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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보기)옛사람과 새사람의 구분.

에배소서 궁극이............... 조회 수 67 추천 수 0 2022.05.23 09:5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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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엡4:22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로부터 보면 하나님에게는 시간이 없다. 하나님은 시간 안에 들지 않고 시간을 타는 분이 아닌 신령한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이나, 소원 목적이나,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은 현재이자 미래가 같이 들어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반적인 책과 다르고, 사회의 윤리 도덕적인 책도 아니고, 이방 종교인들 나름대로 정신세계를 본다는 책과도 다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특별계시다. 그런데 인간 편에서 성경을 보면 일반역사처럼 되어있다. 왜 이렇게 했을까?

 

인간의 영은 시간 속에 들지 않고 하나님의 본질에 드는 거다. 그러나 육신은 시간 속에 들어있기 때문에 아기로 태어나서 청년이 되고, 노년이 되고 한다. 인간세상에는 시간이 있고, 수많은 나라가 있다가 없어지고, 인간도 났다가 죽고 한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그것은 각자마다 세상에 거하는 동안에 이룰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 가운데서 사람이 나고 죽고, 어느 나라가 생겼다가 없어지고 하는 역사 속에는 전쟁도 있고, 개인의 생활도 있고, 단체나 사회나 나라도 있는데, 왜 이런 세상으로 만드셨을까? 그것은 개개인이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이룰구원을 충만하게 이뤄가라는 거다.

 

세계의 역사나 개인의 활동에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활동도 볼 수 있고, 유기적인 활동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주권적인 활동보다 유기적인 활동이 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어느 시대의 역사던, :의 역사던, :의 역사던 다 자기와 관계가 있는 거다. 그래서 성경에서 누구를 붙잡고 말씀을 하시건 그 답을 현재의 자기에게 대고 내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온전성으로 닮은 속성과 인격과 성품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니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알 게 아니라 인격과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을 입어야 한다.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알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자체화 되지 못한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얻어맞을 수도 있다. 깨닫고 보면 이건 복된 매다. 성경은 계시로 기록이 되었기 때문에 자기의 이성을 가지고 문자적 역사적 표면적으로 깨달으려고 하다가는 잘못될 수도 있다.

 

사람을 볼 때 일반적인 지식으로 보면 누가 생명과를 따먹고 누가 선악과를 따먹는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 그 사람의 인격적 수준이 나온다. 특히 믿는 사람들을 보면 자기는 잘 안다고 하는 말이지만 말을 듣다 보면 이 사람의 속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런가 하면 입으로 하는 말보다 인격과 성품 면이 더 잘 만들어진 사람도 볼 수 있다. 인격과 성품이 잘 만들어진 사람은 말로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다.

 

인격과 성품이 잘 만들어진 사람은 말씀을 전할 때 자기가 아는 만큼, 만들어진 만큼 확신을 가지고 말을 하게 되는데, 이건 예수자랑이다. 그러나 학벌이나 인물이나 재산 등의 자랑은 다 세상자랑이다. 이 사람은 안 믿는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똑같다. 우리는 귀만 커져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안 된다.

 

우리에게는 가르쳐 주고, 인도하고, 주님께 밀착시킬 의무만 있지 정죄권은 없다. 깨닫게 하지는 않고 정죄부터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교만이고 멸망이다. 성경은 자기에게 답을 요구하는 것인데 성경을 보면서 자기에 대고 답을 못 내리고 남에게 생각이 간다면 이것은 마귀의 시험이다. 그나마 생각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생각하면서도 양심으로는 내가 고쳐야 하는데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은 조금은 희망이 있다. 성경을 보면서 자기를 고치는 것은 없이 깨달은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 써먹어야지하다가는 큰일 난다.

 

이 세상사람들 전부가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이 물질세상은 예수님께서 계신 천국처럼 바뀌지 않는다. 세상과 천국은 본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다. 세상은 세상이고 천국은 천국이다. 그런데 구원을 이루는 사람은 자기의 세상성적인 속을 성분적으로 천국으로 바꿀 수 있다. 물질성을 신령한 것으로 바꾼다는 게 아니라 이룰구원 면에서 자기 속에서 정신적으로 역사가 되는 면을 말하는 거다.

