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가복음 › 누가 이 바윗돌을 옮길 것인가?

최만자 | 2008.07.26 23:01:2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막16:1-4
설교자
최만자 자매
참고
새길교회 2001.6.24 주일설교
6월은 아무래도 한반도의 통일, 평화정착, 남북한 관계 등과 같은 문제들을 생각하게 됩니다. 지난해 6월 15일, 이 한반도의 50여년 고착되어온 분단과 냉전체제를 일거에 무너뜨릴 것 같았던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이루어진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올해 6월은 더욱 그러한 문제들을 생각하게 되고, 또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이라고 기억하고 또 기억해온 6. 25가 바로 내일이기 때문에 오늘은 더욱 그러한 문제들에 관심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남북관계는 1년 전과는 너무도 달라졌음을 우리 모두 느끼고 있습니다. 1년전 남북 정상의 회담은 전쟁이 없고 이산가족이 만나고 통일이 곧 이루어 질 것 같은 유토피아적 환상으로 희망에 부풀었습니다. 남북 역사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 선포되고 한반도 냉전구조를 해체하는 길이 열리는 한반도 정세의 역사적 전환이 일어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이후 남북관계는 소강상태에 들어갔고 올 해 초부터는 정체상태에 빠졌습니다. 미국 부시 정권이 엄격한 상호주의로 핵, 미사일과 연계되어 북미대화나 지원을 고려한다는 북한에 대한 강경 정책을 내세워 북미관계가 갈등이 증폭되었고 결국 한반도 평화와 통일은 다시 미궁으로 빠진 듯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 북한상선의 영해침범 사건은 남한의 정서를 더욱 긴장시켰고 금강산 관광사업의 적자현실 또한 IMF 이후 어려운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비판으로 부정적으로 생각되어졌으며, 북한에 '퍼붓기 식 지원을 한다', '북한 김위원장의 답방을 여러 차례 요청한 것은 굴욕적 외교 행태다,' '북한상선의 침입에 대한 미온적 태도는 국가 안보에 위협을 크게 하였다' 그리고 '정부의 햇볕정책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라는 등등의 비판이 김대중 정부의 통일정책에 퍼부어지면서 남한내의 남북관계에 대한 여론의 분열이 오히려 커졌습니다. 더구나 국내 극우 보수 언론들과 정치인들은 정부를 비난할 꼬투리를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하고 비난의 강세를 펴고 있어 통일문제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김대중 정부의 노력 자체를 폄하하는 여론을 확산시키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 여론에 동요됩니다.

이처럼 어렵고 복잡한 현실에서도 우여곡절 끝에 금강산 관광사업이 육로로도 열리게 되고 남북 고위급 회담이 재게 될 전망이며 북미회담도 최대한 성과를 이루려는 노력들이 남북관계를 다시 활성화시킬 힘으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남북 정상회담의 의미는 정말 큽니다. 전쟁의 위협에서 평화로운 삶으로, 불신과 증오와 반목의 관계에서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한반도를 바꾸는 이정표를 세운 것입니다. 남북의 실체를 스스로 다시 보게 하였으며, 통일은 미루더라도 온 가지 사회모순 구조의 근원이 되었던 냉전이 사라지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된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전환이요 남북 국민의 삶을 새롭게 하는 대전환의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이 발목이 잡히고 더 진전되고 있지 못함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남북관계의 활성화 지체가 부시 행정부의 강경 대북 정책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물론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남한 내부의 여론분열 또한 남북관계를 더 진전시키지 않게 하는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한 신문기자가 지적한 것처럼 실은 남한 내부의 정부대책에 대한 광범위한 반발이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루는데 부정적 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한반도 평화정착을 이루어 내어야만 한반도인의 미래 삶이 보장된다는 관점에서 보면 야당의 정부 통일정책 비난은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는 그야말로 당리당략적 차원을 넘어서야만 합니다. 야당 자체 안에서도 남북관계의 답보현상이 남북한 자체의 내부사정에 기인한다는 분석과 보안법 개정 등을 통해 열린 남북관계 태도를 가져야 할 때이므로 당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주변정세의 불안정이 남북화해협력을 깨트리는 이유는 못되는 것이고 그렇게 되도록 해서도 안 된다는 말입니다. 1980년대 초 미국과 옛 소련의 신 냉전이 벌어지자, 동서독은 각각 옛 소련과 미국에 대해 동맹으로 군사, 안보의무를 충실히 하면서도 동시에 실용주의적 교류협력을 민족차원에서 확대해 나갔다는 것을 주의 깊게 참고해야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북한의 김위원장도 답방을 조속히 시행해야 합니다. 그의 답방이 중요한 것은 안정된 남북관계가 지속된다는 확인이 되고 긴장이 완화되고 다시 교류협력이 확대되도록 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느 정치집단을 비난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다만 50여년 고난과 고통 속에 살아온 우리 한반도인의 미래를 절실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 때에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까 진실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말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겠습니까?

