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 그래도 내게 그 부분을 주겠니?

물맷돌 | 2020.02.02 08:42:55 | 메뉴 건너뛰기 쓰기

주일아침에(118) - 그래도 내게 그 부분을 주겠니?


샬롬! 2월 첫 주일 아침입니다. 은혜와 기쁨이 넘치는 행복한 주일이 되시길 빕니다. 우리나라처럼 경어(敬語)와 존칭(尊稱)을 쓰는 나라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영어에서 you(당신, 너)는, 친구를 비롯,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한테도 동일하게 you를 사용합니다. 그러니, 성경번역자들이 꽤나 애를 먹었을 겁니다. 요한복음 21장 5절을 보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얘들아!’하고 부르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면서 인간이시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번역’이라고 여겨집니다. ‘쉬운성경’만 ‘친구들이여’로 번역했을 뿐, 다른 번역본들은 모두 한결같이 ‘얘들아’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의대생들은 고비마다 공부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하여 뭔가 잘라버리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어떤 친구는 사귀던 이성친구와 결별을 선언하고, 어떤 친구는 집을 나와 학교에 가까운 고시원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크리스천 친구는 교회와 작별을 고합니다. 여기서 치명적인 실수가 발생합니다. 저는 이것을 ‘책상 치우기’에 비유하곤 합니다. 치우다보면, 치우지 말아야 할 것까지 치워버리는 겁니다. 크리스천 의대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쪼개어 겨우 예배드린다 해도, 빠듯하게 짜놓은 공부일정에 마음이 조급해져, 청년부나 공동체 모임과는 담을 쌓게 됩니다. 입으로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그 주권의 영역은 자신이 정해놓은 선(線) 이상을 넘지 못합니다. ‘나에게 예수님은 몇 번째 순위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고민을 풀어낼 해답입니다. 공부의 양(量)이 더욱 과중하게 압박을 가해오던 본과 3학년 1학기 동안에는, 사귀던 여자와도 주중에는 만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때, 제가 직면했던 하나님의 음성은 이것이었습니다. “네가 날 위하여 시간과 마음을 포기한다면, 내가 정말로 기쁘게 그 예배를 받겠다. 하지만, 너는 그로 인하여 성적이든, 이성교제든, 사람들과의 관계든, 그 무엇에선가 분명히 손해를 볼 수 있다. 그래도 내게 그 부분을 주겠니?” 이 질문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손해 보는 일’을 할 때마다 스스로 되새겨보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출처; 그 청년 바보의사)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내 생명을 보호해주소서. 주의 의로움으로 나를 어려움 속에서 이끌어내 주소서.(시143:11)]


[풀어쓴 요한복음27]http://cafe.daum.net/moolmatdoll/IBRF/27
 [과거주일설교]http://cafe.daum.net/moolmatdoll/H4rH/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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