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 예수 믿는 기쁨이 있습니까?

이정수 목사 | 2010.04.04 21:07:2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요10:10
설교자
이정수 목사
참고
말씀의샘물 http://www.wordspring.net
본문/ 요10:10

1. 나만이 느끼는 것일까? 남들은 모두 진지하고 느껴운 감동 속에서 신앙 생활하는데 나만이 어쩐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 드는 것은. 예수님을 나의 삶의 주인으로 믿고 모시고 산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쩐지 맥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 자꾸만드는 것은. 나 만이 느끼는 것일까? 예배 시간이 부담스럽고, 졸리고, 생기가 없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리고 주일 아침 예배에 참예한 사람들이 < 아, 이제야 끝났구나 휴- >하는 듯한 표정, 오후 예배는 아예 < 오늘도 무사히 때웠구나! >하는 소리없는 한숨들. 이 모든 感이 정말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일가?

언제부터인가 악마의 제단의 향로에서 피어나는 악하고 탁한 불신앙적이고, 권태스럽고,  썩어가는 죽음의 냄새가 스물스물 우리 모든 교회에 퍼지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에게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고, 눈물이 없고, 모든 것을 다 주어도 모자라는 뜨거운 마음이 없고, 온유한 음성이 없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에 대한 차겁고 체계적인 이론은 넓은 기독교백화점 매장 안에 넘쳐나고 있는데 그리스도 그분 자체 속에서 흘러나오는 그 사랑과 그 진리에 부닥친 떨림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니 다른 사람은 모르겠고 나 자신을 생각하건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마음이 매일매일의 형식적 예배 행위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그 능력이 상실된 일상성에 매몰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것은 입이하는 일이고, 머리는 갖가지 잡생각으로 가득하게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입으로는 사도신경을 줄줄 자동으로 읊으면서, 머리로는 이 예배 끝나고 해야할 일에 신경쓴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경건의 모양은 분명히 있지만 그 알맹이는 없는 것 아닙니까?

2.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 가운데 카이사르에 대하여 평하면서 < 천재란 보통 사람은 볼 수 없고 오직 그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어떤 새롭고 기이한 것을 찾아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누구나 뻔히 보면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기존의 것들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 사람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을 신앙적 의미로 치환 한다면 < 속이 찬 신앙, 내가 진실로 바라고 원하는 감격과 감동, 절대자 앞에서의 경외와 떨림의 신앙은 기이한 체험이나 말씀에 대한 성서신학적, 조직신학적, 교육신학적  등등을 통한 심오한 재해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뻔히 보면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는 데서 회복된다 >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무엇일까? 누구나 뻔히 보면서도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예수 믿는 데서 오는 세가지 기쁨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본문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의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나라는 존재 자체가 구원 얻는 종말론적 기쁨

이 광막한 우주 속에 과거, 현재, 미래를 통털어 < 나라는 나 존재 자체 >는 단 일회적인 존재입니다. 이 나라고 하는 나 자신의 이 존재 자체는 어쩔 수 없이 여기 이렇게 살아왔고, 살아있고, 살아가고 그리고 죽어갈 것입니다. 나라는 존재 자체는 그 삶의 과정 속에서 삶의 의미 묻기도하며, 부여하기도하며, 때로는 아무 생각없이 그저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어갈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그리고 나 자신은 그리고 너도 죽을 것입니다. 사람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요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심판은 천국과 지옥의 갈림길입니다. 파스칼은 <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사람도 있고, 없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믿고 사는 사람이 수학적으로 볼 때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없다고 생각하고 살다가 정말 있다는 것이 밝혀지면 그 사람은 얼마나 불쌍할 것이가 >라고. 나는 이 말이 전혀 한 수학자의 농담이라고 생각치 않습니다.   그런데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주신다고 하신 약속이 있고 나는 그 약속을 믿습니다. 이 약속을 믿는 나는 내 영혼아 왜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하는 종말론적 불안에서 해방되는 충만한 기쁨을 받습니다.

4. 예배 속에 주시는 충만한 기쁨 - 말씀 + 기도 + 찬송

나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아버지의 영이기도 하시고 예수의 영이기도하신 성령님을 만나고 믿고 예배합니다. 삼위일체이신 그 한분 하나님께 예배드리면서 그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을 통하여 때때로 주시는 신령한 깨달음과 그 하나님께 기도 드리고난 후 주시는 분명한 응답과 내 속에서 진정으로 우러러 나는 감사 그리고 그 하나님을 진정한 마음으로 찬송할 때 내 속에 물밀 듯 파도쳐오는 설레임과 감격들 나는 그 모든 것들 때문에 충만한 기쁨을 받습니다. 나는 에수께서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하신 말씀의 의미가 바로 그런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얻게 하시고 풍성케 하시는데 왜 기쁨과 감격이 없겠습니까?
   말씀을 읽으세요 말씀을 읽으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말씀 읽으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기도를 드리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기도 드리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찬송을 부르세요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찬송 부르세요!
느껴지십니까?  여기 기쁨이 충만하지 않습니까?  큰 소리로 찬양해 보세요!

5. 성도의 교제 ( 코아노니아 )를 통하여 주시는 기쁨

성도가 서로 만나 서로 떡을 떼고, 서로 기도 하여 주고, 함께 여행도 가고, 한 사람은 전도 하여 물어오고 한 사람은 그 분을 위하여 기쁨으로 식탁을 준비하고, 사람과 사람 중에도 믿음이 같은 사람이 만나는 그 기쁨. 내가 받은 은혜를 이야기 할 때 그 의미를 알아듣는 성도와의 사귐. 수전노는 베푸는 사람의 그 기쁨을 알 수 없습니다. 벤츠를 타고 가는 사람은 지하철을 몇번 갈아타면서 주님의 집을 향하는 사람의 그 기쁨을 알 수 없습니다.

이 세가지 기쁨을 진정한 의미에서 깨닫고 회복 할 때우리의 신앙은 사막에 샘이 넘쳐 흐르는 놀라운 신앙으로 새로워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 은혜로 충만하기를 거룩하신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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