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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주 목사 | 2017.08.11 23:56:29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응답하라 1988-교회의 추억


이 글은 지난 해 12월 29일 국민일보에 실린 글에서 발췌한 것이다. 쌍문동 주님들의 1988년 경의 삶을 소재로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배경이 된 동네를 찾은 김주현 집사의 당시 신앙생활의 기억을 되새기는 내용이다.


그 때는 주일 예배 때 밴드가 반주하지 않았다. 피아노도 아니고 주로 풍금을 사용했다. 교인들은 가사가 적힌 궤도를 보며 찬양을 불렀다. 손 글씨로 가사를 적은 전지를 여러 장 엮어 괘도걸이에 걸어 사용했다. A4 크기의 투명한 OHP 필름에 가사를 적고 환등기로 영사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성탄절에 새벽송을 하던 추억을 이야기했다. 성탄절 전날 교인들은 어김없이 교회당에 모였다. 예배를 드린 뒤 자정이 되면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찬양을 불렀다. 아기 예수님이 나신 기쁜 소식을 전한 것이다. 그러면 집에서 기다리던 성도들이 가져간 자루에 과자나 과일을 담아주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대부분의 교회가 새벽송을 하지 않았다. 새벽에 시끄럽다는 주민들의 항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의 밤”이란 행사도 열렸다 중.고등부 학생과 청년들이 마을 주민들을 교회로 초청해 연극, 율동, 노래 와 태권도 시범도 보였다. 당시 교회에서는 문학의 밤 입장권도 팔았는 데, 수익금으로 음식을 만들어 주민에게 대접하거나 불우이웃을 도왔다.


기타를 메고 교회 앞에서 노방전도를 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찬양을 부르며 “예수 믿으세요”를 외쳤다. 때로는 노방전도를 하다가 다른 교회의 전도팀을 만나 서로 격려했던 적도 있었다. 요즘 이런 모습도 사라졌다. 역시 시민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여름과 겨울에는 성경학교에 갔다. 밤이 되면 모닥불을 켜놓고 켐프파이어를 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응답하라 1988’에서도 나왔던 것처럼 ‘마니또’라는 게임을 하면서 티나지 않게 남을 도왔던 적도 있었다.


논과 밭이었던 땅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차가운 아스팔트가 깔리면서 이웃 간에도 벽이 생겼다. 개척 초기만 해도 이웃끼리 음식을 나눠먹고 어울리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왔지만 지금은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세대가 너무 빠르게 변하면서 예전의 순수했던 모습을 잃어가는 것 같아 각박하지 않았던 그 때가 그립다. 우리사회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이웃이나 정에 대해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추억을 이야기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이젠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가서도 안 되는 일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현대 문명에 맞는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어 간직하는 것이다. 그리고 3-40년이 지나 지난날들을 돌아보며 그 추억을 이야기 할 수 있다면 그 역시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후 세대에게 어떤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최한주 목사 <푸른숲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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