 

 

예수 믿는 우리 속에 새사람과 옛사람이 있는데, 이것은 둘 다 존재가 아닌 질적인 면의 성분을 말한다. 그러나 존재로 말을 할 경우가 있는데, 영이 중생한 사람은 존재적으로는 새사람밖에 없는 거고, 옛사람은 존재가 아니라 성분에 속한다. 기본구원을 얻은 사람은 이렇게 딱 들어있다.

 

그러면 옛사람이 어디서 나온 거냐? 출처가 어디냐? 이것을 알기 전에, 먼저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고 영은 즉시 죽었고, 이성은 점차적으로 죽어 들어가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이것을 살리지 않으면 그대로 죽는 거다. 인간은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 하나님과 모든 게 단절이다. 생명력이나 영적인 기능과 지능 면이 다 단절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스스로 살아날 수가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의 말씀이 와야 하고, ‘죄와 허물로 말미암아 죽었던 자를 살리셨도다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주권과 독권이 와서 살려줘야 살아나게 된다.

 

사람은 일반생명이 떠나면 육체의 모든 기능이 중단된다. 아무런 건설도 없다. 이러면 땅에 묻거나 불에 태운다. 그러니 사람은 살아있을 때가 중요한 거다. 이 육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영인데, 사람이 영인성장 면이 죽으면 이는 생명권 밖이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이 애 터지게 육신에 소원 목적을 가진다면 이 사람은 죽을 사람이다. 하나님의 형벌이다. 반면에 영 위주로 살면 일반적으로도 사람의 정신이 살아있고 산 정신으로 활동을 하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지 얼마든지 살아나간다.

 

죽은 자는 자유가 없으니 선택도 있을 수 없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면에서 죽었기 때문에 뭐가 하나님의 말씀인지, 뭐가 심판의 대상인지 모른다. 그래서 영적인 것을 선택할 수 없다. 육신이 편한 대로 생각한다. 이들은 이것을 자기의 자유라고 하지만 성경으로 보면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죄에 매인 거다. 영이 중생이 된 사람이 이룰구원을 이뤄나가는 게 참된 자유다.

 

창조의 목적관으로 보면 현재에서 이룰구원을 이루며 나가는 믿는 우리가 세상의 주격자들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다른 사람을 보고 지옥에 가거라. 천국에 가거라하고 정죄할 수는 없으나 사람이 사는 위주와 언행을 보면 성분과 성질과 성격이 판단이 나야 한다. 이게 앞선 사람이다. 이 판단이 안 되면 맨날 꼬리로 살게 된다. 우리는 주님을 앞세우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건데, 이렇게 살면 주님은 우리의 머리고, 우리는 꼬리가 되는 거냐? 이건 아니다. 우리가 주님을 머리로 하고 살면 이룰구원 면에서 얼마든지 머리가 될 수 있다.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은 내가 예수를 믿어야 되겠다. 안 믿어야 되겠다한다거나, ‘이건 세상이다. 이건 천국이다하는 선택을 못 한다. 안 믿는 사람들은 영이 죽어있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선택하지 못하고 이성이 항상 물질적인 세상을 선택한다. 이방 종교인들도 영이 죽어있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것을 선택한다. 그다음에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공로로 기본구원을 얻어서 영이 중생이 되었는데, 영이 중생이 되었다는 것은 선악과 따먹고 죽은 영이 따로 있고, 중생 된 또 하나의 영이 있다는 게 아니다.

 

중생이란 선악과 따먹고 죽은 영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살리는 건데, 질적으로 하나님의 질과 똑같이 살린 거다. 그리고 중생 된 영은 본질적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자라는데, 이게 하나님의 온전이다. 교회에서는 이 면을 알고 교인들을 가르쳐야지 종교적인 부흥이니, 발전이니하면서 종교적 사역이나 활동위주로 나가면 교인들이 영인성장이 안 된다. 교회의 교훈이 이렇다면 질적인 면에서 거짓 종이다. 거짓 종 안에는 이단도 들어있다.

