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사도행전 › 한 시대 하나님의 쓰임받는 사람들

김필곤 목사 | 2009.12.13 15:18:5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행13:1-3
설교자
김필곤 목사
참고
열린교회 http://www.yeolin.or.kr
2002.10.31
어느 사람이 지나가는데 세 석공이 돌을 다듬고 있었답니다. 지나가는 사람이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 석공이 자기는 그 저 돌을 다듬고 있다고 대답했답니다. 그 옆의 석공에게도 똑같이 물었답니다. 그러자 그는 먹고살기 위해 돌을 다듬고 있다고 했답니다. 마지막 석공에게 물었답니다. 그러자 그는 자신있는 음성으로 큰 성당을 짓는 데 쓸 귀중한 돌을 다듬고 있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 성도님들에게 왜 직장에 다니느냐? 왜 자녀를 기르느냐? 왜 공부를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습니까?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인생은 세 부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부류의 사람은 그저 생존을 위해 사는 인생입니다. 두 번째 부류는 무엇인가 이루어 잘먹고 잘살기 위해 성공을 위해 사는 사람들입니다.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알고 의미있는 인생을 살기 위해 사는 인생입니다. 우리 성도님은 어느 쪽에 속한 것같습니까? 만약 우리 성도님께서 회사의 사장이고 학교의 이사장이라면 어떤 사람을 뽑아 직원으로 쓰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 한 시대 이 세상에서 쓰시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오늘 본문은 한 시대 하나님의 쓰임받은 교회와 그 교회 교인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당시 세계 제 3의 도시에 개척된 안디옥 교회와 안디옥 교회 교인들입니다. 이 교회와 교인들은 당시 유럽과 아시아, 로마 선교를 감당한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 교회처럼 큰 교회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교회와 교인들은 한 시대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쓰입받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안디옥 교회 신앙인들은 어떤 사람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쓰임을 받았습니까?

안디옥 교회는 한 시대 쓰임받는 교회였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가 큰 일을 하였지만 이제 사도행전 13장부터는 안디옥 교회가 중심이 되어 세계 선교를 감당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7장에서 성령 강림으로 시작된 교회의 태동과 성장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의 사역 중심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8-12장에서는 예루살렘 교회가 유대교의 대대적인 핍박으로 유대와 사마리에게 복음 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13장 부터는 안디옥 교회를 중심으로 복음이 아시아와 유럽 로마에 전파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안디옥 교회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자세히 모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에 비하면 작은 교회였을 것입니다. 이런 교회가 한 시대 영향력을 미쳤던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안디옥 교인 중에 하나님의 쓰임받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서 하나님의 쓰임받은 인물 다섯명이 소개 되고 있습니다. 이들을 통하여 한 시대 쓰임 받는 인물은 어떤 사람들인가를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한 시대 쓰임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겠습니까?