제가 아는 30대 부부가 초등학교 5학년과 1학년에 다니는 딸과 아들과 나눈 대화가 참 의미 깊게 느껴졌습니다. 아이들이 6.25에 대하여 설명해 달라고 하니까 아버지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군인들이 남침을 해왔고 그래서 남한 사람들이 많이 죽었으며 유엔군이 우리를 돕기 위해 한국에 와서 함께 싸워 준 고마운 분들이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부엌일을 하던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와서 이야기를 수정하기 시작했습니다. 6.25 전쟁은 지금까지는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최근 역사학자들이 그 원인을 여러 가지로 연구하고 있는 가운데 있고, 어쨌든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우리나라가 미국과 소련 등의 강대국들의 세력영향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전쟁은 참으로 비참한 상황을 만들어 남북이 분단되게 되었고 남한과 북한의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으며 많은 이산가족들이 생겨났고 지금까지 사람들이 이별의 고통과 한을 품고 살게 했으며, 같은 민족끼리 적대시하고 대립하는 비극을 초래하였다는 것과 분단과 이산과 정치적 대립으로 우리민족은 크다란 시련과 불행을 겪게 되었으므로 전쟁은 결코 다시 일어나서는 안되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전심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부부의 설명의 차이가 작은 것 같지만 매우 크고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점을 시사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부르고 기억하는 6.25 전쟁은 어려서부터 '상기하자 6.25, 쳐부수자 오랑캐'를 외치며 적대감과 증오심에 가득 차서 죽임을 향해 돌진하는 기념노래와 함께 이어져 왔습니다. 멸공통일을 삶의 최대 목표로 생각하도록 만든 반공교육을 받으면서 피가 끓어오르는 울분을 동족인 북한에 퍼부으면서 살아 왔고 6월이 오면 그 일을 극한으로 상기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6월은 이제 증오의 6월을 종식하고 완전히 다른 6월을 새롭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금새 북한을 친근하게 이야기하고 김정일 신드롬까지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남북관계가 다시 답보상태가 되자 다시 전쟁과 대립의 6.25 감정으로 고조됨을 보게됩니다. 여러 형태의 전쟁기념 행사들도 치러지고 있습니다. 제 손자가 다섯 살인데 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도 전쟁기념관 관람을 갔는데 관람자들이 너무 많아서 거기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국립묘지를 방문하고 왔다합니다. 지금 적대감의 6.25를 기념하게 하는 것은 크다란 잘못을 저지르는 일입니다. 이제는 적대관계를 상기하는 6.25가 아니라 세계정치의 역학관계에서 발생한 한국전쟁으로 그 이름도 바꾸고 전쟁의 기념은 평화를 위해서만 해야합니다. 평화를 지향하는 의식과 교육의 확대가 무엇보다 요구되는 때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남북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고 정립해 나가야 합니다.

