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창세기 ›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이정원 목사 | 2017.04.13 23:48:50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창42:24-38
설교자
이정원 목사
참고
2016.10.2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창42:24-38


  하나님은 택하신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시며, 언제나 가장 선한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요즘 우리가 묵상하고 있는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당신은 이것을 확실히 믿습니까? 우리가 이 확신을 갖게 되면 아무리 어려운 일을 만나도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이 확신이 없는 사람은 늘 두려워하며 불안한 마음을 떨쳐버릴 수 없습니다. 일이 안 풀리고 어려움이 생기면, 이러다가 망하는 것이 아닌가 안절부절 합니다. 심지어는 일이 잘 될 때도, 이러다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불안해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당신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고 언제나 선하게 인도하심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때로 어려운 일이 생길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때도 함께 하셔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사는 성도는 정말 복 있는 사람입니다.


    곡식 자루에 들어있는 돈


  기근이 심하여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은 아들들을 애굽에 보내 곡식을 사오게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애굽에 와서, 이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앞에 엎드렸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렸던 형들은 이제 요셉의 손아귀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살릴 수도 있었고, 죽일 수도 있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요셉은 자기 앞에 와서 엎드려 절하는 형들을 보면서 그의 꿈을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통하여 형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백성으로 바로 서게 하시며, 그 후에 그들을 애굽에서 번성하게 하실 계획이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요셉은 형들을 엄하게 대하면서, 그들을 스파이로 몰아붙였습니다. 형들은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자기들은 한 아버지의 아들들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본래는 열두 아들이 있었는데,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지금 아버지와 함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요셉은 아버지와 동생 베냐민이 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더욱 엄하게 심문하고, 막내 동생을 데리고 와서 그들의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라고 하면서 그들을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만일 그들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들은 죽음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흘 후에 요셉은 그들 중 한 사람만 감옥에 남고, 나머지는 양식을 가지고 가서 굶주린 식구들을 구하고 막내 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다른 형제들이 보는 앞에서 시므온을 결박했습니다. 그리고 곡물을 자루에 채우고, 각 사람의 돈을 도로 넣어서 형들을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던 형들이 도중에 여관에 들렀을 때, 그들 중 한 사람이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곡식 자루를 풀었다가 곡식 값으로 지불했던 돈이 거기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일을 알게 된 형제들은 두려워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이 곡식을 나귀에 싣고 그곳을 떠났더니 한 사람이 여관에서 나귀에게 먹이를 주려고 자루를 풀고 본즉 그 돈이 자루 아귀에 있는지라 그가 그 형제에게 말하되 내 돈을 도로 넣었도다 보라 자루 속에 있도다 이에 그들이 혼이 나서 떨며 서로 돌아보며 말하되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 하고”(26-28절)


    형제들이 두려워 한 이유


  요셉은 왜 형들의 곡식 자루에 돈을 도로 넣어서 보냈을까요? 그것은 형들과 아버지 집에 대한 애정과 배려였습니다. 요셉은 아버지의 집이 기근 때문에 굉장히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것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돈을 도로 보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형들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애굽의 엄하고 교활한 총리가 자기들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그렇게 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들을 간첩으로 몰아붙이고는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형들은 애굽의 총리가 자기들에게 이런 짓을 했다는 것은 자기들을 해치기로 작정한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형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엄습해왔습니다. 이제는 꼼짝없이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일 형들이 요셉의 의도를 알았더라면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히려 감사하며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셉의 의도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모든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 베푸실 것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문제를 해석하는 능력


  형들은 요셉의 의도를 알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뜻하지 않은 일을 당하자 두려워 죽을 지경이 되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이 사건을 통해 애굽 총리의 호의와 배려를 읽을 수 있었더라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안심하고 기뻐했을 것입니다. 설령 애굽의 총리가 자기들을 해치려고 그렇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도, 그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있었더라면 그 두려움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요셉의 의도도 알지 못했고,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에 대한 확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지키시며 선하게 인도하시는 것을 믿지 못했을까요? 왜 요셉의 선한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요?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난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께서 지금 자기들을 축복하시며 선하게 인도하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자기들에게 큰 재앙인줄 알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이러한 형들의 모습은 요셉과는 매우 대조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당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스럽고 두려운 일들을 많이 당했습니다. 물론 요셉도 불안하고 두려운 생각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 말씀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꿈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곧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러자 그가 당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을 선하게 인도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의 꿈을 정확하게 해석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애굽에 닥쳐올 큰 재앙에 대한 해결책까지도 명쾌하게 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오늘 우리에게 큰 교훈과 도전을 줍니다. 오늘 당신은 당신에게 닥쳐오는 사건들의 의미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며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사건을 말씀으로 올바르게 해석하는 능력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이 복된 확신은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가질 수 있을까요? 하나님 말씀을 날마다 진지하게 묵상하고 기도하며 살아갈 때 그것이 가능해집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늘 기도하는 삶을 살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우리에게 닥쳐오는 모든 문제를 말씀으로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거기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체험하며 확신할 수 있습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면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고 안심하게 됩니다. 오늘 당신에게 이러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야곱의 반응


  요셉의 형들은 이렇게 두려워하면서 집으로 돌아와 그들이 겪었던 모든 일을 아버지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돌아와 그들의 아버지 야곱에게 이르러 그들이 당한 일을 자세히 알리어 아뢰되”(29절) 야곱이 곡식을 구하기 위해 애굽에 다녀온 아들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는 엄청나고 기가 막힌 것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가 자기들을 간첩으로 몰더니, 시므온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아들들을 돌려보내면서, 만일 막내 동생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모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들들이 곡식 자루를 풀었을 때, 곡식을 사기 위해서 가지고 갔던 돈이 각자의 자루 속에 다 들어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야곱과 그 아들들은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만일 너희가 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라는 경고처럼 보였습니다.