 

주님께서 우리의 영을 중생시킬 때 마귀가 터치를 못 한다. 그러나 이룰구원 면에는 마귀가 틈을 타기 때문에 교회 인도자는 교인들에게 교훈할 때 말씀이 분명해야 한다. 이게 안 되면 이룰구원 면이, 영적인 기능과 지능 면이 망한다. 기본구원을 얻었다고 해도 말씀을 구별 분별하지 못하면 마귀가 보낸 거짓 종들 밑에서 혹사당하고, 재산 다 날리고, 가정이 해체되고 한다. 예수 믿으면서 세상에 욕심을 부리다가 하나님께서 내려치면 그걸로 끝나는 거다.

 

중생 된 영에는 그리스도의 구속이 입혀져 있고, 구속을 입은 사람의 이성은 절대 자유가 주어져 있어서 이 자유로 진리를 붙잡거나 세상을 붙잡게 되는데, 이성이 진리를 붙잡으면 자기의 몸을 이룰구원을 위한 의의 병기로 움직이게 되고, 이러면 이룰구원이 되는 거고, 이성이 순간적으로라도 진리를 끊고 소원 목적적으로 세상을 붙잡으면 자기의 몸을 악의 병기로 쓰게 되고, 이러면 마귀의 종이 되는 거다.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고 선악과를 따먹은 사람의 이성은 이 자유가 없이 세상에, 마귀에 매인 채로 산다.

 

믿는 우리에게는 부요가 오던, 가난이 오던, 고난이 오던 다 이룰구원의 이용물이다. 그만큼 능력이 있는 거다. 욥의 경우에 욥이 당한 사건은 욥과 같은 믿음의 능력자라야 받을 수 있는 거다. 그런데 욥이 고통으로 인해 자기의 생일을 저주했는데, 이것은 당하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차라지 죽는 게 낫다는 식으로 한 말이 아니라 그 고통을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해서 나오는 한탄의 소리다.

 

이것을 이룰구원을 아는 우리 식으로 말을 하면 이룰구원의 이치를 모른다면 인간으로 태어나서 아무리 잘 살다가 죽더라도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거다.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되는 이치를 모르고 죽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사람이라면 인생이 태어난 목적을 알고 죽어야지 모르고 죽는다면 무슨 보람이 있느냐?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새사람과 옛사람이 있는데, 기본구원을 얻은 그 자체를 새사람(존재적)이라고 하고, 그다음에 구원 얻은 사람의 이성이 자유를 가지고 진리를 잡고 몸을 의의 병기로 써나가는 것을 새사람(성분적)이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새사람은 성분이면서 분명히 존재적으로도 존재하는 거다. 그리고 이성이 세상을 붙잡고 나가는 것을 옛사람이라고 하는데, 옛사람은 새사람처럼 존재로 있는 게 아니라 성분을 말한다. 우리는 이룰구원 면에서 이것을 바로 알고 신경을 써야 한다. 예수를 믿으면서 옛사람으로 살고, 옛사람을 주장하고, 세상을 자랑하는 것은 마귀 짓이다.

 

새사람의 존재는 예수 믿는 사람 속에 다 들어있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이 진리본질을 깨닫고 이성과 몸이 말씀을 따라 살면 이게 새사람으로 사는 거고, 세상을 붙잡고 살면 옛사람으로 사는 거다. 그러다가 이성이 얼른 진리를 붙잡을 수도 있고, 또 진리를 버리고 세상을 잡을 수도 있는 자유가 있다. ‘헌 옷을 벗고 새 옷을 입어라라고 하는 것은 새 옷이나 헛 옷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이성을 가진 그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러면 뭐가 회개냐? 이성이 세상을 붙잡고 살다가 진리를 붙잡는 게 회개다. 이러면 진리의 사람이 된다. 진리는 안 붙잡고 도둑질을 했네. 사람을 속였네하는 등의 일반사람들의 도덕성을 붙잡고 잘못했다고 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다. 세상을 붙잡고 있던 자기의 마음이 이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본질을 잡고 나가는 게 회개다. 악인이란 세상의 법을 어긴 것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게 악인이다. 그래서 영의 눈으로 보면 이런 악인이 교회에 제일 많다.

