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요한복음 ›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못박히신 예수님

푸른하늘 | 2019.03.23 12:20:01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성경본문
요19:17-18
설교자
김성호 목사
참고
예닮교회 주일설교(요한복음 강해)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심과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의 의미를 보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17절)


‘자기의 십자가’에 담겨있는 뜻은 예수님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인 인간을 구원하시는 길은 고통의 길이지만 마다하지 않고 억지로 떠밀려서 십자가를 지지 않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스스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구약의 이사야의 종의노래 세번째 부분에서 아주 잘 예언되어져 있습니다. 이사야 50장 4-7절까지를 보면 본문을 보면 학자의 혀를 주셨다고, 아침마다 나의 귀를 깨우쳐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메시야에게 아침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끔 말씀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거역하지도 아니하고 뒤로 물러서지도 아니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순종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여도 내 얼굴을 가리지 아니하였느니라 /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므로 내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내 얼굴을 부싯돌 같이 굳게 하였으므로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줄 아노라 /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냐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냐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 보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 메시야는 하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얼굴이 부싯돌처럼 단단하게 되어서 모든 고난을 다 견디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예수님은 이루시는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2장 2절 말씀에서도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후편에 앉으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심으로 또한 순종의 결과가 기쁨임을 아셨기에 십자가를 기꺼이 지신 것입니다.

 
둘째,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로 나가셨습니다.(17절)


골고다는 예루살렘 성의 밖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골고다’ 라는 장소보다 성밖으로 ‘나가셨다’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나가셔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11-12절입니다.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밖에서 불사름이라 /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밖에서 고난 받으셨느니라’


이는 레위기 16장 27절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속죄제 수송아지와 속죄제 염소의 피를 성소로 들여다가 속죄하셨은즉 그 가죽과 고기와 똥을 밖으로 내다가 불사를 것이요’(레16:27) 주님의 성문 밖으로 나가심은 모든 인류를 위한 속죄제를 온전히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율법을 익히 알고 있는 히브리 교인들에게 말할 때 특별히 이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영문 밖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렇게 일년에 단 한번있는 대속죄일의 속죄제물이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13장 13절에서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영문밖으로 나가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그에게 나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무슨 말씀이냐면 성밖에 버리워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라고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셋째, 십자가에 못박히시는 예수님


십자가형은 자기의 살을 뚫는 순간적인 고통보다 몸을 가누기 위해서는 그 고통을 끊임없이 느껴야 하며 죽기까지 속도를 최대한으로 늦추어 고통을 최대한으로 오래 느끼게 하는 사형법입니다. 즉 몸을 고통에 의지해야 살고 그래서 살아있다는 것이 고통인 것이 십자가 형입니다. 예수님은 그냥 죽지 않으셨습니다. 사는 것이 고통인 장치, 고통과 아픔을 기대야만 하는 장치인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런 십자가의 고통이 나타내는 것은 죄로 물든 인간의 삶이 사실 이렇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인간의 삶 자체가 고통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죄로 물든 인간의 삶은 살면 살수록 하나님 앞에 심판의 제목만 만들어냅니다. 인간의 입으로 산소가 들어가면 나오는 것은 이산화탄소입니다. 또한 남의 고통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야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아닙니까?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당하는 고통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죄의 고통을 몸소 겪으며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으심은 인간의 죄의 삶의 죽음을 알리신 것이다. 고통을 몸소 겪으심으로, 고통의 숨을 쉬심으로 그렇게 죄의 결과를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며 동시에 이러한 죄의 결과를 예수님이 모두 짊어지시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사야 종의 노래 네번째인 53장 5-6절에서 바로 이 사실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5,6)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다 저와 여러분 각자의 죄의 고통이라는 말씀이며 예수님이 이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가 용서함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사순절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 고통의 처절함을 기억하시고 그에게로 나아가고 또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분의 고통에 참여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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