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사도행전 › 환상에 사로잡혀 사십시오

이한규 목사 | 2016.06.15 23:57:26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행2:14-21
설교자
이한규 목사
참고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804) 2016.2.29

환상에 사로잡혀 사십시오 (사도행전 2장 14-21절)


< 환상에 사로잡혀 사십시오 >  

 요새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를 발행하면서 곳곳에서 월새기 말씀을 읽고 심령이 변화되는 소식들을 들으면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특히 교정기관으로 기증해 보내는 월새기는 수많은 재소자들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뜻 있는 일을 통해 인생 역전의 비전을 새롭게 가지고 월새기 비전에 동참하겠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앞으로 하나님의 극적인 도우심으로 <월새기 영어판>이 발행되면 미국과 영어권 나라의 교정기관으로 기증하는 사역부터 가장 우선적으로 시작할 것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만 교정기관이 36개 있는데 각 교정기관마다 약 4천 명이 수용되어 있습니다. 각 기관에 매월 200권씩만 기증해도 캘리포니아 주에만 매월 약 7000권이 필요하고 미국 전역의 교정기관에 보내려면 매월 약 10만권이 필요합니다. 전 세계로 확산시키면 그렇게 교정기관에 기증할 분량만 매월 약 20-30만 권이 필요합니다. 언뜻 보면 교정기관에 흉악한 죄인들만 있는 줄 알지만 그곳에도 상당한 배움과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있습니다. 그들이 변화되어 좋은 일에 나선다면 사회가 얼마나 큰 유익을 얻겠습니까?

 <월새기 영어판>이 매월 100만 권까지 발행된다면 그 독자 중에 월새기 비전에 동참할 세계적인 인물들도 적지 않게 생겨날 것입니다. 그들의 동역과 후원으로 내일의 복된 인간사회를 위한 맑은 물을 흘려보내 마지막 때에 영혼을 구원할 수많은 거룩한 쉰들러들이 나타날 토양을 제공한다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입니까? 그것이 바로 월새기 사역의 궁극적인 비전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주 기도합니다. “하나님! 월새기를 통해 후대의 선한 쉰들러들이 등장할 토양을 마련해줄 당대의 선한 쉰들러를 속히 보내주소서!”

 요한계시록에 의하면 완벽한 천국이 펼쳐질 때까지 1-2차 세계대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세계대전이 최소한 세 번 펼쳐집니다. 제 3차 세계대전은 요한계시록 9장 13-18절에 묘사된 ‘유브라데 전쟁’일 것입니다. 그 전쟁은 기독교와 모슬렘의 종교충돌 전쟁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전쟁으로 사람 3분의 1인 20억 명 이상이 죽을 것입니다(계 9:18). 그런 대규모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상황을 통해 유추해보면 모슬렘 신자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숫자적으로 더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제 4차 세계대전은 예수님의 재림 전에 펼쳐질 마지막 종말전쟁인 ‘아마겟돈 전쟁’일 것입니다(계시록 16:12-16). 그때의 전쟁은 참된 기독교와 적그리스도의 바벨론 세력과의 전쟁이 될 것입니다. 그때 많은 성도들이 핍박을 받고 죽지만 마침내 재림하실 예수님 군대에 의해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철저히 패망할 것입니다(계 19:11-21).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전천년설의 해석)에 의하면 그때 천사가 사탄을 결박해서 무저갱에 천년 동안 넣고 예수님이 직접 다스리는 천년왕국이 이 땅에 펼쳐질 것입니다.

 제 5차 세계대전은 천년 후에 사탄이 잠깐 옥에서 놓임으로 펼쳐질 지상 최후의 전쟁인 ‘곡과 마곡의 전쟁’일 것입니다(계 20:7-10). 그 전쟁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바다의 모래 같이 많은 곡과 마곡의 군사들을 태워버리고 미혹한 마귀를 불과 유황 못에 던짐으로 끝납니다. 그 전쟁 후 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마침내 영원한 천국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됩니다.

 앞으로 언제 그런 전쟁들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릅니다. 특히 ‘아마겟돈 전쟁’과 ‘곡과 마곡의 전쟁’ 사이에 있는 ‘천년’이 문자 그대로 실제적인 천년인지 아니면 상징적인 숫자인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달라서 전천년설, 무천년설, 후천년설 외에 수많은 각종 변형된 천년설 견해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어느 천년설이 옳은지는 누구도 정확하게 모릅니다. 다만 우리 후대에 끔찍한 세계대전에 예고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서 미래를 대비하며 전 세계 곳곳에서 성도들을 죽음에서 구원해줄 쉰들러와 같은 인물들을 은밀하게 길러내야 합니다.

