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마태복음 › 주님, 우리가 언제

민영진 목사 | 2008.07.26 23:03:5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마25:37-44
설교자
민영진 목사
참고
새길교회 2001.7.8 주일설교
최후의 심판을 한 번 상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최후의 심판이 어떻게 이루어질지를 상상하게 하는 비유가 우리 성경 책 속에 들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천사(天使)들을 데리시고 영광(榮光)에 둘러싸여서 이 세상을 심판하러 다시 오실 때에, 예수께서는 오시어서 당신을 위해 마련된 영광(榮光)스러운 보좌(寶座)에 앉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민족을 당신 앞으로 불러모으시어서 목자(牧者)가 양(羊)과 염소를 가르듯이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실 것입니다. 양은 그의 오른쪽에, 염소는 그의 왼쪽에 세우실 것이랍니다.

그리고 그 임금님께서는 당신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을 받은 사람들아, 와서, 천지창조(天地創造) 때로부터 너희와 같은 사람을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마 25:34)

이렇게, 임금님의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은, 곧 양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하나님께 "복(福)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당신에게로 오라고 초청(招請)하십니다. 그리고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미리 마련해 두신 그 "나라"를 차지하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금님께서는 그들이 그만한 대접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그들에게 설명하신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었다." (마 25:35-36)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주님을 그렇게 돌보거나 찾아뵙거나 대접한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황하여 자기들이 주님께 그런 일을 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자기들에게 할당된 그 나라를 물려받을 아무런 공로가 없음을 무자격자들임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리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리고, 언제, 병드시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찾아갔습니까?" (마 25:37-39)

그러면, 임금님께서는 그 의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兄弟姉妹) 가운데,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이렇게 하여 심판하시는 임금님의 오른쪽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게 되고 영원한 나라를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심판자이신 임금님께서는 또 왼쪽에 있는 사람들, 곧 염소로 분류된 이들에게도 말씀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저주(詛呪)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서, 악마와 그 부하들을 가두려고 준비한 영원(永遠)한 불 속으로 들어가거라."

이렇게, 임금님의 왼쪽에 있는 사람들은, 곧 염소로 분류된 사람들은, 하나님께 "저주(詛呪)를 받은 사람들"이라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당신에게서 떠나라고 물리치십니다. 그리고 창조 때부터 악마(惡魔)와 그 부하들을 가두려고 하나님께서 미리 마련해 두신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임금님께서는 그들이 마땅히 그러한 형벌을 받아야할 까닭이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면서 그들에게 설명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주렸을 때에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나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 주지 않았다." (마 25:42-43)

그러나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주님을 그렇게 돌보거나 찾아뵙거나 대접한 일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 주님께서 언제 자기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신 적인 있으시냐고 묻습니다. 언제 주님께서 자기들에게 그처럼 주님을 영접하거나 찾아뵙거나 할 기회를 주신 적이 있는 지를 묻습니다. 자기들이 주님께 이런 꾸중을 받아야 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말하고 그런 이유 때문에 저주를 받고 주님께 거절당하고 영원한 불 속에 갇힌다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주님, 우리가 언제, 주께서 굶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도 돌보아 드리지 않았다는 것입니까?"

그 때에 임금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기 이 사람들 가운데서 지극히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다" (마 25:45)

이렇게 하여 심판하시는 임금님의 왼쪽에 있던 사람들은 저주를 받아 영원한 불 속에 던져진다는 것입니다. 결국, 악인들은 영원(永遠)한 형벌(刑罰)의 삶으로 들어가고, 의인들은 영원(永遠)한 복된 삶으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최후의 심판 때 이런 일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혹은 주님께서 천사들을 시키셔서 심판하시는 주님의 오른쪽으로 갈 사람과 주님의 왼쪽으로 갈 사람을 하나 하나 심사를 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들과 악인들의 마음에 이미 자동장치 프로그램을 입력해 놓으시어서 의롭게 산 이들은 의인들이 가야하는 길로 가도록 입력이 되고, 악하게 살아 온 이들은 악인들에게 정해진 길로 가도록 입력이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의인들은 그것이 의인들만이 가는 길인 줄도 모르고 갈 것이고, 악인들도 그들이 가는 길이 악인들만이 가도록 정해진 길인 줄도 모르고 갈 것 같습니다. 다만 악인이 의인의 길로 갈 수 없고, 의인이 악인의 길로 갈 수가 없도록 그렇게 이미 입력이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의인들은 자기들이 주님을 그렇게 돌보거나 찾아뵙거나 대접한 일이 전혀 없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황하여 자기들이 주님께 그런 일을 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자기들에게 할당된 그 나라를 물려받을 아무런 공로가 없는 무자격자들임을 고백할 것입니다.

악인들은 자기들이 주님을 그렇게 돌보거나 찾아뵙거나 대접한 일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주님께서 언제 자기들에게 그런 기회를 주신 적인 있으셨느냐고 묻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들이 주님께 이런 꾸중을 받아야 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음을 말하고 그런 이유 때문에 저주를 받고 주님께 거절당하고 영원한 불 속에 갇힌다는 것은 너무나도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것입니다.

