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사도행전 › 경건한 사람

김필곤 목사 | 2009.12.13 15:12:1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행10:1-8
설교자
김필곤 목사
참고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10.31
밀레의 만종을 보았을 것입니다. 이삭을 줍고 기도하는 농부의 그림을 보면 어떤 단어가 떠오릅니까? 경건입니다. 이 시대에 경건만큼 푸대접 받는 말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 그리스도인으로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는 그 사람 경건한 사람이야라는 말일 것입니다. "(딤전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오늘 성경에 보면 경건한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건하다는 것은 신앙이 독실하다는 말입니다. 신앙이 독실한 사람 즉 신앙이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주일날 빠짐없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일까요?

1. 먼저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1)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2).
여기서 경외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1) 그는 로마인이었습니다. 로마는 다신교 국가입니다. 로마 그리스 신화를 보아서 알겠지만 그들은 신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신은 인간처럼 취급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문화속에서 살고 있는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그는 로마의 군인이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100명의 군인을 거느리는 군대의 장교였습니다. 당시 로마의 권력이 세계를 지배하는 때입니다. 이달리야대는 황제의 직할 부대였습니다. 그 때 장교로 이스라엘에 파견나간 사람입니다. 그 권력을 가지고 그가 다스리는 유대인들이 믿는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을 공경하였습니다.
(3)그는 경제적 능력도 있는 사람입니다(7). 여기 하인은 집안 일을 맡아하는 사람입니다. 종졸은 자기가 거느린 군인입니다. 별도의 하인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이니까 경제적 윤택한 사람입니다.
그가 얼마나 하나님을 공경하였는가는 베드로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권력도 있습니다. 돈도 있습니다. 사회적인 지휘도 있습니다. 식민지 지역에서 권한 행사를 볼 때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자입니다. 목회자 보기를 우습게 아는 사람들 결코 하나님 공경하지 않습니다. 고넬료는 어떻게 베드로를 대합니까? 25절을 보십시오. 발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종처럼 생각합니다. 지금 베드로가 5000명 3000명을 목회하는 때가 아닙니다. 예루살렘에 핍박이 있어 도망나온 때입니다. 왜 그렇게 하였겠습니까? 자신은 경제적으로 힘이 있고 세계 일등 국민이고 경제적으로 능력있는 사람이지만 하나님을 공경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가는 7절에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경건한 사람을 보냅니다. 얼마나 세밀하게 배려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2)우리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그의 삶에 그의 마음에 그의 가정에 하나님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신앙인의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즉 하나님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신앙을 상실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마전 우리는 신문 지상을 통하여 교회 신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채권을 위조한 목사의 기사를 보았습니다. 어제 이번주 기독 신문을 보니까 어느 교회 목사가 헌금 기도를 하는데 봉투가 두툼한 것은 주머니에 넣다가 교인들에게 발각되어 목사를 처벌해달라고 데모한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목사가 아니라 먹사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롬 16:18) 이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의 배만 섬기나니 공교하고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믿고 지금 자신을 보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면 어떻게 감히 그렇게 하겠습니까? 사람이 잠깐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실수가 아닙니다. 인생관의 문제이고 신앙의 문제입니다. 제가 목회자를 예로 들어서 그렇지 목회자만 그렇습니까?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이런 사건이 보도되면 모든 목사들이 그렇다고 모여 비난합니다. 그러다가 우리 목사님도 그럴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서로 모여 목회자를 비난하기 시작합니다. 지난 주에 혹시 우리 교인들 가운데서도 저를 비난한 사람이 생겼을지 모릅니다. 비난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는 비난하지 마시고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이 있는 가운데서는 비난하지 마시고 교회 내에서나 정규적인 모임에서는 비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싫어합니다. 정말 나쁜 사람 비평하는 것이야 온당한 일이겠지만 감으로 근거없이 비난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세를 비난하던 미리암은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엘리사를 비난하던 자들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오늘날은 은혜의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지는 않지만 얼마나 하나님이 싫어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으로부터 출발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잃어 버리면 신앙의 근본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2. 경건한 사람은 항상 기도하는 사람입니다(2).
