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마라!

물맷돌 | 2022.08.14 21:54:33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아침편지3121] 2022년 7월 21일 목요일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마라!”

 

샬롬! 지난밤 편안히 잘 쉬셨는지요? 푹푹 찌는 삼복더위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에 아무 이상 없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비흡연자로서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 중, 환풍기에서 나오는 담배연기로 힘들어하시는 분들을 위한 제품이 나왔습니다. 온라인마켓에서 ‘에어스케이프’로 검색하면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품에 비하여 가격이 꽤 셉니다.

 

어린시절, 아버지께서 술에 취하시면 꼭 하시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행정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평소엔 술을 잘 마시지 않았으나, 일이 년에 한 번씩은 만취상태로 들어오곤 하셨습니다. 대개 직장에서 수모를 당했거나 승진하지 못했을 때였습니다.

 

그런 날이면, 자고 있는 자녀들을 깨워서 일장연설을 하셨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는지, 자신의 꿈을 포기하고 얼마나 힘들게 일하고 있는지, 그리고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등, 신세한탄에 가까운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의 끝은 늘 “너희는 나처럼 살지 말라”는 거였습니다.

 

어릴 때는 그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공무원을 하면 안 된다’는 말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돌아보면,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불안스러운 나머지, 삶이 버겁게 느껴졌던 겁니다. ‘그냥 태어났으니까 살고, 주어진 일이 있으니 해야 한다’는 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다보니, 뭔가를 선택하는 게 힘들었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삶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었습니다. 의대에 진학한 것도 부모님의 권유 때문이었습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전공한 것입니다. 그 과(科)를 원해서가 아니라, 그 과(科)를 선택할 만큼, 제가 힘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 자신부터 이해하고 치료하고 싶었습니다. 전문의(專門醫)가 되고, 차츰 고통이 옅어지자, 그 동기조차 약해졌습니다. 저의 인생은 빈 배처럼 물결 따라 흘러갔고, 제가 하는 일은 생계수단 이상의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30대 중반이 되어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낳고도 시큰둥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아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웠습니다. 묘하게도 그 느낌은 저에게로 고스란히 돌아왔습니다. ‘무엇인가를 해내야 한다.’고 다그치는 마음이 줄어들고, 이전보다 저를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내일 계속)(출처; 좋은생각, 문요한/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저는 이 글을 읽으면서,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부정적인 언어를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자녀들 앞에서 부모가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도 진정 삼가야 할 일입니다. 글쓴이가 어릴 때부터 삶에 대하여 막연히 두려움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선친이 보여준 ‘부정적인 모습’이 그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튼, ‘부모는 자녀가 자연스레 본받아 살게 되는 모델이고, 자녀는 부모의 거울이다.’라는 말이 참으로 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물맷돌)

 

[여러분이 이 사실에서 깨달아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옳게 가르치듯이, 여러분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가르치셨다’는 사실입니다.(신8:5,현대어) 부모들에게도 한마디 당부하겠습니다. 자녀들을 너무 꾸짖지 마십시오. 또, 잔소리를 늘어놓아 반항심을 일으키거나 분노를 품게 하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주님의 사랑이 담긴 훈계와 조언과 충고로 키우십시오.(엡6:4,현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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