 그런 사명을 이루려면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살지 말고 차원 높은 꿈과 환상과 안목과 관심을 가지고 늘 찬란한 내일의 세계를 꿈꾸며 사십시오. 골짜기만 보지 말고 산꼭대기도 보고 더 나아가 산 너머도 보십시오. 히브리서 11장 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말씀이 나옵니다. 실상이 주어지기 전에 바라는 환상이 있어야 합니다. 환상을 믿음으로 붙들고 나가면 언젠가 환상은 실상이 됩니다.

 ‘환상이 있는 삶’과 ‘환상이 없는 삶’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환상에 사로잡힌 자의 환상을 통해 기적을 이뤄주십니다. 요새 악착같은 사람은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폐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룩한 꿈과 환상만은 악착같이 붙드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작품 인생이 될 것입니다. 거룩한 환상이 넘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 말세에 성령을 주신 목적 >

 오순절에 방언이 터지는 초자연적인 역사에 대해 일부 사람들이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하자 베드로는 오순절 사건이 말세에 관한 요엘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라고 했습니다(17-21절). 요엘은 말세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이 말세에 모든 육체에게 성령을 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17절). 결국 말세를 대비하도록 주신 가장 위대한 징조는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십니까?

1. 예언을 하도록

 본문 17절을 보면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란 말씀이 나옵니다. 또한 본문 18절에서도 하나님의 남종과 여종들이 성령을 받고 예언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예언’은 점치는 것이나 “물과 관련된 장사를 해야 됩니다.”라고 애매하게 말하는 무속적인 예언을 뜻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예언의 바른 개념은 ‘약속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말씀 안에서 미래를 감지하고 지향하며 준비하게 하는 것입니다.

 한때 점이 유행하며 점치는 학원에 수강생도 넘쳤습니다. 왜 사람들이 점을 보고 굿을 합니까? 희망이 죽었다는 표식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약속된 참된 예언을 들으면 다시 희망과 의욕이 생깁니다. 잠언 23장 17-1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얼마나 복된 예언의 말씀입니까? 지금 절망의 자리에 있어도 거기서 무릎 꿇으면 그곳이 희망의 자리가 된다는 참된 예언을 많이 해주십시오.

 어떤 교회에 성도가 줄면서 분위기가 침체될 때 한 집사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교인들을 격려했습니다. “성도님!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조만간 부흥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 후 그는 열심히 자신의 말이 이뤄지도록 전도하고 기도하면서 교회부흥에 애썼습니다. 그 믿음의 말과 행위를 보시고 마침내 하나님이 움직이심으로 결국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집사의 말이 바로 성령의 음성이며 참된 예언자의 음성입니다. 성령님이 임하시면 그 집사처럼 입술이 거룩하게 붙잡히면서 언어가 바뀝니다. 그 바뀐 말은 미래를 좌우합니다.

2. 환상을 보도록

 본문 17절 후반부를 보면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란 말씀이 나옵니다. 참된 복은 ‘환경이 크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환상을 크게 가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상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왜 우리가 지금 예배합니까? 이 짧은 한 시간에 어떤 엄청난 외적인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세가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간절히 기도해도 바로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처럼 1시간의 예배로 사람이 크게 바뀌지 않아도 예배를 통해 성령이 임하면 환상을 품게 되고 마음에 희망과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런 내적인 변화가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도 불평과 불만이 없이 즐겁게 삽니다. 환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꿈과 환상을 가지면 삶이 고단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런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겉으로 보기에는 모양도 풍채도 없었지만 예수님 안에는 엄청난 보화가 숨어 있었습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환상을 품으면 겉으로는 아무 것도 없는 무명한 자 같지만 속으로 모든 것을 가진 유명한 자가 됩니다.

 환상은 가슴속의 영롱한 빛과 같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찬란한 환상을 포기하지 말고 자신이 해야 할 가치 있는 일과 사랑도 포기하지 마십시오. 환상과 사랑은 찬란한 미래로 건너가게 하는 교량과 같습니다. 누가 예언자입니까? 예언자라고 자처하면서 “아니면 말고!” 식의 예언을 남발하는 사람의 말에 결코 미혹되지 마십시오. 헛된 욕심만 버리면 이단에 미혹되는 일을 현저히 줄일 수 있습니다. 참된 예언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고 찬란한 내일의 환상을 따라 준비하는 성령 충만한 자신임을 잊지 마십시오.

3. 꿈을 꾸도록

 본문 17절 마지막 부분을 보면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게 되면 노인도 아브라함처럼 찬란한 꿈을 꾸게 됩니다. 어느 날,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 땅에 이주해 살던 75세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말씀했습니다. “아브람아! 너는 일어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러자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찬란한 꿈이 생겼습니다. 그 꿈을 북극성처럼 바라보면서 나아갔기에 결국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꿈은 위대한 조상을 만듭니다.

