 예수 내면에서 그런 자의식이 발동했을지 모릅니다. ‘내가 세상을 구원해야 한다는 소명을 받긴 했는데, 무엇으로 세상을 구원한단 말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이니, 그런 능력을 허락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할까?’ 예수님은 마귀의 유혹을 거절했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대답을 얻었습니다. 예수는 초능력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바르게 선포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을 충분히 먹였다는 이야기는 예수의 초능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는 게 분명합니다.


출애굽기 16장에는 그 유명한 만나 사건이 나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 의식의 기원인 출애굽 이후 광야에서 40년을 지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거리 문제였습니다. 광야생활 초반부에 먹을거리가 떨어지자 모세의 리더십이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어려운 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다시 애굽으로 돌아갔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가 붕괴될 수도 있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매일 적당한 양의 만나를 공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저들의 생존을 보장하신다는 증거가 바로 만나입니다. 예수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오면 만나 사건 같은 것들이 다시 일어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오병이어를 만나 사건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만나 사건의 관점에서만 오병이어는 신앙적인 정당성이 확보됩니다. 오늘 본문 요 6:4절에는 그때가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었다는 코멘트가 나옵니다. 그것은 앞으로 전개될 오병이어가 만나 사건이라는 사실에 대한 암시입니다. 만나는 미디안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의 씨앗이나 열매입니다.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그것을 고대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신들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 내려주신 먹을거리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런 삶의 태도가 바로 참된 신앙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시답잖게 생각하는 것조차도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의 삶이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갑니다.


네가 왕이냐?


오병이어 이야기를 통해서 성경기자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이야기 후반부인 14절에 나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고, 즉 메시야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그들에게 예수는 제2의 모세입니다. 인생살이가 고달프고 로마 제국의 억압은 계속되면서 답답해하던 그들에게 이제 제2의 모세가 나타났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5절 설명에 따르면 군중들이 예수를 왕으로 옹립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이 이해는 됩니다. 우리가 지금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이라고 여길만한 사람이 나타났다면 당장 대통령으로, 아니 대통령보다 더 강력한 권한을 지닌 자리에 올리고 싶을 겁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절인 15절에서 그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예수는 몇 년 후에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요 18:33). 이 질문은 공관복음에도 다 기록되었습니다(막 27:11, 막 15:2, 눅 23:3). 당시에 실제로 예수를 왕으로 세워보려는 움직임이 광범위하게 일어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 유대사회에서는 군중을 선동해서 반로마 무력투쟁을 벌임으로써 왕을 사칭한 사람들이 종종 나오곤 했습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왕을 찾습니다. 지금은 왕정이 아니니 대통령이나 수상 등, 정치 최고 지도자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라는 군중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치인들은 어디서나 최고 지도자가 됩니다. 옛날에 비해서 오늘날은 정치 지도자의 역량이 많이 줄었습니다. 경제 지도자가 왕의 기능을 감당합니다. 만약 오늘의 대기업 총수가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월 5백만 원 수입을 보장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 약속이 확실하기만 하다면 우리는 그를 대통령으로 뽑으려고 할 겁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서 산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합니다. 군중들이 원하는 길이 자신의 길과 달랐기 때문입니다. 빌라도 총독이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냐?’ 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요 18:36절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습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그러자 빌라도는 다시 예수님에게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하고 반문했습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다시 “내가 왕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라도는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이 세상에서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왕만 자리했기 때문입니다. 당연합니다. 빌라도의 세계는 철저하게 권력 지향적 질서입니다. 거기에 잘 적응해서 총독의 자리까지 올랐고, 앞으로 운이 좋으면 로마 황제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유대인들에게 체포되고 로마 법정까지 오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런 권력도 없는 왕이라니, 이게 무슨 왕입니까. 예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빌라도와 달리 종교적인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지도자야말로 그들에게 필요한 왕이었습니다. 예수는 그들의 왕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길을 갈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생명을 얻는 절대적인 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군중 곁을 떠났습니다.

 

생명의 나라


예수는 어떤 나라의 왕일까요? 그의 나라는 어디에 있나요? 십자가에 처형당한 자가 왕이라는 말이 가능할까요? 예수의 나라는 생명의 나라입니다. 죄가 아니라 의의 나라입니다. 영원한 안식이 있는 나라입니다. 구원의 나라라고도 할 수 있고, 하나님 나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한 말로는 해방과 평화와 정의의 나라입니다. 오병이어에 대한 해석에 해당되는 요 6:22절 이하에서 예수는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말했습니다. 요 6:35절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빌라도는 로마 제국의 이데올로기가 세상을 구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정치 지도자들이 쏟아내는 주장이 그것입니다. 트럼프와 푸틴과 시진핑 같은 이들이 하는 말을, 그리고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선동적인 발언을 생각해보십시오. 오병이어 당시의 군중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실행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통해서 자신들의 욕망을 실현해보고 싶었습니다. 자신들의 욕망이 실현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들은 예수를 포기했습니다. 유대 군중들의 특성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들 마음에 들면 예수에게 구름처럼 몰려들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 예수를 완전히 외면합니다. 그들은 예수가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 바라바는 석방하고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아우성을 쳤습니다. 종교적인 군중과 정치적인 빌라도 모두 예수가 생각하는 생명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현대인들도 당시 군중들이나 빌라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거나 정치 이데올로기를 절대화합니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고 말들이 많습니다. 실제로 어려운 이들도 있고, 엄살을 떠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나라가 나라다워지려면 경제적인 어려움까지도 감수해야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는 하향 평준화되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10% 정도 수입이 줄어들어도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 10%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이 바로 정치가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 운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자들이 목사를 향해서 교회 성장에 매달리도록 압박을 가한다면 교회는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교세가 일시적으로 약해져도 건강한 교회가 되는 게 좋다는 생각을 일반 신자들이 해야만 목사도 소신 있게 그런 길을 갈 수 있습니다.


다시 묻습니다. 예수가 왕이라고 할 때 그의 나라는 도대체 무엇이며 어디에 있습니까? 이것은 예수를 통해서 얻는 생명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과 직결됩니다. 생명의 반대는 죽음입니다. 죽음은 죄의 결과입니다. 생명의 나라는 죄가 무력화되는 나라입니다. 여기서 죄는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기보다는 자기가 신의 자리에 올라서겠다는 야망을 가리킵니다. 거친 표현으로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오늘의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교육마저도 돈을 절대화하고 있으니, 지금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죄의 지배를 받는 나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고대 이스라엘을 바알숭배에 물들었다고 비판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는 왕도 아니고 그리스도도 아닙니다. 이런 세상의 주인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라고 압박하는 군중들과 로마정치를 절대화하는 빌라도 총독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에 의해서 자신들의 숨어 있던 민낯이 노출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는 우리에게 생명의 왕이십니다. 우리는 그 나라의 백성들이기에 예수는 우리의 생명을 지키십니다. 목자가 자기 몸을 던지면서까지 양을 지키듯이 예수는 우리의 영혼을 지키시는 왕이십니다. 이를 실제로 알고 믿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생명을 잃지는 않을까, 세상으로부터 외면 받지 않을까, 인생이 실패할까, 무엇을 먹고 살까, 하는 염려로부터, 즉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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