1. 오늘 본문에 의하면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의 지시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령 충만하여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실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모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문제가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오늘 성경을 보십시오. 안디옥 교회 선지자와 교사들이 모여 예배를 드리며 금식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성령님께서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고 합니다. 선교를 위해 파송하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때 그들은 금식하고 기도하고 안수하여 보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 직업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출신 지역도 출신 나라도 다른 사람들입니다. 피부도 다릅니다. 사회적 신분도 다릅니다. 부자였던 바나바가 있습니다. 그런 반면 흑인 니게르라고 하는 시므온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출신의 개종자입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 갈릴리 지방의 통치자인 헤롯의 젖 동생 마나엔이 있습니다. 권력있는 자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리새인 출신 사울이 있습니다. 다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는 성령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령께 순종한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지시에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왜 내가 가야 하느냐고 반문하지도 않았습니다. 왜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사람을 보내어야 하냐고 불만을 토로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순한 내용같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 예수 믿는 것 자체로 죽음을 감수해야할 때입니다. 그런데 선교사로 나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존경받는 사람들입니다. 안디옥 교회의 담임 목사라고 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도 이제 안정적입니다. 그곳에서 원로 목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 벗어 버리고 성령님의 지시 순종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사람의 모습니다. 성령에 붙들려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4절 상반절에는 성령의 보내심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 시대 쓰임받는 사람은 성령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 다윗, 이사야, 다니엘, 예레미야, 바울, 여러 선지자들, 베드로, 요한, 한 사람도 예외 없이 한 시대 하나님의 쓰임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농부인든 그들 어부이든, 그들이 여자이든, 남자이든, 그들이 왕이든 신하이든, 그들에게 권력이 있는 없는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의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울은 왕이었지만 악령의 사람이 될 때 쓰임받지 못했습니다. 유다 역시 제자였지만 성령의 사람이 아니라 악령의 사람이 될 때 쓰임받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이냐가 문제입니다. 우리의 조건, 능력,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이 되면 됩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슥 4:6)"
성령께서 베드로를 사용하면 어부이지만 앉은 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일으킵니다. 도망자 모세이지만 성령께서 사용하시면 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합니다. 성령께서 사용하시면 바울 같은 사람을 통하여 세계 복음 사역을 감당하게 합니다. 성령께 나의 모든 것을 맡겨 보십시오.
쓸데 없는 것에 취해 살고 붙들려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즈음은 텔레비전에 취해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텔레비전 보는 시간 반절만 줄이고 성령에 충만하기 위해 기도하고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면 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어는 목사님께서 어느 날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개인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홀로 기도를 하고 있는데 집에 가시지 않고 오랜 시간동안 슬피 울며 기도하는 나이 많은 권사님이 계셨다고 합니다. 그 권사님의 기도는 너무나 애절하고 긴박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아버지, 제발 살려주세요. 그냥 죽으면 안돼요. 너무 불쌍해요. 주여, 믿습니다. 살려주세요"라는 눈물 머금은 기도 소리가 목사의 마음도 애절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누군가 급한 환자가 있던지 사경을 헤매는 사람이 있는가 보다고 생각하고 그 권사님이 눈물로 기도할 때 아멘을 하며 그분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기도를 다 마치고 권사님의 구체적인 기도 내용을 알아 보고 도와드리기 위해 권사님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고 합니다. 목사님은 기도를 다 마치고 눈물을 닦으며 나오시는 권사님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답니다. "권사님, 기도 중에 누구를 꼭 살려 달라고 기도하셨는데 위급한 가족이라도 있으십
니까?" 그러자 그 권사님은 다시 울먹이면서 "목사님 너무 불쌍해요, 꼭 살아나야 해요. 목사님도 기도해 주세요." "그럼요 저도 기도할께요. 누가 그렇게 위급한가요?" "목사님, 가을동화에 나오는 은서 있잖아요? 죽으면 어떻게 해요? 얼마나 불쌍해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요즈음 태조 왕건이 얼마나 인기인지 본래 궁예를 80회쯤에 죽일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청자들이 못죽이게 하니까 5월 중순 방영될 118회쯤 궁예가 자결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애초 150부로 계획했던 것보다 석달쯤 늘어난 올 11월까지 계속 방영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 말씀합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롬 15:13)"