경건하게 사는데 기도는 선택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입니다. 기도없이 경건한 사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시 32:6) 이로 인하여 무릇 경건한 자는 주를 만날 기회를 타서 주께 기도할지라 진실로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저에게 미치지 못하리이다"
식당에서 홀로 기도하고 식사하는 사람이나, 차를 운전하기 전에 기도하고 출발하는 사람이나, 결혼식 입장을 하기 전에 기도하고 출발하는 사람이나, 퇴근하면서 기도하고 직장을 떠나는 사람이나, 잠을 자기 전에 기도하는 사람이나, 아침에 자녀들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경건하게 보입니까?
1)고넬료는 하나님이 인정해 줄 정도로 항상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1) 항상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 권력이 있는 사람이 기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것도 항상 기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고넬료는 3절에 보면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항상 기도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기도를 하였습니다(4).
그의 기도는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 그의 기도가 다 상달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을 받아 하나님의 지시를 받습니다. 베드로가 환상을 봅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복음을 전하고 성령 충만을 받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2) 우리도 하나님이 인정해 줄 만한 기도생활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1)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항상 기도합시다. (2)하나님이 인정해 줄 만한 기도 생활을 합시다. 기도하지 않는 신앙인 경건한 신앙인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인격이 변화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인생이 변화됩니다. 기도를 통하여 막힌 담이 무너집니다. 기도를 통하여 성령 충만을 받습니다. 기도 생활하지 않으면 신앙의 깊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철학자 「세네카」는 ‘그림의 떡은 떡이 아니요, 붙지 않은 불은 불이 아니며, 간절하지 않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의 횟수가 많아지면 하나님의 성품을 닮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형식적인 기도를 하는 경우들을 봅니다.
역사가 「H.C 월즈」가 쓴 단편집 <대주교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경고해 주고 있습니다. 어느 대주교가 그날 밤에 습관처럼 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는데 갑자기 눈앞에 빛이 보이면서 신비한 음성이 들리더라는 것이었다.“내가 네 기도를 듣는데, 그래 무슨 일이냐?” 그 소리에 너무 놀란 나머지 대주교는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평생을 기도했던 대주교지만 자신의 기도가 형식적인 기도에 불과했던 까닭에 막상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자 놀라서 죽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기도하면 경건한 사람이 되지 말라 해도 경건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경건한 사람이 되고 싶어도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시116:2)"

3. 경건한 사람은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사람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넥타이를 차고 걸음을 천천히 걷고 기도할 때 장엄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를 보십시오. "(약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명쾌하게 경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고넬료는 사람과 하나님이 인정해 줄 정도로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백성을 많이 구제하였습니다.(2)
자기 백성도 아닌 자기 나라가 지배하는 백성, 사람취급도 하지 않고 물건 취급하는 사람들에게 구제한다는 것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것도 많이 말입니다. 그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 힘을 바르게 사용하였습니다.
(2)이러한 그의 구제는 그의 종들도 인정해 주었습니다(22. 7)
종이 인정해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가 거느리고 있는 졸병과 종이 인정을 해 줍니다.
(3)하나님께서도 그의 구제를 인정해 주었습니다(4).
2)우리도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는 일에 하나님과 사람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없어서 구제하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이 없어서이고 신앙이 없어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태어난 곳은 남의 집 외양간 말 구유였고, 돌아가셧을 때는 부자 요셈의 무덤을 3일간 빌려쓰시고 돌려주신 분이십니다. 우리 주님은 3년 생애 동안에는 노숙자로 사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지만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8:20)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까? 우리는 그 주님을 따르는 주님의 제자입니다.