의인들에게나 악인들에게나 둘 다 공통되는 점은 언제 자기들이 주님을 영접하였는지도 모르고, 언제 자기들이 주님을 거절하였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용납 받는 사람과 거절 받는 사람으로 나뉘어지는 최후의 심판을 위해서, 우리가 미리 준비를 할 그런 예상문제집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전혀 모르는 것을 가지고 최후의 심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상 문제를 가르쳐 줄 권위가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전혀 상상 밖의 문제로 시험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뿐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주님이다' 하고 밝히면서 다니셨더라도 그런 일은 없었겠습니다마는, 주님께서는 늘 당신 자신을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숨기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의인의 질문도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을 영접하는 그런 장한 일을 하였습니까?"이고, 악인의 질문도 "주님, 우리가 언제, 주님을 뵙고도 영접하지 않는 그런 잘못을 저질렀단 말입니까?"입니다.

의인들은 정말 의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장한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주님을 영접하는 것과는 무슨 관련이 되는 지를 전혀 모르면서도, 주님께 칭찬 받을 만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 자랑할 일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하면서 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계산도 하지 않고 한 일이 주님을 영접한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칭찬하실 때, 그들은 "주님 우리가 언제?" 하고 놀랍니다.

하나님 자신이 어린 아기 예수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도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못했었습니다.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관심하지 않는 보잘것없는 것의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나가실 것 같습니다.

최후의 심판대에서 염소로 분류된 이들은 자기들을 거절하시는 주님을 원망할 것 같습니다.

"주님, 왜 보잘것없는 것의 모습으로 우리 앞을 지나셔서 우리가 주님을 거절(拒絶)하게 하십니까? 주님, 왜 보잘것없는 것의 모습으로 우리 곁을 지나셔서 우리가 주님을 경멸(輕蔑)하게 하십니까?"

최후의 심판대에서 염소로 분류된 이들 중에는 자기들을 거절하시는 주님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책하는 이들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은, 우리가 영접하지 않은, 우리가 돌보지 않은, 그 숱한 보잘것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이, 얼마나 오래 동안, 우리 곁을 지나갔는데, 주님이 거기 계셨다니....

"성찬의 잔을 받으면서 주님의 피를 내 몸 속에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성찬의 빵을 떼면서 주님의 살을 내 살 속에 지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태를 모르기는 양으로 분류된 이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이 지극히 보잘것없는 자들에게 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일을 했다면 그것은 결코 최후의 심판에서 그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일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심판대 앞에 서기가 어려운 것은 아무도 그 문제를 예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의 본문에 나온 이 시험은 다시 출제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미 공개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흥부는 모르는 상태에서 시험을 치렀고 복을 받았고, 놀부는 예상 문제를 가지고 제가 출제하고 제가 채점했기 때문에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의 {흥부전/놀부전} 이야기도 최후의 심판을 명상하는 우리에게 좋은 명상 거리가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모두 주님의 오른 편에 서시는 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칭찬을 하셔도 "주님, 제가 언제 그런 착한 일을 했었습니까?" 하고 황송하게 여쭙는 이들 사이에 서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칭찬하시더라도 "원 별말씀을 다하십니다"혹은 "천만에요" 라는 식의 겸손한 태도를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의식적(意識的)으로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일들은 어쩌면 모두가 다 "놀부의 윤리"로서, 최후의 심판 때에 내세울 만한 가치 있는 것들이 아닐 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랑거리를 가지고 주님 앞에 선다면, 그러한 자랑거리들은 의인들이 말한 바 "주님, 우리가 언제?" 하고 황공하게 여쭐 수 있는 것들이 아닐 것이라는 말입니다.

최후의 심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은 우리가 전혀 의식하지 못하고 한 일들입니다. 우리가 의인이라면 반드시 "주님, 우리가 언제 그런 선한 일을 하였다는 말입니까?"하고 되물을 수 있는 그런 일들이 심판대에서 가치를 드러낼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베푼 다음에 그것을 기억(記憶)하고 있는 한, 그것은 주님을 영접한 것이 아니라 나를 영화(榮華)롭게 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다른 이들에게 베푼 것은 다 잊으십시오. 우리가 잊을 때 주님이 기억하십니다. 이웃에게 베푼 것은 잊으십시오. 베푼 것을 기억하고 있으면 보답을 받고 싶어하고 보답을 받지 못하면 배신감을 느낍니다.

이웃에게 끼친 잘못은 좀 기억할 필요가 있고, 다른 이들이 그것을 상기해 줄 때는 괴롭지만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못에 대한 기억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쩌면 비교적 쉬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어려운 것은 최후의 심판대에서는 우리가 한 일에 대한 기억(記憶)이나 망각(忘却)과 관련된 문제가 아닌 더 근원적인 것이 추궁을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판을 받을 때 우리의 무의식(無意識)의 세계가 문제가 된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보시지 않으시렵니까? 주님께서 칭찬하실 때 정말로 "주님, 제가 언제?"하고 놀라서 되물을 수 있는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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