2. 비전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원을 가진 사람입니다. 야망의 사람이 아닙니다. 목표가 분명한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초점은 무엇입니까? "내가 불러 시키는 일"입니다(2).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선교하는 일입니다. 바나바와 바울은 가는 선교사입니다.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은 보내는 선교사입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안수하여 보냅니다. 결국 초점이 무엇이겠습니까? 생명 구원입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이 일에 비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에게 분명한 목적 분명한 비전을 주시고 한 시대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그저 부르신 것 아닙니다. 살인하고 도망간 모세를 부르실 때 그저 부르신 것아닙니다. 이사야를 불러 사용하실 때 아무런 목적도 없이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바울을 부르실 때, 베드로를 부르실 때 의미 없이 부르신 것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창 12:1-3)" 분명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모세를 부르실 때 이제 떨기 나무 불꽃 가운데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출 3:10)"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를 사람낚는 어부로, 바울을 이방인과 임금들에게 복음을 전할 하나님의 택한 그릇으로 불렀습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어야 합니다. 일평생 붙들 수 있는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폴마이어라는 미국의 학자가 수년간 조사한 자료가 있습니다. 미국은 상류층 3%, 중산층 10%, 서민층 60%, 빈민층 27%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상류층, 중산층 13%가 나머지 사람들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그들 13% 에게는 뚜렷한 비전이 있지만, 나머지 87%에게는 그런 게 없다는 것을 그는 확인했다고 합니다. 그는 상류층 3%와 중산층 10%간의 차이도 발견했습니다. 상류층 3%는 그 비전을 적어놓은 기록을 갖고 있고, 나머지는 비전을 마음속에만 새기고 있다는 차이였다고 합니다.
리콴유 싱가포르 수상이 취임사에서 밝힌 싱가포르의 비전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나는 싱가 포르를 1, 2, 3, 4, 5의 나라로 만들겠다. 1명의 아내, 2명의 자녀, 3개의 침실, 4 바퀴의 자동 차, 주당 5백 싱가포르 달러의 1인당 소득을 실현하는 나라. 이런 나라의 실현을 위해 국민 들이 협조해달라." 그가 제시한 비전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쉽게 그려졌고, 그 꿈들은 지금 대부분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쓸데 없는 비전을 가지고 사시지 마십시오. 연예인 보기 위해 일년 내내 그 집에서 맴도는 학생이 있습니다. 채팅 못하게 하니까 남편 죽이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채팅 못하게 한다고 아버지 죽이는 사람도 생길 것 같습니다. 세상과 다 같이 망할 비전을 가지고 살면 안됩니다.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동갑내기가 결혼을 하였답니다. 아내는 늘 여행에 충만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기회만 있으면 여행타령이었다고 합니다. 스위스, 프랑스... 그런데 남편은 달랐습니다. 늘 다른 여인에게 눈을 돌렸다고 합니다. 길거리의 여인을 보면 다 자기 아내보다 났게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혼하지 않고 살았는데 60세가 되어 동갑내기 부부가 친구들과 함께 생일파티를 하고 있었답니다. 파티가 끝나갈 무렵 천사가 나타나더니 부부에게 생일 축하한다며 무엇이든지 소원을 말하면 생일 선물로 주겠다고 했답니다. 부인이 말했답니다. "천사님 제 소원은 사랑하는 남편과 함께 세계 일주를 하는 것입니다. 세계일주 할 수 있는 비행기표를 주십시오." 그 말이 끝나자 팔락거리며 세계일주 비행기 표 두 장이 부인 앞에 떨어졌답니다. 남편에게 천사가 물었습니다. "그대 소원은 무엇인가 내가 들어 주겠노라" 그러자 그 남편은 "천사님 저는 늙은 마누라가 실증이 났사옵니다. 저보다 30세 젊은 예쁘고 팔팔한 아내를 주십시오. 30세 젊은 아내와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천사가 "참으로 어렵고 힘든 소원을 원하고 있구나. 그러나 네가 그토록 원하니 네 소원을 들어 주겠노라." 그 말이 끝나자마자 60세 남편이 90세 된 영감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90세 된 영감 곁에는 60세 된 젊고 팽팽한 아내가 서 있었습니다. 천사가 떠나며 하는 말은 "잘 먹고 잘 살도록 하여라"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생명 구원사역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인생을 생명 구원 사역에 초점을 맞추어 보십시오. 조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불행하지 않습니다. 있는 것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중증 장애인이지만 세계적인 가스펠 가수인 레나 마리아에 대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3월 26일 오후 7시 종로 5가 연강홀과 28일 오후 3시 양재동 횃불선교센터 사랑성전에서 두 차례 공연을 한다고 합니다. 레나 마리아는 1968년생으로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짧았다고 합니다. 레나가 태어날 당시 병원에서는 레나를 보호소에 맡기라고 권유했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그의 부모는 레나를 하나님이 주신 아이로 확신하고 정상인과 똑같이 신앙으로 양육했다고 합니다. 레나는 3살 때부터 수영을 시작해 세계장애자수영선수권대회에서 스웨덴 대표로 4개의 금메달을 땄고, 88년 서울장애인올림픽 때 스웨덴 수영선수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요리와 피아노, 운전, 성가대지휘, 심지어 십자수에 이르기까지 하나 밖에 없는 오른발로 정상인과 똑같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레나는 어릴 때부터 교회 성가대로 활동했으며 스톡홀름 음악대학 현대음악과를 졸업했다. 이후 본격적인 가스펠 가수로 음악활동을 시작해, 지금은 전세계를 순회하며 공연을 펼치고 있다. 레나의 수기 <발로 쓴 내 인생의 악보>는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일본 등 9개국에 출판돼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다. 세계 언론으로부터 ‘천상의 노래’라는 평을 받고 있는 레나는 자신의 삶은 “하나님 때문에 가능했다”며 찬양과 간증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3. 섬김의 사람들입니다.
