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장기려, 그 사람

손봉오 박사 | 2010.07.07 16:23:47 | 메뉴 건너뛰기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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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려, 그 사람

나는 젊은 학생들에게 강연할 때 가끔 장기려 박사를 아는 사람은 손들어 보라고 한다.
손을 드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런데 테레사 수녀를 아는 학생은 매우 많다.
외국의 성자는 잘 알면서 한국의 성자는 모르는 현실이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다.
장기려 박사는 무소유 원칙으로 일생을 보내고 10년 전 세상을 떠나셨다.
서울대, 부산대 의대교수, 부산 복음병원 원장을 지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방 한 칸 없었다고 한다.
자신의 소유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부산 복음병원 원장으로 계셨을 때의 일화다.
어느 생활이 어려운 분이 퇴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막막하고 있을 때
장기려 박사가 그 사실을 눈치 채고 병원 뒷문으로 몰래 빠져 나가게 해 주었다.
이 일을 통해 그의 가난한 이웃에 대한 배려와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6.25때 부인과 자녀들을 북한에 두고 아들 하나만 데리고 월남하였다.
그의 부인은 이광수의「사랑」에 등장하는 ‘안빈’의 모델로 알려진 분이다.
그가 부인을 그리며 1990년에 쓴 망향편지는 우리들의 가슴을 에이게 한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 듯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 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둠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 못해 불을 밝히고 이 편지를 씁니다. 여보…."

미국에서 북한을 많이 도운 그의 제자 김윤경 박사가
북한당국과 합의하여 중국에서 장기려 부부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그 기회를 사양하였다.
그런 특권을 누리면 다른 이산가족의 슬픔이 더 커진다는 것이 이유였다.
최근에 「장기려 그 사람」 이라는 책이 나왔다.
그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어야 한다.

손봉호 박사 |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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