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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3:20-21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320-21: 또 가라사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하나님의 나라를 가루를 부풀게 한 누룩으로 비유를 했다. 왜 누룩으로 비유를 했을까? 누룩은 잘 빻아진 밀가루가 잘 반죽된 그곳에 들어가기만 하면 다른 가루를 삭히면서 부풀어 오르게 한다. 그러니까 시집간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을 넣었더니 전부 부풀었다는 것은 신앙적으로 말하면 인격의 큰 변화를 말한다. 속성적으로 변화됐다는 말이다. 부풀었을 때 이게 보이는 거지 그 속에서 부푸는 역사를 하는 것은 사람의 눈에 잘 안 보인다. 그러나 사람은 변화가 있는 거다. ‘그 사람 마음이 옛날하고 전혀 다른데하는 게 있다.

 

본분의 비유는 첫째는 천국복음의 본질적 역사가 그렇다는 것이다. 본질은 하나님의 속성이다. 선 사랑 거룩 진실 이건 도덕성이고, 의와 주권은 능력성인데, 이 하나님의 것이 인간 속에 들어오면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킨다. 인격과 정신 소원 목적을 변화시킨다. 하늘의 것이 들어왔으면 하늘의 것으로 변화가 된다. 이게 기독교이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 믿는 사람이 이건 모른 채 예수 믿기 전의 소원 목적을 가지고 부자되겠다. 건강해지겠다하며 예수님께 와서 그걸 이뤄달라고 하고 고쳐달라고 한다. 거의가 그러고 있다. 설령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됐거나 고침을 받았다면 그 사람이 무슨 일을 할까? 세상에서 가난하고 병 든 사람들을 찾아가서 내가 예수 믿으니 이렇게 병도 낫고 부자가 됐다하며 간증을 한다. 몇 사람이나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자꾸 그렇게 들어가면 그게 기독교냐? 그렇게 되면 예수 믿기 전에 이미 건강하고 부자인 사람은 예수 믿을 필요가 없게 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믿고 이런 식으로 전도를 하니까 예수는 안 믿지만 돈 많고 건강하고 사회적으로 이름 있는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을 쳐다보면서 자기들보다 아래로 보게 되는 거다. 왜 그런 소리를 듣게 믿느냐?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을 목적으로 사는 것은 선악과를 먹는 거다. 생명과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 그리고 말씀으로 변화가 되는 사람은 영능의 실력을 가지고 지키고 다스리고 정복하는 일을 하게 된다. 쉽게 말하면 이게 영능의 실력이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들이 사람이 변화되는 이걸 모른다. 속성적으로 주님을 닮는 것을 모른다.

 

주님의 교훈이 들어가면 주님의 정신이 생기는 법인데, 그런데 교회에서 성경을 배우고 예수 예수하면서 왜 주님이 정신이 안 들어가느냐? 이건 딴 걸 배웠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건 천국복음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이를 먹느냐? 안 먹는다. 변하느냐? 안 변한다. 하나님의 한 번 옳음은 절대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창세 전의 그 마음이나, 우리가 하늘나라에 가서 만나보는 그 마음이나 똑같다. 하나님은 시대적인 변화를 타지 않는다. 우리도 시대적 바람을 타지 말고 만들어지라는 것이다.

 

복음의 역사는 천국의 성질로 들어있다. 신령한 것으로 되어있다.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은고로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야 한다. 물질세계에서도 과학계에서도 물질 속에서 법칙적으로 움직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씨름을 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세상에서는 못 찾는다. ‘세상에서 부자 되자하는 데서는 못 찾는다. 거기에는 주님이 없다. 거기에는 성령님이 안 계신다. 마귀의 시험이 자꾸 눈으로 보암직하는 그것부터 기준을 세우게 한다. 이게 마귀 짓이다.

 

두 번째는 여자가 그렇게 고침을 받는 것처럼 교회의 변화도 그렇다는 것이다. 누룩을 갖고 와서 비유로 말해주는 것이다. 즉 교회는 단순히 숫자를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변화를 목적하는 것이다. 어느 쪽 변화?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그 속성이 타락되고 저주받은 속성으로 하나님 앞에 깨끗하고 거룩한 것은 하나도 없다.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세상을 따라 살지 않고 하늘을 향해서 사는 것이다. 이것이 변화된 삶이다. 그래서 예수 믿고 하늘을 향해 삽시다하고 세례의식을 하는 거다. 그런데 그 세례를 받고서도 맨 마찬가지이니 성령의 열매가 안 나오는 거다.

 

:에 성령의 열매가 나오는데, 자기 이름을 그 열매의 이름으로 지으면 성령의 열매의 사람이 되는 것이냐? 이건 미신적 사고방식이다. 자기에게 믿음이 없으면 이름을 김믿음, 박믿음으로 지어봐라. 그러면 엄청나게 믿음이 하늘을 향해서 좋아질 거다. 이름은 그렇게 해 놓고 믿음이 안 좋아지면 뭐가 되는 거냐? 예수를 믿어도 미신 식으로 믿는 사람이 많다. 목사님들 세계에서 유교식으로 믿으려 하고, 공 드리고 하는 걸 보면 우상 섬기는 식으로 믿으려 하고, 굴속에 틀어박히려 하는 걸 본다.