2절에 보면 주님을 섬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물론 좁게는 예배한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들은 신분도 다르고 학력도 다르고 재산 정도도 다르고 출신 지역도 다릅니다. 그러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꼭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름의 순서를 보십시오. 바나바가 맨 위에 나오고 마지막이 사울입니다. 이것이 나이 순인지 직분 순인지 아니면 존경도 순인지 인기도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나바가 그 당시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바나바가 자기 유리한 쪽으로 행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기가 선교사로 나갑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는 사울을 세워 줍니다. 그리고 안수를 받습니다. 누구에게 받았을까요? 아마 시므온과 루기오와 마나엔으로부터 받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들에게 받을 수 있냐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흔적이 없습니다. 오직 주를 섬기는데 초점을 맞춘 가치관이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내 명예 내 영광, 내 체면, 내 자존심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한 야망이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만 드높으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손해 보고 나는 굶주리고 나는 욕을 당해도 주님 영광받으시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이 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섬김의 가치관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너가 있습니다. 이들은 성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하여 무작정 선교사를 파송한 것도 아닙니다. 금식하고 기도하며 정식 절차를 밟아 파송합니다. 내가 해야만 직성이 풀리고 일등이 되어야 만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등만 쓰는 것 아닙니다. 일등은 언제나 하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등도 쓰지만 2등도 3등도 꼴등도 쓰십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쓰고 두달란트 받은 사람도 쓰고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도 쓰십니다. 어떤 사람은 두달란트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을 인정하기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안되는 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저의 자녀들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아이는 열 개 중에 3개를 맞았는데도 아무런 괴로움이 없습니다. 그저 즐거운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반 아이 중에는 하나도 못맞은 아이도 있다고 위안을 받은 것입니다. 어떤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인데도 아빠가 불쌍하다고 이야기 하는 아이도 있는 것입니다. 다 달라요. 모두가 일등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섬김의 가치관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사용하신 다는 사실입니다.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 나라사람은 이 일이 잘 안된다고 합니다. 내가 해야 하고 내가 중심에 서야만 한다고 합니다. 목회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팀 목회는 잘 안된다는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팀 목회 (1)비전 같아야 한다. (2)라이프 스타일-자기가 누릴 수 있는 것 줄임 (3)와이프 스타일

예수님은 섬기려고 왔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하나님이 모세만 사용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아론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만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기적을 일으킬 때 왕상 18장 보면 궁내 대신 아합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는 선지자 100명을 살린 사람입니다. 엘리야를 아합에게 소개한 사람입니다.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엘리사만 사용하신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아만의 작은 여자 아이를 사용하십니다. 왕하 5장에 보는 (1)나아만이 병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랑의 관심을 가집니다. (2)엘리사에게 맺어줌-제안-용기 필요-못고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 문제가 없다. 엘리사가 고칠 수 있다는 확신, 죽으면 죽으리라
(3)나아만이 그 소리 듣고 갔다는 것은 그 아이를 그만큼 신뢰하였다는 것이다. 아람 지역이 여호와 신앙으로 변합니다.
여호수아만 사용한 것 아닙니다. 갈렙도 쓰십니다. 다윗만 쓰시는 것이 아닙니다. 요나단도 쓰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8)"

한시대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성령의 사람이 됩시다. 비전의 사람이 됩시다. 섬김의 사람이 됩시다.

한 시대 하나님의 쓰임받는 사람들/행13:1-3/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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