"상계동 슈바이처" 김경희박사에 대한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43년 연세의대의 전신인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하였습니다. 그는 84년 서울상계동에 은명내과를 개원하며 의료봉사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합니다. 89년 7월 1일 전국의료 보험이 실시되기 이전까지 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모든 진료에 [1천원]만 받는 [천원진료]를 실시했다고 합니다. 또 85년에는 은명장학회라는 장학재단을 설립, 지금까지 1천 6백 50여명에게 장학금을 주는 등 봉사활동을 펴 이 지역에서 [상계동의 슈바이처] 혹은 [상계동의 페스탈로치]라고 통한다고 합니다. 86년 설립한 [은명 심장 수술 후원회]를 통해 지금까지 36명의 심장병어린이에게 수술비를 보태왔고 90년부터는 [은명 무료 독서실]을 설치 상계동지역 영세민 자녀의 공부방 고민을 해결해줬고 [은명 봉사의 전화]를 통해 먹고살기 바쁜 영세민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심부름센터의 역할을 해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96년에는 자신의 재산 7필지 6만 5천여 평 감정평가액 53여억 원 상당의 토지를 자신의 모교인 연세대에 기증하였습니다. 그가 이렇게 산 것은 그가 당뇨병, 협심증 등을 앓아 몸이 몹시 허약해졌을 때 하나님께 한 달만 더 살게 해 주신다면 많은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고 기도하여 응답받고 당시 논밭이던 상계동 지역으로 이주해 봉사했다고 합니다. 몸이 안 좋아 진료도 오전 1시부터 5시까지 하루에4시간 밖에 못했을 정도였으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이일을 감당했다고 합니다. 그는 53억을 기증하면서 {이젠 내 삶을 정리해 가야 할 때가 됐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관리자일 뿐 소유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 주님은 말씀합니다. "(마5 : 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눅12 : 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딤전6:18)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구제하면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구제하는 자가 받는 복에 대하여
궁핍하지 않을 것을 말씀합니다. "(잠28 : 27)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2)" 오히려 부하게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11 : 24)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하늘의 보화를 얻을 것을 말씀합니다. "(마19 : 21)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씀합니다. "(히13 : 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이웃 할머니를 5년 동안 수발하는 예천의 김성현 양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웃에 78세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설거지를 해주고 청소는 물론 몸까지 씻겨주면서 말동무를 해 줍니다. 진학을 앞두고 고민합니다. 혼자 살고 있는 할머니에게 소홀해 질까봐 가까운 예천 전문대에 입학했다는 것입니다.

4. 경건한 신앙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1)고넬료는 자신도 구원받고 가족과 친척 더 나아가서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되는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1)베드로를 만나 예수 믿고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2)자신 뿐만 아니라 온 집안 식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일가친척까지 성령 충만을 받게 되었습니다.(2, 24) 모두가 성령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제 2의 오순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3)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받게 되었습니다(4,31)
(4)이방 선교의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2)우리도 독실한 신앙인이 되어 가족과 친척에게 복음을 전하고 우리 직장 사회에 복음의 문을 여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경건한 신앙인이 되며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세상이 바뀝니다. 변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한 시대 쓰임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를 읽어 보았을 것입니다. 소녀는 곯은 배를 움켜쥐고 성냥을 팔기 위해 거리로 나섰습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옷 속을 파고듭니다. "성냥 사세요, 성냥 사세요". 소녀는 입김으로 시린 손을 녹이며 가냘픈 목소리로 외쳐댑니다. 그러나 아무도 소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가족에게 줄 선물을 잔뜩 손에 들고는 소녀의 앞을 무심코 지나갔습니다. 그들의 입가에는 선물을 받고 즐거워할 가족을 머리 속에 떠올렸는지 흐뭇한 미소까지 감돌았습니다. 소녀는 밤새 서성거렸습니다. 그러나 헛수고였습니다. 이젠 목소리를 낼 기운조차 없었습니다. 다리도 아파왔습니다. 배고픔과 추위로 몸은 점점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어머니가 계셨더라면.'. 소녀는 몸을 녹이기 위해 성냥 한 개비를 피웠습니다. 불꽃 속에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그러나 이내 바람에 불꽃이 꺼져버렸습니다. 소녀는 또다시 성냥을 그었습니다. 어느새 소녀는 따뜻한 난로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서 소녀에게 주었습니다. 소녀는 너무 행복했습니다. 다음날 공원 벤치에는 추위를 견디지 못한 소녀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미소를 머금은 채. 주위에는 타고 남은 성냥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동화 속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요즘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성냥팔이 소년. 소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추위에 떨며 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에 굶주려 있습니다. 말씀이 없어 영혼에 기갈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성탄절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누가 가겠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우리 경건한 신앙인의 몫입니다. 하나님께 매일 기도하는 경건한 신앙인의 몫입니다. 항상 구제에 힘쓰는 경건한 신앙인의 몫입니다.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경건한 사람/행10:1-8/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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