 

성경은 아주 독특한 것이다. 기독교는 독특한 것이다. 존재적으로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는 거지만 예수 그리스도 속에 들어있는 그 정신 사상은 창세 이후로 마지막 그날까지 이 세상 그 누구에게도 없는 독특성이다. 바로 이 예수님처럼 되는 게 기독교이다. 이게 예수 믿는 거다. ‘예수 믿으니까 그래도 세상 사람보다 나아야지하면 안 된다. 독특성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을 세상이 감당을 못한다.

 

진짜 누룩은 잘 반죽된 밀가루 속에만 들어가면 부풀게 돼 있다. 진리본질의 말씀을 받으면 사람의 속이 천국의 성질로 되는 거다. 예수를 믿는데도 인격과 속성이 주님의 사람으로 변화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 뭔가 잘못돼 있다. 예수 믿은 지 3년 정도 지나면 눈에 뜨이게 열매가 보여지고 하는 건데 그게 없다면 뭔가 잘못 됐다. 말하자면 참 누룩이 아니거나 즉, 가짜 누룩이거나, 자기가 참 가루가 아니든지, 아니면 좋은 물이 아니든지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찾아라.

 

자기 믿음이 왜 성장이 안 되는지? 백날 믿어도 새벽기도도 나오고 전도도 하고 성경도 보는데 자기 속의 지식이 주님의 지식으로 왜 안 바뀌었는지? 예수님의 전하신 천국의 진리본질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든지, 인간 자기의 선악과 먹은 타락된 주관성을 가지고 그대로 살고 있다든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일 그렇다면 자기가 오늘날까지 예수 믿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심사를 안 해 봐도 되는 거냐? 그냥 그렇게 믿고 있어도 하나님의 심판이 자기에게는 없는 것이냐?

 

하나님의 심판은 시대적 심판이 있고, 개체 개별적 심판이 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은 통째로 들어가는 거다. 왜 그러냐?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아 영은 죽어있고 하니까 개체 개별적으로 심판받을 것과 안 받을 것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아각 왕과 남녀노소 짐승도 다 죽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라고 하신 것은 모양새는 짐승이고 사람이고 왕이고 애고 어른이고 하지만 질적으로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싸그리 쓸모가 없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들어가는 거고, 그 다음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개체 개별적인 성장에 따른 심판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기본구원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보혈로 그 기초를 깔아놨고, 우리가 그 위에다 진리이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의 정신과 지혜지식성과 도덕성으로 올라간다면 이룰구원 면에서 집을 짓듯이 잘 올라간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도 세상 정신 소원 목적으로 한 것은 사람이 하나도 안 만들어진다. 이런 경우 많이 잘 만들어진 것과, 그 다음에 중간 정도로 만들어진 것, 그 다음에 안 만들어진 것에 따른 심판의 차등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고통스런 사건이 오면 유달리 못 견디는 사람이 있고, 호들갑을 떠는 사람도 있고, 무난히 이겨내는 사람도 있다. 마음의 힘에 의해서 그렇게 된다. 그런 것처럼 예수 믿는 것도 한 날 한 시에 같이 믿어도 차이가 난다. ‘그 사람의 개인의 마음을 어떻게 갖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둘이서 매를 같이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갔고 하나는 버려졌다. 왜 그러냐? 일을 한 시간도 같고, 노동도 같고, 해 놓은 양도 같다. 노력도 같고, 시간도 같고, 활동도 다 같은데 왜 그럴까? 뭐가 다른 건가? 맷돌이 다른가, 사람이 다른가? 겉으로 보이는 것은 똑같은데 속의 중심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러면 버려진 사람은 어떻게 되겠느냐? 이 사람도 예수 믿는 사람이다. 안 믿는 사람이라고 하게 되면 해석이 안 된다. 버려진 사람이 예수를 안 믿는 사람이라고 하게 되면 그러면 자기는 예수를 믿으니까 자기가 마음을 어떻게 가져도 자기는 데려감을 당할 사람 쪽으로 말을 할 거다.

 

믿고 안 믿고 하는 건 눈으로 보는 면에서 성경을 들고 교회에 다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교회에 나가는 목적이 다른 사람이 있다. 큰 교회에 가면 어떤 자들이 모이느냐? 다단계나 장사꾼이 많이 모인다. 자기 교인이 물건을 팔면 교회에서 그거 소개해 주고. 이왕이면 자기 교인 물건을 팔아주면 좋은 건데, 그런데 뭘 선전을 하고 그러다가 시험에 들게 된다.