저는 오늘 한반도의 상황에서 가질 우리의 생각과 태도를 정치 사상가 한나 아렌트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대인 아렌트는 유대인 자신들의 무정치적 의식 때문에 자기동족이 그 비참한 파국적 희생을 당하게 된 것이라고 유럽 유대인들의 상황에 대한 무 판단력을 비판합니다. 아렌트는 유럽 유대인들이 학살당한 이유가 당시의 유럽세계가 당면하였던 불행의 원인을 유대인들에게 씌워서 그들이 희생제물이 되었다는 '희생양 이론'이나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감 때문에 필연적으로 제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는 '반 유대주의 이론' 등에서 결코 설명 될 수도 대답 될 수도 없다고 합니다. 그는 오히려 정치적 현실로서의 서구 세계에 대한 유대인들의 무관심과 당시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던 유대인들의 특수한 상황에 대한 유대인 자신들의 정치적 무관심이 큰 원인이며, 여기에 당시 유럽 국민들의 반 유대주의가 결합되어진 결과로 유대인 학살의 비극을 참혹히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렌트는 이것을 유대인의 무 세계적 실존 또는 세계소외라고 표현하는데, 그것은 정치적 현실로서의 공적세계와 공동체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않고 그 애착을 도리어 배타적인 자기중심의 사고 와 태도로 대체하여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민족 공동체가 당면한 정치적 현실을 개인의 삶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관심하고 참여해야만 세계소외 혹은 무 세계적 실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며 개인의 삶이 세계적 실존과 분리된 배타적 자기중심적 사고와 태도를 가진 것이 유대인 비극의 근본 원인이라고 본 것입니다.

아렌트는 역사를 바꾸지 않은 책임이 바로 지금의 나에게 있고, 미래 파국적 역사는 내가 자초한 것이 된다고 합니다. 과거의 역사를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것이라고 본다면 미래의 역사 또한 인간 스스로가 만드는 것이라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유대인의 비극적 종말의 책임이 유대인의 무 세계적 실존에 있다고 보는 아렌트의 역사해석의 진의는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실천적 관심과 결부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유대인의 파국적 역사의 책임이 절반 정도는 유대인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이해 할 때만 유대인이 과거의 과오를 청산하고 자기책임 아래 미래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렌트의 이러한 주장은 유대인들로부터도 비판을 받기도 하였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상과 태도를 우리의 역사에 적용하면서 깊이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아렌트에게 있어 개인은 역사안의 개인입니다. 부당한 사회, 정치에 대하여 개인 스스로가 저항하지 않는다면 그 부당한 사회, 정치에 대한 책임의 일부는 바로 개인 자신에게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앞선 원인들 때문에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것이 필연적으로 일어나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합니다. 앞선 원인들과 뒤의 결과 사이에는 엄밀한 인과성을 상정하기에는 크나큰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간극은 인간의 행위를 통하여 메워질 수 있다는 것이 아렌트의 주장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역사적 사건 또는 현상의 원인은 엄밀한 의미에서 볼 때 원인이라 기보다는 그 위에서 인간의 행위가 행해지는 조건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한반도의 통일문제를 생각하고 민족의 미래역사 전개를 새로이 펼칠 계기를 맞은 우리들에게 이 아렌트의 사상은 우리가 수용하고 깊이 생각해야할 매우 중요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 평화정착이 되지 않은 이유를 강대국의 세력에 원인을 돌렸고, 평화정착의 관점보다는 배타주의적 개인의 이기심에 집착하였고, 오늘의 세계 상황에서 정치적 현실의 한반도 운명을 생각하지 않는 무 세계적 실존의 태도를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통일문제를 듣고 이야기하면서도 나의 삶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 일반의 태도이며 이런 태도가 바로 세계소외로 인한 비극의 민족 미래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서 본문은 향유를 들고 예수의 시신에 그것을 바르려고 새벽바람을 가르며 예수의 무덤을 향하여 세 여자가 달려갔는데 그들은 가면서 무덤 앞에 놓인 매우 크다란 돌을 누가 치워 줄 수 있을까 심히 염려하면서 갔는데 놀랍게도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는 예수의 부활 사건과 관련되는 빈 무덤 발견 이야기입니다. 기독교 발생의 근원이 되는 예수의 부활사건은 성서에서 빈 무덤 이야기와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 나타난 현현 사건 등으로 이야기되고 있는데 바로 이 빈 무덤이야기의 본문입니다. 부활절에나 적합할 것 같은 본문은 앞에서 나눈 이야기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예수의 무덤 앞에 놓였던 큰돌이 굴려진 사건을 보면서 오늘 한반도의 통일문제라는 이 거대한 돌이 어떻게 굴려질 수 있을까 생각하는 의미에서 이 본문을 연관지어 보았습니다.