 미래 역사의 주역은 꿈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인물은 인물의 꿈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자기 전 생애를 바로 이때를 위해 준비했다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한 꿈을 꾸십시오. 아무리 다른 능력이 탁월해도 꿈과 청사진이 없으면 미래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꿈이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기 전에 꿈을 뚜렷하게 하십시오. 그처럼 꿈이 뚜렷해지는 역사를 위해 말세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는 피와 연기와 불의 징조가 생기고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피가 됩니다(19-20절). 그처럼 예수님의 재림 전에 대환난이 있어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본문 21절 말씀처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기 때문입니다. 말세는 시련의 때이기에 시련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더욱 필요합니다. 그 믿음이 하나님이 성령을 부어주실 때 옵니다. 말세의 힘든 상황에서 승리하며 살도록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축복 중의 하나는 성령 충만을 통해 바른 예언과 바른 환상과 바른 꿈을 주시는 축복입니다.

< 땀과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

 미래에 대한 꿈과 환상을 가지는 것은 믿음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런데 꿈과 환상을 가질 때 꼭 필요한 2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땀’이 필요합니다. 땀이 뒷받침되지 않는 환상은 환상이 아닌 망상으로 끝납니다. 비전(vision,환상)은 가지되 일루전(illusion,망상)은 가지지 마십시오. 일루전이란 내일에 대한 준비나 계획도 없이 멋진 상상만 하는 것입니다. 환상이 참된 환상이 되려면 땀과 노력과 계획과 실천을 수반해야 합니다.

 사람을 실패하게 만드는 제일 요소는 공짜 심리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공짜도 있지만 공짜가 없는 줄 알고 늘 준비하십시오. 큰 인물이 되길 원하면 큰 대가를 치를 자세를 가지고 마음과 물질과 시간과 정성을 힘써 투자하고 땀을 흘릴 각오를 하십시오. 한 한인 사역자가 백인의 공허한 삶을 느끼고 백인 목회의 환상을 가졌는데 영어공부도 안 한다면 그것은 망상입니다. 성도는 환상과 더불어 미래를 잘 대처하는 선견지명이 있어야 하고 선견지명에 의해 감지된 것을 구체적으로 현실화시키려는 땀도 있어야 합니다.

 참된 믿음은 추진능력을 줍니다. 믿음은 일을 저지르게 하고 그렇게 일을 저지르면 뭔가 일이 됩니다. 믿음생활에는 조용한 묵상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종국적으로 묵상가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지 말고 진리에 붙잡힌 행동가를 만드는 것으로 끝나야 합니다. 생각만 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훌륭한 일은 이뤄지지 않습니다. 환상과 사상을 따라 생명을 걸고 행한 사람이 역사를 이룹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둘째,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기다려야 할 때 기다리지 않으면 꿈은 도중에 깨집니다. 환상은 현재보다 미래에 그 열매가 나타나기에 반드시 인내와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련이 있어도 환상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예수님의 비전은 철저히 무너진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 십자가로 인해 전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좋은 것을 먼저 알아보는 선견지명이 있으면 선견지명이 없는 사람들의 비방을 받지만 그래도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거룩한 환상은 인정받을 날이 반드시 옵니다.

 미국 50개 주에서 인구대비로 가장 수입이 많은 주는 알래스카 주입니다. 그 주는 겉으로 보기에는 얼음으로 덮인 쓸모없는 땅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석탄, 보석, 금, 석유가 엄청나게 매장되어 있습니다. 그 땅을 1867년 미국의 국방장관이 소련으로부터 720만 달러에 살 때 많은 사람들이 얼음으로 덮인 쓸모없는 땅을 왜 사느냐고 반대했습니다. 그때 국방장관이 자신에 대한 평가는 백년 후에야 인정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백년 후에 그의 선견지명이 인정되었습니다. 교회는 그런 선견지명이 있는 인물들을 많이 배출해야 합니다.

 꿈과 환상을 품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면 하나님이 믿음을 주시고 인물의 꿈을 이뤄주실 것입니다. 그런 인물의 꿈을 오늘 새롭게 가지십시오. 가문이 일어서고 교회가 부흥되고 자녀들이 복 받는 환상을 가지십시오. 또한 우리나라가 장자 국가처럼 되어 다른 나라들을 돕는 환상을 가지고 북한도 조만간 변화되어 다시 한 번 전 세계의 영적 진원지가 되는 환상을 가지십시오. 그런 환상에 사로잡혀 기도하고 노력하고 열매를 맺기까지 믿음으로 잘 기다림으로 마침내 찬란한 인물의 환상을 이루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댓글 쓰기

목록 삭제
Copyright © 최용우 010-7162-3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