  아들들의 말을 들은 야곱은 불같이 화를 내며 한 맺힌 원망의 말을 퍼부어댔습니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에게 내 자식들을 잃게 하도다 요셉도 없어졌고 시므온도 없어졌거늘 베냐민을 또 빼앗아 가고자 하니 이는 다 나를 해롭게 함이로다”(36절) 야곱은 애굽에 억류된 시므온이 죽은 것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리고 막내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면, 베냐민도 죽게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요셉도 죽고 없는데 시므온도 데려오지 못하고, 이제 베냐민마저 데리고 가서 죽게 할 작정이냐?”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의 말을 통해 그가 요셉을 잃은 후 어떻게 지내왔는가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는 가장 사랑하고 기대하던 아들을 잃은 상처를 그대로 안고 살아왔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깊은 원망과 절망이 사무쳐 있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아들들을 믿지 못했습니다. 불신과 원망과 죄가 하나님께서 택하신 야곱의 집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야곱에게서 우리는 신앙인의 성숙되고 견고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야곱에게 큰 축복을 예비해 놓고 계셨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기근이 심하여 이제 가나안 땅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해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양식이 얼마든지 있는 애굽에 그들이 염려 없이 살 곳을 이미 마련해 놓고 계셨습니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하나님께서 야곱과 그의 온 가족을 요셉이 총리로 있는 애굽으로 인도하시는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일들은 야곱과 그의 가족들에게 큰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모든 것이 다 자기를 해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아들들에 대한 불신과 분노와 증오와 원망이 가득했습니다.


  야곱은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버렸고,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들이었지만, 하나님 백성다운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하여 이러한 야곱의 가정을 치유하시고 회복시키고 계셨습니다.


    딜렘마를 푸는 법


  야곱의 아들들은 자기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난제 빠지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총리는 자기들을 간첩으로 몰아 시므온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막내 동생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만일 막내 동생을 데리고 가지 않으면, 그들의 말은 거짓이 되고 그들은 간첩의 누명을 벗지 못한 채 죽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은 절대로 막내 동생  베냐민을 내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요셉을 잃고 난 후, 아버지는 베냐민을 자기 생명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만큼은 절대로 보낼 수 없다고 완강하게 거절했습니다. 게다가 극심한 기근은 계속되고 있었으며, 애굽에서 사온 곡식은 떨어져가고 있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렘마에 빠져 있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겠습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애굽의 총리에게나 아버지 야곱에게 모든 사실을 진실되게 밝히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그들은 아버지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보고했습니다. 아버지는 격노하면서 원망의 말을 퍼부어댔으며, 절대로 베냐민을 보낼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진실을 말함으로써 그들은 일단 문제의 실마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애굽의 총리에게 자기들은 한 사람의 아들들이며, 자기 동생 하나는 없어졌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을 할 때 그들 모두는 양심이 찔리고 괴로웠을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아버지에게 모든 사실을 보고할 때, 그들은 다시 그들이 팔아버렸던 동생에 대해서 말해야만 했습니다. “우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는 확실한 자들이요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우리는 한 아버지의 아들 열두 형제로서 하나는 없어지고 막내는 오늘 우리 아버지와 함께 가나안 땅에 있나이다 하였더니”(31-32절) 그들은 아버지 앞에서 그 동생이 죽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그 동생을 팔아버렸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는 없어졌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들은 속으로 자기들이 동생을 판 죄를 실토하고 괴로워하며 회개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압박하셔서 죄를 기억하고 회개하도록 만드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들이 모든 것을 진실하게 말하고, 자기들의 죄를 진정으로 회개하는 것만이 이 진퇴양난의 난제를 해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애굽의 총리에게도 오직 진실 외에는 통할 수가 없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애굽의 총리에게 베냐민 또래의 남자를 데리고 가서 세운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놀라운 애굽의 총리는 몇 마디 질문을 던져본 후 그들이 자기를 속인 것을 당장에 알아내고 말 것입니다. 일이 이렇게 되면 그들은 화를 자초한 꼴이 될 것입니다. 애굽의 총리는 절대로 속아 넘어가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다 죽이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말 베냐민을 데리고 가는 것 외에는 그 어떤 해결책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진퇴양난의 문제에 직면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 우리는 인간적인 수단과 거짓된 술수를 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 될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실토하고 회개하도록 압박하시는 때이거나, 아니면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촉구하시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경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진정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문제를 해결하셔서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되게 하십니다.


  오늘 복잡하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어떤 경우에도 가장 선하게 인도하신다는 확신입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사는 성도는 정말 복된 사람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


  당신은 이러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이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요? 날마다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과 깊고도 친밀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그 교제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며 기뻐하신다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이런 성도는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며, 나를 선하고 신실하게 인도하시는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두려워하거나 흔들리지 않고 안심할 수 있습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는 가운데 이 복된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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