저는 이 여인들이 예수의 죽음과 부활 사건 사이의 인과성의 간극을 메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죽음과 부활 사이에 인과성은 없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죽음이 있어야만 부활이 있다는 역설적 인과성이 오히려 더 철저하게 있습니다. 기독교는 이 역설적 인과성을 부활사건의 근원으로 생각합니다.) 예수 부활의 증거가 되는 빈 무덤 이야기는 복음서들에서 대부분 여자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빈 무덤을 처음 발견한자들로 나타나기 때문에 여인들이 부활의 첫 증인이 되고 있습니다. 여인들이 부활의 첫 증인이 되는 배경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그냥 보면 여인들은 믿음이 크게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수가 예언한 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난다는 말을 믿었다면 시신에 향유를 바르려고 무덤으로 달려오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더구나 8절에 보면 천사가 예수의 부활소식을 알리면서 제자들에게 전언할 것을 당부하는데 여자들이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였다고 기록되고 있어 이 여인들이 훌륭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진 자들로 보이지 않게 합니다. 마가의 기록이 여기서 갑자기 끝나고 그 이후의 구절들은 후대의 삽입이라고 하는데 이 갑작스러운 문장의 끝마침이 마가가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거기서 끝났을 수 있다거나, 여인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은 이 복음서를 읽고 여인들이 반성하여 진정으로 복음을 전파하기를 기대하여서 그렇게 기록하였다는 등의 해석이 있습니다만, 아무튼 마가복음 전체에서 예수의 참된 제자의 모습을 실행하는 모델로 묘사된 여인들이 부활사건의 끝에 부정적 모습으로 이야기되고 있음은 여성들이 결코 완전한 믿음을 실행한자들로 미화되고 있지 않음을 말해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들이 부활사건의 첫 증인임은 확실한 사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에서는 더욱이 세 여인의 이름까지 정확하게 나와있으며 여인들과 관련된 빈 무덤 이야기는 그와 관련되는 상당한 이야기 꺼리들이 전개되고 있어 그 전승의 풍부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여인들이 빈 무덤을 발견하였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확산되어 있는 한 전승임을 드러내 보입니다. 왜 여인들이 이렇게 예수의 부활 이야기의 주역으로 등장하겠습니까? 언젠가 한번 말씀 나눈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되는데 이 여인들의 가슴에는 예수가 살았을 당시 자신들에게 행한 그 큰 은혜의 사건들에 충만해 있었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사랑과 해방과 자유를 예수로부터 경험하게 된 그들은 예수를 잊을 수 없었고 그들 마음 속에 예수는 늘 살아 있는 존재였습니다. 그들의 삶은 예수를 따르는 것이었고 예수의 삶의 방식대로 살고 실천하였습니다. 그들의 예수에 대한 충만함이 로마 병정의 감시도 또 매우 큰 무덤 앞의 돌문도 상관하지 않고 무덤을 찾아가게 한 것입니다. 그 결과 돌문은 이미 열려있었고 무덤은 빈 무덤이며 예수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천사의 전언을 듣는 부활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기독교 부활신앙의 태동은 그래서 바로 이 여인들의 행함으로부터 였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를 출현시킨 새 역사를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이 여성들이 그들의 일상 안에서 예수를 기억하고 그의 교훈을 따르고 삶의 방식을 실천한 행함으로부터 였으며 여기에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부활사건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성들의 적극적 실천과 하나님의 역사의 만남이 새역사를 일으키고 있다는 말입니다.