 

안 믿는 사람을 보고 옛사람이라고 할 수 있느냐? 할 수 없는 거다. ‘옛사람이니 새사람이니하는 것은 영이 중생 된 사람이 현재 이룰구원으로 사느냐, 안 사느냐하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성경에 옛사람에게 말한바 이는 이로, 눈은 눈으로 갚아라라고 했는데, 이 말씀이 안 믿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냐, 믿는 사람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냐? 믿는 사람이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고 하는 말씀과,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같은 성경인데 배치가 되는 것 같다. 모든 성경은 우리의 구원을 위한 말씀이니 두 말씀이 다 우리의 이룰구원을 위한 말씀이다. 다만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것은 예수를 믿지만 육의 사람에게는, 즉 옛사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들어간다는 것을 말하는 거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대로 되는 구원을 말하는 거다. 그래서 둘 다 하나님의 공의의 말씀이다. 믿는 사람들이 성경은 계시라고 하면서도 성경을 물질개념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에 이런 것을 못 깨닫는다.

 

예수 믿는 사람의 이성이 진리를 붙잡고 있으면 새사람과 통한다. 이것은 창조의 목적대로 들어간 삶이다.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설계된 구원에 맞는 거다. 그래서 새사람이나 옛사람을 말할 때는 먼저 새사람의 존재를 전제하고, 그다음에 이룰구원 면에서는 성분적으로 새사람과 옛사람을 생각하라.

 

그러면 옛사람이 둔갑해서 새사람이 될 수 있는 거냐? 세상이 천국으로 될 수 있는 거냐? 천국이 지옥으로 될 수 있는 거냐? 이건 질이 다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옛사람에게 하얀 물을 들이면 겉은 하얗게 되겠지만 속은 검다. 물이 안 들여지는 거다. 질은 안 바뀐다. 옛사람은 회개를 모르기 때문에 회개를 안 하는 거고, 못하는 거다. 옛사람은 회개 불능이다. 그러면 옛사람은 아예 불택자로 만들어 놓은 거냐? 옛사람은 택자도 불택자도 아니다.

 

열 처녀가 다 믿는 사람이냐, 기름준비를 한 다섯 처녀만 믿는 사람이냐? 잔치에 못 들어간 다섯 처녀도 신랑을 만나려고 했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다. 그리고 한 처녀가 아니라 다섯 처녀라고 한 것은 하나보다 다섯이 모이면 얼마나 더 재미가 있겠느냐? 이 면도 생각해야 한다.

 

다섯 처녀가 등불은 준비했지만 기름을 준비를 못 한 것은 세상의 춤 추고 노래하는 곳에 갔기 때문이다. 즉 열심은 부렸는데 기름이 없다. 즉 성령의 사람으로 될 교훈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 비유는 너도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가 되라는 말이냐, 준비를 못 한 다섯 처녀가 되라는 말이냐? 그리고 남자가 아닌 여자로, 그것도 처녀로 표현한 것은 신부인 교회가 어느 쪽을 더 기뻐하고 있는지를 생각케 하려는 거다.

 

기름준비를 안 한 다섯 처녀에게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라고 했는데, 이게 이 다섯 처녀는 옛사람의 존재요 불택자로 지옥에 떨어질 자라는 말이냐? 이 말씀의 뜻은 지금의 네 속에도 다섯 처녀와 같은 성분이 들어있음을 깨닫고 기름을 준비하라는 거다. 즉 이룰구원으로 살라는 거다. 지금의 내가 세상을 붙잡고 있으면 등만 가지고 있는 다섯 처녀가 되는 거다.