 

타락된 주관성 즉, 예수 믿기 전의 그 지식성, 자기 주격으로 주된 지식을 예수를 믿은 후에도 그대로 갖고 있다면 예수 믿는 효력이 뭐냐? 우리교회에서는 말하자면 그런 지식은 바꿔야 한다. 그래야 판단이 바로 돼 들어간다.

 

개인적 성격 성질 면에서 빨리 바꾸는 사람이 사랑을 받고 심성이 고와진다. 그런데 바른 지식은 갖고 있어도 그건 약하고 성격 성질을 못 고치면 어떤 사건에서 그게 그만 툭 튀어나온다. 그게 더 힘을 쓴다. 그러면 얼굴이 어떻게 되겠느냐? 사람은 양심이 있고 느끼는 존재라. 자기 얼굴이 회복되기가 쉬운 게 아니다.

 

그런 사람으로 안 나타나고 계속 제 멋대로 살고 싶다면 제 멋대로 믿는 그런 교회로 가야 한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지혜지식은 없고, 성격 성질은 안 고친다고 봐야 되고 버려둔 사람처럼 독수리가 날아들게 된다. 그러나 이건 예수를 믿어도 신앙 믿음이 죽은 자이기 때문에 독수리가 날아와서 뜯어먹는 것처럼 하나님의 재앙에 들어간다. 송장 죽은 거 누가 모르느냐? 그러니 이걸 영의 눈으로 보면 신앙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고 성령의 열매도 없이 일반식으로 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성경이 이 말씀을 하는 거다. 인간 너를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리가 예수 믿는 걸 모르겠거든 세상에서 되어지는 이치를 봐라. 학교나 직장에 매일 다녀도 기술도 모르고 아는 지식도 없다면 그 사람을 어디다 쓰느냐? 이 세상이 아무리 타락이 돼도 그 나름대로 이치가 있는 거다. ? 우리의 신앙 믿음의 이치에 깨달음을 주려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놨다.

 

자기가 오늘날까지 예수 믿는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 자기가 자기의 믿음을 심사를 안 해도 되는 거냐? 사람이 옳은 생각이 안 들어있으면 자기가 자기를 판단을 못한다. 그런데 남의 소리는 듣지 않고 막무가내 사람이 있다. 말의 이치도 안 맞고 일의 순서도 안 맞고 그냥 자기 성격 성질대로 해 나가는 것.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이 답답하다.

 

일반적으로 살 때 답답한 사람이 있다. 자기 식구인데도 일 년 열두 달이 가도 말 한 마디도 않는 사람은 답답한 거다. 그 사람에게는 의사소통의 입은 없고 밥 먹는 입밖에 없다. 그러면 이건 사람의 입이냐, 짐승의 입이냐? 사람은 배우고 듣고 깨닫고 자기 속에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이게 사람의 입이다.

 

자기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예수를 믿어도 하나님의 심판은 자기에게 없는 것이냐? 인격을 가진, 가치판단 평가성을 가진, 오각의 오감성을 가진, 희로애락을 나타낼 줄 아는 도덕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여기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른다. 자유 뒤에는 반드시 심판이 따라온다. 그럼에도 예수를 어떻게 믿었느냐? 그 뒤에는 심판이 따른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사람은 개체적으로 보면 실력이 있고 없고 즉, 믿음이 있고 없고에 따른 심판이 들어간다. 얼마나 만들어졌느냐? 그런 차이를 심각하게 느낄 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도 일반적으로 출생해서 안 배우고 그냥 어른으로 크면 되는 게 아니다. 어떻게든 알고 실력을 키우려고 하고, 좀 더 차지하려고 하고, 그 면에 굉장히 경쟁을 하고 있다. 그 면에 다투고 있다. 남을 밟고라도 올라가려고 한다.

 

일반세상에서도 그런 게 다 보이는 것이니 네가 신앙적으로도 그걸 느껴봐라. 세상에서는 임시성이다. 죽으면 끝나는 거고, 세상 불바다 되면 끝나는 거다. 그런데 예수 믿는 데는 영능의 실력에 따라 차이가 난다. ‘열 고을을 다스려라. 스무 고을을 다스려라하는 여기에는 실력의 차이가 되는 거다.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말라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면서 영원히 손해 볼 자로 살면 되겠느냐? 이 세상에서도 억울한 일이 많은데 예수를 잘못 믿고 잘못 깨달아서 자기 헌금 다 바치고 노력봉사 하고 목숨까지 다 바쳤는데 난 너 모르겠다하면 어떻게 할 참이냐?

 

자기가 예수 믿고 얼마나 깨달았으며, 일반적인 성격 성질도 얼마나 고쳐졌으며, 세상만물을 볼 때에 어떤 식으로 깨닫고 있는 건지? 자기를 살펴야 한다. 교회에 다니며 주님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인으로, 하나님의 신의 사람으로 성격과 성질과 성분이 지식적인 면에서 도덕성적인 면에서 주님의 것으로 들어가야 한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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