참 묘하게도 성서에서 여성들의 치유 사건은 다른 치유사건과 다른 특성을 보입니다. 대부분의 치유사건이 예수의 권능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과 달리 여성들의 치유사건은 여성자신의 적극적인 참여, 행함이 예수의 권능과 합하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를 들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자신의 딸의 치유를 위해 예수와 논쟁을 벌여 이를 성취한 이야기라든가 12년 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이 무리 가운데서 예수의 옷자락을 직접 만져서 결국 얻게된 치유 이야기 등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지극히 주변화되어 있던 여성들이 새 역사를 이루기 위해 적극적으로 일하고 행동하는 그 속에 하나님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무덤 앞에 있던 그 큰 바위돌도 하나님이 기적으로 굴렸다든가 천재지변으로 굴려졌다든가 라는 초자연적 기적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여인들이 열심히 일상적으로 경험 속에서 얻은 지혜대로 향유를 들고 새벽바람을 가르며, 그리고 그 큰돌을 옮길 것을 걱정하면서 힘껏 무덤을 찾아 온 그 행위 자체가 있고 그리고 돌은 옮겨진 것입니다. 성서에는 아무런 설명이 없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여기에 함께하심을 보게 됩니다. 한나 아렌트는 역사의 원인과 결과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사람들의 행위라고 하였는데 저는 사람들의 행위와 그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성서 본문과 아렌트의 사상과 그리고 한반도의 역사적 상황을 서로 연관시켜 생각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민족의 과제를 더 이상 강대국 세력의 탓으로만 돌리는 헛된 소리를 반복할 것입니까? 아니면 정치인들의 정치세력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방기 할 것입니까? 또 통일은 얼마의 통일기금을 낼 때나 북한지원 모금을 내면 내 할 일은 다하는 것이고 내 일상은 통일과 상관없이 '무 통일 정치의식의 실존'(아렌트의 무세계적 실존의 개념으로)으로 살 것입니까? 앞으로 남북관계는 더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으로 전개 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특히 국내 여론의 분열은 더 첨예화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선을 치르게 될 때 우리는 틀림없이 또 색깔론의 소용돌이를 겪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한이 있어도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케 해야 하며 그래서 우리의 새 역사를 만드는데 개인 개인의 참여가 있어야 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비극의 역사를 자초하게 될지 모른다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우리의 운명을 누구에게 맡기고 구경할 것입니까? 아렌트의 말대로 역사적 사건의 인과성의 간극을 누가 어떻게 메울 것입니까?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만들지 않으면 우리가 살게 될 미래 역사를 누구에게 책임 지울 것입니까?

성서의 여인들이 예수를 그들 일상의 삶 속에 따라 갔듯이 그리고 개개인이 정치 공동의식을 이루는 참여자가 되어야만 비극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아렌트의 주장처럼 지금의 우리는 우리 일상 속에 통일 정치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할 때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아렌트는 자기 민족 개개인이 민족의 운명에 대하여 가진 무정치성을 한탄합니다. 통일의 길목에 들어선 우리도 '무통일 정치의식'으로 그러한 한탄의 상황을 맞게 될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너무 깊이 내면화된 반공이데올로기, 그리고 북에 대한 적대감, 주적개념들을 털어 내어야 합니다. 저는 젊은 어머니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평화기행을 하는 모습에서 희망을 볼 수 있었습니다. 평화가 무엇인가를 그리고 평화의 세상을 오게 하기 위하여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열심히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바로 일상적 삶 속에서 정치과제를 풀어낼 수 있는 한 방법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대민족처럼 고난과 비극의 역사를 살아온 우리도 아렌트의 주장처럼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만들 것이라는 책임의식으로 굳건히 서야 할 것입니다. 여인들의 적극적이며 성실한 예수 따름이 무덤 앞의 크다란 바윗돌을 옮기는 작용을 하였듯이 남북 새 역사를 갈망하며 평화를 추구하는 우리의 온갖 노력에 하나님은 함께 참여하실 것이며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윗돌은 이미 굴려지기 시작하고 있을 것입니다.

평신도 열린공동체 새길교회 http://saegilchurch.or.kr
사단법인 새길기독사회문화원, 도서출판 새길 http://saegi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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