 

모세가 약속의 땅에 못 들어갔는데, 약속의 땅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는 것이니 모세는 옛사람이기 때문에 천국에 못 들어간 불택자냐? 이것을 들어서 예수 믿는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려는 거냐? 이것은 모세가 지옥에 갔느냐, 천국에 갔느냐?’를 말하는 게 아니라 믿음이 좋은 모세이지만 이 모세 속에 천국에 가지고 들어갈 요소가 있고, 버리고 갈 요소가 들어있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그러니까 현재의 나에게 이룰구원을 잘 이루라는 말씀이다.

 

가룟유다의 경우도 최고의 스승을 팔아먹었는데, 그래서 가룟유다가 불택자라서 지옥에 들어간 거냐? 지금 예수 믿는 사람들이 돈 때문에 믿음 팔고 예수를 파는 일이 하나도 없느냐? 믿는 사람들이 이런 일이 부지기수인데, 그러면 이 사람들이 다 지옥에 가게 되느냐?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경우에도 그 내용을 보면 도무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잣집의 대문 앞에 거지가 누워있다면 부자가 자기 집을 드나들 때마다 거지 위로 펄쩍 뛰어서 다닌 거냐? 왜 이렇게 표현했을까? 부자가 이 거지를 아침저녁으로 날마다 봤다는 의미다. 그리고 부자의 상 밑에 개가 돌아다녔고, 거지도 그 밑에 있다고 했으니 부자가 밥상을 놓고 이걸 보면서 밥을 먹으면 밥이 넘어가겠느냐? 말이 안 되는 장면인데 왜 이런 말씀을 하신 거냐? 이걸 볼 수 있어야 이룰구원의 정신과 마음이 나온다.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 되매 부자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한 것을 보면 거지도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부자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다. 그러나 부자는 질적으로 아브라함의 신앙이 아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보고 부자는 지옥에 갔다고 하게 되면 우리에게 교훈이 안 나온다. 이러면 부자가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지 않아서 지옥에 갔다고 하게 되니 이룰구원의 도를 깨닫는 것은 없이 물질을 가지고 어려운 사람을 돕자고 하게 된다.

 

성경의 인물을 존재적으로만 보면 모세나 부자는 지옥에 갔다고 하게 된다. 존재적으로만 보게 되면 말이 안 되는 말을 하게 된다. 모세가 천국에 못 들어갔다면 수백 년이 지난 후에 모세가 변화산상에서 주님과 함께 나타났는데, 지옥에 가 있는 모세가 주님을 만나서 대화를 한 거냐?

 

성경에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이건 아가페 사랑이다. 아가페 사랑을 알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아가페 사랑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라는 거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우리로 사랑의 사람으로 인격화 자체화 실상화 성품화 되라는 거다.

 

믿는 사람이 말씀을 깨달았다고 하면서 자기의 억울함을 판단해 달라고 세상의 법정에 고소하는 것은 사랑의 마음이 아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랑이 없는 거다. 교리적으로 말하면 성도들은 영이 살았고 안 믿는 사람들은 영이 죽어있는데, 영이 죽은 자들이 차원 높은 하늘의 사람들을 어떻게 판단하겠느냐? 그런데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목사들이 어떻게 그런 사람들에게 판단해 달라고 꿇어 엎드리느냐? 이건 이방 불신자들보다도 악한 거다. 그러니 무엇을 깨달은 거냐?

 

부모가 돌아가시니까 욕심 많은 형제가 내 것을 뺏어가려고 해도 믿는 우리는 세상 법 앞에 고소는 안 된다. 우리의 판단자는 하나님이니 하나님께 맡겨라. 예수 믿는 사람은 이 면이 초월이 되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면 말씀을 많이 알고 적게 아는 게 무슨 소용이냐?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는 게 믿음이다.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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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53 사사기 (계시보기)인본주의와 신본주의./(외) 삿13:5  김경형목사  2022-05-17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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